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cafe-editor-text">이충식의 <br /><br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br /><br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br /><br />여기,<br /><br />영리한 각본과 정치(精緻)하게 설정된 미장센이 <br />각축전을 벌이는 추리극 < 나이브스 아웃 > 이 <br />있습니다.<br /><br />낡은 타자기 하나로 출발했지만, 이후 30개국 <br />언어로 8천만부가 팔린, 모두에게 각광받던 <br />작가 할란 트롬비가 있었죠. <br /><br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선 따라올 사람이 <br />없었고, <br /><br />그 글로 엄청난 부와 최고의 명예를 함께 <br />얻었습니다. <br /><br />인품 또한 훌륭했지요. <br /><br />가족들의 사업을 돕는 것은 물론, 사회에 선한 <br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br /><br />그런 그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죠.<br /><br />그것도 하필 자신의 85회 생일 다음 날 아침에 <br />말입니다.<br /><br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모였던 그날, <br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br /><br />이제 9명의 가족들은 아홉 개의 '칼들<br />(Knives)'이 되어 서로를 '겨누기(Out)' <br />시작합니다.<br /><br />호러 영화를 연상킬 정도로 적요(寂寥)하고도<br />왠지 음산한 기운이 흐르는, <br /><br />고풍스러운 적갈색 벽돌 저택 앞으로 검은 개 <br />두 마리가 낙엽을 밟으며 내달리지요. <br /><br />연대 불명의 실내장식을 둘러보던 카메라는,<br /><br />' 나의 집(my house), 나의 규칙(my rule), <br />나의 커피(my coffee)' 의 붉은색 글씨가 <br />새겨진 머그컵을 암유(暗喩)적으로 조명하며, <br /><br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의 시작을 알립니다.<br /><br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충직한 <br />후계자를 자처하는 라이언 존슨의 오리지널 <br />시나리오는 종종 진짜보다 더 정품 같은 <br />뉘앙스를 풍기죠.<br /><br />추리 장르 팬들에게 즐거운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br />오랫만에 오락영화의 모범(Best Practice) 으로 <br />자리합니다.<br /><br />“쉽지 않았어...이 빌어먹을 재산!”<br /><br />영화 초반부, 베스트 셀러 소설가 할란 트롬비는 <br />뇌까리죠. <br /><br />자택에서 가족들 모두를 초대해 자신의 생일 <br />축하연을 연 할란은, <br /><br />이튿날 아침 가정부 프랜에 의해 서재에서 <br />경동맥이 베어진 시체로 발견됩니다. <br /><br />그의 죽음은 보이는 대로 과연 자살일까요? <br /><br />가장인 할란에게 나름대로의 다양한 불만을 품고<br />있었던 자녀들은, 모두가 용의자로 의심받는 <br />상황에 처하죠.<br /><br />할란이 죽기 전 모여 있었던 가족의 알리바이에 <br />대해서 경찰 엘리엇과 와그너는 '일 대 일' 로 <br />묻고 또 묻습니다.<br /><br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견제들...<br /><br />그렇게,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br /><br />의도치 않은 용의선(The suspect) 상에 오르며, <br />초상화와 벽난로, 앤티크로 화려하게 치장된 <br />고딕풍 저택에 갇힌 가족과 고용인들,<br /><br />그리고, 유머와 패션 센스를 갖춘 자아도취적 <br />언변능숙형의 주인공 탐정을 아우르며,,<br /><br />숨가쁘게 조명해갑니다.<br /><br />먼저 가족들로는,<br /><br />부동산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 중인 맏딸 <br />린다 드리스데일(제이미 리 커티스 분) 과<br /><br />맏사위로, 아내의 회사 경영을 돕는 <br />리처드 드리스데일(돈 존슨 분),<br /><br />이들 부부의 영악한 아들로, 한땐 할아버지 <br />할란의 사랑을 받았으나 현재는 망나니로 <br />완전히 찍힌 랜섬 드리스데일(크리스 에반스 분),<br /><br />이어 할란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br />막내 아들 월트 트롬비(마이클 섀넌 분)와<br />도나 트롬비(리키 린섬 분) 부부,<br /><br />그들의 아들인 10대 극우 악플러 제이콥 트롬비<br />(제이든 마르텔 분),<br /><br />다음으론 15년 전 죽은 둘째 아들의 아내로, <br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니 트롬비<br />(토니 콜레트 분)와,<br /><br />마르타와 친구처럼 지내는, 조니의 딸 멕 트롬비<br />(캐서린 랭퍼드 분),<br /><br />또한 할란의 어머니로, 나이와 인지능력을 <br />가늠하기 힘든 트롬비 노부인(케이 칼란 분)이 <br />있습니다.