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여행/김주완
[2007년 7월 24일 화요일]
<아침 8시>, 속 깊이 간직해 온 것이 문득 사라진 것을 알았다. 번개에 감전된 듯 아찔한 충격이 전신으로 엄습한다. 나는 잠시 마비되었다. 의식은 혼미하였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가? 내가 지금 숨은 쉬고 있는 것인가?
<아침 9시 30분>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이 들자 여행 가방을 대충 꾸렸다. 몸은 집에 두고 영혼이 나섰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인가? 착잡한 심경으로 내 영혼은 길을 나선 것이다. 가족이 의아하게 바라다 본다. "며칠 걸릴거요. 안 받을거니 전화하지 말아요." 가족이 걱정스런 눈길을 은근히 보낸다.
<10시 30분> 동아출판사에서 동인지 [언령] 창간호 교정을 지금 하고 있을 것이다. 회장인 청솔님과 총무인 사계절이 노역에 나서 있을 것이다. 잠시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원공단 안의 골목은 주차할 공간이 없다. 두어 바퀴를 돈 후 겨우 틈새를 찾아 차를 세웠다. 동아출판사에 올라가 보니 사계절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 청솔 회장은 몸이 아파 병원에 내려 주고 왔다는 것이다. "역시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팀장과 사계절이 화들짝 반긴다. 사계절이 작업해 놓은 교정지를 대충 훑어보면서 오자 몇 개를 잡아내 주었다. 내가 못 본 오자를 사계절이 또 몇 개 찾아낸다. 정오 무렵 대충 일을 끝냈다. 그래도 아마 오자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정이 촉박하니 그냥 OK를 놓을밖에...,
<12:10> 구미에서 대구까지 내려온 사계절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머지않은 곳에 있는 팔공산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방향을 잡았다. 두어 신호등쯤 지났을 때다. 청솔 회장의 전화가 온다. '교정을 같이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왜관으로 오란다. 같이 점심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계절과 나는 왜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왜관읍 봉계리의 '솔바람소리'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그러나 내 영혼은 깊이 빠져 들 수가 없다. 아침에 잃어버린 것에 마음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15:00경 고맙게도 청솔 회장이 '일어서자'고 한다. 굳이 식사대를 내겠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만류시켰다. 최근에 있은 문집 출판기념회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지출이 많았을 것 같아서이다.
사계절이 ‘초전의 방울음산을 한번 보겠느냐’고 했다. 둘은 각각 차를 몰았다. "아니지, 선산에 들러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가야지" 사계절을 에스코트하여 왜관읍 아곡리의 선산으로 갔다. 내가 모처럼의 성묘를 하는 동안, 사계절은 수목장 숲의 비석과 내 부모님 묘소의 비석들, 그리고 주변의 꽃들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참 잘 해 놓았네요." 사계절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가꾸지는 못하고 있지만 명색이 밤나무 숲으로 된 산이라 "가을에 밤이 익으면 한번 따로 오자"고 사계절과 약속을 했다. 사계절의 맏딸 다솜이가 "아빠 빨리 오세요"라고 자꾸 문자를 보내온다. 16:00 사계절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지. 외롭고 힘들겠지만 그것은 내 몫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내 영혼은 왜관-김천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좌회전을 하여 초전방향으로 차를 틀었다. 선석사 태실 주차장에 다달았다. 방울음산이 길목에 있다고 사계절이 일러 주었는데 내 눈으로는 식별이 안 되어 지나쳐 왔다. 선석사에서 하룻밤을 묵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도회장인 푸른 하늘님에게 전화를 했다. 치과치료를 위해 대구에 나가고 있다면서 숙소를 알아보고 전화를 해 주겠다고 한다. 나는 근처의 야생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푸른 하늘님의 전화가 왔다. "근처의 암자 2곳은 비구니들이 있는 곳이라 곤란하구요. 민박집은 없는 곳이니까 바로 선석사로 들어가 보세요. 가셔서 내 얘기하면 요사채 한 칸 내어 줄겁니다." 고마왔다. 