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복 소설 1편(28면) ................. 1차 교정

[청람 강진원]

단편소설

낮달

                                                                                           이광복

스산한 날씨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흩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었고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 끝이 사뭇 차갑기만 하였다. 봄은 아직도 멀리 있는 모양이었다. 절기상으로는 우수 경칩이 지났건만 날씨는 왜 이렇게도 풀리지 않는 것일까.

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서자 도로변 정류장에 여러 대의 시내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대도시의 시내버스들이 시내 주요 번화가를 내왕하는 반면, 이 고장의 시내버스들은 시내뿐만 아니라 머나먼 산간벽촌까지 운행되고 있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즉 길이 나 있는 곳이면 군내 어느 곳이나 시내버스가 들어갔다.

그런데도 이 고장 주민들은 그 버스를 통상 시내버스라 불렀고, 아닌 게 아니라 자동차 앞가슴이며 옆구리에도 엄연히 시내버스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지방을 오가는 장거리 시외버스와 얼른 구별하기 쉽도록 편의상 붙여 놓은 이름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 고장에서 가장 오지(奧地)인 월촌(月村)에 가려면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시외버스 차부 앞에는 택시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만, 택시 기사들은 월촌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이유인즉, 길이 험해 자동차가 왕창 망가진다는 것이었는데, 기본요금 이외에 웃돈을 듬뿍 얹어주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택시기사에게 웃돈을 얹어주면서 사정을 하다시피 빌붙을 필요가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시내버스를 타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뿐 아니라 월촌 같은 벽지에 가려면 어디까지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영준은 먼저 승차권 판매소에서 월촌 행 차표를 샀다. 승차권 판매소에는 조잡스런 솜씨로 써 붙인 군내 각 방면의 시내버스 운행 시간표가 나붙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월촌 행은 한 시간 이상 되는 간격으로 띄엄띄엄 배차돼 있었다.

코트 자락이 바람에 풀럭이고 있었다. 엊그제 일기예보에서 남쪽의 꽃소식을 들었지만, 2월에 김칫독 얼어터진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 고장 날씨는 아직도 한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꽃은커녕 아직 나뭇가지에 물도 오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한이 몰려왔으므로 영준은 으스스 진저리를 쳤다. 먹은 것도 시원찮은 데다 날씨마저 스산하여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그뿐 아니라, 이미 시외버스 차부 공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는데도 계속 소변이 마려웠다.

그는 다시 공중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소변은 남근 끝에서 지르르 두어 방울 떨어지다가 마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진저리를 치면서 바지의 지퍼를 죽 긁어 올렸다. 머리카락이 찌풋거리며 일어서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온몸으로 까칠한 소름이 쫙 올라붙었다. 요컨대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시간 이상 기다리자 드디어 월촌 행 시내버스가 왔고, 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서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데 버스는 정류장 표지판보다 훨씬 앞까지 미끄러져 나가 멈추어 섰다. 운전기사는 승객들의 아귀다툼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고 일부러 차를 먼 곳에 세운 모양이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어차피 줄을 설 사람들이 아니었다. 운전기사는 정류장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움으로써 승객들을 뜀박질시켜 줄을 세우려고 잔꾀를 쓴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작이 빠른 사람은 먼저 타고, 발걸음이 느린 사람은 자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준은 느그적 느그적 버스를 향해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서로 먼저 타기 위해 밀고 짜고 야단들이었다. 조금 먼저 타나 조금 나중에 타나 월촌 까지 가는 것은 마찬가지련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조금이라도 먼저 타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영준은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조금 전, 사람들이 서로 먼저 타기 위해 아귀다툼 벌인 것을 감안한다면 버스 안은 그런대로 헐렁한 편이었다. 빈 좌석이 없어서 그렇지 승객들 중에는 앉은 사람보다 서 있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적은 편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그처럼 밀고 짜고 아귀다툼을 벌인 것이었다. 한데 버스 안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버스는 히터조차 가동되지 않는 구닥다리 차량이었는데, 스피커에서는 흘러간 유행가만 소리 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구구각각이었다. 연장 가방을 둘러멘 사람, 보퉁이를 안고 있는 사람, 망태기를 짊어진 사람, 조잡스런 비닐봉지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사람…… 등등 좌우간 그들의 행색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들은 언제 밀치고 밀리면서 아귀다툼을 벌였느냐는 듯이 끼리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이 고장 사람들이었으므로 서로 낄낄대며 스스럼없는 대화들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영준은 혹시 버스 안에 아는 사람이라도 타지 않았을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낯익은 얼굴은 그림자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류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탔는데도 버스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어느 승객이 냅다 고함을 질렀다.

“어이, 기사 양반…… 이 차 언제 갈 거여?”

“조금 있다 갈 거유.”

“조금이라는 것이 도대체 몇 날 며칠인지 알 수가 있나.”

“아따, 그 양반 성질두 되게 급하시네. 수일 내로 가믄 되지 뭘 그러슈.”

“수일 내……? 멀리도 잡네, 쳇.”

그 바람에 승객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었다. 운전기사의 넉살도 넉살이지만, 방금 짜증을 내고서도 맥 빠지는 독백으로 받아넘기는 취객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수일 내는 농담이구 유…… 5분만 기다려 유, 5분만…… 아직 출발 시간이 안 됐잖어 유.”