<br /><br />아울러 가족처럼(?) 여겨지며, 저택을 자유롭게 <br />출입하는 고용인으론, <br /><br />할란에게 신뢰받는, 히스패닉계 출신의 젊은 <br />간병인인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 분),<br /><br />트롬비가의 가정부로 시신을 최초 발견한 프랜<br />(에디 패터슨 분)...<br /><br />여기에,<br /><br />익명의 의뢰를 받고 할란 트롬비의 살인 <br />사건을 수사하는 테네시주 출신 유명 탐정 <br />브누아 블랑(대니얼 크레이그 분) 이 등장하지요.<br /><br />기막히게도, 라이언 존슨은 < 나이브스 아웃 > 에 <br />정곡을 찌르는 '신의 한수' 를 둡니다.<br /><br />바로 마르타의 등장이죠.<br /><br />그녀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br />하면 구토를 하는 캐릭터입니다.<br /><br />가히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에 다름아니죠.<br /><br />블랑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충실한(?) <br />조역자로서 마르타는,<br /><br />숨겨둔 진실을 영화 초반부터 폭로하기에 <br />이릅니다.<br /><br />그렇게,<br /><br />감독은 영리하게도 극의 중심에 마르타를 <br />자리케 하고,<br /><br />대신, 블랑은 마지막에 진실을 밝히는 탐정의 <br />역할에만 집중케 하지요.<br /><br />'마르타, 그녀' 의 입장에서 사건을 주시해 가도록 <br />만들면서, 신선하고 짜릿한 긴장감을 고조시켜 <br />주는 것입니다.<br /><br />마르타는 빼어난 오목 실력의 비결을 묻는 <br />질문에,<br /><br />“저는 아름다운 패턴을 승리보다 우선하니까요”<br />라고 대답하지요.<br /><br />블랑은 그 선한 마르타에게 자못 철학적인 <br />화두를 건넵니다.<br /><br />"옳고 그름의 경계에 존재하는 진실 그 자체가<br />중요한게 아니라,<br /><br />찾은 진실을 어떻게 활용하는냐가 진정 중요한 <br />것이죠."<br /><br />뉴요커 잡지에 실릴 정도로, 시대의 '셜록 홈즈'나<br /> '에르퀼 푸아로' 라 부를 수 있는 브누아 블랑,<br /><br />그는 사뭇 오만한 탐정으로 비춰질 수 있음에도 <br />어떤 사건이든 100%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는 <br />자부심을 당당하게 펴보이죠. <br /><br />" 저는 살인으로 의심이 갑니다.<br />가족 모두에게 살해 동기가 있어요."<br /><br />" 여러분들 모두에게서 구린 범죄 냄새가 납니다.<br />어느 용의자도 지우지 않았구요."<br /><br />"이건은 아직 전부 풀리지 않은, <br />복잡다기한 거미줄에요.<br /><br />갈피를 잡을 수 없이 꼬인 사건이라 해결까진 <br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br /><br />아무런 편견 없이 사실들을 관찰한 후 포물선의 <br />경로를 밝혀내고 종착점으로 유유히 가보면 <br />진실이 내 발 앞에 떨어질 것입니다.”<br /><br />이렇듯, 매력적인 스타일과 억양의 블랑은 <br />숱한 알리바이 속에서 빛나는 명탐정다운 <br />추리를 이끌어내며,<br /><br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넘어선, <br />다니엘 크레이그의 인생 캐릭터로 자리매김<br />하지요. <br /><br />해당 대사와 함께 언급되는 ‘중력의 무지개'...<br /><br />토마스 핀천의 역작이자 타임지 선정 100대 <br />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을,<br /><br />존슨 감독은 브누아 블랑의 입을 통해 <br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br /><br />이보다 더 클래시컬한 살인 미스터리 극의 <br />세팅이 또 있을까요. <br /><br />흠잡을 데 없는 외면적 장치와 그 아래 꼼꼼히 <br />설계된 내러티브가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br /><br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근래 드문, 물샐 틈 없는 <br />복원' 인 게지요.<br /><br />해서, <br /><br />고전 추리물의 완벽에 가까운 복고풍 미스터리로<br />미국 속을 통렬하게 드러낸, 예리한 진실의 서사 <br />< 나이브스 아웃 > 은, <br /><br />앨러리 퀸이나 존 딕슨 카, S.S.반 다인과 같은 <br />20세기 정통파 추리작가 황금 계보의 향기를 <br />품어내며,<br /><br />인물들과 그 속마음을 비춰주는 동시에, <br />기라성같은 출연 배우들 면면을 보는 맛 또한 <br />덤으로 선사해주고 있습니다.<br /><br />첨예한 지적 유희보다는, 추리 서사를 <br />이정표대로 이끄는 노련한 스토리텔링의 기량이 <br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죠. <br /><br />으스스한 수집품으로 정교하게 채워진 저택은 <br />할란의 머릿 속을 고스란히 반영한 공간으로,<br /><br />화려한 앙상블 캐스트에 걸맞은 무대로 <br />자리합니다. <br /><br />특히 각양각색의 무수한 단도를 거대한 동심원 <br />모양으로 부착한 장식물은, <br /><br />가족이 한 사람씩 심문받는 숏 뒤쪽에서 섬뜩한 <br />후광을 그리며,<br /><br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투시화(透視畵) 역할을 <br />절묘하게 해내지요. <br /><br />영화 후반, 탐정 블랑은 할란 트롬비 사건을 <br />'가운데가 빈 도너츠' 에 비유합니다.