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江原道 藥水(광천수)
Ⅰ. 머리말
예로부터 藥水는 질병을 고쳐주는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조선조의 세종과 세조도 고려 때부터 그 신비한 효험이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온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초정리의 초정약수로 안질과 소갈증 및 피부질환을 고쳤다는 기록이 《朝鮮王朝實錄》에 보인다. 특히 세종은 그곳에 행궁을 차리고 60일에 걸쳐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쳤다고 하였다.
《東國與地勝覽》‘淸州牧’ 條에도 초정약수에 대하여 이르기를 “초정약수는 주의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와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종과 세조가 일찍이 여기에 행차한 바가 있다. (椒水在州東三十九里 其味如椒而冷 俗則己疾 我世宗世祖嘗幸于此)”고 하였다. 또 세조는 약수로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속리산 입구의 ‘正一品 松’의 전설을 빚었고, 세조가 상원사에 갔을 때 문수동자가 약수로 세조의 몸을 씻겨서 어서 피부병이 나았다는 설화가 방아다리약수와 신약수가 있는 오대산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약수는 몸에 약이 되는 좋은 물로서 보통 자연수인 生水와, 각종의 광물질이 용해되어 있어서 탄산이나 철분 등 함유성분에 따라 독특한 맛을 내는 鐄泉水를 통칭하여 이른다. 그러나 정확히 구분하자면 약수는 생수를 제외한 광천수를 이르는 용어로서, 여기에서도 약수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였다.
물은 그 기운에 따라 암물과 수물, 무게에 따라 중수와 경수, 용도에 따라 정화수 · 월침수 · 납설수 등으로 나누듯이 광천수인 약수는 함유량 중에 차지하는 양에 따라 유황천 · 탄산천 · 탄닌천 · 게르마늄천 등으로 구별하여 부른다. 그리고 마실 수 있는 광천수와 유황천수처럼 피부에 바르기는 하나 마실 수 없는 광천수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의 광천수는 대략 70여개에 이르고 강원도에만 30여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각 약수터에는 곳곳마다 병을 고치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휴일이면 도회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그것은 사람들이 각종의 공해나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을 앓고 있어서 약수로 병을 치유하고 또 몸에 좋다는 물을 마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약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급등하고 있는 이즈음 필자도 그에 편승하여 관심을 갖고 있던 중 거기에는 수많은 민속학적 자료가 산재하여 있음을 보고 흥미를 느껴 약수터를 답사하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 이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약수에 대한 민간인의 신앙과 그 신앙의 배경이 되는 영험담으로서의 설화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다룬 자료는 강원도지역의 광천 약수로 22개소이다.
우리나라의 약수 자료는 대체로 관광명소를 소개라는 정도의 지리적 안내서에 그쳤을 뿐 그것에 대한 신앙이나 신비체험까지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것이 없는 형편이어서 우선 강원도의 광천수만이라도 소개하려는 것이다.
Ⅱ. 강원도의 약수
여기에 소개하는 강원도 약수 22개소의 분포는 춘천군-2, 홍천군-2, 인제군-5, 양양군-3, 명주군-3, 평창군-2, 양구군-1, 영월군-1개소이다.
*춘천군
(1) 성산약수-신북면 용산리 산 100
국도변에서 232계단을 오르면 약왕사가 있고 그 안에 약수가 있다. 이 약수는 1968년 8월 17일 약왕사의 주지였던 유광국씨가 직접 신령님의 계시를 받고 발견하였고, 그래서 약왕사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약수의 성분은 철분 · 망간이 주성분이며, 특히 탄산성분이 강한데다가 매우 떫어서 마시기가 심히 역겨워 많이 마시면 토할 수도 있다. 이 약수는 신경통 · 위장병 · 부인병 · 관절염 등에 좋고 특히 암이나 당뇨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나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카드늄이 기준치를 초과하여 1991년에 폐쇄되었다.
(2) 추곡약수-북산면 추곡리
찾는 사람이 많아 숙박업을 위주로 하는 약수촌이 형성되어 있다. 2개의 약수 곧 상탕과 하탕이 있는데 상탕이 먼저 발견되었다. 하탕은 탄산이 더 많으나 수량이 상탕보다 적다. 보건연구소가 분석한 이 약수의 수질은 다음과 같다.