“그러믄 그렇지, 지가 안 가고 배기겠어?”

“잘 알믄서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대 유? 누구 귀먹은 줄 아시나, 젠장.”

콧잔등으로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손가락 끝으로 처억 걷어 올리면서 운전기사가 씨익 웃었다. 그는 핸들 위에 면장갑 낀 두 손을 얹어 놓은 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락에 쿵작, 쿵작, 쿵자라 짝짝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앙상한 가로수들이 바람에 떨었고,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 쪼가리가 을씨년스럽게 풀럭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방한모를 깊숙이 눌러 쓴 다른 승객이 운전석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제기랄, 출발시간 기다리다 얼어 죽겠어. 얼른 가지 그려.”

“다른 사람도 타야지 아저씨만 생각하믄 어떡해 유? 사실은 나두 추워 죽겠시 유. 아저씨는 좋은 모자두 썼겠다,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덜 춥겠는 디 뭘 그러세 유?”

운전기사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보면서 이죽거렸다. 그러자 다른 승객들은 벌 죽이 웃었다. 아무튼 승객들과 운전기사 사이에 척척 죽이 맞아 돌아갔던 것이다.

영준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의 눈앞에는 월촌 사람들의 정다운 모습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 마음이 한결 푸근해지리라 생각하면서 그는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였다.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건물들이 후딱후딱 지나가고 있었다. 시장 앞이며 경찰서 모퉁이, 그리고 시청 앞이라든가 어쨌든 거리 풍경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번화가를 벗어난 버스는 이내 성냥공장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영준은 거의 습관적으로 성냥공장을 유심히 내다보았다. 한데 성냥공장은 재작년 이맘때보다도 훨씬 초라해진 느낌이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성냥공장은 이 고장을 대표하는 산업체였는데, 성냥의 수요가 급감한 이래 최근에는 사양길로 들어서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는 어느 사이엔가 읍계(邑界)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리목 검문소를 지나자 산자락 밑으로 굽이굽이 이어져 나간 신작로가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인가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자갈과 모래로 다져진 신작로를 따라 제멋대로 휘어진 가로수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줄지어 서서 바람에 떨고 있었다.

밋밋한 야산 등성이를 타고 고압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청명한 날씨 같으면 월봉산(月峰山)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왔겠지만, 날씨가 워낙 끄무레하여 그 산은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다만 월봉산에서 흘러내린 구릉지대만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버스 뒤로는 뽀얀 흙먼지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신작로 밑으로 조각보 같은 논다랑이들이 있었는데, 그런 논다랑이 위로 멧새들이 어지러이 날고 있었으며, 누군가가 뒤늦게 쥐불을 놓았는지 노란 불꽃이 논두렁의 잔디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좌불(坐佛) 마을이 나타나고 있었다. 좌불은 월봉산 너머 성말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저 아득한 옛날 이 고장을 지나는 길손들이 묵어갔을 원(院) 터에는 주춧돌 몇 개가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버스가 좌불에 이르자 승객 대여섯 명이 내렸다. 아까 차내에서 운전기사에게 고함을 질렀던, 버스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을 상대로 줄곧 게걸거리던 술 취한 승객도 내렸다. 그가 내리자 버스 안은 한결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버스는 다시 좌불을 버리고 월봉천(月峰川) 제방 위로 올라섰다. 한 여름 장마철에는 제방을 무너뜨릴 듯 큰물이 지는 월봉천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물이 말라 바닥의 자갈이나 모래까지 희뿌연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월봉천은 하천이라기보다 차라리 실개천 같은 모양이었는데, 허리띠처럼 가느다란 물줄기가 구차스럽게 짜잘 짜잘 흘러가고 있었다. 자갈투성이의 월봉천 둔치에는 한 길 이상 우거진 메마른 잡초들이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영준은 그런 풍경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제 그는 홀몸이었다. 한때 가족들과 정답게 지낸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한바탕 꿈결인 양 흘러간 옛말일 따름이었다. 그의 마음은 흡사 폐광 구덩이처럼 텅 비어 있었고,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풍파는, 그러나 어쩌면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몰랐다. 사업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이후 날이면 날마다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회사는 도산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 왔다.

영준은 가정만은 끝까지 지키려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집요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합의 이혼서에 도장을 눌렀고, 법원의 확인 과정을 거쳐 구청 호적계에 이혼신고까지 마쳤던 것이다.

사업도, 가정도 모두가 풍비박산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저희들 외가로 가고, 영준은 외톨이가 되어 하숙생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는 요즘 신촌의 한 하숙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 모진 풍파를 겪는 동안 그는 혹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함부로 밖에 나다닐 수도 없었다.

괴로웠다. 이제 일가친척들조차 대할 면목이 없었다. 사업이 한창 번창일로를 걷고 있을 때, 친척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문턱이 닳아빠질 만큼 뻔질나게 찾아오곤 했었다. 하지만 사업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뒤로는 어느 누구 하나 코끝조차 비치지 않았는데, 가정이 박살 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누군가가 찾아온다 해도 도리어 그들을 피해야 할 입장이었다.

