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와 로댕 2

자연은 유일한 창조자이다 오귀스트 로댕    자연을 비평한다는 것은 성당의 건축을 비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짓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비평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냉담하고 인색한 이 시대의 나쁜 버릇이다. 타락한 인종이 품고 있는 불행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진보의 시대,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학이나 기계학의 시각에서는 그러한 말이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예술의 입장에서는 전혀 틀린 말이다.   과연 과학은 행복을 가져오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기계학은 그야말로 일반의 예지를 저하시킨다. 기계학은 기계를 이용하여 인간의 정신이 맡아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데, 이는 곧 예술에 있어 죽음을 의미한다.   실내장식의 기쁨, 즉 우리가 공예미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를테면 가구 제작자, 용단 직조업자, 금속공예자)의 특기와 덕성은 기계 때문에 파괴되었다. 기계는 균일주의를 앞세워 세계를 압도한다. 옛날에는 직공들이 창작을 했지만 지금은 제조를 한다. 그들은 전에는 미술품을 만드는 기쁨으로 고무되었지만,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싫어 파업을 계획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다.   근대의 건축을 보면 기분이 울적해진다. 그러나 옛날 건축은 아직도 인간의 마음에 감명을 준다. 지방의 고읍에 들렀다가 기차를 놓쳐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그곳에 있는 오래된 성당들을 보러 간다. 성당에는 안온한 분위기가 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고딕 장식은 미묘한 요철凹凸을 드러내어 호의적인 내 눈에 불가사의한 기쁨을 준다. 기둥을 스치며 조용히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부드럽고도 침착한 사색으로 끌어들이는 분위기. 나는 이 조그마한 장소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다가 흐뭇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난다.   그때 만약 기차역에서 다음 기차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면 정말로 답답했을 것이며, 피곤에 지쳐 불만스러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조화가 빚어내는 지혜와 아름다운 건축의 매력에 잠시나마 빠질 수 있어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오직 예술만이 행복을 준다. 내가 여기서 예술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자연에 대한 연구이다. 그리고 해부의 정신을 통해 끊임없이 자연과 친교를 나누는 일이다.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찬탄할 만한 대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은 ‘권태’라는 근대사회의 맹수에게 사로잡히지 않는다. 좀 더 깊이 보고, 좀 더 깊이 느끼는 사람은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의욕, 예술가의 의욕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자연은 궁극적인 유일무이한 창조자이다. 예술가는 우선 자연에 다가가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이 그에게 묵시한 것을 다시 우리들에게 재현해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자신들이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으며, 진실의 겉껍데기만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참다운 이해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이해는 신성한 사닥다리와 같아서 맨꼭대기 단에까지 오른 사람만이 전 세계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는 일정한 의견이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선입관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깜짝 놀라며 어리둥절해 한다. 어찌 되었든 말만 늘어놓아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실질적인 일만이 유익한 것이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은 심미학에 관한 책을 읽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자연에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다.   아아, 우리는 보고 느끼는 일에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근대의 교육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일찍부터 사이비 학자로 만들어버린다.   자기 자신을 억누르게 하여 창조적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상대방에 대해서는 허식을 일삼는 현학자로 만들어버린다.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이 어리석고 무서운 사태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그때는 이미 힘이 빠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신이 낙원의 표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둔 ‘감동의 꽃’은 이미 시들어 있게 되는 것이다.   감동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 깃발을 머리 위에 높이 치켜세우지 못한 채 그것을 땅에 늘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시대는 어쩌면 이다지도 추악한가, 저 여자는 개성이 없다, 저 개는 못생겼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추악한 것은 시대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더 나아가 개도 아니다. 우리들의 눈인 것이다. 제대로 볼 줄을 모르는 눈이 추악한 것이다. 흔히 자신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을 깨닫기만 해도 우리들은 새로운 눈으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 조그만 벌레, 아주 미세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강과 호수와 바다, 수풀, 하늘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하늘은 가장 위대한 풍경이다. 가장 깊고 가장 매력적이고, 그 변화- 그 빛과 색채의 효과는 사람의 눈을 기쁘게 하고, 정신을 각성시키고, 마음을 정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예술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연구하지 않고, 그것을 읽으려 하지 않고, 그것을 느끼지 않고 그저 간단하게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재현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어리석은 짓에만 몰두하는 수인囚人이며 노예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잘못된 판단에 빠졌던 청년시절 초기에는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구출했다. 