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結城) |
구례(求禮) |
나주(羅州) |
단양(丹陽) |
대원(大元) |
덕수(德水) |
목천(木川) |
무안(務安) |
부안(扶安) |
순천(順天) |
안동(安東) |
예산(禮山) |
옥구(沃溝) |
옥산(玉山) |
울진(蔚珍) |
인동(仁同) |
장연(長淵) |
전주(全州) |
지례(知禮) |
진안(鎭安) |
진천(鎭川) |
청송(靑松) |
평양(平壤) |
풍덕(豊德) |
해주(海州) |
홍천(洪川) |
흥덕(興德) |
흥양(興陽) |
흥해(興海) |
(이상 가나다 순) |
경주장씨 |
고성장씨 |
광주장씨 |
남양장씨 |
남원장씨 |
담양장씨 |
당진장씨 |
대구장씨 |
대전장씨 |
동래장씨 |
밀양장씨 |
백천장씨 |
봉산장씨 |
봉성장씨 |
부여장씨 |
순창장씨 |
순흥장씨 |
안성장씨 |
안양장씨 |
연안장씨 |
영천장씨 |
옥산장씨 |
옥천장씨 |
인덕장씨 |
장수장씨 |
장흥장씨 |
제주장씨 |
천녕장씨 |
청주장씨 |
춘천장씨 |
충주장씨 |
태원장씨 |
평택장씨 |
풍덕장씨 |
한양장씨 |
함평장씨 |
해주장씨 |
해풍장씨 |
흥해장씨 |
진주장씨 |
중국의 문헌에 나타난 장씨
* 少昊金天氏子輝觀弧星始制弓矢立祠弧星因賜姓張氏 소호 금천씨의 아들 휘가 호성을 보고서 최초로 활과 화살을 만들고, 호성의 사당을 세우니, 장씨로 사성을 하다. <賜姓肇本>
* 黃帝 軒轅氏 (헌원씨)가 姓으로 張을 내리시었다. 황제의 아홉번째 아들 靑陽 (靑賜라고도 함)이 暉(휘)를 낳았고, 弓正이 되어 弧星 (弧矢星- 화살을 시위에 먹인 형상을 한 아홉 개의 별)을 보고서 처음으로 활과 화살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弧星을 주관하여 제사 지내니 張氏라 삼았다.
(위의 두 글은 서로 상충하는 바가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음.)
* 贊(기리는 글)에 이르기를, 張良이 黃石公에게서 병법책을 받고 漢高祖(유방)의 스승이 되어 留侯에 봉해졌다. 張華는 字가 茂先 (무선)인데 사물을 널리 알고 견문이 넓어, 북두성 사이에서 자주빛의 서기가 있는 것을 보고 보검 두 자루를 얻었다.
* 두 갈래진 보리 이삭을 노래하고, 七代가 제후에 봉해짐을 나타내도다. 張堪(장감)이 정치를 함에 보리의 이삭이 두 갈래로 나왔다. (풍년의 징조) 張安世는 박학하여 麒麟閣 (전한의 무제가 기린을 얻었을 때 건축한 누각으로서 宣帝가 공신 11인의 상을 그려 閣의 위에 걸었음)에 배열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제후에 봉해졌고, 七代가 侍中을 지냈다.
* 張氏의 본관은 문헌에 40여 본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30본 정도임. 덕수 장씨와 절강 장씨를 제외하고 모두 장정필의 후손으로 同源分派임. 每年 한 자리에 모여 太師忠獻公 (장정필)의 時享大祭를 봉행하며 凡張氏의 결속을 다짐.
* 德水張氏는 고려 공민왕때 노국공주 (魯國公主)를 따라온 아라비아사람 張伯昌 (장백창)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생긴 성씨이다.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 이하 장씨보계
정필貞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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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寶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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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錦善 |
광현光賢 |
전筌 |
보성甫聖 |
칠漆 |
금용錦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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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之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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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익孝翼 |
만일萬鎰 |
을제乙濟 | ||
응익應翼 |
극일極鎰 |
몽蒙 | ||||
순익順翼 |
재일載鎰 |
한문漢文 | ||||
현익玄翼 |
정일正鎰 |
보수保守 | ||||
말익末翼 |
천일天鎰 |
원흡元洽 | ||||
지선之善 |
진익震翼 |
국신國伸 |
신원信元 |
*위 표에서 정필의 4대손 '전'의 한자명은 부수가 풀초인 '향풀 전'이나 웹상에 해당한자가 없는 관계로 유사한 형태의 한자를 올렸습니다.
* 흥성장씨는 '금용'의 5세손인 '을제'의 후손입니다.