재작년 이맘때 영준은 한 달 동안 월촌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사채업자들의 등쌀도 등쌀이었지만,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당분간 푹 쉴 요량으로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이 고즈넉한 두메산골을 찾아왔던 것이다.

그때 그가 묵었던 곳은 월봉사(月峰寺) 입구에 있는 신철호 씨 집이었다. 집주인인 신 씨는 제법 식자깨나 든 농민으로서, 오랜 동안 월봉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을 지낸 터라 이 고장에서는 보통 신 회장으로 통했다.

신 회장은 친절했다. 아니, 신 회장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한결같이 친절하였다. 영준은 신 회장과 그의 가족들이 베풀어준 온정을 잊을 길이 없었다. 정말이지 신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영준에게 일가친척 이상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신 회장 집 바로 옆에 월촌 식당이 있었다. 월촌 식당은 말이 좋아 식당이지 월촌 댁이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조잡스런 간판을 내건 오죽잖은 간이주점이었다. 해가 저물어 아이들 생각이 나거나, 앞으로의 일이 걱정될 때 영준은 월촌 식당에 가서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마시곤 하였다.

월촌 식당에는 민재라는 노총각이 있었다. 의지까지 없는 그는 월촌 댁의 조카였는데, 서울로 올라가 수년간 남의 집 종업원으로 있다가 이곳에 와서 건달 생활을 하며 숙모 밑에 빌붙어 있었다.

영준은 종종 민재와 대작(對酌)을 하곤 하였다. 나이 40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간 그의 처지가 여간 딱하지 않았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일이지만 민재는 그런대로 괜찮은 청년이었다.

월봉사 계곡으로부터 흘러오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민재와 막걸리 잔을 나누다 보면 사업이고 나발이고 세상 잡사가 다 잊혀져 마치 선경(仙境)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외롭기 짝이 없는, 말상대조차 찾기 어려운 궁벽한 두메산골에 민재 같은 청년이 있음으로 해서 영준은 그때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월촌 식당에서 마주 보이는 시냇물 건너에 월촌 다방이 있었다. 영준은 처음 월촌에 도착했을 때, 이런 두메산골에 웬 다방인가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방은 꽤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월촌 다방은 이 고장 주민들의 사랑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월촌 사람들은 심심할 때마다 이곳에 들러 한담을 나누거나 삼삼오오 둘러앉아 화투를 치곤하였다. 더군다나 비라도 내려 할 일이 없는 날에는 마을의 남정네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너도나도 이 다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월촌 다방은 종점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고시생들이나 어쩌다 월봉산을 찾아오는 등산객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월봉 다방이야말로 고시생들과 등산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금자리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신 회장 집에 머무는 동안 영준도 월촌 다방을 자주 드나들었다. 마음이 산란해질 때는 물론이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해질 때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 다방에 가서 밤늦도록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곤 하였다.

그 다방에는 미스 손이라는, 제법 나이 든 주인 여자가 있었다. 아가씨인지 아니면 결혼을 했다가 실패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좌우간 월촌 사람들은 그 여자를 그냥 미스 손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본래 이 고장 사람이 아니었고, 인물도 별로 볼품이 없었지만, 그러나 월촌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은근히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곤 하였다.

그중에서도 민재는 가장 뻔질나게 다방을 들락거렸다. 그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백수건달이었으므로 거의 매일이다시피 다방에 눌러 앉아 있었는데, 마음씨 좋은 월촌 댁은 하나뿐인 조카가 다방에만 들락거려도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싫은 내색은커녕 도리어 용돈까지 주면서 민재를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민재는 언젠가 다방 간판을 새로 만들어 준적도 있었다. 함석판에 흰 페인트칠을 하고는 그 위에 붉은 페인트로 글씨를 썼는데, 글씨가 얼마나 서툴렀는지 ‘월촌 다방’이라는 네 글자가 이리 삐뚤 저리 삐뚤 제멋대로 놀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방에는 도리어 그런 서툰 글씨가 더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민재는 미스 손을 위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하였다. 가령 다방 안의 전구(電球)를 갈아 끼우는 일에서부터 벽에 망치로 못 박는 일에 이르기까지 민재는 미스 손을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미스 손도 그런 민재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아무튼 영준은 그때 월촌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장차 회사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쪽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동원 가능한 자금을 모조리 끌어다 썼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투자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업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막다른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채권자들은 연일 아우성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조까지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회사는 거의 회생 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영준은 한 달 동안의 장고(長考) 끝에 급기야 회사를 정리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직후 그는 서울로 돌아가 회사를 정리하였고,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복잡하게 얽힌 채무 관계를 말끔히 청산하였다. 그런데 십 수 년 사업 끝에 남은 것이라곤 빈손뿐이었고, 그와 동시에 쓰라린 가정 파탄까지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제 사업이고 가정이고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숙 생활도 지긋지긋했으므로 그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틀이나 사흘쯤 푹신 잠이나 잤으면 여한이 없을 듯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곳이 월촌이었다. 신 회장 집 사랑채 문간방 아궁이에 장작불 지펴 넣고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온몸이 축 늘어지도록 잠을 자고 나면, 그리고 월봉사 종소리를 들으며 월봉산을 몇 차례 오르내리면 세파에 시달린 피로가 조금은 씻겨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을 훌쩍 떠나왔던 것이다.

