밀양 청구 갤러리 서화 연구실 ..........고향에서 후학을 지도
우리나라가 코로나로 인하며 모든 산업이 마비되고 예술 문화 창작 활동이 제한되어 움추리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019년도 서울 한국미협 대한민국 미술대전으로 간소하게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서울에서 몇 일을 유하게 되었는데 강남 봉원사로 부처님께 참배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찾아뵙고 뒤돌아 전각을 참배하고 마지막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쓰신 판전(경전 판각한 것을 모아둔 곳)을 보고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십여년 전에도 왔지만 참배할 때 마다 새로운 기운을 받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서원을 맹세하는 곳이라 마음먹고 천배를 했습니다
부처님전에 해도 되지만 서예의 거두이자 필묵의 서왕으로 추앙하고 서예인의 정신적인 지주로 추사선생이 혼이 살아 있는 이 곳에 기도하기가 나에게는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는 대구로 돌아 왔는데 그 날 저녁 꿈에 혼자 인사동 거리를 돌아 다니며 아는 지인 화실로 가기도하고 전시실에 관람도하고 미술인이 많이 거주하는 한국미술관 오피스텔을 가서 시간을 즐기고 놀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는 그 동네가 많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꿈을 께었는데 새벽이지만 한숨을 돌이키고 커피를 한잔하니 “아 이것이 로구나 나도 인사동으로 진출해야지”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날로부터 노래처럼 인사동으로 진출하여 오피스텔을 얻어 전국에 기라성 같은 예술인과 자웅을 겨루며 여기서 보고 배우야겠다는 생각에 인사동 진출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다른 이에게 이야기 하기도 하고 실제 그렇게 해야겠다고 절에 회장,총무,간부님에게 또 미술인에게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인사동가면 재정 지출이 많다고 사찰에서는 모두 반대 하였는데 꼭 하고 싶어면 10년후 사찰을 문중스님에게 물려주고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귀신이 쉬었는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동에 터전을 마련 할려고 한 해를 가고 오고 하던중 우연찮게2020년초 난데없는 코로나가 발생 했든 것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문화행사가 중단 되기도하며 출강하던 센타 교육기관이 강의가 중단 되었습니다
매일 강의 하던 스님이 이번 기회에 마음도 쉬고 몸도 재충전하는 계기로 삼아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절에서만 회원이 찾아오니 수요일,목요일에 소일삼아 삼소정에서 문하생을 제접하고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의 코로나 가 심해 3,4,5월이 지나고 여름철이 되어 드라이브겸 여름휴가를 고향으로 가게 되었는데 밀양은 유원지가 많아 어딜가도 시원하고 경치가 좋습니다 그 중 금시당이란 유원지에 평소 동문이신 친구가 식당과 커피숖을 개창하게 되어 가끔 고향으로 드라이브 가면 들리는 곳입니다
하루는 학교 다닐 적부터 친한 친우인 하 사장님이 오늘 저녁 금시당 강가에 차박을 한다하네요 버스를 개조한 캠핑카다 하길래 궁금하여 현지에 가보고는 하루를 유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경치가 좋지요 물도 맑아 천하 절경 이였습니다
노후에는 고향이 좋겠구나 하며 캠핑카에서 잠을 청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잠을 설쳤는데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지긋이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짓고는 다른데서 고생하지 말고 고향이 어떠하냐“ 어릴 때 놀던 고향과 학교다닐 적에 추억이 있는 영남루와 솔밭(소나무), 운동장이 그립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생시 같아 머리를 다시 쓰다 덤어 보고 만져도 보았습니다
시원한 밤를 보내고 친구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공양을 하고는 위층에 커피솦이 있어 커피를 한잔 하게 되었습니다
커피솦에서 귀인보살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보살님은 민화와 운동을 좋아하고 재주가 많는 종합 예술인이였습니다
베시시 웃는 그의 모습에 “민화는 어떻게 하고 미술대전은 출품해 보았냐고 물어도 보고 앞으로도 계속 취미활동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제 밤 꿈도 그러하고 어쩌면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키는 교습소를 해야 될지 모르기에 관심을 표현 하였습니다