<br /><br />" '천 개의 칼' 을 본 후에야 비로소 '명검'(名劍)을 <br />알게 된다 ” 했습니다만...<br /><br />거실에 동심원 형태로 걸려있는 '천개의 칼'<br />(Thousand Knives : 할란의 추리소설 <br />제목이기도 함) 장식의 독특한 전체 형상은, <br /><br />식구들이 한 사람씩 탐문을 받는 싱글 숏에서 <br />용의자의 얼굴을 둘러싸는 아우라 노릇을 할 뿐 <br />아니라, <br /><br />공교롭게도 '도넛처럼 가운데가 텅 빈' , <br />사건의 실체적 양상까지 드러나게 해줍니다.<br /><br />< 나이브스 아웃 > 은 애거사 크리스티를 향한 <br />오마주의 헌정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지요. <br /><br />그녀가 주로 다뤘던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br />한 것은 물론, <br /><br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사와 미스터리한 유머의 <br />코미디적 설정, <br /><br />그리고, 극적인 미장센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br />돋보입니다. <br /><br />즉, 존슨의 < 나이브스 아웃 > 은 크리스티의 <br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과 유사한 프레임을 <br />갖는데요,<br /><br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고<br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인물이 등장해<br />사연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br /><br />이런 식으로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 과거의 <br />추리영화에 담겨있는 고전적 소재들이 화면 <br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요.<br /><br />정통적인 추리 장르의 상징인 대저택이라는 <br />공간부터 집안의 분위기와 그 소품들은,<br /><br />마치 현시대가 아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br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br /><br />심지어 정치적인 이야기도 깊숙이 담겨있다는 <br />점도 닮았지요.<br /><br />하지만 < 나이브스 아웃 > 은 뜻밖에도 극 초반<br />부터 관객들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공개합니다. <br /><br />이에 관객들은,<br /><br />이를 모르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범인을 제대로 <br />알아가는지, <br /><br />탐정 역시 이 범인을 과연 찾아낼 수 있는지 <br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영화에 몰입하게 되죠.<br /><br />관객들의 시선을 범인의 시각에 맞추는 <br />교묘하고도 현명한 술수인 것입니다. <br /><br />개연성도 훌륭하지요.<br /><br />해서, < 나이브스 아웃 > 은 놀라울 정도로 <br />깔끔하게 끝맺음됩니다. <br /><br />심지어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br />세밀한 설정도 뒤늦게 발견되기도 하죠. <br /><br />초상화 속 그림의 변화라던가, 핏자국의 정체, <br />캐릭터들의 중의적인 대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br /><br />나중에 봐서야 "이게 이걸 뜻하는 거였구나!"라고 <br />무릎을 탁 치게 만들죠.<br /><br />< 나이브스 아웃 > 시나리오를 10년 동안이나 <br />집필했다는 라이언 존스는,<br /> <br />현재 미국 사회의 정치적 묘사에 대해서도 <br />데드라인 수위를 아주 아슬하게 드나듭니다.<br /><br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캐릭터부터,<br /><br />외국인 노동자, 페미니스트, 핸드폰을 손에서 <br />놓지 못하는 급진 우파까지 실로 다양하지요.<br /><br />현악4중주를 비롯한 네이선 존슨의 회색빛 <br />OST는 반전을 거듭하는 화면 속 변환점을 <br />오묘하게 감싸주고 있습니다만...<br /><br />절로 탄복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배경 음악은 <br />뜻밖에도,<br /><br />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중 1막 <br />피날레 신에서, <br /><br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떠올리며 부르는 아리아<br />'아, 그이였던가(E'strano, Ah, forse lui)' 였지요.