눈을 뜨자 버스는 어느덧 월봉(月峰)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월봉은 면청(面廳) 소재지였으므로 그래도 이 고장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는 면사무소 이외에도 지서와 우체국, 그리고 농협에다 분교장(分敎場)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월봉이야말로 이 고장의 중심지인 셈이었다.

저 옛날 이 고을 원님들의 송덕비(頌德碑)가 일렬로 죽 서 있는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마침내 분교장이 나타났다. 버스는 분교장 담장을 끼고 좁다란 길로 들어섰는데, 길가에는 월봉 교회, 월봉 상회, 월봉 식당, 월봉 다방이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마을 전체의 분위기는 여전히 황량하기만 하였다.

버스가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 멈추자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고, 이제 버스 안에는 영준과 꺼벙한 청년 두 사람만 뎅그러니 남아 있었다. 좌석에 앉으면서 영준은 나머지 두 청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이로 보나 차림새로 보나 그들은 필경 고시생인 듯했다. 월촌에는 고시원이 세 군데나 있었는데, 종점에 가면 그런 고시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시내에 나갔다가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월봉을 떠난 버스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울퉁불퉁한 길을 줄기차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타이어에 자갈 튀는 소리가 우당탕 퉁탕하였고, 유리창이 부르르 부르르 떨다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이 덜컹거리곤 하였다. 그런데도 버스는 지칠 줄 모르고 뒤뚱거리며 달려 나갔다.

드디어 버스는 종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준은 마른침을 꼴깍 집어삼키며 창밖으로 눈길을 던졌는데, 흙먼지 풀풀 날리는 종점 주변은 재작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종점 상회 앞에 두어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월촌 다방으로부터 서너 사람이 뛰어나와 버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영준은 서서히 버스에서 내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청년 두 사람도 뒤따라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 두 사람은 종점 상회를 옆에 끼고 고시원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종점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전신주에 걸린, ‘산불조심’이라 쓰인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고, 검불이며 비닐 쪼가리 따위가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종점 상회 앞에 서 있던 사람들과 다방에서 뛰어나온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영준은 종점 상회부터 들렀다. 신 회장 집에 덜렁 맨손으로 들어가기가 뭣해서 인사치레로 간단한 선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주인 여자가 얼른 가게로 나왔다. 그녀의 손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영준이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구, 김 사장님 아니 세유? 참 오랜만이네 유.”

“그렇습니다. 신 회장님 댁에 갈까 하는데 그 분들 계실지 모르겠네요.”

“아마 있을 거에 유. 조금 전까지 있었거든 유.”

주인 여자는 앞치마에 물기를 닦았고, 영준은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해 망설이다가 화장지 한 다발과 합성 세제를 샀다. 가게에 진열한 물건이 워낙 빈약했으므로 사실은 선물을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곧 월봉사 진입로로 들어섰는데, 거울처럼 맑은 시냇물 건너로 월촌 다방이 보였다. 슬라브 추녀 끝에 매달린 함석 간판의 한쪽 끝이 삐뚜름하게 처진 것을 제외한다면 다방은 옛 모습과 조금도 바를 바 없었다.

월촌 식당도 그대로 있었다. 한데 식당 뒤켠으로 이어진 살림채 용마루가 푹 꺼져 여간 흉물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대들보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지붕이 꺼져 내린 곳에 검은 비닐을 덮어씌우고 벽돌조각으로 드문드문 눌러 놓았는데, 덮어씌운 비닐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러진 서까래가 뼈다귀처럼 삐쭉삐쭉 불거져 나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 집은 거의 폐가나 다름없었다. 마침 지붕 위로 늙은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도둑고양이는 검은 털과 흰 털, 그리고 누런 털이 뒤섞여 몸 전체가 얼룩덜룩하였다.

영준은 힐끗 유리문 너머로 식당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식당에는 월촌 댁도 민재도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 주탁(酒卓)이며 주전자, 그리고 보시기 따위가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장사를 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영준은 월봉산 등산로 안내 표지판 앞을 지나 신 회장 집으로 올라갔다. 그때 까치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월봉사 쪽으로부터 미끈하게 날아와 신 회장 집 뒤란 감나무 꼭대기에 사뿐히 앉았다. 까치들은 까악 까악 우짖고 있었다. 영준은 곧 사랑채 문간으로 들어섰고, 커음 커음 헛기침을 뱉으며 안채 댓돌 앞으로 다가섰다.

“신 회장님 계십니까?”

그때였다. 마침 사랑채 뒤꼍 화장실 쪽에서 신 회장이 옷매무시를 고치며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는 영준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구,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게 어쩐 일이세유? 한동안 소식이 없으시길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었는 디…… 추운디 어서 들어가시지유.”

“그간 별 일 없으셨습니까?”

“그러믄 유. 우리야 김 사장님 덕분에 잘 지냈시 유. 자, 어서 안으루 들어가시지 유.”

신 회장은 엉거주춤 서 있는 영준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산간에서 힘든 일을 많이 한 탓으로 신 회장의 손길은 여간 억세지 않았다. 영준은 종점 상회에서 산 선물을 마루에 놓고, 신 회장을 따라 알록달록한 비닐장판이 깔려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영준이 말했다.