그러나 '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스님들의 눈치도 보아야 할 것이고 공양주와 다른 처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모른다. 자칫 불편하고 어색하게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고역을 치를지도 모른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다. 하여, 선석사에 들리지 않고 바로 내려와 계속 지방도로를 달렸다. '묵을 방은 가면서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한참을 달렸다. 성주를 지나 고령 국도로 들어섰다. 백운동의 가야산관광호텔이 떠오른다. '차라리 호텔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나를 해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8:30> 가야산관광호텔에 투숙했다. '전망이 좋고 조용한 방으로 달라'고 했더니 206호실 전자키를 내어 준다. 늙은 남자 혼자 와서 방을 달라고 하니 '혹시 자살할지 모른다'는 염려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투신해도 죽지 않을 2층으로 배정한 것 같다. 룸으로 올라가니 동편과 남편 참문이 통유리여서 전망은 썩 만족스러웠다. 호텔은 적요하였다. 모처럼 단체 연수생이 없는 틈새 날인 것 같다. 잠시 온천욕을 하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엔 손님이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뿐이었다. 볼륨을 죽인 평면 TV에서는 특보가 나오고 있다.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피랍된 한국인 인질 23명에 대한 보도이다. 종업원이 오더니 "소리를 키워 드릴까요?"라고 한다. 그냥 두라고 했다. 꼬리곰탕으로 저녁식사를 대충 때운 후 방으로 올라왔다.
내 영혼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검색을 하느라 밤새 바빴다. 위는 꼬리곰탕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밤새 우레 같은 복명이 계속되었다. 손으로 배를 쓸어도 쓸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나를 해부하고 또 해부했다. 잘못의 근원을 찾아 깜깜한 지하동굴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담배만 죽어 나갔다. 눈을 붙인 시간이 고작 2~3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잠을 설쳐서 밥 생각이 전혀 없다. 생수만 조금 마시고 아침을 걸렀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잃어버린 것의 목록을 작성했다. 원인, 경과, 현황, 대안 등을 A4 용지 2매 분량으로 작성했다.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피운 담배가 벌써 4곽째 비워지고 있다.
<11:40> 체크아웃을 했다. 길가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해물칼국수로 아침 겸 점심식사를 떼웠다. 차에 올라앉았지만 갈 곳이 없다.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내 영혼의 흔적을 스스로 지울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주, 초전을 지나면서 방울음산을 다시 살펴보아도 역시 찾을 수가 없다. 대구-김천 국도 교차로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김천으로 차를 몰았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내 영혼은 기계적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영동이다.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되돌아 내려왔다. 문득 지난 봄, 4월 초순인가 그때쯤 들린 적이 있는 기날 쉼터가 생각났다. 운전도 벌써 2시간 30분 이상을 했다. 거기서 좀 쉬어야지...,
906번 지방도를 타고 충북 영동군 황간을 지나 경북 김천시 대항면 고갯마루로 차를 내달았다. cyber farm OK 농원을 지나니 기날쉼터가 나타난다. 혹시 불편한 사람들이라도 마주칠까 하는 염려 때문에 차 안에서 잠시 망설이다 내렸다. 주인 여인네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간 다행이 아니다. 조용한 창가 자리에 앉아 '간단한 걸로 주세요' 주문을 끝냈다. 자스민차를 내어준다. 티밥도 한 됫박 가져다준다.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온다. 머리를 젖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촛점이 훨씬 선명해진다. 지난 봄에 여럿이 앉아 차를 마셨던 정원 등나무 아래의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창유리 바깥 풍경을 앉은 자리에서 그냥 한 커트 찍었다.
