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것, 익힌다는 것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논어에 나오는 그 첫 구절. 배우고(學) 때때로(혹은 적절한 때에) 익히면(習) 즐겁지 아니한가?
학습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에서 내가 30대 후반에 레슨을 받으면서 비로소 연주에 대한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 보다 몇 해 전에 나는 기본기 관련된 정보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몇 가지 개념(play and relax, planting(손가락 붙이기) 등등)을 어떤 기타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어느 정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공부해서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슨을 받으면서 난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내 몸으로, 손/손가락으로는 전혀 적용하고 있지 못했고 예전의 습관에 머물러 있었다. 단지 나는 그것을 안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런 연주의 기초개념을 실제로 내 근육에 기억시키고 나중에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그것을 연주에 적용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란 느낌이 왔다. 그래서 바른 정보를 얻고 머리로 이해하는 ‘학’의 과정과 함께 그것을 몸에 체화시키는 ‘습’의 과정이 함께 일어나야 비로소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진다고 믿게 되었다.
선생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본다. 학생은 보통 자기가 뭘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또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도 한다. 학생이 모르고 있는 것이 뭔지 말해줄 수 있는 선생이 좋은 선생의 한 기준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한 때 테니스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테니스를 배우면서 기타 테크닉이론과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했다. 하기야 하늘아래 완전히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아래는 “Playing in the zone” 라는 테니스 관련된 책에 나오는 얘기이다. 아래에 나오는 테니스 테크닉 용어 스트로크, 서브를 기타 용어인 탄현등으로 바꾸면 그대로 기타이론이 되는 듯하다.
(하긴 기타의 탄현도 영어로는 스트로크라고 하니 별로 바꿀 것도 없다.)
“우리가 스토로크나 서브 동작을 몸에 “새긴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 생각보다 더 과학적으로 정확한 말이다. 근육에 정보를 보내는 뇌의 경로는 신경세포 뉴우런들의 배열인 말하자면 “홈(groove)”을 발달시켜 온 것인데 이것을 따라서 뇌로부터의 신호가 근육까지 이동한다. 이것을 “근육기억”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육은 기억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사실 기억능력은 우리의 뇌회로에 있는데, 뇌회로란 뇌의 정보전달경로들 중에서 충분히 많이 사용된 것들을 말하고, 어떤 행동이 습관인 것처럼 느끼게끔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이란 실은 우리의 본능적 마음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근육을 움직여야 할 것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가 샷을 구사할 때 본능적 마음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운동선수이든 공연예술가이든 이들이 최적상태에서 경기를 하거나 공연할 때 자신들의 본능적인 마음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문제는 연습할 때 우리가 근육에,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뇌회로에 어떤 정보를 반복 기억시키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 같다. 잘못된 정보를 기억시키면 잘못된 습관이 되는 것이고, 바람직한 정보를 기억시키면 바른 습관이 생기는 것이니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를 만난 주인공 네오는 모피어스로부터 빨간약과 파란약을 받고 어느 약을 먹을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모피어스는 이렇게 얘기한다. 빨간약은 진실의 세상을 보는 약이고 파란약은 진실이 가려진 가상의 세계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약이라고. 네오는 주저없이 빨간약을 선택한다.
우리가 연주에 필요한 습관, 본능적인 마음을 형성하는 연습때에도 매순간 이런 선택이 주어지는 듯하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근육, 뇌회로에 줘야 한다. 근육,
뇌회로는 판단없이 주는대로 기억하니까.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그것이 빨간약인지 파란약인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있는가, 없다면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일 것이다.
한편,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누가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시키면 자기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이유를 알아야 동기가 생긴다. 이해를 해야 선생이 지시하는 어떤 연습을 할 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그 연습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연습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동기를 갖고 연습할 수 있다고 본다.
첫댓글 다카포님의 기타이야기는 거의 논문 수준인데요. 머리에 쏙쏙, 가슴에 콕 와닿는 말이네요.
진짜 뭘 모르는 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지금도 얼마나 착각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좋은 스승이 필요하지요!^^
모든 행동과 소리는 뇌에서 시작되는거 같아요~~
무의식의 올바른 신경이 습관화 되었을때 올바른 습관의 소리가 나오는거 같아요~~
근데 바르지 않은 자신도 모르는 생각과 신경들이 발달되는게 무서워요~~~
디카포님 연주도 잘하시지만 글솜씨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별 생각없이 올리다 문득 조심스러워 지기도하고 아무튼 좀 그렇습니다. ^^
이제 좀 있으면 2월 모임에서 뵐 수 있겠네요. 설 잘 쇠시고 그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