수소이온농도(PH) - 6.7 ppi 하아드로탄산(HCO3) - 400 ppi 염소이온(CL) - 3.4 ppi 황산이온(SO4) - 7.8 mg/1 불소(F) - 3.48 〃 철(Fe) - 26.5 〃 동(Cu) - 0.03 〃 | 망간(Mn) - 1.9 〃 나트륨(Na) - 37.6 〃 칼륨(Ca) - 195 〃 마그네슘(Mg) - 289 〃 경도 - 1,479 〃 규소(Si) - 37.6 〃 |
이 약수는 위장병이나 당뇨에 특효가 있으며,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어서 머리나 상처에 바르면 비듬이 없어지고 머릿결이 고와지며, 상처가 금방 아물고 무좀도 없어진다. 또 눈을 씻으면 안질이 없어지고 맑아진다고 한다. 이 약수는 상탕의 정자에 있는 다음의 상량문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 발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발견자 김광보 1825년 출생 1845년 발견 1905년 사망, 약수 정자 기증자 김원보의 손녀 김금자 1989. 6. 1>
현지에서 채록한, 이 약수에 대한 자세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홍천에서 약국을 하던 김씨집의 아들 김광보씨가 위장병에 걸려 전국의 약수를 마시면서 돌아다니던 중 여기서 쉬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때 웬 노인이 꿈에 나타나 누워있는 곳을 파면 약수가 나올 터이니 그걸로 병을 고치라고 하였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 꿈대로 하였더니 과연 병이 나았다.
그는 이 사실을 춘천군의 샘밭에 사는 부친의 지우인 황성록씨에게 얘기하여 황씨가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씨라는 부인이 남편(정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 마을에서 엿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하루는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아래에 또 약수가 있으니 거기를 파서 물을 복용하라고 하였다. 지씨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남편의 병이 나았다. 그래서 그부부가 약수터를 관리하였었는데, 6.25가 나자 남하하여 버렸고,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여인숙-9, 민박-3, 일반집-9로 총 20가구가 약수촌을 이루고 있다.
*홍천군
(3) 삼봉(실론) 약수-내면 광원리
예전에는 ‘실론약수’라 하였다. 세조가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자 단종의 외숙인 권전 대감이 이곳에 은거하여 젊은이들에게 실론(實論)을 가르쳤으므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 약수의 발견자도 바로 이 권 대감이다. 하루는 권 대감이 숲을 소요하는데 갑자기 날개 부러진 학 한 마리가 비명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러더니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 속에서 첨벙첨벙 물 튀기는 소리가 나고, 이윽고 그 학이 멀쩡하게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었다. 하도 신기하여 대감이 그 계곡으로 내려가 보니 붉은색의 광천수가 솟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약이 없던 그 시절에 대감은 촌민들에게 이 약수로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이 부근 일대는 권대감을 서낭으로 모신 곳이 많은데, 약수의 신효함과 결부시킨 것으로 보인다.
삼봉이라는 이름은 주위에 가칠봉(마늘봉) · 사산봉 · 대산봉이 감싸고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근래에 붙인 명칭이다. 자연 그대로의 수림이 감싸고 있어서 그런지 약수가 사이다맛을 내어 개운하다.
이 약수는 3개의 탕에서 나오는데 아무리 퍼내도 주는 법이 없을 정도로 수량이 많다. 각 탕의 물맛을 각기 다르나 여타의 약수처럼 탄산이 주성분이다. 열다섯 가지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위장병 · 신경통 · 당뇨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4) 명개약수-내면 명개리
통바람골에 있어서 속칭 ‘통바람 약수’로 부르는 이 약수는 사람의 발길을 타지 않은채 태고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개의 탕이 계곡의 물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게 된다. 물은 탄산수 맛이 진하다. 이 약수는 예전에 약초를 캐러 다니는 노인이 발견하였다는데 그 이상의 제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인제군
(5) 남전(쪽박골)약수-남면 남전1리
이 약수는 인제뱃터로 향하는 군축교 가기 전 앞 5백여m 지점의 도로가에 있는 야전군창설비 앞에서 우회전하여 200여m쯤 들어가면 있는데, 일명 쪽박골 약수라고 한다. 남(藍)이라는 쪽풀이 밭(田)을 이루고 있는 계곡에 있다고 해서 “쪽밭골-쪽박골”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발견되기는 일제때였으나 38선 이북에 있었기에 개발은 수복 후에 이루어졌다. 약수터는 시멘트로 포장하여 일대가 정결하나 반면에 자연스런 멋이 없다. 오른쪽 위에는 산신의 탱화를 그려 모신 시멘트로 된 감실이 비록 조잡하나 그것은 여기가 신성한 곳임을 말해준다.