두 세 테이블에 앉은 남녀들이 쓰잘 데 없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다. 그저 적당히 알고 지내는 40~50대의 남녀들인 것 같다. 휴대폰 벨이 울린다. 대전대학교 C교수의 전화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온 메일이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지금 나와 있어서 메일을 확인할 수가 없거던요. 나중에 보고 전화 드릴께요." 전화를 끊고 보니 기날쉼터 한켠에 놓여있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온다. 전원이 켜져 있다. 주인 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일을 확인하였다. 서울대학교 K교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경북대학교 K교수에게는 내가 다시 내용을 통보하고 전남대학교 C교수에게는 대전대학교의 C교수가 전화하기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자스민차를 두벌 째 우려 마셨다. 기날쉼터에서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나왔다. 정원엔 주인여인네가 가꾸어 놓은 야생화들이 가득하다. 지난 4월의 봄꽃보다 지금 보는 여름꽃이 훨씬 더 무성하다. 폰카를 꺼내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16:30> 기날쉼터를 출발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차창을 열었더니 더운 바람이 후끈 몰려든다. 이번 여름 최고의 더위인 것 같다. 빨리 담배를 피운 뒤 창문을 올려 닫았다. 에어컨을 틀고 찬바람의 방향을 직접 몸 쪽으로 돌렸다. ‘어디로 가지?’ ‘오늘은 어디서 잘까?’ 망설여졌다. 지난밤을 보냈던 가야산으로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김천에서 거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신간쯤 달리자 함양, 산청방향 도로표지판이 나타난다. ‘산청에 들어가 잘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다시 몇 시간 더 운전할 수 있는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몸이 많이 피로했다. 거창 시내로 들어갔다. 적당한 곳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그러나 시내에선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안의면 용추계곡 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거창 시내를 빠져 나왔다. 외곽지에 뉴거창관광호텔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반가웠다. ‘그래 여기서 자자.’ 더 이상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18:00> 뉴거창관광호텔에 투숙했다. 현수막을 보니 연수팀들이 들어와 있다. ‘조용한 방’을 특별히 부탁하여 811호실을 얻었다. 트윈 룸이다. 프론트에 미리 저녁식사를 주문해 놓았다. 18:30 식당으로 내려가 된장찌개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입이 까끌까끌하다. 밥을 조금 남기고 방으로 올라왔다. 샤워부터 하고 자리에 누워 한참을 쉬었다. 몸은 무거운데 잠은 오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줄담배를 몇 대 피웠다.
잃어버린 것 찾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에 정리한 것 이상으로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TV를 틀어 보았다. 역시나, 탈레반에게 납치된 한국인 인질 23명에 대한 보도가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TV를 껐다. 어느새 불이 밝혀진 거창시가지를 하염없이 내려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야경이 아름답고 시가지가 넓다. 다시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주 가까이에서 여러 개의 별들이 떠다니고 있다. 반딧불이였다. 그렇구나, 이곳만 해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라 반딧불이가 있었구나. 오십년 만에 만난 반딧불이다. 둘씩, 셋씩 꼬리를 물로 공중에서 선회하는 반딧불이는 지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반딧불이가 이만한 높이에서 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에어컨을 2시간 정도 틀고는 꺼버렸는데 더운 줄을 모르겠다. 몸이 지쳐 있는 상태라 자정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깊이 잠들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잠을 잤다. 밤새 몇 차례나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담배를 태웠다.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아침 5시에 눈이 떠졌다. 커튼을 젖히자 구름 같은 안개가 흐르는 시가지가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다가 온다. 두터운 안개가 도로를 가득 덮었다가 밀려난다. 다시 뒤이어 또 안개가 몰려온다. 한참을 내려 보았다. 안개가 걷히고 난 뒤 경사가 급한 도로를 부감으로 한 커트 촬영했다.
온몸이 찌뿌듯하다. 침대에서 반시간 정도 뒹굴었다. 이런 저런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파에 앉았다. 어제 아침에 정리해 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록을 꺼내 보았다. 찬찬히 읽었다. 더 이상은 보충할 것이 없다. 내일 있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수업자료를 꺼내 조금 읽었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낮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어두워지면 들어가기로 했다.
