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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차를 생각하는 밤 외 3편
최 금 진
오십 세 이상 퇴직 남성들이 가장 많이 딴다는 지게차 자격증
국비 지원해 준다는 사이트를 뒤지며
할아버지가 짊어지고 다니던 지게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그 지게로
당신의 죽은 아들을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 오셨다
물먹은 이불처럼 축 늘어진 몸이
그만 내려놔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를 견디며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고
방안에다 시신을 부려 놓았다
그 지게는 평생 헛간에 세워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비 없이 자라는 나를 지게에 태우고
알록달록한 사탕이며, 장남감이 되어주고 싶었을 것이나
할아버지는 완고하고 말이 없었다
등만 남은 사람처럼 언제나 등만 보여주실 뿐이었다
지게에 나무를 한 짐 해 오실 때
양은 도시락 가득 따온 산딸기를 주던 일
할아버지가 데려다 줄 수 있었던 가장 먼 곳의 마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지게를 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등에 박힌 단단한 옹이와 뿔
처마 밑에 세워진 노구를 받쳐 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도 그의 받침대가 되어주진 못했다
담벼락 아래 모여 앉아 담배를 피던 늙은 사내들처럼
지게가 지게를 벗는 일이란 없기 때문에
지게차 자격증을 따서
아직은 조금 더 벌어 아이들 학비도 보태고 결혼 자금도 주고
어쩌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는 오십
내 앞에 정차된 지게차 한 대를 생각한다
붉은 산딸기 같은 깜빡이를 켜고
저녁 거리를 느리게 달려가는 지게차
두 어깨가 푹 삭은 중년의 나를 생각한다
할아버지 지게를 생각한다
먹물버섯
잘 살겠다는 절박함 대신 잘 버티겠다는 절실함, 아저씨들이
공원 그늘에 먹물버섯처럼 피어 있다
고혈압으로 달아오른 얼굴, 탈바가지 같은 얼굴이
후줄근한 옷 속에 가느다란 목울대를 세우고 있다
늙으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헛소리만 우후죽순이다
퇴직이란 말에 담긴 진퇴양난의 하루가
요절도 못 하게 된 어정쩡한 육신에 담긴 채
흔들린다, 거세된 반려견처럼
시커먼 눈물을 저도 모르게 질질 흘리며
한때 먹물 소리깨나 듣던 사회의 엘리트들이 공원 그늘에 흉물스럽게 피어있다
여자들 같은 고음으로 정치 얘기를 하며 화를 내거나
까르르 웃다가도 슬그머니 말이 없어진다
돌아가도 그만, 돌아가지 않아도 그만인 집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아저씨들
각자도생으로 단련된 날들이 각방으로 이어지고
잠자다가 조용히 죽었다는 누군가의 팔자가 한 번쯤 부럽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나올 때도 아비의 역할은 반납하지 못했지만
기계처럼 살아 온 날들 덕분에 기계가 되어버린 대가는
여태 갚지 못한 은행 빚뿐이다
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엔 누군가 산 소주 한 잔을 얻어먹는다
아저씨, 저랑 같이 잘래요
딸 아이 또래의 애들이 스팸 메일처럼 명랑하게 지나가고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흉물스러운 종족이라고 웃으며 지나가고
대머리 아저씨, 뱃살 아저씨, 전립선 고장난 아저씨, 노숙자 아저씨
이혼한 아저씨, 퇴직한 아저씨, 쫓겨난 아저씨, 아저씨들이
제 아버지들이 버린 그 얼굴을 다시 쓰고 앉아
울컥울컥 녹아 내린다
살아야겠다는 절박함 대신 사라지는 절실함만 남은 먹물버섯처럼
아저씨들이 공원 그늘에 우후죽순 시커멓게 돋아 있다
닥터 알츠하이머의 종이접기 강의
하나의 개념 위에 다른 개념들을 잡아당겨서
색종이처럼 반으로 접습니다
거기에 검은색을 칠합니다
잊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완전한 망각을 원하는 사람은 밤하늘을 떠도는 사람 같아서
자신의 발이 허공에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는 영원히 추락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검은색을 또 하나의 검은색이 당기듯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는 대문 안에는
한 노파가 문고리를 붙잡고 밖을 엿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행복한 얼굴로
이제 당신은 기다란 장대로
지평선 위에 가득 열린 별들을 털어낼 때입니다
누구나 더 깊고 완전한 망각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개미 한 마리는 그토록 쩔쩔매며
무너져내리는 검은 구멍을 힘겹게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지우기 위해
더 깊고 거대한 구덩이를 불러 모읍니다
구덩이 그 안쪽에 하나의 소실점을 만든 다음
모든 바깥을 쌓아두고 기뻐합니다
지나간 날들을 자꾸 펼쳐보는 것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지만
당신의 색종이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의 개념 위에 다른 개념들을 잡아당겨서
