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랑 노래사랑 제 116회 10월 15일 낭송시
1. 이복연 낭송 / 가람과 뫼 / 이복연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바람 불면 잔잔한 물결로 말하고 달밤이면 은파를 깔아 가장자리로 밀어내어 애무하고 가물치, 각시붕어, 농어, 돌고기, 미꾸라지, 피라미, 송사리 물고기들의 놀이터
옹달샘 맑은 물, 흙탕물, 썩은 물, 공장폐수까지도 가리지 않고 품어 안아 몸부림치며 걸러내다가 아침이면 가두었던 서러움 뽀얀 안개로 피워낸다 인류생명의 영원한 젖줄이여, 인류문명의 발상기원 가람(江)이여
풀냄새 감도는 오솔길 따라 오르면 거침없이 뻗어 오른 나무에 다람쥐들 뒤좇고 뻐꾸기 울음소리 산비둘기 구구구 장끼가 회를 치고 짝을 부르면 다복솔 밑에 파란 알 품던 까투리 쪼르르 이끼 낀 돌틈 사이 향기로운 웃음소리 들으며 도르륵 도르륵 흘러내리는 물줄기 옆 골짜기 물과 손잡고 가람으로 들어와 다툼 없이 하나로 섞여서 산다
기다림의 끝은 사랑이어야 하는데 평화이고 행복이어야 하는데 깨끗한 가람과 청정한 뫼(山)가 이룩한 대자연을 지켜야 할 사람은 어디 있는가?
오늘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긴 가람은 산 그림자 담아서 바다로 바다로 흘러만 간다.
2. 홍보영 낭송 / 그 눈부심 불기둥 되어 / 허 영자
먼 옛날 히늘이 열리는 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배풀어 펼친 거룩한 홍익인간의 정신 그 지혜를 면면히 이어온 반만년입니다
쑥과 마늘 쓰겁고 매운맛을 이겨낸 힘으로 고난과 고통과 억압과 슬픔의 사슬 이라는 아픔을 견뎌온 이 땅 백성들 입니다
회오리바람 비바람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새 문자를 만들어 등불을 밝히고 시와 노래와 춤 청청한 신명으로 가꾸고 다듬어온 이 나라 입니다
산이여 들이여 강이여 출렁이는 바다여 나무여 풀이여 못된 짐승이여 벌레들이여 그리고 사람들이여 우리들의 살속에는 피속에는 흘러간 역사의 솔바람소리 맑게 베어있거니
이재 즈믄해의 닭 울음소리 새벽을 앞두고 백두와 한라가 두 손을 마주 잡는 잔치에 둥둥 북소리 높이 울리며 흰옷입고 달려갈 배달의 겨레입니다
해와 달 그리고 별빛도' 우리들 소망위에 영롱히 비치거니 그 눈부심 불기둥되어 하늘 중심을 겨누어 활활 타오릅니다
3. 강 님 낭송 /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니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 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4. 임맹진 낭송 / 옛고향 / 김어수
내 자라던 옛 고향에 오늘 다시 찾아드니 살던 오막살이 그도 마저 헐어졌고 어머니 물긷던 샘도 묻혀지고 없구려
아버지 이 돌에서 밥때마다 불렀는데 가신지 그동안에 사십 년이 되단말가 업드려 흐느끼는 이 자식 나도 털이 희었소
봄이면 산채 캐고 가을이면 버섯 줍고 석양에 거적 깔고 통감 사략 읽던 곳이 어데가 어데쯤인지 솔만 우묵하구려
지팡이 던지고서 잔디밭에 앉았으니 어느덧 눈물흘려 옷깃에 적셔지고 낯설은 젊은 사람들 힐끗힐끗 보는걸
고이접어 같이 놀던 그때의 어린 동무 모두 백수 노인 되어 서로 봐도 모르다가 성명을 통하고 나서야 겨우 손을 잡다니.
내 심은 버드나무 아름 넘는 고목인데 뒷산에 진달래는 오늘도 붉어 있고 시냇물 흐르는 속에 어머니 얼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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