<br /><br />이 카바티나는 블랑이 100세가 넘어보이는(?) <br />트롬비 여사에게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초가 될 <br />진술을 정중하게 간청하는 시퀀스에서 흐릅니다.<br /><br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요..."<br /><br />트롬비 여사는 윗트넘치면서도 젠틀한 탐정<br />블랑에게 '아, 누구였던가' 인지를 과연 얘기해 <br />줄런지요?<br /><br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엔딩 신...<br /><br />2층 테라스로 올라간 '마르타, 그녀' 는, <br />드라마 오프닝 시퀀스와 수미상관하게, <br /><br />'나의 집, 나의 규칙, 나의 커피' 라는 붉은 글씨가 <br />새겨진, 할란의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br /><br />놀란 눈초리로 마당에 서있는 트롬비의 가족들을 <br />적법한 유산 상속자다운, 담담함고도 의연한 <br />눈길로 내려다 보지요.<br /><br />1. < 나이브스 아웃 - Kinves Out > 예고편 <br /><br />- https://youtu.be/KJF6vs5SuUs<br /><br />- https://youtu.be/oBOhrTbhrys<br /><br />- https://youtu.be/_WOGe1vtKF4<br /><br />인간은 타인을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기도, <br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해치기도 합니다. <br /><br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속 위선과 이기심으로 <br />뭉친 트롬비 가문은 후자에 속하는 것일런지요. <br /><br />85회 생일 잔칫날이라는게 할란으로선,<br /><br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웠던 맏사위 리처드,<br /><br />딸 학자금을 이유 삼아 지원금을 이중으로 <br />뜯어냈던 둘째 며느리 조니, <br /><br />소설 판권을 넷플릭스에 팔자며 독립 의지를 <br />잃은 막내아들,<br /><br />그리고, 철없이 방탕한 손자 랜섬 등, <br /><br />기생충 자녀들을 향한 최후통첩 디데이였습니다.<br /><br />트롬비의 모든 가족들은 거짓을 내세우고 있지요. <br /><br />할란을 향한 살해 동기를 숨기고 사건 용의자로 <br />지목되지 않기 위해 피를 나눈 가족을 궁지에 <br />모는 장면은, <br /><br />인간이 지닌 가식과 추악함을 적나라히<br />드러내고 있습니다.<br /><br />랜섬은 가족들을 향해 통렬히 경멸하듯 내뱉죠.<br /><br />“X이나 처먹어요. <br /><br />처드시고, 처드시고, <br />잊지 말고 꼭 처드시고, <br /><br />모두들 다 같이 처드세요!”<br /><br />< 나이브스 아웃 > 은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 <br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 및 반이민정책에 <br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내고 있지요. <br /><br />모든 등장인물은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그룹들을 <br />상징합니다. <br /><br />남미 출신의 간병인 마르타는 이민자 집단을,<br /><br />반 이민 정책에 찬성하는 트롬비 가문은 <br />백인 우월주의 멤버들을 각각 의미하지요.<br /><br />트롬비 가문 사람들은 마르타를 가족으로 <br />대했지만 호의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br /><br />할란이 남긴 유언으로 마르타가 전 재산을 <br />상속받는 상황이 오자 그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br />바꾸지요. <br /><br />마르타에게 상속 포기를 강요한 것입니다. <br /><br />미국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이 <br />그대로 담겨 있는 게지요.<br /><br />트롬비 가문은 비양심적인 행동까지 저지르며 <br />유산을 지키려고 합니다. <br /><br />그들은 마르타가 상속자가 된 상황이 옳지 <br />않다며 비난하고,<br /><br />마르타의 어머니가 불법 체류자임을 들먹이며 <br />협박까지 일삼습니다. <br /><br />일부 미국인 노동자들이 ‘이민자들이 자국민 <br />일자리를 뺐는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 <br />자연스레 연상됩니다만, <br /><br />그들에게 마르타는 타인이 가진 재산을 아무 <br />노력 없이 탐하는 좀비성 도둑에 불과한 게지요.<br /><br />그렇게,<br /><br />감독 라이언 존슨은 < 나이브스 아웃 > 속 <br />트롬비 가족과 마르타의 관계를 통해, <br /><br />미국 사회의 풍속화를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br />있습니다. <br /><br />교양 있는 시민임을 자부하는 선민의식의<br />트롬비 가문 사람들...