반으로 접습니다, 검은색을 칠합니다, 밤이 옵니다, 밤이 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달로 가는 택배차
아들이 목욕을 한다, 볼펜똥 같은 시커먼 땀을 흘리며 몸을 씻는다
몸도 잘 닦아놔야 내일 또 굴러갈 것이다
벗어놓은 아들의 옷에서 숨어 있던 석유 냄새가 빠져 나온다
냄새는 몸뚱이를 찾아 헤매다가 방향을 잃고 거실을 배회한다
아직 이십 대인 아들의 몸은 순한 몸뚱이여서
욕탕 안에서 흰 두부처럼 따스한 김을 올린다
네가 보탠다면 먹고는 살겠지, 학교를 중퇴한
아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잊은 적은 없다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되어서 볼펜을 굴리고 살아야 하는데
아들은 그 볼펜으로 물품 배달처와 인수장을 쓴다
네가 택배 트럭에서 잠들며 보낸 두 계절은
상자처럼 꽁꽁 묶여 배송되고 반품되고 또 어딘가로 실려갈 것이다
갓길에 차를 대고 삼각김밥을 먹을 때마다 너는
밥을 거르던 습관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배송지를 찾다가 골목길에 갇힐 때
한 번도 길이 되어준 적 없는 아비를 원망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은 반쯤 눈을 감고 욕탕에 누워
땀 냄새, 짜장면 냄새, 욕설과 한숨을 뿌옇게 수증기로 피워 낸다
네가 보탠다면 생활은 더 나아지겠만
나아질수록 더 궁핍해지는 생활을 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너의 육체에 숨어 있는 포악한 노동은 너를 행복의 나라에 초대하지 않는다
푸른색 회사 제복을 입고
아들의 하얀 택배차가 비탈길과 계단을 오르고, 산꼭대기를 오르고
그 길이 끝나는 곳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고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슬프지 않던 어떤 저녁의 식탁처럼
둥그런 보름달이 아들의 눈에 떠 있고
잠시 엔진을 끄고 기분 좋게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있을 아들아
콜라를 마시며 기대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세상이 있긴 있을 것이다
수건을 걸치고 나오는 아들의 하얀 등에
아주 먼 곳으로 보내는 배송 딱지라도 붙여 주고 싶다
깨진 달처럼 걸려 있는 욕실의 흐린 조명등이 출렁거리는 밤
가야 할 더 먼 길이 남아 있다 해도, 아들아
오늘은 잘 자라
등단시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대표시
아파트가 운다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핼쓱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쳤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길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 보면 십팔, 십팔 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아파트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럼 싸짊어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 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자세를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아파트가 울고, 울음소리는
근처 으슥한 공원으로 기어나가 흉흉한 소문들을 갈기처럼 세우고 돌아온다
새벽까지 으르렁거린다
십팔, 십팔 평 임대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을 품고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운다
산문
월요일
월요일 오후는 한없이 노곤해진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시간은 일주일 단위로 지나가고 피로는 새롭게 쌓인다. 반납했다가 회수해온 몸의 얼떨떨한 감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기력과 졸음이 새어 나온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누구와도 말하기가 싫다. 해결되었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찌꺼기처럼 남아있고, 풀었던 짐을 다시 주섬주섬 싸서 가지고 온 방랑자처럼 혼자 버려진 느낌이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밀린 일감이 차례로 부팅되어 진열된다. 의자에 더 깊이 몸을 묻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어쩔 수 없이 슬금슬금 살아난다.
삶이란 이토록 늘 월요일 같다. 하루를 마치고 귀가할 때, 잠이 들 때, 주말이 올 때, 달력이 한 장 뒤로 넘어갈 때, 다시 연말이 올 때, 그때마다 새 출발의 두려움과 안식에 대한 갈망이 교차한다. 그것은 삶 속에 영원한 휴식과 죽음을 갈망하는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일어나야 할지 더 누워 있어야 할지,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며 고함이라도 질러야 할지, 입을 다물고 더 눈을 감고 있어야 할지, 모든 것이 애매한 가운데 월요일 오후가 지나고 있다.
