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슬픈약속 나의 무대에서 늘 새로 태어나는 사람! 그는 나의 삶 속에 뛰어 들어와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다. 신라의 화랑처럼 마음과 몸을 단련시키며 전공과목인 사격 외에도 스포츠맨으로 많은 것을 성취하는 멋진 청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사랑의 종소리가 울리고 청소년들이 귀가할 밤 10시가 되면, 매달 한 번씩 서울에서 내려오는 그를 만나기 위해 웬종일 설레였고 일일 여삼추 같은 시간을 견디고, 사차원의 시간속으로 달려 가던 나~ 가장 먼저 출찰구로 빠져나오는 그를 발견하는 순간 ,또 하나의 전설이 잉태되고, 푸른파카를 입은 싱그러운 그가 빙긋이 웃으며 내 손을 잡는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언제나처럼 그의 삼총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들러리들은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신혼여행 갈 때도 따라 붙을 배짱파들이 비씩 비씩 웃으며 내게 인사를 한다. 뻐드렁니에 와이셔츠구멍 같은 반쪽짜리 눈을 가진 키다리 석이와 동남아 계통형 땅딸보 진, 그들은 웃음폭탄 제조공장이라 할 만큼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컨셉으로 자신들의 외모를 무마시키고 있는 모태 솔로들이었다. 삼총사 중에 유난히 덧보이는 그의 핸섬한 외모는그들로 인해 더욱 빛나고 연세 드신 분들이 늘 입을 다신다. 잘생겼다 인물 좋다! 하긴 내가 봐도 약간 키가 작은 것 외에는 분명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들러 붙어서 단둘만의 시간을 방해했지만 넷이 만나면 그저 즐겁고 신이 났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그들 옆에서 졸다가 나는 그대로 잠들어 버리곤 했었다. 못 말리는 삼총사들은 지금도 아마 찢어지지 않고 여전히 관계를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함께 하자던 그들과의 약속은 슬픈 약속이 되었고, 그들 중 한 사람 뻐드렁니 석이를 지난날 서울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찌들게도 가난했던 백수는 서울에 올라와 사업가로 성공을 했고 이빨도 교정하고 여윈 몸에 살이 붙어서 몰라 볼 만큼 달라졌고 여유로움이 보였다. 방학이 오면 나의 작은 연인은 안동 관내의 시골집으로 내려 가고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친구 집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마을친구들과 모여서 날 새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월요일 새벽차를 타고 안동으로 가곤 했다. 언제가부터 마을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들은 당연히 그 마을로 시집 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또래들과도 지인으로 지내게 되었다.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는 시점에서도 틈만 나면 함께 있어야 했던 작은 연인들, 노적가리 속에서 쭈그리고 앉은 채로 밤을 새우다가 흡혈귀 같은 모기떼에 온몸을 뜯겨 마마를 앓는 사람처럼 출근을 하기도 하고 길가의 작은 다리 밑에서 밤을 새우거나 담배 굽는 황초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떨어지면 불안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그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미래를 약속해 준 적은 없었다. 언젠가는 그를 보내야 했고 그 다짐은 가슴을 활키는 참혹한 아픔 , 나 혼자만의 슬픈 약속이었다. 새벽 진흙 투성이 보석은 스스로 보석인줄 몰랐대요. 활화산 처럼 타오르는 야망을 감추고 낭창하니 눈으로만 말을 하는 수줍은 소녀였대요. 그녀의 존재는 천하고, 밉살스럽고,우유부단하고 가족들의 한숨거리였으나 드넓은 평야가 보이지 않아 비루먹은채 살아가는 천리마 였대요. 5 군입대 여고시절부터 26살까지 7년간 함께해 온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긴 시간들을 함축시켜 글을 만들면서 서러움에 복받쳐 울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서러움을 왜 다시 끄집어 내는지 때로는 미친 짓거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나날들, 마디마디 보석같은 추억들을 어찌 소멸시킬 수 있는가? 채우지 못했던 허기진 사랑과 욕망을 갈망했던 숯한 시간들을 글로 쓰자니 말랐던 눈물이 다시 흐른다. 