현재 약수터를 관리하는 심덕호씨(77세)에 의하면 이 약수는 남전리에 사는 지씨(임씨)라는 분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산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쪽박골에 가면 인간에게 유익한 물이 있을 테니 그것을 찾아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라”면서 그 위치를 현몽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꿈에 본 대로 찾아가 파보았더니 과연 광천수가 솟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 물로 위장병을 비롯하여 안질 등 여러 병을 고쳤다는 것이다. 강원도 보건 환경연구소에서 조사한
성분함양 | 단위(mg/1) | 성분함양 | 단위(mg/1) |
이 약수의 성분은 다음과 같다.
수소이온농도 | PH | 8.0 | 나트륨 | NA | 19.6 |
하이드로탄산 | HC03 | 3.6 | 칼륨 | K | 3.9 |
철분 | F2 | 1.0 | 칼슘 | CA | 45 |
망간 | MN | 0.06 | 마그네슘 | MG | 65 |
구리 | 쳐 | ( ) | 불소 | F | 0.1 |
(6) 필례약수-인제읍 귀둔리 126
한계령 정상에서 양양쪽으로 백여m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오른쪽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나타나는데, 입구에 ‘필례약수’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비포장이기는 하나 잘 닦여진, 청정한 필례계곡 옆의 경사가 심한 넓은 도로를 따라 5km쯤 내려가면 분지가 나오고, 필례약수라는 간판이 또 보인다. 약수터는 주위에 무수히 쌓아놓은 돌탑들이 세속인들의 간절한 비원을 담고 있고, 거기에는 여산신께 올린 정한수 그릇이 놓여있다. 이것은 이 약수를 마시면 무병장수하고, 또 시집, 장가를 못 가 비관하는 처녀, 총각이 이 약수를 마시면 천생연분을 만나게 된다는 전설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정성의 표현일 것이다.
이 약수는 1930여 년경 인제 출신의 김모씨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는데, 마의태자가 말을 길렀던 곳이어서 ‘필(匹)네’라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그 옛날 여기에서 살았던 古老들이 들려준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풍수지리로 볼 때 여인이 베를 짜는 형국이어서 베필을 짜는 여인 곧 ‘필녀(疋女)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 난리에 도처에서 피난민이 모여와 동네는 이룬 곳이라 ’피네-피례-필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7) 개인약수-상남면 미산리 개인동(대개인동) 1번지
인제의 내린천을 거슬러 현리-하남-상남에 이르러 미산1리로 가면 개인산(1324m)을 만나게 되고, 거기 해발 850m 지점에 개인약수가 있다. 약수의 맛은 방동약수처럼 탄산이 강하다. 3백여 년 전 지덕삼이라는 함경도의 포수가 사냥을 다니다가 발견하였다는 이 약수는 백내장에도 좋으며 특히 당뇨병에 효험이 있을 뿐 아니라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등 기적을 일으킨 약수로 알려져 있다.
약수는 2개가 있는데, 위쪽의 것은 여성의 음부처럼 생겨서 어떤 사람이 이를 훼손하였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데, 지금도 전설 그대로 유사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진짜 본래의 개인약수는 더 위쪽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곧 아랫마을 지포수의 아기가 몰래 돌을 떠들고 약수를 마시고는 또 덮어놓곤 하였는데, 아기가 이 약수를 먹고 힘을 쓰기 시작하여 드디어 아기장수가 되자 이를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죽이는 바람에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니, 약수의 효능성이 ‘아기장수설화’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약수터가 그렇듯이 여기도 돌로 쌓은 산제단이 있는데, 예전에는 「1925년 경기도 개성인 김영식과 1956년 원주인 이재희가 약수로 위장병을 치유하고서 써놓은 현판이 걸려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고 했는데 오늘은 볼 수가 없다.
