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신도 버린 사람들(Untouchables)』(Narendra Jadhav, 강수정 역, 김영사, 2008)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라는 장(章)을 설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 인구는 세계 인구의 16%를 차지한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섯 명 중 한 명은 인도인이고, 인도인 여섯 명 중 한 명인 1억 6,500만 명은 불가촉 천민이라고 불렸던 달리트(억압받는 사람들)들이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리그베다에는 태초의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그의 입은 사제 계급 브라만, 팔은 군인 계급 크샤트리아, 허벅지는 상인 계급 바이샤, 두 발은 노예 계급 수드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성제 중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최하층 천민 계급이 달리트다.
인도인들은 푸루샤(Purusha Sukta Homan)가 인간들이 겪는 온갖 장애와 부정적인 기운을 제거하여 승리, 부(富), 그리고 성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가족간의 조화와 인생에서의 성공을 누리게 해 준다고 믿는다는구만.
오늘날에야 법률에 의하여 차별이 금지되고 있다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상당 기간 이들 달리트 계급은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사성제 계급과는 신체접촉조차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이 지나간 길은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바람에 달리트 자신이 자기가 지나온 길을 다시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허리춤에 몽당 빗자루를 꿰고 다녔다고 한다(자신이 지나온 길을 다시 청소하고 지나가면 또 다시 돌아와서 청소하고 또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겨?). 또한 달리트가 우물물을 마시면 우물이 오염된다고 하여 마을 안의 공공우물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그들 전용으로 사용하는 우물은 각종 동물의 뼈로 그 주변을 에워싸 표시를 해 두었다고 한다. 더욱 요절복통할 사실은 달리트가 길을 가다 침을 뱉으면 길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침을 뱉기 위한 도구인 타구(唾具)를 허리춤에 차고 다녀야 한다고 했단다.
이들 달리트 계급이 어떤 대접을 받았던가는 인도의 고대 경전 리그베다에 나오는 다음의 글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데,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렇게 계층간 차이가 심화된 사례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인도 이외에서는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달리트는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베다 경전을 들어서도 안 되고 암송해서도 안 되고 기억하면 더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달리트 계급이 직업으로 주로 한 일은 시체 처리, 가죽 다듬질, 길거리 청소, 화장실 분뇨 처리, 바이샤 계급의 호위 및 심부름이었다고 하니 그건 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고 하겠다. 여자의 몸 속에서 잉태되어 인간으로 태어난 건 모두가 똑같은데 하필이면 달리트 계급의 인간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마빡에 달리트란 징표를 붙이고 나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수 천 년동안 묵묵히 그런 인간 이하의 일들을 해 온 것은 카르마(Karma)란 사상을 신봉하기 때문이란다. 카르마라...인간은 전생의 업보에 따라 현생을 살며, 또 현생의 업보가 내세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인데, 이는 한 마디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으로 시대를 관통하여 적용된다는 의식이 사람들의 일상을 옭아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우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인도인들, 특히 하층민들은 내세까지 걱정하면서 살아가려니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까만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런가.
소설은 이러한 불가촉 천민 달리트 계급에서 태어나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어 국제기구 고위간부로 재직하는 지은이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의 생장과정을 담은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한다. 달리트 계급이 속한 마하르집단의 선각자인 바바사헤브 박사가 이끄는 전국적인 규모의 인권운동에 참여한 지은이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가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우치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미래의 희망을 꿈꾼다. 비록 부모 세대는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그들의 끝없는 투쟁으로 지은이의 형제들은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얻고 인간차별의 악습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이야기의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부모의 눈물겨운 투쟁과 노력의 덕택으로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대가 뒤를 잇게 되는 거대 서사(grand narrative)가 이 소설의 줄거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