대학교 입학 이후로 졸업하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나를 만나기 위해서 달려 왔으나 나는 한 번도 그의 힘든 여정을 염두에 둔적이 없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나를 만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을텐데, 그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한 번도 용돈을 준 적이 없었고 , 데이트 비용조차 쓸 줄을 몰랐던 나는 바보 천치가 아니었던가? 그는 매월 나를 만나러 오는 것도 모자라 한 달에 두 번씩 내려와 깜짝 이벤트로 선물공세를 하기도 했다. 하필 향수를 선물해야 했을까? 그 향수를 온 몸에 뒤집어 쓰고 웬종일 꽃이었던 그사람 ! 떠난 후 마지막 한방울 없어질 때 까지 그의 체취는 갈기갈기 찢기운 모란 꽃잎처럼 서러운 향기로 남았다.. 우린 이미 성인이 되었고 영원히 가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졸업시즌이 닥아 오자 늘 혼자 떠났던 그 열차에 함께 오른 연인들, 2박 3일이라는 영원히 잊지 못 할 또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서울에는 폭풍우가 몰아쳐 누런 황토물이 아스팔트에 범람했고 우리가 타고 가던 택시가 물에 잠겨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을 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택시를 떠밀면서 신이 났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찻집에서 그를 기다릴 때, 그 짧은 시간도 못 참아 초조하고 서러웠는데.... 다음날 태능 선수촌에서 권총을 들고 사격하는 근사한 모습을 보았다. 명중 할 때 마다 환호를 보내며 푸른하늘 같은 그에게 또 한번 매료 되었다. 같은 과 친구들에게 여친으로 소개되고 이쁘다는 친구들의 말에 한껏 우쭐했던 나의 연인! 지금도 꿈에 나타나는 작약도~ 연안부두에 폭우가 몰아쳐 계획이 틀어지자 아쉽게도 가지 못한 작약도의 바다속 풍경이 늘 꿈속에 연재되었다. 산호와 해초들이 넘실거리고 하얀 조개들이 널브러진 바다속에 그와 내가 있었다. 늘 같은 꿈 , 작약도는 또 하나의 아픔이었다. 7년간의 그 시간 들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하랴 내 기억의 창고에는 낱낱이 기록되어 있지만 한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꿈결 같은 우리들의 4차원의 세계, 훗날 그의 졸업식 날 또 한 번 서울에 갔었다. 졸업식장에서 만난 그의 부모님 앞에서 모든 것이 미숙하기만 했던 나는 가벼운 목례만으로 인사를 대신했고 어쨌든 그날 며느리감으로 퇴자를 맞았다. 게다가 나는 늘 입버릇처름 그를 세뇌시켰다. 우리의 관계는 군입대 하는 날이 마지막이라고, 그럴 때마다 가슴 아파하는 그를 보면서도 나는 왜 그렇게 담담했을까? 돌이켜보면 그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그를 보낸 것이다. 수없는 나날동안 세뇌시켜 너무나 쉽게 떠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선 왜 그렇게도 슬픈 나날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왔던가? 졸업식이 끝나자 군입대 문제로 그의 표정은 어두어지고 마치 폭풍의 눈속에 갇힌듯 암담한 시간들이 우리들을 엄습했다. 우리는 다시 여행을 계획했고 경주로 갔었다. 경주를 향해서 달리는 기차 안에서 꼭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 그의 어깨에 기대어 행복한 순간을 음미하며 영원히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여행은 우리들에게 신혼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이되었다. 그가 군입대 하기 전날, 실성한 사람처럼 처럼 넋을 잃고 전화를 기다렸지만 목소리를 듣지 못한채 비통한 밤을 보냈다. 뒤늦게 안동초등 운동장으로 달려갔지만 텅빈 운동장에 그의 친구들 석이와 진이만 남아 있었다. 회사에 돌아와 덤덤한듯 하루종일 근무를 했지만 어느 순간엔가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걷잡을수 없는 울음은 주위 사람들의 이목도 아랑곳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숨막히듯 조여오는 그리움, 선명해지는 그의 웃는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느날 열차를 타고 무작정 찾아 간 곳이 그의 친구 석이네 집이었다. 시골집에서 군입대 날을 기다리는 그를 만났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주소조차 묻지 못했고 석이역시 주소를 알려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 오는 열차안에서 땅으로 꺼질 듯한 비탄함에 못난 자신을 한탄했었다. 주소 하나 묻지 못하고 돌아 오는 병신, 수경사의 복장을 한 군인만 눈에 띄어도 달려 가더니,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어떻게 꼬였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구겨진 자존심과 허무함속에서 하루 하루가 힘들었을 때, 수도사령부의 제복을 입은 그가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그 오랜 시간을 옭죄이며 슬픔속에 빠뜨려 놓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집 마당에 서 있는 나의 작은연인! 