참다운 연구의 길을 따라 자연으로 접근하는 자유를 되찾았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조각이나 도안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할 수 없다.   나와 같은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훌륭한 나무를 알아볼 것이다. 가을이 와서 커다란 수간樹幹이 잎을 다 떨어뜨리고 벌거벗은 지체肢體를 드러내게 되면 나무는 더욱더 아름다운 한 그루의 거대한 자연이 된다. 하늘을 향해 무한의 형태를 펼치고 있는 가지의 구조를 보고 탄성을 지른다. 흡사 저 고딕 성당의 장미창 같은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 나무들을 단순히 한 개의 덩어리로만 보지 않고 그 골격의 무수한 세부들을 스케치한다면, 그 아름다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쁨은 더 한층 완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림이나 조각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제를 찾으라고 권하는 것은 무슨 짓인가? 주제! 주제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같은 물건, 다 같은 사건, 같은 틀에 박힌 자세를 뒤척거려 겨우 만들어내는 빈약한 구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의 상상력은 좁다. 그런데도 눈앞에 전개되어 있는 무진장한 예술의 모티브를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전 생애를 정원 안에 갇혀서 지낸다 하더라도 보고 느끼도록 해주는 주제를 찾아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주제는 어디에나 있다. 자연의 표상 모두가 다 주제이다.   예술가여, 이곳에 서서 이 꽃을 스케치하라.   문학가여, 여기 이 꽃을 글로 묘사하라.   늘 그렇게 하나의 덩어리로서가 아닌, 그 기관의 경탄할 만큼 치밀한 조직, 동물이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다양한 변화의 특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술가인 동시에 식물학자이어야 하며, 그리는 동시에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행위 자체가 아름다워진다! 독특한 사실적 예술을 발달시킨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식물에 관한 지식과 재배를 교육의 기초에 두고 있었다.   우리는 애정과 육체적 쾌락을 같은 부류에 포함시켜두고 있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들을 존속시키기 위해 그 두 가지를 하나의 본능 속에 결합시켜두고 있기 떄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 본능이 마치 넘쳐흐르는 강과 같아서 모든 것을 다 휩쓸면서 흘러간다. 쾌락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며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나의 경우, 하늘을 무대 삼아 웅장한 건축을 하는 저 구름을 보며 쾌락을 취하기도 한다. 또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는 모성에서 취하기도 한다. 그것은 성스러운 모습이며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복음서를 쓴 시인들이 그 쾌락을 신격화했던 것이 바로 성모상인 것이다.   나는 또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평화와 휴식 그리고 건강을 가져다주는 이 대자연, 그 너른 공간의 분위기에서도 쾌락을 취하기도 한다. 자연이 제공하는 풍경에 있어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는 곧 건축에 있어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기와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공간의 깊이를 실감하는 사람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인간의 정신을 지향하는 바로 그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깊이의 특질이라 할 수 있다.   성당 주위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곳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신비주의에서 오는 것이며, 신을 우러러보는 정신적 희열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사실은 그 옛날 건축가가 품고 있던 ‘커다란 면’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서 온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면의 정신적 작용은 가장 무지한 관람자에게도 여과 없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무시하고 새로운 어떤 것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새처럼 날개를 갖고 싶어 하며 누구나 빨리 움직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공간을 날아다니는 쾌락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인간의 영혼은 이미 빠른 속도의 비상을 즐기고 있다. 영혼에 날개가 돋아 있기 때문에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이라면 다 갈 수 있다. 하늘, 바다, 깊은 숲속 등 그 어느 곳에라도 말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하계下界의 모든 불행은 이해의 부족, 인식의 부족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은 한정된 자신들의 지식을 좁은 계통으로 분류한다. 마치 사무실에서 카드를 분류하는 것처럼. 그리고는 그렇게 분류된 빈약한 방식과 습관을 열광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류는 우리들에게 유기적인 상호 관계가 없는 사물만을 가르치며 우리는 그것을 분산된 상태대로 받아들인다. 간혹 그러한 사실들을 하나로 모으려 시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끈질기게 연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뭔가 답답한 면이 있다 해도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다운 인식을 지닌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것처럼 답답한 경우는 없다.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것은 좋은 도안을 만드는 비결이다. 사물이 서로 접근하고, 결합하고, 빛을 교환하고, 상호해명하는 일, 그것이 곧 생명이다. 삼라만상은 경탄할 만큼의 아름다움을, 마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혹은 갑라처럼 몸에 두르고 있다.   신은 대칭적 균형이라는 대법칙을 만들어냈다. 대칭이라는 의미에서 선과 악은 형제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근시안적인 우리들은 기쁨을 준다고 믿는 선만을 바라고, 우리가 보기에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는 악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악이 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선이 악으로 보이는 예도 없지 않다. 그러한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은 당초에 적절한 고찰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묘를 할 때 백과 흑이 필요한 것처럼 인생에서도 그 심미적인 의미에서 선과 악의 대칭을 필요로 한다. 