“한번 놀러 온다 하면서도 그게 맘대로 잘 안 되더군요.”

“원체 바쁘시니께 그렇겠지 유. 그래 하시는 사업은 잘 되세 유?”

“웬걸요. 그때 여기서 올라가 곧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야심을 가지고 사업에 손을 댔었습니다만,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결국 실패로 끝난 셈이지요.”

“그래서 어쩐대 유. 다시 일어나셔야지 유. 김 사장님은 덕망이 있으신 분이니께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하실 겁니다.”

“글쎄요. 지금 생각으로는 다시 사업에 뛰어들 마음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저러나 차 한 잔두 대접하지 못 하구 이거 인사가 아니네 유. 집사람이 잠깐 나갔거든 유. 월봉에 환갑집이 있어서 일 봐 준다 구 나갔는 디 뭘 얼마나 푸짐하게 장만하느라고 여태까지 안 오는지 모르겠구믄 유.”

그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 고장 출신 국회의원 이름이 새겨진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벽시계 옆에는 신 회장 부모 초상화와 새마을훈장을 목에 걸고 찍은 신 회장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준이 말했다.

“차는 안 마셔도 좋습니다. 전 여기서 며칠 쉬어가고 싶어서 내려왔습니다. 지난번처럼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신세는 무슨 신세래 유. 며칠 아니라 몇 달이래두 좋아 유. 다만 저희 집이 누추해서 걱정이지 유.”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지난번에도 얼마나 편히 지냈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이 마을에 아주 눌러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니까요. 이번에도 사랑채 문간방을 쓰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 방은 오래 비워 놔서 좀 지저분한디 유…… 차라리 안채 뒷방을 쓰시는 것이 어떻겠시 유?”

“뒷방은 연탄 때는 방 아닙니까?”

“그렇지 유.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슈.”

“전 연탄 때는 방보다 장작 때는 방을 쓰고 싶은데요.”

“그럼 문간방을 쓰시지 유 뭐.”

신 회장은 선선히 문간방을 내주기로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곧 사랑채 문간방으로 건너가 먼지를 털어냈다. 영준도 멀뚱히 구경만 하기가 민망하여 방바닥에 걸레질을 쳤다. 아닌 게 아니라 방은 오래 비워둔 탓으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두 번, 세 번 걸레질을 쳤는데도 끊임없이 땟물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대충 소제가 끝나자 신 회장은 아궁이에 장작을 가득 메워 넣고 군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장작은 화닥, 화다닥 소리를 내면서 기세 좋게 타고 있었다. 신 회장 곁에 서서 장작 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영준이 말했다.

“장작이 잘 말랐군요.”

“날씨가 원체 건조했잖어 유. 이렇게 날이 가물어서 올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정말 큰일이라니께 유. 오시다가 월봉천 마른 거 보셨지 유?”

“바닥이 완전히 드러났더군요.”

“저두 나이 50이 다 됐습니다만, 월봉천이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건 처음 봤슈. 산이 깊기 때문에 월봉천은 여간해서 마르는 법이 없거든유. 근디 지난 겨우내 가물어두 너무 가물었슈. 눈 내린 날두 며칠 안 되니께 유. 저 아랫말 사람들은 먹을 물도 없다구 야단들인디 유 뭐.”

신 회장은 아궁이에 장작개비를 더 욱여넣었다. 소담스러운 불꽃이 아궁이 안쪽 구들장을 향하여 훅훅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신 회장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영준도 불땀을 받아 얼굴이 화닥 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영준이 말했다.

“이 좋은 불앞에 있으니까 대번 몸이 풀리는군요.”

“바람만 불지 않으믄 그래두 덜 추울 텐디…… 오늘따라 바람이 아주 세구믄 유.”

“그래도 여긴 아늑한 편인 걸요. 저 아래 종점 쪽엔 바람이 엄청나게 세더군요. 흙먼지 때문에 눈을 뜨기가 곤란할 정도였습니다.”

“거긴 원래 바람을 많이 타는 곳이지 유. 사방에서 바람이 글루 몰아치니께 유. 저희 집이야 월봉산이 바람막이를 해 주니께 좀 나은 편이구 유.”

“한데 월촌 식당은 왜 저렇게 됐습니까?”

영준은 볼썽사납게 주저앉은 월촌 식당 살림채를 가리켰다. 그 집은 길에서 볼 때보다도 더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벽돌 조각으로 눌러 놓았다고는 하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는 비닐 쪼가리가 줄기차게 바람결에 풀썩거리고 있었다. 신 회장이 말했다.

“지난여름 폭우 쏟아질 때 벼락 맞았지 뭐 유.”

“그러면 진작 고칠 것이지 왜 여태 그냥 방치해 뒀을까요.”

“돈도 없구, 고칠 사람도 없구…… 그러니께 그냥 둘 수밖에 없지 유 뭐.”

“돈이야 빚을 내더라도 민재가 고치면 될 것 아닙니까? 그 사람, 제법 손재주가 있는 것 같던데요.”

“민재는 지금 여기 없는 걸유.”