<08:50> 역시 속이 불편하여 아침식사는 않기로 했다. 생수만 반잔 정도 마셨다. ‘낮 시간은 어떻게 보내지?’ 문득 오늘은 사계절이 쉬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해 보았다. 사계절은 무언가 집히는 것이 있었는지 “교수님, 집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하였다. 학원에 간 아이들이 돌아오면 데리고 계곡으로 나가 볼 예정이라고 사계절이 말했다. ‘잘 다녀오라’고 하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낮 시간엔 무엇을 하지?’ 나는 또 한참을 고심했다. ‘그래 사계절과 아이들을 불러내어 점심이나 한 끼 사주자’는 생각이 든다. 다시 사계절에게 전화를 했다. ‘집이 아니라 밖이고 거창에 있다’고 했더니, 사계절은 ‘혼자 오겠다’고 한다. 김천과 거창의 중간지점쯤 되는 대덕 근처의 청암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11:40> 사계절과 나는 청암사 입구에서 만났다. 몇 안 되는 음식점 한 곳에 들어가니 손님이 아무도 없다. 닭백숙을 시켰다. 직접 닭을 잡아서 요리해야 하니까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선 소주부터 가져오라고 하여 애주가인 사계절이 몇 잔 마시도록 했다. 음식점 옆 옥수수 밭에는 익은 옥수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강냉이를 꺾어다 삶아 달라고 했다. 사계절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도시는 폭염으로 야단일 시간인데 선풍기 하나만으로도 서늘한 마루였다. 닭고기와 닭죽과 삶은 강냉이를 맛있게 먹었다. 원래 식사량이 적은 나는 속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여 먹었다. 사계절은 술이 더 좋은지 음식 보다는 술을 더 많이 먹었다. 소주를 2병이나 시켜서 거의 다 마셨다. 돌아갈 운전이 걱정되어 14:10부터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거나해진 사계절은 <언령>의 청솔회장과 한우, 사랑영에게 전화질을 해댔다. 사계절 식의 애정표현이었다. 청솔회장은 칠곡군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문학기행의 해설사로 초빙되어 이동 중에 있는 시간이었다. 전화 받기가 거북하여 얼버무리며 끊은 모양이다. 사계절은 내게 다가와 다리를 주물러 주겠다며 애교를 떤다. 한참을 맡겨 두었다. 사계절의 인정이 고마웠고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 3시쯤에 출발하면 사계절의 술이 깰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주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주인아줌마에게 얼음물을 부탁하였더니 얼음을 띄운 오미자차를 양푼이채로 만들어다 주었다. 사계절에게 연거푸 두세 잔을 마시게 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1시간을 더 지체했다. ‘운전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까 ‘자신 있다’고 한다.
<16:00> 우리는 헤어져 나는 성주 방향으로, 사계절은 김천 방향으로 운전을 하여 출발했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금방 사계절이 걱정된다. ‘혹시라도 술이 덜 깨어 교통사고가 나면 안 되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계절의 어린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차를 되돌려 사계절을 뒤쫓아 갔다. 속력을 내어 달렸더니 곧 따라잡을 수 있었다. 굴곡이 심한 고갯길을 사계절은 중앙선을 침범해 가며 달리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었다면 정면충돌을 할 형편이다. 나는 급하게 사계절을 추월하여 차를 정지시켰다. ‘내가 앞설테니 뒤따라오라’고 했다. 뒤따라오는 사계절의 운전은 여전히 만취운전이었다. 앞선 내 차에서 비상깜박이를 켜고 크랙션을 울려 가면서 사계절을 에스코트하여 겨우 고갯길을 내려왔다.