(8) 방동약수-기린면 방동리
이 약수는 3백여 년 전 어느 심마니가 꿈을 꾸고서 발견하였다는데, 탄산이 다소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단번에 많이 마시기가 쉽지 않다. 주위에는 이 약수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는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발견 내력은 다음과 같다.
어떤 심마니 노인이 매일 산신에게 정성을 바쳐 기도하고서 이곳으로 산삼을 캐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백발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나는 이 산의 산신이다. 너는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또 정성이 지극하니 너에게 산삼을 점지하리라” 하였다. 그는 이어서 “내가 가리켜주는 곳에서 심을 돋우고 그곳을 깊이 파면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물이 나올 것이니,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구제토록 하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노인은 어떤 신령함이 나타날 것을 확신하고 산신에게 정성을 드린 후 산에 들었다. 그가 심을 찾아다니던 중 웬 동자가 나타나더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 좇아가는데 어느 곳에 이르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노인이 동자가 사라진 자리를 보니 거기에 커다란 산삼이 있었다. 그는 산삼을 정성껏 캐고 꿈속에서 산신령이 일러준 대로 그 자리를 깊이 팠다. 그랬더니 과연 약수가 솟아났다는 것이다.
(9) 명지약수-기린면 방동2리 명지동
방동2리의 아침가리(조경동) 가기 전 명지거리 마을 앞 개울바닥의 반석에서 나오는 이 약수는 발견된 해를 알 수 없으나 방동약수처럼 위장병에 특효가 있었다고 하는데, 몇 년 전 큰 비에 묻혀버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양양군
(10) 오색약수-서면 오색리
이 약수는 조선왕조 중엽인 일천오백여년 무렵에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오색석사라는 절의 스님이 처음 발견하였다고 한다. 오색석사에는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으며,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다섯 가지의 맛이 난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3개의 탕에서 하루에 천 오백리터쯤 솟아나는 이 약수는 탄산과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위장병 · 신경통 · 빈혈증에 효험이 있으며, 가재나 지렁이를 넣으면 곧 죽어버릴 만큼 살충력이 강하여 기생충구제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아무리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으며,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 빛깔의 윤기가 돌며, 밥맛이 좋고 소화가 잘 된다고 한다.
(11) 갈천약수-서면 갈천리
험하기로 유명한 구룡령 부근에 자리 v잡고 있는 이 약수의 명칭은 그 옛날 굶주리던 주민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려고 산에서 칡뿌리를 캐어 씻은 많은 칡가루(葛紛)가 제천으로 흘러나갔기 때문에 생겼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으며, 간질병 · 나병환자도 나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입구에는 남녀장승을 세워 놓았으며 주위에 돌탑이 많아 신성지역임을 말해준다.
(12) 불바라기(미천)약수-서면 황이리 미천골
갈천약수와 4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칠백여m의 산악에 위치한 이 약수는 특이하게 폭포 중간의 암벽에서 흐르고 있어서 받아 마시기조차 어렵다. 남한에서는 제일의 오지에 있는 것으로서 米川藥水라고도 한다. 이 미천이란 명칭은 천삼백여 년 전 여기에 천오백여명의 승려가 머문 대가람인 禪林院이 있어서 쌀 씻은 뜨물이 계곡을 따라 20여리를 흘렀다하여 붙은 것이다.
* 명주군
(13) 송천약수-연곡면 삼산4리
오대산의 동대산에 위치한 송천약수는 일제 때 근처의 송천광업소가 개설되고서 알려졌고, 지금은 진고개길이 포장되어 가기가 쉽다. 이 약수가 발견된 것은 눈이 멀게 된 어떤 소경이 현몽하여 발견하고, 이 물로 계속 눈을 씻고서 시력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물맛은 철분냄새가 강한 탄산수로, 위장병에 좋고 특히 이뇨질환에 좋아서 소변이 잘 안나오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마시면 효과를 본다고 하였다.