“그럼 또다시 서울로 올라갔습니까?”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슈. 이웃에 살아두 피차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니께 유.”

“그전에 보니까 민재가 월촌 다방 미스 손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혹시 제가 잘못 짚었습니까?”

“제대로 짚으셨슈. 동네 사람들은 벌써부터 다 알고 있었거든 유. 사실은 거기서부터 복잡한 문제가 생겼시 유.”

“무슨 문제가 생겼단 말입니까? 노총각과 혼자 사는 여자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도리어 더 좋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게 반드시 그렇지두 않더라구 유. 그 사람들 얘기하자면 좀 길지 유. 여기서 며칠 계시다 보믄 저절로 알게 되실 거에 유. 동네 사람들두 민재와 미스 손이 서로 잘 생각해서 살림이래두 차리길 바랬었는디 좌우간 별일도 다 있더구믄 유.”

신 회장은 부지깽이로 장작개비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가 부지깽이로 불타고 있는 장작개비를 들썩거릴 때마다 노란 불꽃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불티를 톡톡 내뱉었다. 영준은 민재와 미스 손 사이에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달랠 길 없었지만, 그러나 신 회장이 자세한 이야기를 꺼리는 것 같아 그 내막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영준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슬슬 월촌 다방으로 내려갔다. 다방은 텅 비어 있었는데, 몸빼 차림의 젊은 여자가 석유난로 곁에서 끄덕끄덕 졸고 있다가 게을러터진 하품을 베어 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 여자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영준은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미스 손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몸뻬 입은 낯선 여자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물었다.

“주인이 바뀌셨습니까.”

“예. 누구신데요?”

몸뻬는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영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잠이 가득한 그녀의 눈은 게슴츠레하였다. 영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전에 미스 손이라고 있었는데……”

“미스 손이 여기 떠난 지가 언젠데요. 하여간 일루 앉으세요. 여기가 좀 따뜻하니까요.”

그녀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권했고, 영준은 난로 가까이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는데, 테이블 위에는 구깃구깃한 신문지가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이윽고 몸뻬가 엽차 한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아 주었다. 그녀는 다방 주인이라기보다도 차라리 밭에서 일하다 마악 들어온 선머슴 같았다. 영준이 말했다.

“커피 주십시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댁한테도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거 좋지요.”

몸뻬는 여간 무뚝뚝하지 않았다. 잠시 후 멋대가리 없는 그 여자가 커피 두 잔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고는 영준의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영준이 말했다.

“난 신 회장님 댁에 찾아온 사람입니다. 며칠 묵어가기로 했죠. 한데 댁은 언제부터 이 다방을 맡게 됐습니까.”

“미스 손이 떠나고 바로 맡았어요.”

“그러니까 미스 손한테 인수한 셈이군요.”

“딴은 그렇죠. 근데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미스 손을 아시는 것 보니까 그 전에도 이 동네에 왔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요. 재작년 이맘때 신 회장님 댁에서 한 달 동안 하숙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 사장님 맞지요? 신 회장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신 회장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참 좋은 분이 묵어갔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김 사장님이 어떤 분인가 하고 내심 궁금했었어요. 그런데 오늘에야 이렇게 직접 뵙게 됐군요. 반갑습니다. 미스 손이 없어서 섭섭하시겠지만, 신 회장님 댁에 묵으시는 동안 자주 놀러 오세요.”

영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더니, 잠에서 깨어난 몸뻬는 구질구질한 차림새나 작대기 같던 첫 인상보다는 훨씬 쌉쌉하고 서글서글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언제 졸았느냐는 듯이 차츰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영준이 물었다.

“미슨 손은 여기서 왜 떠났습니까. 내가 신 회장님 댁에 묵을 때만 해도 미스 손은 아주 이 마을에서 늙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럴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민재 때문에 폭삭 망했지 뭐예요. 민재가 술만 마셨다 하면 노상 두들겨 팼거든요.”

“뭐라구요? 민재가 그럴 사람 같지는 않던데……”

“아이구, 정말 잘못 보셨어요. 민재 그 사람 얼마나 무서운지 말도 못했어요. 미스 손이 다른 남자와 차 마시는 것만 봐도 그 날 저녁에는 사정없이 보리타작을 했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민재가 미스 손을 좋아했잖아요.”

“그거야 다 아는 일이지만, 민재가 왜 남을 두들겨 팼단 말입니까.”

“남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요.”

“남이 아니었다면…… 그 이상으로 깊은 관계였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민재는 언제부턴가 미스 손을 자기 마누라처럼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남자하고 차 마시는 꼴도 못 봤던 거지요. 말하자면 의처증이라고 할까요, 어쨌거나 매일 두들겨 패니 미스 손인들 어떻게 살겠어요. 결국 미스 손이 저한테 다방을 넘기고 오밤중에 몰래 도망갔어요. 그렇게 되자 민재는 헷까닥 돌아버렸지 뭐예요.”

“헷까닥 돌아버리다니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머리가 이렇게 됐어요.”

몸뻬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라미를 두어 번 그려 보였다. 말하자면 정신 이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영준이 말했다.

“그것 참 별일도 다 있군요.”