화려한 서울 인사동보다는 내실 있고 알찬 밀양으로 회군하는 것 또한 부처님 뜻이고 가피이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뒤 9월이 되어 우연찮게 밀양 부동산에 가서 알아보니 마침 급매물이 있어 계약하고 가을에 올 수리하여 12월25일 년 말에 갤러리를 오픈하며 전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참으로 코로나가 극성하여 밀양은 그의 전쟁 수준이였습니다
주위에 있는 친우들과 스님네도 개원하는 것을 반대하고 해서 의기 소침했습니다만 일찍이 준비한 전시회 도록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로 인해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나에게는 후퇴가 없는 전진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부처님께 맞기고 부처님 빽으로 기도하며 대구와 밀양을 오가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는 많이 취소하고 퍼포먼스도 취소하며 오시는 대로 간략히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의 지인,문하생,미술작가와 밀양의 지인, 멀리서 동창들이 와 축하해 주었습니다
전쟁같은 연말 분위기 밀양에 전선을 뚫고 찾아와 격려하고 축하하는 지인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잊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러울 때 찾아준 지인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기록에 기록을 더하였습니다
전시 기간중 문하생을 모집하는데 일전에 금시당에서 만난 귀인보살님이 전생에 인연인지 많이 도와 주시고 갤러리 서실을 홍보해 주시어 첫 개강때 지역에서 14분의 회원이 왔습니다
고향이지만 00지역 예총회장을 지내고 계신 분을 서화실 회장으로 추대하고 귀인보살님을 서실 부회장으로 지역에 유능한 강사 선생님을 총무로 지역에서 큰 사업을 이루신 보살님을 부총무로 인준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지역에서 취미로 공부하고 모범적인 사교장으로 갤러리 서화실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회원 막지 않고 가시는 회원 붙들지 않으며 평상심이 도라는 부처님 마음으로 지도하였더니 지금은 많은 회원이 성만되었고 금요일만 특강 하였는데 토요일까지 수업을 연장하며 배우고자 하는 열기에 저는 무심한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인도 저는 막지 않습니다 마음을 닦는 곳에는 높고 낮음이 없어며 귀하고 천한거 또한 차별이 없고 종교에도 대척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며 모두가 한 문중으로 대화하고 소통합니다
회원님의 성향을 보면 지역에 젊은 전업주부,퇴직공무원,선생님,고위관료나 사업가, 운동가, 예술인이 고루 분포하여 서실이 날로 거듭 나고 있습니다.
사실 코로나 분위기로 언론 매체나 현수막,지역 홍보지에 알리지 못하고 이와 같이 성만하게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요 회원여러분의 노고 덕분입니다
고향에서 후학을 지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요. 인연, 지연, 학연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하는 거 또한 어렵고 고향에서 앞만 보며 나아가기가 쉽지 않는 곳 입니다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반드시 이겨 내겼습니다
묵묵히 앞만 보고 갈 것이며 평상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리해야 밀양에서 토굴로 자리 잡고 대구와 밀양을 오가며 노년에 운동으로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영혼(지필묵과 함께하는 사람은 영혼이 맑다)이 맑은 문하생들과 행복을 즐기면서 살겠습니다
여기서 자리를 잡으면 실력가로 어딜 가나 인정 받을 것이고 여기서 물러나면 공부를 더 해야겠지요.
모든 걸 부처님께 맞기고 목탁을 치면서 부처님의 빽으로 나아갑니다
한 손에 붓 한 자루, 한 손에는 목탁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붓과 필력으로 나아 가 말하겠습니다.
회원님들은 여가 생활이 거의 필묵과 운동으로 사시는 분이 대부분이신데 動과 靜을 안과 밖을(內外) 닦는 맑은 영혼이기에 모두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하시고 불은이 충만 하시기를 부처님전에 기도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僧是僧兮俗是俗이며 喜則笑兮悲則哭이라
若能於此에 善參詳하면 從來三十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승시승혜속시속이며 희즉소혜비즉곡이라
약능어차에 선참상하면 종래삼십육이니라
스님은 스님이고 속인은 속인이며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도다
만약 여기에서 잘 참구하여 살피면
육육은 본래 삼십육이니라.............................나무아미타불
불기 2565년 8월1일 청구갤러리 서화실
개원 일화를 적어 기록에 남기다
서실교수 정선 박용국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