<br /><br />그들은 마르타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br />입 모아 말하지만,<br /><br />정작 마르타의 고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br />에콰도르, 파라과이, 또는 브라질이라고 각자 <br />엇갈리게 확신하는 실정이죠.<br /><br />지식인을 자처하는 월트 또한 마르타를 <br />보호해주겠다고 공언하지만,<br /><br />유언장 내용이 밝혀져 마르타의 지위가 달라지자 <br />태도가 돌변합니다. <br /><br />요컨대 이 집에서 마르타는 동등해지기 전까지만 <br />환대받는 게지요. <br /><br />할란 트롬비의 자식들은 저마다 바닥부터 시작해 <br />어렵사리 성공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진술하지만,<br /><br />실상은 아버지에게 출발을 빚졌고 현재 생활비도 <br />의지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br /><br />그나마 부동산 사업가로 자립한 맏딸 린다도 <br />할란의 돈 100만달러를 종잣돈 삼아 창업했다고 <br />극 중의 다른 인물이 증언하지요.<br /><br />“이 저택은 선조들이 살아온 우리 집이야!”<br />라는 린다의 외침에 블랑은 야무지게 <br />바로잡습니다. <br /><br />“이 집은 댁의 아버지가 1988년에 파키스탄 <br />사업가한테서 매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br /><br />반 이민 정책이 가진 모순을 날카롭게 <br />조롱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지요.<br /><br />영화 피날레,<br /><br />사람이 절박해지면 칼을 뽑아들기 마련이지만,<br /><br />할아버지 할란의 말마따나 거짓 칼과 진짜 칼을<br />구분 못하는, '거짓된' 삶의 주역 랜섬,<br /><br />바로 그가 거짓 칼로 '진실된' 마르타의 가슴을 <br />헛되이 찌르는 패러독스의 은유적 시퀀스...<br /><br />감독, 각본, 제작까지 맡았던 라이언 존슨은 <br />트럼프 시대를 허용했던 미국 국민들과 사회에 <br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지요. <br /><br />하여, <br /><br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 제목 그대로 <br />미국사회를 향한 칼을 분연히 뽑아들은, <br />더욱 의미깊은 작품으로 다가옵니다.<br /><br />2. 베르디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중 1막 <br />비올레타의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br />('E'strano!', 'Ah, forse lui')<br /><br />-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br />: 게오르그 솔티 지휘 로열오페라<br />https://youtu.be/LdHs3On27pA<br /><br />3. 네이선 존슨(Nathan Johnson) 의 OST<br /><br />감독 라이언 존슨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br />정통 추리물을 연상시키는, <br /><br />비교적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 편집과 함께 <br />장르적 규범과 재미를 극한으로 추구하고 있죠.<br /><br />존슨 특유의 치밀하게 계산된 각본의 힘이 <br />관객을 오롯이 끌고가는 것으로,<br /><br />덕분에 < 나이브스 아웃 > 은 진실을 향해가는 <br />여정을 통해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해줍니다.<br /><br />존슨은 말그대로 '누가 저질렀는지' 를 밝히는<br />미스터리 찾기, 일명 '후더닛'('whodunnit') 을 <br />< 나이브스 아웃 > 의 전체 틀로 삼되,<br /><br />'비밀의 진실', 그 절반을 아예 초반에 밝히고, <br />대신 결론까지 이르는 경로를 작은 단위의 <br />서스펜스로 채우는 전략을 택했지요.<br /><br />사립탐정인 블랑은 조사과정 중에 슬쩍 끼어들어 <br />그들의 개인사를 꺼내도록 유도하는데,<br /><br />그 결과 트롬비 패밀리는 겉으로만 화목하지 <br />속은 철저하게 곪아 있었다는 것을 간파합니다.<br /><br />장르를 독특하게 비트는데 능한 라이언 존스의<br />< 나이브스 아웃 >...<br /><br />영화는 애거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황금기 <br />추리소설의 장르 문법과 클리셰를 충실하게<br />소화해내고 있는데요.