“미스 손이 도망간 뒤에는 동네가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날이면 날마다 민재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돌아다녔으니까요. 더군다나 오늘처럼 끄무레한 날에는 더했어요. 옷을 홀딱 벗고 알몸으로 엉엉 울어 젖히질 않나, 아무튼 민재가 한 번 울었다 하면 동네가 떠나갈 뻔했다니까요. 그래서 결국 월촌 댁이 민재를 기도원에 보냈지 뭐예요.”

“아, 그랬군요. 한데 댁은 어떻게 그 내막을 잘 아십니까?”

“저야 일루 오기 전에 월봉 다방에 있었거든요. 월봉 다방은 이 동네 방송센터나 마찬가지예요. 월봉 다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김 서방네 염소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는지 그런 것까지 훤히 알 수 있다니까요. 민재가 미쳤을 때는 온 동네가 얼마나 시끌시끌했는지 몰라요.”

“허, 참……”

영준은 그제서야 신 회장이 조심스럽게 머뭇거린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 회장은 입이 무거웠고, 민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코 아름다울 것 없는 이웃의 불행을 들춰내지 않으려고 말을 아낀 것이었다. 몸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뭔지……”

“댁도 사랑이라는 거 해봤습니까.”

“해봤지요. 하지만 뒤끝이 별로 좋지 않더라구요. 남자들이란 다 그렇고 그런가 봐요. 좋을 땐 죽자 사자 덤비고 싫어지면 소리 없이 떠나고…… 이제 사랑 같은 건 않기로 작정했죠.”

“여자들은 뭐 별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영준은 헤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가 왕성하게 확확 돌아갈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사업이 내리막길로 치닫자 이혼을 요구해 왔던 그 여자…… 영준은 그런 여자를 아내라 믿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남모르는 분루를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몸뻬가 물었다.

“텔레비전 켜드릴까요.”

“별로…… 조금 있다가 신 회장님 댁으로 올라갈 겁니다. 한데 월촌 식당은 이 근래 장사 안합니까.”

“하긴 해요. 하지만 민재가 그렇게 된 후 월촌 댁도 살맛을 잃었나 봐요. 장사에도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어제도 잠깐 월촌 식당에 들렀더니, 그 아줌마가 신세 한탄하면서 하염없이 훌쩍훌쩍 울고 있더라구요. 월촌 댁도 참 안됐지 뭐예요.”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신 회장이 들어왔는데, 그는 한쪽 손에 큼지막한 랜턴을 들고 있었다. 그가 영준에게 말했다.

“방이 비었길래 어디 가셨나 했지 유. 바로 여기 와 계셨구믄 유.”

“정말 잘 오셨습니다. 초저녁부터 자기도 그렇고 해서 놀러 나왔지요.”

“근디 캄캄해서 어떻게 오셨유? 달도 없구, 월촌 식당 앞 외등까지 불이 안 들어왔던디……”

“더듬거리며 왔지요.”

“그래두 밤눈이 밝으신게비 유. 오늘 같은 날 잘 못허믄 큰일 나지 유. 언젠가 등산객 한 사람은 요 앞 개골창으로 떨어져서 얼굴이 깨지고 다리까지 부러졌슈.”

신 회장은 랜턴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영준에게 길을 밝혀주기 위해 일부러 랜턴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영준이 몸뻬에게 말했다.

“여보세요. 여기 신 회장님께도 차 한 잔 드리세요.”

그러자 몸뻬는 신 회장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칡차를 가져왔다. 찻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그녀가 신 회장에게 말했다.

“낮에 커피를 많이 드신 것 같아서 일부러 칡차로 가져왔어요.”

“허허, 나야 주는 대로 마시지 뭐.”

신 회장은 껄껄 웃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과거 미스 손이 있을 때에도 주문이니 뭐니 가리지 않고 아무 차나 주는 대로 마셨다. 영준이 물었다.

“지금도 고시원엔 고시생들이 많습니까.”

“월촌 고시원도 그렇구, 홍문관 고시원도 그렇구 방이 없을 지경이지유. 그래두 우리 동네가 고시 공부허기는 좋은게비 유. 해마다 합격자도 많이 나오구 유.”

“사실 이렇게 산세 좋고 조용한 곳도 드물 겁니다.”

“전 우리 동네에 있다가 읍내 장에만 나가두 숨이 가뻐서 못 살겠더라구 유. 서울 사람들은 숨 막혀서 정말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니께 유.”

“그러실 겁니다. 저부터도 서울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거든요. 한데 아까 월봉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푸근해지더군요.”

“이 공기 좋은 데서 마음껏 쉬었다 가세 유.”

영준은 신 회장과 두어 시간 가량 별 볼일 없는 한담을 나누다가 다방을 나섰다. 지금까지 밝은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자 한 발자국도 앞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캄캄 칠흑이었다. 달은 보이지 않고 엷은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별들이 흩어져 있었다. 영준이 말했다.

“엄청나게 어둡군요.”

“오늘 같은 날은 누가 옆에서 뺨을 때리고 달아나도 모른다니께 유.”

신 회장이 랜턴을 켰다. 그러자 드디어 길이 환하게 드러났다. 시냇물 소리가 낮보다도 훨씬 투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월촌 식당 앞으로 올라섰는데, 그때 월봉 쪽으로부터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하늘로 뻗치면서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영준이 혼잣말 비슷이 말했다.