(14) 부연(가마소)약수-연곡면 삼산3리 부연동
이 약수는 약 30여 년 전 홍순길이라는 분이 여기 가마소계곡에서 쉬고 있는데 토종벌들이 몰려들어 구석에 고인 물을 자꾸 빨아가기에 신기하게 여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약수여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맛은 강한 산성을 띠고 있으며, 위장병과 소화에 좋다고 한다.
(15) 등명낙가사약수-강동면 정동진리 낙가사
이 약수는 등명낙가사의 경내에 있다. 월정사ml 말사로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낙가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호국사찰로 유명하다.
이 절은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이렇다. 당시의 왕이 안질이 심하여 점술가에게 물으니 동해의 정동에 큰 절이 있어서 거기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 들어가므로 동해 용왕이 노하여 왕의 눈병을 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왕의 사자가 원산을 거쳐 배편으로 동해 정동으로 와 보니 과연 점술가의 말과 같은지라 등명사를 폐사하였다는 것이다.
이곳의 약수는 20여 년 전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영산전에 오백나한을 조성하여 봉안한 후에 발견되어 샘솟고 있는 약수로서 산성의 명반, 녹반천으로 사이다와 같은 맛이 아니라 감처럼 약간 떫은맛이 난다.
국립보건원에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철분함량 - 44mg
황산염 - 500mg
유리산도 - 80mg
알루미늄 - 200mg
P.H - 4.1
온도 - 5도 C
효능에 있어서는 마셨을 때 - 빈혈증, 위황병(부인들에게 많은 빈혈증세), 만성출혈증, 말라리아에서 오는 빈혈과 비종, 만성신경증, 신경쇠약, 신경통, 소화불량, 허약체질,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목욕을 했을 때는 만성피부병 · 무좀 · 류마티스 신경통 · 습진 · 개옴 등 피부병 일체와, 수족에 땀이 날 때, 피부에 개기름이 흐를 때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선군
(16) 晝岩약수-동면 화암리
정선군 동면 화암리의 九瑟洞골에 화암약수가 있다. 이 마을에 일찍이 살림이 극히 빈한하나 마음이 어질고 인품이 훌륭한 문명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구슬봉 바위 아래서 돌연히 청룡과 황룡이 솟아나더니 서로 뒤엉키며 몸부림치면서 하늘로 비상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잠을 깬 문씨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새벽녘에 구슬봉 밑으로 가서 꿈에 본 바위를 찾아보았더니 과연 서기에 둘러 쌓여 있었다. 그가 황급히 그곳의 땅을 파헤쳤더니 물이 거품을 뿜으며 솟아났는데, 물맛을 보니 마치 계피가루를 탄 것처럼 씁쓸하나 속이 시원하여 약수임에 틀림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문씨가 평소에 마음이 착하고 어짐으로 비록 가난하여 재물로 보지는 못할망정 하늘이 약수를 알려주어서 많은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는 은덕은 베풀게 한 것이라고 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수는 부정한 사람이 마시려 할 때는 큰 구렁이가 물 밑에 도사리고 있는 형상이 보여서 도저히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약수가 본래의 약수이고, 그 아래에는 최근에 생긴 ‘쌍약수’라는 이름의 약수가 있는데, 본 약수 보다는 맛이 여린 편이다.
(17) 新약수-동면 화암리
구슬동굴 입구에 있는 약수로 화암약수를 구약수라 여겨 생긴 명칭이다. 이 약수로 3번만 몸을 씻으면 어떤 피부병도 고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약수터의 용마산장에는 몸을 씻을 수 있도록 욕조를 설치하고 있다. 이 약수는 한 때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하여 나병환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주민들이 약수를 묻어버린 적이 있으나 최근에 다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18) 삼내(三川)약수-남면 유평리 약수암
정선읍에서 사북방향으로 25km쯤의 심산유곡에 있는 이 약수는 약수암의 경내에 있으며, 이곳의 계곡이 세 갈래 시내가 되어 흐르므로 삼내약수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삼내약수는 약 100여 년 전 한 나병환자가 잔칫집에서 잔뜩 포식하고 삼내(삼천)계곡 언덕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주위에서 용출하는 물을 마시니 부스럼이 솟아나 딱지가 떨어지면서 깨끗이 나았으므로 소문이 퍼져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 후에 신심이 강한 박남수할머니에게 산신이 현몽하여 오늘의 약수암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경숙(64)보살 부부가 1963년에 정착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수는 피부병에 좋고, 특히 풍병에 좋다고 소문이 나 있으나 마음씨가 좋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 약수를 마시고 발라도 효험이 없다고 한다.