담편 그의 결혼식 초란 08.12.17 00:10 첫댓글 왜 그랬나요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그에게 이별을 바탕에 깔아놓고 사랑을 심으셨나요. 함께 있을땐 온세상을 다주어도 바꿀수 없을 만큼 핑크빛 연정으로 물들여놓고 어이해서 군입대 동시 아픔을 참고 고통을 샀는지......... 참을수 없을만큼 보고픔에 흘린눈물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눈물로 얼룩져 "꼭꼭 쌓아주셨나요. 너무 바보같아 정말 바보같아요 제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 수도사령부의 근사한 제복을 입고 나타난 그사람 다음이야기를 기대할께요 고운밤 되세요 새벽님 훈석 08.12.17 00:48 그토록이나 사랑하면서 이별을 왜 미리 예견하고 선포 했을까요 가슴아픈 작은 연인4 이야기에 안타까운 마음 내려놓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은하 김원금 08.12.17 09:10 너무 가슴아파 울것 같아서 다음편은 읽지 못할것 같네요..... 세영(歲煐) 08.12.17 09:13 조심스레 묻고 싶습니다, 혹시 이별을 바탕에 두고 만나신건 서로의 가정환경 때문이었나요? 저도 그런적이 있었거던요, 예전에 너무 잘사는 집 아들을 만나니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 .중학교 교편을 잡으시던 아버지 슬하에서 여섯남매가 북작대며 살았기에 가난하진 않아도 그리 풍부하진 않았던 우리집에 비해 너무 부자인 남자는 사실 미리서부터 안된다고 내 스스로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는 자신을 느꼈었거던요. 그런게 아니라면 새벽님과 그분이 못이루어질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서 말입니다, 에휴~~ 안타깝고...뭐라 표현 할수가 없네요. 답답도 하고~~~!! 세영(歲煐) 08.12.17 09:15 그도 저도 아니면, 혹시 저번에 글에 쓰신 장애있는 동생 때문이거나.. 아버님의 작은 살림?,,아~너무 궁금해요. 새벽님의 사랑이 무조건 이루어져야 하는데, 결국 해피엔딩이 아니라는걸 미리 알고 보려니 더 더욱 아픕니다 ,,나..어떡해~으앙~~~~~!! 蕙亭 08.12.17 17:00 아... 그랬구나..이유가 있는 사랑..가슴으로 묻어야 만 했던 슬픈 연인의 아름다운 글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 오네요..살아가면서 진정한 연인..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귀한 것 같어요^^ 귀한 사랑 잠시나마 기대여 함께 해 봅니다.. 가슴에 담겨진 고운 사랑이 어찌 몇줄의 글로서 토해 낼수 있겠어요 만은.. 이래라도 가슴을 토닥일 수 있으니 그대는 행복한 사람 락운 08.12.19 21:18 고교시절부터 26살까지? 어쩜 기간도 비슷한지... 군 입대해서야 찾아 갔던 나, 그분도 저와 같네요. 괘씸한 분들! 군대서 얼마나 보고싶고 고달플 때마다 그리던 그대라는 존재인데 .. 어쩌면 .매정한 데에 대한 숙명의 앙가픔이 아니었을까?? 淸夏김철기 08.12.17 18:24 맺지못할 사랑이라면 만나지 말았을것을이라는 노랫가사도 있습니다, 소싯적 꿈 많던 아름다운 사랑, 어찌보면 환상이었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꿈틀대는 추억이 있다는것은 행복입니다, 남 화가님의 솔직 담백한 글에 탐복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 챙기시고 즐겁고 행복 만땅하세요 화야답글: 자신의 삶에, 방관한 죄를 물었더니 맑고 순수한 열정 뿐인 그녀에게 , 사랑밖에 모르는 그녀에게, 율법의 올무 씌우고, 열등감에 가두니 외진 곳에서 혼자 삭히고 오는이 마다 떠나 보내야 했대요. 6 그의 결혼식 그해 봄날 수도사령부의 멋진 제복을 입고, 우리 집까지 찾아와 용돈까지 주고 갔던 나의 연인이 낯선 여자의 법적인 남편이 되려 한다. 제대하기를 기다리며 장밋빛 인생을 꿈꾸었는데, 사랑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했던 지나친 욕심으로 등 떠밀어가라 하고선 어쩌란 말인가? 체육교사가 되어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평범한 그의 꿈이 나의 이상과는 일치 되지 않아서 일까? 입버릇처럼, 이쁘고 키도 큰 맏며느리감으로 신부를 찾으라고 권유 했었던 나, 막상 그의 약혼소식에 처절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내 것이었던 나의 연인! 그런데 7년이나 늦게 나타난 여자가 가로채려 함에도, 어처구니 없이 침묵 할 수밖에 없었던 바보 천치! 내 몸속 어디에 그토록 많은 물웅덩이가 있었던가! 봇물처럼 터진 눈물 멈출 줄 모르더니 급기야 병마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안면마비! 