* 인동보(仁同譜)에는 "○○ - ○○ - 金用 - ○善 - 震○ - 國伸 - 信元"으로 기록되어, 金用, 善, 震 3대의 생졸배위가 기재되지 않았으나 각관보(各貫譜)에는 錦用 之善 震翼의 생년배위 묘소가 소상히 기재되었고(위 표 참조), 휘(諱) 之善도 벼슬이 금오위 정용장군(官金吾衛精勇將軍)으로 인동보의 휘 善의 벼슬인 금오위 상장군(官金吾衛上將軍)과 흡사하여, 휘 錦用과 휘 金用이 동일인이요, 휘 之善과 휘 善이 동일인이며, 휘 震翼과 휘 震이 동일인이신 것 같다.
중조 中祖
인동장씨
4계가 있어서 하나는 태사공 휘 정필貞弼로 1세를 삼고, 하나는 태사공 9세손 휘 휴休로 1세를 삼고, 하나는 제학공 휘 계桂로 1세를 삼고, 하나는 상장군 휘 금용金用으로 1세를 삼는다.
안동장씨
-양주입석파楊州立石派 파조의 휘는 사길思吉이니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으로 시호는 僖襄公이다.
-곡성파谷城派 파조의 휘는 사정思靖으로 호는 낙정재樂靖齋이고, 화산부원군 사길의 아우이며, 조선 개국공신으로 화성군花城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靖襄公이다.
-영주파榮州派 파조의 휘는 이강以綱으로 태사공 19세손이다.
-김천파金泉派 파조의 휘는 즙楫으로, 휘 이강의 차자(둘째아들)이다.
-충주음성파忠州陰城派 파조의 휘는 준俊으로 영용榮龍이라고도 하며, 휘 이강의 삼자(셋째아들)이며, 벼슬이 장흥부사에 이르렀다.
-안동춘파파安東春坡派 파조의 휘는 의儀이다.
-영산파靈山派 파조의 휘는 인仁으로 휘 이강의 5자이다.
-풍기파豊基派 파조의 휘는 득기得紀로 태사공의 19세손이다.
-적성파積城派 파조의 휘는 흥대興大로 태사공의 20세손으로, 벼슬이 군자주부에 이르렀다.
지례장씨
중조의 휘는 일성日成으로 호는 죽계竹溪요,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 충숙왕 20년에 문과에 장원급제魁科하고 이성계 이지란과 더불어 설봉인월역에서 阿只拔都를 격퇴 대첩을 거두었다. 지례백知禮伯에 봉해졌다.
진안장씨
중조의 휘는 원렬原烈로 지례백 휘 일성의 아우이다.
청송장씨
중조의 휘는 영민英旼으로 청송군靑松君에 봉해졌다.
예산장씨
중조의 휘는 영위英暐로 벼슬이 이부상서평장사吏部尙書平章事에 이르고 예산군禮山君에 봉해졌다.
진천장씨
중조의 휘는 송松이고 호는 송헌松軒으로, 태사공의 14세손이고 진천군鎭川君 휘 유裕의 6세손이다. 고려 충렬왕조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영의정부당문학시중평장사領議政府堂文學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흥성장씨
중조의 휘는 연우延祐로 호는 진산晉山이며, 벼슬이 호부상서좌복야戶部尙書左僕射에 이르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중시조의 휘는 영英으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충렬왕때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진헌사(進獻使)로서 원나라에 들어가 모든 주선을 예에 맞추어 행하니 황제가 아껴 특별히 병부상서의 직과 천호를 제수하고 아울러 말 40필과 소 25두, 수레 5량, 활 2부를 하사하였으며 귀국후에는 벼슬이 3품에 이르렀다. (以進獻使入元 周旋中禮 皇帝褒賞 特除 百戶俄陞千戶 給馬四十匹 牛二十五頭 車五兩 弓矢二部命還國 官至 三品)] -<흥성장씨 대동보>
-제주파濟州派 파조의 휘는 염濂으로 벼슬이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다.
-곡성파谷城派 파조의 휘는 자관自寬이다.
-주부공파主簿公派 파조의 휘는 윤검允儉이다.
-돈암공파豚庵公派 파조의 휘는 조평肇平이다.
-기장공파進士公派 파조의 휘는 윤신允愼으로, 호는 반구伴鷗이며 벼슬이 기장현감에 이르렀다.
-참군공파參軍公派 파조의 휘는 윤문允文으로 벼슬이 통례문통찬막군원종공신通禮門通贊幕軍原從功臣에 이르렀다.
-사과공파司果公派 파조의 휘는 윤무允武로 호는 翰이며 벼슬이 충순위부사과忠順衛副司果에 이르렀다.
-판서공파判書公派 파조의 휘는 로輅로 벼슬이 판도판서判圖判書에 이르렀다.
-부장공파部將公派 파조의 휘는 득륜得輪으로 벼슬이 부장部將에 이르렀다.
봉성장씨
중조의 휘는 을용乙用으로 흥산군興山君 휘 기機의 2자이며 태사공의 15세손으로 봉성군鳳城君에 봉해졌다.
결성장씨
중조의 휘는 ?[木思]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