*평창군
(19) 방아다리약수-진부면 척천리
오대산 국립공원에 편입된 방아다리약수터는 계방산 기슭에 있는데, 영동고속도로 하진부정류장에서 북쪽 12km지점, 속사에서 8km 쯤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는 울창한 수림으로 꽉 차 있어서 삼림욕을 겸할 수 있는 곳으로도 훌륭한데, 이 수림은 1972년 전국조림왕으로 선정된 김익노씨가 조림한 것이다.
이 약수는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이북의 삼방약수와 더불어 천연기념물 2호로 지정하였을 정도로 질이 좋은 약수로 이름이 나있다. 탄산과 철분이 주성분인 이 약수는 특히 위장병 · 신경통 ·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므로 광복직후까지만 하여도 매년마다 동녘골과 서녘골의 농악대가 약수터에서 별신굿판을 벌이고, 전국에서 기생과 한량들이 몰려들어 난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방아다리란 명칭은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던 아낙네가 바위 한가운데 움푹 파인 곳에다 곡식을 넣고 방아를 찧는데 그곳이 갈라지면서 약수가 솟아나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현지 답사하여 얻은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경상도 출신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신병으로 각처의 명의를 찾아 다녀도 효험이 없어 삶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명산이나 편력하다가 마치리라고 생각하고서는 두루 다니던 중에 산수가 좋은 오대산의 이곳에 이르러 아늑한 나무 밑에 잠자리를 정하고 노숙하는데, 꿈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어인 사람이 이 산중에 홀로 있는고?”하고 말하였다. 그는 꿈속이지만 이분이 산신령이 틀림없으리라고 믿고, “신령님께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목숨을 가련히 여겨 병을 고칠 수 있는 비방을 가르쳐 주소서.”하고 간청하자, “그렇다면 네가 누워있는 자리를 석자만 파 보아라.”하면서 사라졌다. 깜짝 놀라 깨어난 그가 급히 땅을 파헤치니 약수가 솟아났다. 그리하여 그 물을 며칠 동안 열심히 복용하자 병이 씻은 듯이 나은지라, 이곳에 산신당을 모시고 크게 제사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산신당은 목조 1칸 기와집으로 약수터 위에 있다. 이곳의 산신님은 효험이 많다고 하여 전국의 무당들이 제사를 지내거나 기도하기 위하려 모여 드는 곳이다. 그리고 약수터 바로 옆에는 약수의 신인 용신할머니를 모신 용신당이 있는데, 재작년까지는 할머니의 화상을 모셨으나 화상이 낡아 흉하고 해서 그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걸었는데, 두 폭의 액자이다. 오른쪽은 동자를 대동한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서 있는 모습이고, 왼쪽에는 크게 ‘北斗大聖七元星君’이라고 써있다.
(20) 신약수-속사리
영동고속도에서 소사에 이르러 이승복반공기념관쪽으로 1km쯤 가다보면 신약수라고 쓴 간판이 있는데 거기서 방아다리 약수쪽으로 2.5km쯤 가면 도로변에 바로 신약수가 있다. 약수는 하나의 혈에서만 나오는데, 그 수량마저 매우 적다. 이 약수는 1960년도에 인근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던 노인이 발견하였고, 그것을 최씨라는 이가 관리하다가 떠나버려서 발견할 때의 영험담 같은 것은 아는 이가 없다. 현재의 땅 주인은 서울 사람이며, 관리는 땅을 임대받아 거기에서 음식영업을 하는 장형두(64세)씨가 맡아 한다. 그는 20여 년 전에 술로 다 죽게 되어 병원에서도 가라고 해서 이판사판으로 여기에 와 물을 먹고 요양을 하자 3개월 쯤 되니 밥이 비로소 넘어갔다고 한다. 이곳의 약수는 위장병에 특효이고 눈에다 바르면 눈병이 가시고 피부에도 좋다고 한다.