졸음과 무기력을 반경 5M 밖으로 밀어낼 수 있을 만큼의 각성과 여유가 필요하다.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하고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물론 아무 일도 없고, 아무 연락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시간이 햇살처럼 창가로 스며든다. 커피를 한 잔 타서 들고 와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다. 흔하고 뻔한 오늘의 이 순간은 결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오늘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손안에 커피잔의 온기가 기분 좋게 스며든다.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이 따스함이 좋다. 약간의 위로, 약간의 칭찬, 약간의 온기, 이 정도만 있어도 왠지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겨우 월요일이란 사실에 탄식을 하며 한 모금 커피를 마신다. 여전히 몽롱한 의식을 부드럽게 쓸어 안으며 잠시 의자에 몸을 더 깊이 묻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본다.
오늘의 허무, 오늘의 허상, 오늘의 헛헛함을 내일로 미루며, 주말을 기다리며, 간절히 휴식을 기다리며, 그렇게 월요일이 간다. 모든 게 불분명한 경계 속에서 사라져간다.
최금진 / 충북 제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 둥단. 시집 『새들의 역사』 외. 오장환 문학상 외 수상.
신작시
압수수색하다 외 3편
정 선 호
나는 가끔 교통 신호를 지키지 않은 것과
아내 몰래 다른 여인을 생각한 적이 있거나
회사 영업상 거짓말을 한 나를 압수수색 한다
내 마음 속에 나도 모르는 무엇이 있기에
환갑 전에 압수 수색을 해 알아보고
환갑 이후의 생을 준비하려 한다
언론에 알려 압수수색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아내와 아이들도 불러 나를 뒤져보게 한다
혐의가 없을 리는 없겠지만 나오지 않는다면
먼지 털 듯 나를 탈탈 털어본다
혐의 증거가 되는 물건들을 찾아내고
남아있는 모반이나 혁명의 기운도 압수한다
내 생각과 반대의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고 처단하려던 마음도 수색한다
혐의가 나오면 스스로 검찰에 고발하고
자진 출두할 거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그들에게도 전할 거다
나는 검찰도 압수수색하고 싶다고,
모든 검사도 자신을 압수수색 해보라고 권할 거다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
-창원조각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국가공단이 세워진 후 중년의 도시에는
거대한 입자가 일으키는 파동이 많았다
나라에서 도시 계획을 세워 공단을 지었으며
주택과 학교단지, 여러 곳에 공원을 지었고
제강 공장과 방산물자를 만드는 공장을 지었다
나라가 만든 커다란 파동으로 시민들은 살아왔고
중년 노동자들은 단련된 기술을 물려주었다
그들의 자식들과 젊은이들은 천천히
작은 입자가 파동을 만드는 예술을 보여 주었다
새의 작은 깃털을 매달아 파동을 주면
새가 되고 싶었던 기억의 힘은 세상에 전해져
오랜 동안 구름의 흔적을 만들었다
기억이란 생명이 끝날 때까지 파동을 일으켰다1)
깊은 땅에 묻혀 있던 광물들은 공장에서
제련되고 다듬어져 다른 공장으로 전해졌다
젊은 작가는 광물이 빛이 되는 순간을 찾아내
페널에 담아 끊임없는 울림을 만들어냈다2)
비로소 중년의 도시엔 모든 울림이 가득했다
1) 신승연 작가의 작품 <구름의 흔적>을 묘사함
2) 김윤철 작가의 작품 <태양들의 먼지Ⅱ>를 묘사함
사진신부*)
하와이에서 보내 온 신랑감의 사진 한 장 들고
희망을 안고 현해탄 넘어 그곳에 갔지
사진과 달리 늙고 가난한 남편과 숙명처럼 살며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를 시켰지
아이들이 자라며 남편은 늙고 병들어 갔지만
세탁과 삯바느질을 해 자식들을 공부시켰지
바듯한 살림에도 뜻 깊은 모임을 만들어
조국과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에 자금을 보냈지
자식들은 자라며 공부를 열심히 해
하와이에서, 본토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었지
그들도 부모의 조국과 어머니의 은혜를 기억해
조국을 위해 장학금을 보내기도 했지
사진신부는 늙어 죽기 전에 자신들의 여정을
글과 목소리로 남겨 자식에게 물려주었지
자식들도 그것을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지
사진신부들은 죽어 고국의 하늘로 돌아와
나중에 온 자녀들과
손자들이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며 지내지
모두들 천국에서 전생의 노고를 인정받으며
다시 무엇으로 태어날 날을 기다리지
*. 하와이 이민 1세대 한국인 남성들과 한국에 있는 여성들이 서로 자신의 사진을 교환한 후,
한국에 있는 여성이 하와이로 가 결혼한 것을 일컬음.