입이 비뚤어졌다 왼쪽 눈도 감기지 않았다. 12월 어느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지의 한 여인이 나의 연인과 팔짱을 끼고 웨딩마치를 올리는 날, 그자리에는 평생을 함께 하자던 삼총사들, 우리들의 미래를 지켜보던 숱한 친구들이 축하객이 되었는데, 7년을 연인으로 군림했던 나는 멀리에서 지켜보는 이방인이었다. 그 저주 스러운 날, 나는 공교롭게도 담뇨에 둘러 싸인채 어느 골짝 마을로 가고 있었다. 두달 이상 마비된 얼굴 근육은 돌아오지 않았고 의성의 용하다는 침술원을 찾아서 한숨 쉬는 어머니와 함께 가고 있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진눈개비가 날리고 포대기 둘둘 말고 달구지에 실려가던 그 상황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의 결혼식은 처절한 아픔이었다. 두달간의 피나는 노력에 병마를 이기고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피폐해진 삶속에 잠시 접어 두었던 그리움이 스믈스믈 고개 치밀고 제대도 하기 전에 예고도 없이 떠난 그였지만 꼭 한번 만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친구를 졸라서 휴가 나온 그를 기어이 만나게 되었지만 나만을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존재 한다던 그의 마음속에 더이상 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그토록 비열하고 우유부단한 철부지에게 한번 쏘아 붙이지도 못하고 소주병에 빨대를 꽂아 몽땅 마시고 어두운 골방에서 밤새 울던 나는, 스믈 여섯살의 나약한 여인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져 고통의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던 삶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조금씩 나아질 때, 늦게나마 결혼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후로 착한 천사의 이미지로 그의 마을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인식 되어 졌지만 정작 그의 그림자 속에서 오랜 세월 벗어 나지 못하고 스스로 채찍질하고, 학대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난 날 그 시간은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차마 끝낼 수 없었던 사랑의 허상 , 그리움! 뒤죽박죽 엉키어 도무지 풀수 없는 실타래에 묶여 발버둥치던, 순하디 순한 그 나이 때는 삶의 방식도 해결책도 알 수 없었고 , 어디에든 정착 할 수도 없는 시기였다. 독신으로 살고자 했었기에 잊혀질거라 생각했었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여전히 꿈에 나타나 숨통을 죄이며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삼총사 석이에게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수시로 졸랐던 나는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 없었다. 그 친구는 잘살고 있으니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의 행복을 빌어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식상하고 터무니 없는 말로 나를 달랬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나에게는 더 없이 잔인한 말이었다. 나의 정원에서 수액을 먹고 자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더 아름다운 꽃으로 날아가 버리자, 나는 그날 이후로 스스로 만든 정신병동에 고립시킨 후 단단한 쇠문으로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심한 공포증과 신경쇠약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눈을 감고 잠들 수가 없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을 하는 일도 허다했다. 햇병아리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시작 되었던 우리들의 사랑은 7년 후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더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고 다시 만난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영겁으로 부터 시작 된 인연의 붉은실을 잔인하게 자르고, 저승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 사람은 첫 딸을 낳고 또 꿈속에 나타나 환하게 웃고 있는데, 고통은 내 몫이었다. 그가 떠난 세월의 끝은 그리 순탄하지가 않았다. 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함께 했던 7년간의 몇배나 긴시간을 눈물로 보내야했다. 그리고 내 손목에 흉터자욱이 희미해 질 때까지 그는 나에게 서러운 존재로 남아 있었다. 