<br /><br />반전을 위한 비틀기가 애초에 필수적 덕목인 <br />마스터리 장르적 특성 때문일 것으로,<br /><br />장르의 일상적 장치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음에도, <br />그것들은 모퉁이마다 예기치 못한 돌파구를 <br />이끌어냅니다. <br /><br />한데, < 나이브스 아웃 > 이 끝내 찾아내는 것은 <br />진범을 넘어, <br /><br />할란 트롬비의 죽음에 내포된, 진실된 목적과 <br />의미라고 할 수 있지요. <br /><br />이는 피살자인 할란 트롬비 본인이 본 사건의 <br />일부 플롯을 짠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br /><br />< 나이브스 아웃 > 의 진정한 타이틀 롤은,<br />극 중에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br />힘없는 아웃사이더인 마르타이죠. <br /><br />마이너리티임에도 마르타의 절제된 총명함과 <br />인격적 품위는 칭찬받을 만한 미덕을 넘어 <br />최상의 무기로 작동합니다. <br /><br />불법 이민자 어머니를 둔 마르타는 세대차와 <br />직분을 넘어, <br /><br />지혜롭지만 외로운 '노인, 할란' 의 고민을 나눈 <br />친구였지요.<br /><br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구토를 하는 증세를 지닌 <br />마르타는, <br /><br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마치 추리극의 <br />정석처럼, 용의자의 일원이자 조수가 됩니다.<br /><br />누군가가 매일 주사하는 약과 모르핀 병 라벨을 <br />고의적으로 바꿔놓아도, <br /><br />성실하고 책임있는 간병인 마르타는 숙련된 <br />감각으로 맞는 약물을 고르죠. <br /><br />더욱이 영화 후반, <br /><br />그녀는 미국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위험을 <br />감수하고도 죽어가는 '타인, 프랜' 부터 구하는 <br />도리를 우선합니다. <br /><br />예기치 못한, <br /><br />이 모든 '마르타, 그녀' 의 자발적인 헌신의 <br />선택은 상대가 악랄하게 놓은 덫의 의표를 <br />통쾌하게 찌르지요. <br /><br />3-1. Knives Out! (String Quartet in G Minor)<br />https://youtu.be/TuImJ7X9LW4<br /><br />3-2. The Dumbest Car Chase of All Time<br />https://youtu.be/I6H996sw3Hs<br /><br />3-3. Blanc's Tale, Pt. I<br />https://youtu.be/BpsY4hj89ug<br /><br />3-4. Knives Out!, Pt. II (The Will)<br />https://youtu.be/STPZLLNNG7s<br /><br />3-5. Foul Play<br />https://youtu.be/xs7Mv62Aj8k<br /><br /><br />- 李 忠 植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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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1.20 12:40
첫댓글 영화 소개 흥미롭습니다. 보러 가야겠습니다.
글을 안읽고 가셔야 되는데 ㅎ
감사합니다~~
저도 영화보러 가야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불편한 진실'의 시대극 < 심판 - In the
fade > 에서 주인공 카티아의 승용차는
원래 '벤츠'였습니다만,
네오 나치의 폭탄 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엔 '현대차(아반테)'로 바뀝니다.
'진실' 을 찾는 추리극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 에서도,
주인공 마르타의 승용차는 '현대기아차'로,
스크린 속을 자못 씽씽 질주하지요.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 예고편
https://youtu.be/oBOhrTbhr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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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1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E'strano! ,
Ah, fors'e lui)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 게오르그 솔티 지휘 로열오페라
https://youtu.be/LdHs3On27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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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 콜롬보 > 스타일의 도서(倒敍)
추리적(Inverted detective) 인,
‘어떻게 잡는가(Howcatchem)’ 의
프레임에 비해,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범인인가
(Whodunit)' 를 추적, 추리케하는
방식의 < 나이브스 아웃 >...
전통적인 추리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뉴트로(Newtro : New + Retro)' 적
바리아시옹이라 할까요.
그렇게 ,
< 나이브스 아웃 > 은 진부한 클리셰
(Cliche)를 피해가는 영리한 레트로
Retro)로 풀어집니다.
영화의 전체적 맥락을 한마디로
짚어내는 명대사...
화면이 94분 50초 지날 즈음,
명탐정 블랑은 혼자말로 되뇌이지요.
"시작부터 이상한 사건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