유혹
내 어릴 적, 산과 들에서 뱀을 마주할 때마다
막대기나 농기구로 이유 없이 뱀을 죽였던 죄,
죄는 뱀을 마주할 때마다 떠올랐던 것인데,
그날, 잎에 둘러싸인 붉은 뱀이 혀를 날름대며
나를 잎 속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했다
나는 뱀의 크나큰 원죄를 알고 있어
유혹을 뿌리치고 맛있는 산딸기를 찾아 갔다
태초에 창조자의 커다란 노여움을 산 뱀은
기어서 모든 생물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모든 생물은 뱀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사람도 해가 되는 야생 식물에 ‘뱀’성을 붙여
뱀을 용서하지 않고 항상 조심해 했다
뱀딸기도 원래는 딸기나 산딸기와 같이
키가 크고 맛이 있던 과일이었다
사람이 뱀딸기로 명명한 후 줄기는 작아져
땅에 기어 있게 되었고 맛이 사라졌다
결국은 뱀만이 뱀딸기를 좋아해 먹게 되어
뱀딸기 주위에는 뱀의 흔적이 많이 남았다
뱀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뱀딸기 주위에 모여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웠으며
원죄를 용서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제를 지냈다
정녕 뱀과 나의 죄는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것인가
등단시
봄, 야유회를 가다
바다가 보이는 오래된 초등학교에 갔네
아이들은 없고 바람만이 저녁밥을 지어
논둑의 뱀풀이며 씀바귀에게 퍼주었네
염소 몇 마리는 파도를 뜯어먹으며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이들은 해변에서 공을 차며
일기장을 바다에 던지고 있었네
바람 몇은 날개를 접어 빈 교실에
헤진 추억을 풀어 놓고
몇은 야유회에 온 이들 배낭에 들어가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네
저녁식사엔 염소 한 마리 잡아 만든
수육이며 국물이 나왔는데
바다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났네
풍성한 저녁의 만찬은 시작되었지만
일행은 부음을 전해들은 이들처럼 말없이
질디기질긴 식사를 하는 것이었네
파도소리는 자다 보채는 아이들을 재웠고
아이들은 소쩍새 같은 숨소리를 내며 자다가
이슬을 불러 염소의 쓸쓸함을 덮었네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리자 일행은 저마다
염소의 울음소리 내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하얗게 늙어갔네
그들 턱에는 수염이 빠르게 자랐으며
새벽녘에야 막혔던 귀가 뚫리고 있었네
대표시
K시인에게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망고나무 그늘이 짙습니다
난 그 그늘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고국의 모든 강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고
나무들은 앙상하고 소나무만 푸르게 서 있겠지요
청년 시절, 우리는 겨울만 되면 무언가에 아파했고
눈 덮인 강가를 걸으며 문학을 얘기했지요
때론 봄이 아득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분단된 나라와 야근에 시달리는 누이들 떠올리며
찬 소주를 새벽까지 마시고 노래하며
원고지의 빈 칸을 밤새도록 채워 넣곤 했지요
오지 않을지도 모를 사랑 찾아 걸었으며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지금 고국의 들판엔 바람이 가득히 살겠지요
사람들의 마음에도 바람이 살아 겨울엔
허전한 마음이 더 자리하고 있겠지요
또한 고국은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예전의 누이들은 청소 일과 식당에서 일하다
정규직을 외치며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지요
겨울이 없이 여름만 지속되는 적도의 나라에서
따뜻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죄 짓는 것 같아
망고나무의 풍성함이나마 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지금도 겨울이 오면 잊지 않고 강을 찾아
원고지에 뭔가 빼곡하게 채워 넣고 있을 당신을
이국에서 또렷하게 생각하며 지내겠습니다
산문
《시와경계》와 함께한 일상, 앞으로도 함께 할 여정
최근 지역에서 열린 어느 문학 행사에 오랜만에 참가해 문인들과 하룻밤을 지내며 많은 교류를 하고 돌아왔다. 2001년 등단 직후 전국의 여러 문인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다. 그때는 두 아이가 태어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여서, 바듯한 살림살이에 거주하는 곳을 벗어난 원거리에서 숙박을 하며 진행되는 문학행사에 참석 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전국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자주 참석하곤 했다. 당연히 집안 살림에도 해를 끼쳐 아내의 많은 원망을 샀으며, 아내로 하여금 경제 활동을 시작하도록 했다. 그 무렵 대전의 전통 있는 문학회에도 가입해, 고교 시절 만나 뵈었던 여러 선배 문인들과 문우들이 모이는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가해 숙박을 하며 문학에 대해서 밤새 토론하고 좋은 시간을 같이 했다. 물론 모임을 마치고 귀가해서는 아내의 핀잔과 가족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 후 그 모임에서 뜻을 같이하는 젊은 문인들이 모여 시 전문 계간지 《시와상상》 창간하게 되었는데, 창간에 참여한 회원들은 당시에도 제법 많은 비용을 십시일반 모아 발간하는 데 사용했다. 