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그야말로 '시크릿 가든'이었다.
네덜란드풍 '풍차이야기' | |
절제된 풍경의 정원을 갖춘 일본식 건물이 프렌치가든과 마주 보고 있다. 그 옆에는 핀란디아라는 이름의 핀란드식 통나무 건물이 위풍당당하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집과 정원들이 길을 따라 계속 펼쳐진다. 뒤이어 오던 관광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각기 다른 나라의 특색을 옮겨와 지은 스무 채의 집은 자기만의 독특한 정원을 자랑한다. 양들이 노니는 유럽풍 정원에서부터 장독대가 들어선 한국식 뜰, 풍차가 돌아가는 자그마한 네덜란드 정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지붕에도 꽃을 심은 풀꽃지붕까지. 아기자기한 마을에 온 세상이 다 모여 있다. 언뜻언뜻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은 남해 앞바다는 덤.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깨고 정원을 가꾸며 마음 맞는 이웃들과 테라스에서 차 한 잔 두고 담소하는 곳. 이곳에선 누구나 꿈꾸는 전원생활이 일상이 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사천 실안해안도로와 삼천포대교를 지나 달려간 남해군 삼동면 봉화리 산 정상 언저리. 보물섬으로 일컬어지는 남해 섬에 '시크릿 가든' 원예예술촌이 숨어 있었다.
프렌치가든 맞은편 백악관을 닮은 꽃섬나드리를 지나 몇 집 건너에 다실(茶室)을 겸한 공간으로 현대식 건물 '산소하우스'가 있다. 인접한 숲과 집 사이에 산소 인입밸브를 설치해 노송나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실내로 유입되도록 설계했다. 운이 없는지 주인이 출타 중이라 산소방을 체험해볼 기회는 놓쳤다.
산책로를 따라 크게 커브를 그리며 도니 야자수를 심어놓은 지중해풍 건물이 나타난다. 박원숙린궁이라는 문패가 눈길을 끈다. 탤런트 박원숙 씨 집이다. TV에도 가끔 소개돼 낯이 익다. 굴뚝에 연기는 오르는데 인기척은 없다. 동행한 배정근 기획팀장이 아무래도 관람객들을 피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원예예술촌은 2007년 한국손바닥정원연구회 회원 20명이 의기투합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나라별 이미지와 테마를 살려 토피어리, 조각, 풍차, 풀꽃지붕, 채소정원 등 개성 넘치는 주택과 아름다운 개인정원을 꾸몄다. 실제로 원예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핀란디아, 산소하우스, 멕시칸세이지 등은 아름다운 주택상을 받기도 했다.
이국적인 건물과 색다른 정원에 홀린 채 입주민들과 얘기 나누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한 삽 한 삽 정성 들여 정원을 꾸민 지 4년. 수백 가지의 꽃과 나무가 철 따라 색을 바꾸는 예술촌의 앞날이 더 기대된다.
■ 원예예술촌은
건물 지붕 위에 정원이 조성된 독특한 프랑스풍의 '풀꽃지붕'. 지붕으로 오르는 계단에도 화초가 심어져 있다. 마당에 설치한 조형물과 벤치는 포토존으로 인기다. 5월은 되어야 제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 |
■ 입주민 맹호림·김보옥 씨 부부 이야기
- 평생 꿈을 담아낸 집과 정원… 멋과 여유가 흐르지요
- 집 건축때 스케치부터 정원꾸미기까지 원예가인 아내가 직접 맡아
- 슬로우라이프 어렵지않아… 누구나 용기만 내면 가능
남해 원예예술촌에 거주하고 있는 탤런트 맹호림(왼쪽) 김보옥 씨 부부. | |
부인 김보옥 씨는 40년 넘게 원예일을 해온 국내 원예 1세대. 원예인들이 다 그렇듯 김 씨의 오랜 꿈도 자신의 구상을 오롯이 구현한 자신만의 정원을 갖는 것이었다. 그녀가 몸담고 있던 한국손바닥정원연구회 회원들이 전원마을 조성에 의기투합한 것도 이런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정원 일이 힘든 줄은 몰라요. 햇볕 뜨거운 여름에는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일하면 되고요.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조금씩만 손을 보면 돼요. 계절마다 맞는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은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선물합니다. 정원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지요."
남해로 내려와 집을 지을 때도 그녀가 직접 스케치하고 설계도 그녀의 의중대로 했다. 비용이 제법 들긴 했지만 돈 생각했다면 멀리 이곳 남해까지 내려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진 통나무주택 핀란디아에 거주하고 있는 맹 씨 부부는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해 바로 앞에 프렌치가든이라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지었다. 지금은 그곳에 커피를 파는 작은 카페를 준비하느라 소소한 일들로 바쁘다고 했다.
"관광객이 몰리면 불편하겠다고 많이들 걱정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적적한 겨울에는 오히려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런 때는 와서 말 걸어주는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죠." 김 씨는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계층의 관광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그런 분들이 한마디씩 던져주는 충고가 저희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배정근 원예촌 기획팀장이 거들었다. "쉴 곳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 곳곳에 쉼터공사가 진행 중이죠. 또 관람객이 많다 보니 독일마을을 통해 올라오는 길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지난해 반대편에 새 진입로를 열었습니다."