“이 밤중에 웬 차가 들어오나……”

“막차가 들어오는구믄 유. 지금이 막차 들어올 시간이거든 유.”

“시내버스 말입니까.”

“야. 저 차는 우리 동네 종점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첫차로 떠나거든 유.”

시내버스 헤드라이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영준과 신 회장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사랑채 문간에서 갈라졌다. 신 회장은 안채 안방으로 들어갔고, 영준은 문간방으로 들어가 절절 끓는 방바닥에 요를 깔고 벌렁 드러누웠다.

아, 이 평화.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바가지를 긁어대던, 그 지옥 같은 나날을 생각할라치면 저절로 넌더리가 났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머리맡에서는 여전히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데 이따금 월봉산으로부터 짐승 우는소리도 들려왔다. 무슨 짐승인지 깩, 깨액 하면서 단조로운 울음을 울어대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잠을 더욱 멀리멀리 쫓아버리는 것이었다.

영준은 밤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꾸만 헤어진 아내와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뭔지……’ 하고 중얼거리던 몸뻬의 말이 줄곧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괴로워하다가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신 회장이 깨웠으나, 영준은 아침밥을 사양한 채 계속 퍼질러 잤다. 일단 잠이 든 뒤에는 밥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거의 한 나절이 지나서야 일어났는데, 장작불로 달군 온돌방에서 실컷 단잠을 잔 탓인지 온몸이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그는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수돗가로 나왔다. 월봉산에서 끌어 올린 지하수가 상수도로 공급되고 있었으므로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그야말로 약수 중에서도 약수인지라 양치질을 하고 입안을 헹굴 때에는 물맛이 한강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착지근하였다.

상수도 주위에는 아직도 질펀하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월촌은 월봉산 중턱의 고지대(高地帶)여서 서울보다도 봄이 훨씬 늦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는데 서울에서 묻어온 모진 풍상의 찌꺼기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물기를 닦고, 영준은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월봉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대웅전(大雄殿)과 요사(寮舍)는 그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었는데, 종무소(宗務所) 모퉁이에서 천불전(千佛殿) 앞까지 이어진 법련교(法蓮橋)가 새로 놓여 있었다. 그런가 하면 천불전에서는 단청(丹靑) 불사(佛事)가 한창이었다.

마침 종무소에서 나온 스님 한 분이 법련교를 건너 천불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준은 여기저기 경내를 돌아보다가 요사 뒤란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도 한 바가지 떠마셨다. 그러자 속박과 번뇌로 가득 찼던, 그리하여 미치도록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대웅전 앞마당의 석탑을 올려다보았다. 석탑 상륜부(相輪部)의 용차(龍車)와 보주(寶珠)가 이만저만 정교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탑 꼭대기 위로 눈썹 같은 달이 엇비슷이 걸려 있었다. 창백한 반달이었다.

영준은 얼마 동안 넋 빠진 사람처럼 달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문득 헤어진 아내와 그녀에게 맡긴 어린것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그의 그런 아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차디찬 낮달은 그러나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

프로필// 이광복

충남 부여 출생.

1973년 문화공보부 문예창작 현상모집 장막희곡 입선.

1974년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 당선.

1977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 완료.

1979년 『월간독서』 장편소설 현상모집 당선.

[주요경력]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기자, 편집국장, 소설분과회장(제24대) 역임. 한국소설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국제PEN한국본부 사무처장, 문화정책위원장, 이사(제28대~제34대)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제25대~제26대, 상임이사 겸임). 『월간문학』『한국문학인』주간.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학진흥 및 국립한국문학관건립공동준비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명예해군

[주요작품]

ㆍ소설집 『화려한 밀실』『사육제』 『겨울여행』 『먼 길』 『동행』『만물박사(전3권)』

ㆍ장편소설 『풍랑의 도시』 『목신의 마을』  『폭설 』 『열망』  『술래잡기』 『겨울 무지개 』 『바람 잡기』  『송주임』 『이혼시대(전3권)』『삼국지(전8권)』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 『사랑과 운명 』 『불멸의 혼-계백』  『구름 잡기』 『안개의 계절』 『 황금의 후예』

ㆍ콩트집  『풍선 속의 여자』  『슈퍼맨』

ㆍ전래동화 『에밀레종』

ㆍ교양서적  『태평양을 마당처럼 』 『세계는 없다』 『끝나지 않은 항일투쟁』 『금강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 『천수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 』 『문학과 행복』

ㆍ시나리오  『시련과 영광』  『아, 대한민국』 외 다수

[수상]

대통령표창(1987). 제7회 동포문학상. 제2회 시와 시론 문학상. 제20회 한국소설 문학상. 제14회 조연현 문학상. 대통령표창(1995). 제1회 문학저널창작 문학상. 제19회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공로상(문인부문). 노동부장관 표창. 제28회 PEN문학상. 제14회 들소리 문학상 대상. 부여 100년을 빛낸 인물(문화예술부문). 제30회 한국예총예술문화상대상. 제3회 익재 문학상. 제9회 정과정 문학상. 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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