*양구군
(21) 후곡약수-동면 후곡리
양구읍에서 15km, 국도에서 2km의 거리에 있는 후곡약수는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에 발견되었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한 농부가 이곳에 소를 매어 놓았는데 오랫동안 설사병을 앓아오던 이 소가 근처 계곡의 물을 먹은 뒤로 병이 나은 것을 이상히 여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약수가 솟아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필자가 다른 제보자를 통해 채록한 바에 의하면, 이 약수는 130여 년 전 아랫마을에 사는 예안 김씨 한 사람이 배가 붇는 병이 있어서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현재의 약수터에 올라가 보니 붉은 색을 띤 물이 나오므로 이상히 여기고 이판사판으로 마셨더니 배가 시원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속적으로 마시고 나서 마침내 병을 고쳤다. 그 후부터 유명해져서 이름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약수는 불소이온을 포함해서 철 · 유리탄산 · 규산 · 칼슘 · 나트륨 등이 풍부히 함유되어 있으며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영월군
(22) 칠랑이 약수
영월군 상동읍에서 태백 쪽으로 약 5백여m쯤 가다가 보면 칠랑이 계곡의 도로가에 ‘七娘이 약수’라고 쓴 돌비석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이 약수터이다. 이 약수는 옛날에는 어쩐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목만 축일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적다. 맛은 철분이 적어서 사이다와 같이 톡 쏘지 않으나 명주군 등명낙가사의 약수처럼 약간 떫다. 보건원에서 검사한 약수의 성분과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철 - 0.02mg/1
불소 - 6.2 〃
산도, 알칼리성 - 6.91mg/1
맛-무미무취
옛날에 이 계곡에는 일곱 명의 딸을 둔 촌부가 이 약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 좋은 물 덕에 딸들이 모두 絶世佳人이 되었고, 모두가 좋은 배필을 만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Ⅲ. 강원도 약수의 효능
강원지역의 각 약수가 지니고 있다는 효능에 대해 채록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성산약수 - 암, 당뇨병
2. 추곡 〃 - 위장병, 당뇨, 피부병, 안질
3. 삼봉 〃 - 위장병, 신경통, 당뇨병
4. 남전 〃 - 위장병, 안질
5. 필례 〃 - 무병장수
6. 개인 〃 - 백내장, 당뇨병, 위장병
7. 방동 〃 - 위장병, 당뇨병
8. 명지 〃 - 위장병
9. 오색 〃 - 위장병, 신경통, 빈혈, 기생구충제
10. 갈천 〃 - 위장병, 피부병
11. 송천 〃 - 위장병, 이뇨질환, 안질
12. 부연 〃 - 위장병
13. 등명낙가사약수 - 빈형즐, 위장병, 피부질환
14. 신약수(정선) - 피부병
15. 삼내약수 - 피부병, 풍병
16. 방아다리 약수 - 위장병, 신경통, 피부질환
17. 신약수(평창) - 위장병, 피부병, 안질
18. 후곡약수 - 위장병, 피부병
Ⅳ. 藥水祭
1. 추곡약수제(춘천군)
‘山祭’로 부르는 추곡약수제는 연 2회 춘추로 지내는데 날짜는 음력 3월 1일과 10월 1일이다. 1일로 잡은 것은 부정을 탔을 경우 달을 바꾸어서 지내면 괜찮기 때문에 아예 달을 바꾼 첫 날에 지내며, 10월 1일에 지내는 것은 햇곡식으로 제수를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가는 항상 춘천 여인숙(함재순씨댁)에서 도맡고 있으며, 이장과 면장이 제주가 된다. 그러나 제사의 주관은 부인들이 하고 참석자도 부인들이 대부분이다.
제물은 둘로 나누어 차린다. 상탕과 하탕의 중간 빈터에 산신을 위해 큰 상을 차리고 하탕에다가는 용왕을 위해 작은 상을 차린다. 산신상에는 향초 · 돼지머리 · 나물 · 과일과 시루떡 2시루를 바치고, 용신상에는 향과 초, 나물과 과일, 흰떡 1시루를 놓는다. 산신은 시루떡을, 용신은 흰떡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르게 바친다. 정화수는 약수로 올리며, 문서화된 흘기나 축문은 없다.