예술촌은 산속에 있다. 지난해엔 멧돼지가 출몰해 정원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생필품을 사려면 차를 타고 아래 마을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김 씨는 별로 불편 없이 지낸다고 했다. "먹을거리는 여기서 직접 재배해요. 가까운 마을에 5일장이 서고요. 바로 아래 내려가면 물건리 미조항이라 싱싱한 수산물이 늘 있습니다. 뭐 불편할 게 있나요." 그래서일까 김 씨의 얼굴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지금 조카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있는데요, 너무 좋대요. 공기 좋고 조용해서 잠도 잘 자고요. 부럽다고들 해요." 이야기하는 내내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도시를 떠나지 못해요. 용기가 없기 때문이죠. 약간의 불편도 참지 못하는 거죠. 전원생활 어렵지 않습니다. 마트·병원이 조금 멀어도 괜찮다는, 도시를 떠나서도 살 수 있다는 용기만 낸다면 누구나 행복한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원예촌 창설멤버이자 마을 내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이용주 부장의 조언이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맹호림 씨가 정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부가 함께 정원 가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하자 멋쩍게 웃었다. "관광객들이 제가 있는 걸 보면 이런저런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고 기념촬영도 요청해요. 일일이 응대하기가 쉽진 않지만 멀리서 오신 분들을 생각하면 싫은 내색 하면 안되겠죠. 하하하. 그 정도는 웃고 넘길 만큼 이곳에는 여유와 멋이 있지요."
예술촌은 애초에 남해군에서 전통문화예술촌으로 조성해 놓은 곳이었지만 분양이 되지 않아 방치하고 있던 곳. 원예인들의 모임인 한국손바닥정원연구회 회원들이 나서서 군에 먼저 원예촌 구상을 밝혔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관광객 중에는 겨울에 와서는 '꽃도 없는데 무슨 원예촌이냐'며 투정부리는 이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고 했다. 프렌치가든에서 차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도 기획팀장의 전화는 연방 벨이 울렸다. 예술촌 관람이나 체험, 숙박에 대해 묻는 전화였다.
■ 남해의 봄, 이곳 빼면 섭섭하지
- 튤립 만발 장평저수지, 두모마을 다랑이 유채밭
- 남해의 삶·자연 닮은 바래길도 걸어볼만
유채꽃과 튤립, 작은 저수지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남해 장평저수지(다초지). 4월 중순이면 꽃들이 활짝 핀다. 네이버블로그 '역장' 제공 | |
장평저수지 인근 초음리에 군이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남해 국제탈공연예술촌이 있다. 국내외의 탈관련 전문서적 2만여 권과 탈, 영상자료 등 모두 25만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탈춤 공연도 열린다. 특히 탈예술촌 주변에 있는 마늘나라 박물관, 식물원, 금석마을, 갤러리 마르소5번가, 장평저수지 등을 연계한 마실길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미리 문의를 하고 가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탈공연예술촌 055-864-7625, 금석마을 이장 010-3030-6379
다랑이밭에 유채단지를 조성해 봄이면 장관을 이루는 두모마을 어귀의 유채밭은 이제 막 파릇파릇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4월말이면 만개한 유채꽃을 볼 수 있다. 두모마을에선 물고기 잡기, 어촌 영농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두모마을 이장 010-8500-5863
초양도에서 바라 본 삼천포대교. | |
또 하나, 부산에 명품 갈맷길이 있다면 남해엔 바래길이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열린 남해 바래길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한 주민의 삶과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길이다.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을 따라 총 4개 코스가 문화부의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되어 있다. 앞으로 섬 전체 둘레를 연결하는 300㎞를 조성할 계획이다.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이나 갯바위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러 다니던 그 길을 걸으며 남해사람들의 삶을 체험해보자. 남해바래길 사무국 055-863-8778,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055-860-8614
# 여행수첩
▶묵을 곳 = 원예예술촌 내 유자하우스, 우리마당(사진), 화수목 세 곳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을 갖춘 형태. 홈페이지(www.housengarden.net)에 자세한 안내와 함께 인근의 펜션들이 소개되어 있다. 바로 아래 독일마을에도 펜션이 여러 군데 있다.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원하다면 울창한 편백나무와 삼림욕장으로 이름난 남해편백자연휴양림(055-867-7881)을 추천한다. 조금 사치를 부리고 싶다면 힐튼남해리조트(055-860-0100)를 찾을 일이다.
윗줄 왼쪽부터 핀란디아, 산소하우스, 박원숙 린궁. 아랫줄 왼쪽부터 까사K, 석부작. | |
<핀란디아>
- 핀란드풍, 대지 660㎡, 건평 165㎡.
- 실내외가 모두 통나무로 되어 있어 보온 보습이 뛰어나다. 정원에 무릎 높이의 사우나 시설이 있다.
<산소하우스>
- 미국풍, 대지 1201㎡, 건평 129 ㎡.
- 현대식 건물로 오른쪽의 산소방엔 인근 숲의 산소를 끌어오는 인입밸브가 설치되어 있다.
<박원숙 린궁>
- 지중해풍, 대지 660㎡, 건평 99㎡
- 탤런트 박원숙 씨의 집. 아담함 집과 야자 목련 장미 소철 등으로 꾸민 정원이 아름답다.
<까사K>
- 스페인풍, 대지 660㎡ 건평 115㎡.
- 잔디 위에 다양한 모습의 조각 작품들이 꽃·나무와 어울리게 배치했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석부작>
- 한국풍, 대지 660㎡, 건평 195㎡.
- 정원에 화산석과 편마암을 배치해 남해에 서식하는 각종 꽃과 식물을 심고 연못도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