후일 알게 되었다. 그와 나에게는 전생의 업이 있었고 만남과 이별은 운명이라는 것을 ᆢ 누군가가 나를 일컬어 너는 잡초처럼 누웠다가 들꽃처럼 일어나는 이미지라고~ 그래 나는 다시 들꽃처럼 일어나기 시작했고 안동을 떠나 대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늦었지만 미술 입시 학원에 등록하고 예술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한번 속시원하게 울어 버렸다. 푸른물이 뚝뚝 떨어 질듯한 그의 싱그러운 향기가 여전히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이 울음이 삐약이들의 7년간의 사랑, 긴여운의 실오라기를 잘라 버리는 마지막 눈물이기를 바라며~ 화야의 젊은날의 사랑이야기 마침. 이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책임져야 할 족쇄를 풀고 고뇌속으로 가야 했던 날, 또 다른 인연을 만나야 할 업보는 인간이 관여 할 수 없는 하늘의 영역, 유효기간은 7년 이었다. 떠나던 자는 그냥 가지 않았다. 내가 준 상처의 수백배를 활키고 무심히 사라져 갔다. 82년 자화상 세영(歲煐) 08.12.18 09:05 첫댓글 장하세요~~그리고 힘드셨겠어요^^* 어찌 그 아픔을 글로 표현 하리오만은, 그래도 이렇게 되돌려 회상의 언덕을 다시 오를수 있다는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요~아마 그분도 다른 여인의 품에서 새벽님을 무척이나 그리워 했으리라 봅니다, 사람의 사랑이 그리 쉽게 옮겨 다니는건 아니니까요, 한편의 드라마같은 사랑이야기 ,마지막 편에선 참았던 울음이 결국 터져 나옵니다, 초란 08.12.18 15:20 뼈속깊이 길들여졌고 늘 수호신였던 그사람의 결혼소식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지요, 달구지에 실려 안면마비로 고생을 치르고 온갖 정신까지 피페해진 그마음, 저도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너무도 잘압니다. 눈물이 흘러내려 나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네요. 이제 속 후련히 울고 아픔만큼 성숙한 예술인으로 멋진 삶을 사시니 성공하신겁니다. 새벽님의 글을 보면서 참 많은것을 얻고 많이 울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문학의 길로 공유할수 있음을 새벽님께 감사합니다. 고운 목요일 되세요. 훈석 08.12.18 17:56 나의 정원의 수액을 먹고 자란 애벌래가 나비가 되어 더 큰 꽃을 향해 날라갈때 그 때의 허망함 말 할수 없었겠지요 7년의 짧은 사랑이 이글을 쓰는순간 까지 울게 할줄이야 가슴아픈 작은 연인들5 아픈가슴 내려놓고 갑니다 蕙亭 08.12.18 18:11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하다.. 무어라 말을 건내주고 싶은 데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고 출판일에 잠시 보았던 고운 모습만... 좀더 오래 얘길 나눠 볼걸.. 작은 후회가 왠지 모르게 듭니다^^ 그로 인해 텃밭을 알게 되었을지도..고운 마음을 소유한 그대는 아름다운 사랑후에 맺은 향기로운 꽃 봉우리 입니다 그려^^ 우리 남은 삶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노을로 가자구요 언니..이 글을 마치며 훔친 눈물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파오네.. 힘내자요~^^ 화야 파이팅므흣 락운 08.12.19 21:30 차라리 왜 다른 짝을 맞이 하는지 꾸짖고 찾아와 악다구니 욕이라도 퍼부었더라면, 우리 남자들은 그대의 눈물에 목숨을 걸었을 거예요. 나의 윤옥이도 겨우 커플반지만 되돌려 보내면서 혼자 울었답니다. 이제 와서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새벽님! 더는 울지 마요. 눈물을 이 아름다운 글로 보석을 만들었으니 이제 보석의 아름다움에 취해 아름답게만 살자고요. 그리고 앞으로 50년 더 살다 죽은 후 스님의 사리처럼 그림과 글의 보석을 후세들로 하여금 칭송하게 하자고요. - 새벽의 답글 2008년 어느날 ~ 이별 후 26년째! 삼총사 중 한명인 석이 전화번호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끝자가 "기" 로 끝나는 그이름, 젊은 날의 나의 연인! 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여고시절 장난스럽게 시작된 만남은 우연이 아닌, 전생으로 부터 시작된 인연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잔인했던 이별! 아픔은 희석 되었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경사의 그 멋진 군복을 입고 왜 우리 집에 왔었어? 용돈은 왜 주었냐고?" 물어 보는데 걷잡을 수 없이 또 눈물이 쏟아졌다. "울지마라 이사람아" 그 한마디 듣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눈물은 비수가 되어 너의 양심을 찔렀다. 그렇게 생채기 한번 주고 한을 풀었다. 슬픔은 이제 그대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