1992년 가을에 행사한 제의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제주에 이어 참석자 모두가 향 꽂고 절을 3번 하고, 돈을 만 원 정도로 놓는다. (도가를 돕는 비용이라 함)
(2) 불교의 천수경 염불
(3) 밥과 국 올림
(4) 3배
(5) 서낭대신 구송
(6) <반야심경> 낭송
(7) 발원(주민들의 평안무사를 기원하고, “도량에 들어오는 모든 중생들을 응감시켜주시고 들어오는 모든 손님들을 골매기서낭님이 보살펴 주시기 비옵니다.”하면서 약수를 찾아 오는 손님들의 무사를 빈다.)
(8) 소지(도가집을 위한 소지를 올리고 나서 제각기 자기 집의 소지를 스스로 올림)
(9) 음복
이곳의 제의에서 특이한 것은 산신을 부르는 대신에 ‘서낭대신’을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속신앙적인 것에다가, 3배를 하고 또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염송하는 것 등에서 보듯이 불교적인 법식으로 행사한다는 것이다. 제의를 주관하는 부녀자들이 불경을 낭송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여인들이 대체로 불교를 믿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영향에 의해서 불교적 법식이 끼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곡약수제에서는 산신과 용신을 위한 제상을 각각 별도로 차리는데, 이러한 이원화의 현상을 예전 방아다리약수제 때 약수터 사당에는 용신할머니를 모시고 용신제를 지내고, 바로 위에 있는 산신각에서는 산신제를 따로 지낸 것과 동궤이다.
2. 방아다리 약수제(평창군)
평창군 진부면의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에는 오대산신을 모신 산신각과 약수의 영험을 수호하는 용신을 모신 용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조형미가 뛰어난 1칸의 목조 기와집인데 그 안에는 산신의 탱화가 있다. 두 동자와 호랑이를 뒤에 두고 좌정한 백발과 흰 수염의 산신의 옆에는 두 명의 시녀를 거느린 여신이 후덕한 모습으로 좌정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이에는 폭포가 장엄하게 쏟아지는 그림이다.
오대산신은 여신이라는데 약수의 신도 용신할머니인지라 산신까지도 여신만으로 그려 모시기에는 마음에 걸렸던지 남녀신을 나란히 배치했으니 이것은 대관령국사서낭과 홍재동여서낭을 합위하여 모신 것이나, 또 여신과 설악산에서 왔다는 김대부신을 함께 모스는 안인진서낭당의 의례와 동궤이다.
이곳에는 각처의 무당들이 모여 자주 재를 올리는데, 이곳의 용신과 산신님이 영험해서 신령의 靈力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평시에는 관리인이 문을 닫아놓고 있다가 일만 원씩을 받고 열쇠를 내어준다.
약수터 바로 옆에 있는 용신각은 산신각보다 규모가 작은 목조로 된 기와집이다. 예전에는 용신할머니라고 해서 할머니 신을 화상으로 그려 모셨다는데, 지금은 바꾼 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은 2폭짜리 병풍이 있다.
한 폭에는 ‘北斗七聖七元星君’이라고 붉은 글씨로 크게 써있고, 다른 폭에는 용을 타고 있는 관세음보살(약병을 들고 있지 않으니 약사여래도 아니고 또 연꽃을 들고 있지 않으니 정확히 관세음도 아니지만)이 동자를 뒤에 두고 서있다. 도교와 불교가 혼효되어 있는 모습이나, 陰性인 물과 의미가 통하는 토속적인 할머니의 모습이었다는 예전의 탱화를 볼 수 없어서 아쉽다.
필자가 답사한 1992년 2월, 무당들이 용신각과 산신각에다 제물을 차려놓고 스님의 독경에 따라 절을 하고 잔을 올리는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러한 형태는 같은 때에 홍천군 내면의 삼봉약수터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무당과 스님이 동행하여 약수터와 그 위의 바위굴에다 재물을 차리고 같은 식의 제의를 행사하였다. 이때의 스님은 행장은 스님이지만 담배를 피우고 음주하는 것으로 보아 대처스님으로 행세하는 박수무당으로 보였다.(저자: 김의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