나도 십년 후쯤에 아내에게 실토를 했지만, 아내 몰래 비상금을 털어 문예지의 숭고한 창간 정신에 힘을 보탰다. 그 후 다니던 직장보다 더 큰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에 있는 자회사에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당시는 첫 시집을 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에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되어 아쉬웠으나 집안 살림에는 큰 보탬이 되었다. 필리핀에서 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동안 《시와상상》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시와경계》로 문예지의 이름을 바꾸는 등의 변화가 있었음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외국에서의 오랜 생활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전에 근무한 직장에서 유럽 등 여러 지역에 출장을 다니며 여러 외국 문화를 익혀 체질화가 된 나에게 오랜 외국 생활에 적응이 잘 되었고, 직장의 업무상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2017년도까지 계속된 파견 근무로 6개월에 15일간 주어지는 국내로의 휴가를 제외하고는 문인단체의 회원들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의 발달로 국내의 문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소속된 문인단체의 기관지와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타국에서 지내던 8년 동안 두 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다. 필리핀으로는 장기간 파견 근무와 단기간의 국내 근무를 반복하는 동안 아이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까지 졸업 후 대학에 다니게 된 후에야 영구 귀국하게 되었다. 다행히 필리핀이 영어권인 나라여서, 근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방학에 영어 어학연수를 여러 차례 다녀가 영어 실력이 늘어 대학 입시 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필리핀에 오래 있는 동안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고, 바듯한 집안 살림을 도맡았던 아내의 노고에 어느 정도 보답을 하였지만, 《시와경계》 가족들을 비롯한 문인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집안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2017년 12월에 영구 귀국에서도 다시 이직한 직장에 적응 등의 이유로 예전같이 문인단체의 모임과 《시와경계》의 가족조차 자주 만나지 못했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 질병의 유행으로 문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2년 11월, 코로나가 조금 누그러져서야 대전의 한 예식장에서 개최된 연간행사에서 그리웠던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시와경계》를 통해 많은 새로운 시인들이 배출되었고 지역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등의 발전이 있었다. 문예지를 창간했던 이들과 잡지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시는 분들, 《시와경계》를 통해 등단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인들, 항상 애정을 갖고 구독해 주시는 전국의 문인들과 독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무엇보다 외국에 있다는 핑계로 문예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 나였지만, 창간 후 잡지에 애정을 가지고 꿋꿋히 지켜 온 창간 동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는 최근 도 단위 지역 문인단체장의 막중한 책무를 맡아, 지역의 문화 발전과 문인단체의 발전을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아이들도 학업을 마쳤거나 대학원을 다니고 집안 살림도 안정이 되어 아내의 눈치를 볼 일 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도 예방과 치료법이 안정되어, 많은 문학 모임과 행사를 주최하고 타 문인 단체의 행사 등에 많은 참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문학적 여정의 커다란 동반자였던 《시와경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앞으로도 남은 문학적 여정을 같이 하려 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직장에서의 정년을 앞두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일상을 지내고 있다.
정선호 /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바람을 낳는 철새들』 외. 부마항쟁문학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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