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날, 아직 귀가 전인 세 남자를 기다리며 뜬금없는 글을 올린다.
영란이가 머리를 길러야하는 5가지 이유-
첫째, 남의 영업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결혼 전 친구 만나러 다방에 갔었다. 어느 새 다방 아가씨가 슬그머니 와서 앉는게 아닌가. 자리가 없나? 아니다. 손님이 나 혼자 뿐이어서 온통 빈 자린데. 불편한 마음이 들어 아가씨에게 신문을 갖다 달라고 한다. 아가씨 화들짝 놀라며 일어선다. 그 뒤로 그 다방에 갈 때마다 종업원 아가씨들이 킬킬대는게 아닌가. 한 두 번이 아닌지라 불쾌한 기분이 들어 어느 날 따져 물었다. 왜 나만 보면 웃냐고. 종업원들 왈, 그 날 내 앞에 앉은 그 아가씨가 내가 총각인 줄 알고 작업 시도하다 혼비백산 했단다. 쯧쯧, 내가 남의 영업 방해를 했구먼. 먄하게도.
둘째, 남을 기다리게 해선 안된다.
동사무소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손을 닦으며 나오는데 청소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인상을 쓰며 서 있다. 아, 청소하는데 방해가 되었나 보다 싶어 웃으면서 수고하십니다-했다. 아주머니 깜짝 놀라며 아이고 나는 변탠 줄 알고 혼을 낼라꼬 빗자루 들고 기다맀더마는 한다. 하마터면-.
셋째, 남을 긴장 시키는 건 잘하는 일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공항 직원이 화장실에 들어 가는 나를 보며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거긴 여자 화장실이에요-. 나는 다소 풀 죽은 듯 대꾸한다. 나, 여자예요. 지난번에는 아줌마가 그랬다. 옴마, 여게 우먼인데(화장실 앞에 '우먼'이라고 써 있었다)- 나도 말했다. 저도 우먼임다-.
한 번은 남자를 긴장 시킨 일도 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화장실로 들어 가는데 웬 남자가 따라 들어 오다가 깜짝 놀라며 뛰어 나갔다. 내 뒤통수만 보고 따라 오다가 여자 화장실로 그만. (그러나 가끔 여자 화장실이 지나치게 줄이 길면 조용히 남자 화장실에 들어 가도 좋은 잇점이 있긴 하다- 이 때 남자들은 긴가민가 한다)
넷째, 잘못하면 놀라서 건강을 해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늘 가던 미용실이 목욕탕 안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어 목욕과 상관 없이 미용실을 가게 되었다. 어느날 겨울, 그 때는 어깨가 넓은 남자형 자켓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데 목욕탕에서의 당연한 차림(?)을 한 젊은 아줌마가 무심코 들어 오다 나를 보았다. 어머어머어머, 두 손이 '머~리, 어깨, 무릎, 발,무릎,바알~'하는 노래 아나? 그 때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바보, 얼굴을 가리면 될텐데) 미용실 아줌마들 모두 뒤집어 지고. 내야 미안했지~. 참, 근데 내가 해운대 온천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겨울이었나? 야구모를 쓰고 츄리닝을 입고 들어 가는데 문 앞에서 몸을 닦던 연세 드신 아주머니, 옴마아야--, 하면서 넋을 놓고 그대로 '동작 그만'을 하시데. 그 때가 더 미안했다. 미안합니다, 여잡니다-.(이 때 우리는 나이에 따른 순발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섯째, 남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도 도리에 어긋날 것이다.
목욕탕에서 위생사아주머니가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말을 건다. 군인이시죠? 난감하다.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머쓱해 할까. 이건 옷을 걸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길을 물을 때, 말을 걸 때 아저씨-라고 부른다. 조용히 돌아서서 공손히 대답하면 무척 미안해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더 곤란했다. 아이들이 울상을 지으며 엄마, 엄마보고 왜 아저씨라고 해? 한다. 아이들의 지금 걱정은 엄마, 상견례 때 아부지만 둘이네 하면 우짤래-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아이가 내가 가는 미용실 원장에게 와서 그랬단다. 우리 엄마 머리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충고라도 좀 하라고. 지난 번 머리 손질하러 가니 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떻게 할까요? 얼마나 걸릴까요? 적어도 6개월은 길러야 머리형이 나오겠는걸요. 6개월이라고? 난 한 달에 두 세 번은 머리 손질을 하는 편인데.
남편은 내 짧은 머리통을 좋아한다. 남편 한 손 안에 들어 가는 것을 재미있어 하기도 하면서. 학교 다닐 때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암튼-
길러야 한다. 이것도 더 늙기 전에 한 번은!
첫댓글 JUST DO IT.
Do you really want that?
ㅋㅋㅋ,디게 재밌는 야구네. ㅎㅎㅎ, 근디 머리 안길러도 예뿌다. 더 예뿌질라꼬 그라제잉
아니, 실은 머리 기르면 예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남겨 두기 위해서도 기르면 안되거든.
일편단심 짧은 머리 ...고수하는 것도 끈기있는 자세인데...영란이 학교다닐 때도 지금 그대로...정말 대단해...마음이 한결 같잖아...또 짧은 머리 손질하기가 더 어렵고...또 짧은머리 어울리는 사람이 얼굴형이 예쁘야 되거던..ㅎㅎ 얼굴이 되니까 머리 스타일 바꾸어도 ...이렇게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도 ...굴하지 않고 ..ㅎㅎ영란이는 대단해...
보리처럼 귀여우면 아무리 머리가 짧아도 남자로 오해받지는 않을텐데, 그쟈?
마지막 선 머슴아도 심적변경이 왓는가베? 짧은 머리도 이뿌던데 긴 머리는 어 떨란고..ㅋㅋ 기대되다.
아니, 나는 여전 짧은머리파다. 남편도 역시. 근데 아들들이 그리 원한다 하니-
여자의 "짧은머리"란 네글자를가지고도 화제가 만발하네...아마도 그건 여자로서의 평범,일반성,대중성을 벗어난 차별화, 특화된 머리스타일(노인들의 표현:꼬라지)때문인가? 나도 처음 볼때 우웬 남자칭구가 오나보다 햇는데,,근데 자세히 보니 하리수 형님인것같았다.궁금해서 물어볼랫는데 신체적인것은 칭구지간이라도 민감한 부분이라 ㅈ꾹 참았는데 스스로 고백하네--이기 햇볕정책인가? 암튼 지조도 좋지만 내년도는 인생 5학년이니 한번 바꾸어 보는 것도 개안을터~~영란아 돌아와라 ~~여자로!!! ㅎㅎㅎㅎ
푸하하-, 니도 그랬나? 진짜 어떤 남자 샘들은 심각하게 묻기도 하더라. 짧은 머리의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성폭력상담자교육 중에 내보고 젠더에 문제가 있냐고 물어본 강사도 있고. 오히려 섹시해 보이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갸우뚱하면서 입을 닫데.ㅋㅋ 알고보믄 따시븐 여잔데.
영란이 매력 뽀인트인 머리 가지고 누가 뭐라 하더나? 내가 다 혼내줄끼다....영란이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아라! 아자아자...나도...마 팍 밀어뿌까? ㅋㅋ
ㅋㅎㅎ, 조아조아. 우리 한 번 팍! 밀어뿔래?
나이들면 짧은 머리가 깔끔해 보이고 나이도 덜 들어 보이고 한데..이참에 나도 좀 길러 볼까? 우아하게...
수국아, 반갑다. 자주 보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