슬픔도 마구 내버릴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이 지상에서 생존하는 한 슬픔도 역시 찬란하게 빛나는 온갖 기쁨과 함께 우리 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가령 이 세상에 ‘슬픔’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지극히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을 자연의 대용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자신을 변형해서 바로잡는 버릇이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호랑이는 발톱과 송곳니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교묘하게 사용한다. 인간은 경우에 따라 동물보다 하등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지혜에 의지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모든 사물을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 두며 일부러 변형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다. 개는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할 따름이지 주인을 비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이를테면 부모는 딸이 지니고 있는 천성보다는 자신들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여자다운 태도’를 가르치려고만 한다. 딸이 지니고 있는 천성의 아름다움 같은 것은 부모가 만든 계획표 속에는 들어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소녀 자신은 자연스럽게 성장하여 천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것이다. 천성은 누구의 간섭과 상관없이 저절로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천성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은 눈먼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자기의 이상만을 내세우는 예술가는 바로 그러한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품고 있는 이상은 허위이다. 그는 이상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앞에 높인 모델을 정정한다. 수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 조절하고 있는 오묘한 하나의 유기체에 손을 대어 이상적인 변형을 일으키고 바로잡으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존을 파괴하고 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경우 그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자이크를 조립하고 있는 것이다. ‘모델’에는 어떤 식의 오류(정정이 필요한 오류)도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이른바 ‘오류’라고 부르는 것을 정정하는 경우,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자연이 제공하는 것에 인위적인 어떤 것을 덧붙이는 것이며 그로 인해 오히려 그 균형은 깨지고 만다.   사람이 정정해버린 부분도 역시 전체의 조화에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칙이다. 모든 것이 다 천성에 따라 원만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전능의 법칙은 항상 대칭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이치를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사상이 상당한 힘을 획득하게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상이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될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도 커다란 전체의 한 부분, 혹은 통일된 복잡한 힘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의 일부가 되지 못한 어느 한 사람의 이상이라는 것은 그저 빈약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즉, 하나의 전체와 경쟁하는, 거기에서 밀려 떨어져 나온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우리가 반드시 복종해야 할 오직 하나뿐인 안내자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진실함을 준다. 자연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진실한 형체를 주고 우리가 그것을 성실하게 묘사하기만 하면 그 형체를 통일하고 표현하는 방법까지도 지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실과 양심의 예술가의 작업에 있어 그 사상의 진정한 토대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보통 그 표현 수단이 어느 정도 교묘해지면, 숙련으로 양심을 대신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숙련이 군림하게 되면서부터는 예술의 파산이 오게 된다. 그것은 조직화된 허위라 할 수 있다. 성실이 비록 한 가지 또는 그 외의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할지라도 영원한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아무런 과오가 없는 것처럼 자신하는 교묘함은 오히려 과오투성이를 드러내는 일이 되고 만다.    원시인이 원근법을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적인 성실을 그것에 바쳤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세밀화를 보라. 눈으로 본 대로 묘사한 풀과 나무 그리고 동물의 형체 혹은 인물의 자세에 대한, 이 채색가의 경탄할 만큼이나 경건한 마음! 얼마나 열심히 그린 것일까. 애정을 쏟아서 그렸다는 것이 여실하게 나타나 있다!   그 그림을 그렸던 원시인이 원근법을 제대로 몰랐다고 해서 이 작품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프랑스 초기의 위대한 작가나 로망식 건축가와 조각가! 그들의 양식을 야만이라고 악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감탄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자연이 스스로 제작한 삼라만상에 대한 신성한 외경의 마음이 흐르고 있다. 그 사람들은 생명의 요소가 되고, 그 신비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이며, 그 유력한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표현하려는 의욕이 필요하다. 조각 예술은 양심과 정확성과 의지로써 성립된다. 가령 나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수행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 그 의미를 해명시켜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자연은 나에게 있어 항상 새로운 책과 같다. 나는 그 책을 겨우 몇 페이지 간신히 읽은 정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러한 자각으로 자연을 대하고 탐구를 계속한다. 예술에 있어 이미 이해한 것, 터득한 것만을 인정하게 되면 무능해지기 쉽다. 자연은 항상 미지의 힘으로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분명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과오’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느릿느릿하게 획득한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업을 통해 행복을 누렸던 시간도 짧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느 시기가 되면 나는 자연 속에 영주하며 아무런 회한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