대덕 삼거리 갓길에 차를 세우게 했다. 창문을 조금 열고 에어컨을 켜 둔 채로 시트를 뒤로 젖혀 사계절에게 잠을 자라고 했다. 16:15이다. 30분 정도만 재우면 술이 깰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차도 에어컨을 켠 채 사계절 차 앞에 정치시키고 기다렸다. 몇 번이나 내려서 담배를 피우며 사계절의 차를 들여다보았다. 핸들에 구둣발을 올린 채 혼곤하게 자고 있다. 밖은 푹푹 찌는 폭염이다.
30분이 지나도 사계절은 깨지 않는다. 나는 한우에게 전화를 했다. 한우는 근무 중에 있었다. 형편을 이야기 하고 ‘얼마쯤 지나면 술이 깰 것 같으냐?’고 물으니까 ‘자는 것이 아까워서 깰 때까지 재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잠시 뒤에 한우가 다시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메모를 남겨두고 출발하시지요. 교수님이 어떻게 자꾸 기다리겠습니까”라고 한다. ‘괜찮다’고 하면서 나는 또 기다렸다. 백밀러에 비치는 사계절의 차 윈도 브러시가 작동되고 있다. 발이 미끄러져 내리면서 레버를 건드린 모양이다.
다시 30분쯤 지나자 윈도브러시가 저절로 멈춘다. 사계절이 깨어났는가 하였더니 여전히 자고 있다. 레버가 어쩌다 원위치가 된 모양이다. 나도 내 차 안에서 눈을 붙여 보려고 했으나 잠이 들지 않았다.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누가 내 차 창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눈을 떠보니 사계절이다. ‘전화가 와서 깨어 보니 앞에 교수님 차가 있더라’는 것이다. 17:45이다. 사계절은 1시간 30분을 잔 것이다. 눈은 충혈 되어 있지만 술은 거의 깬 것 같다. “나하고 있을 때는 앞으로 소주 반 병 이상 마시면 안 된다. 이건 명령이다”라고 사계절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사계절은 계면쩍게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트렁크에 있는 박카스를 두 병 꺼내 우리는 한 병씩 마셨다. 빈 병은 사계절이 치우겠다며 가져간다.
<18:00> 우리는 출발했다. 내가 앞에서 에스코트 하고 사계절은 뒤따라 왔다. 처음엔 운전이 조금 불안한 것 같았다. 휴게소에 들러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하고 나서 다시 출발했다. 그제야 운전이 안정되었다. 약목-북삼 삼거리에서 사계절은 좌회전하여 인동으로 돌아가고 나는 왜관까지 국도로 와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9:30쯤 사계절에게 전화해 보니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슈퍼에서 아이들에게 줄 것을 사고 있단다.
<20:00> 2박 3일간의 영혼 여행을 마치고 나는 현관으로 들어섰다. 내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잃어버린 것은 찾을 수가 없다. 잃어버린 원인은 찾아낼 수 있지만,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만들 수가 있지만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라져 버린 것이 스스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잃어버린 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는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내 길에서 - 은둔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깊이깊이 숨어들어야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차츰 잊어갈 것이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므로 곧 무관심해질 것이다. 모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때쯤, 잃어버린 자는 스스로를 무화無化시킬 수가 있다. 그가, 그의 존재가 깡그리 사라졌을 때, 그가 잃어버린 것은 소멸될 수 있다. 어떤 의미도 아닌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없음으로서 잃어버린 것 또한 없어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교수님. 잃어버리신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건강을 생각 하셔야지요. 가족들은 우짭니까? 저도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교수님예~ 정신 퍼뜩 차려서 옆으로 잠시 돌아 봤는데 간지럼나무... '배롱나무'예~ ㅎ 고것들이 겨드랑이하며 홀애비 옆구리를 자꾸 간지리는데 왠지 그저 실실 웃음이 나오고 그랬습니다. 너무 고맙고 항상 황송 하고 그렇습니다. 앞으로 술, 조심 하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찾아야 할게 많이 있으니까요...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