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고 걷는 길, 문경새재와 괴산 선유동 계곡을 가다,
가을의 초입 구월 첫 주 일요일 문경새재와 괴산의 선유동 계곡을 걷습니다. 길고 길었던 장마와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하며 걷게 될 문견새재는 숲으로 무성한 우리나라 최고의 옛길 영남대로 상에 있는 길입니다. 넓은 신작로 옆으로 난 문경새재의 옛길을 걷고 계곡이 아름다운 선유동 길을 걸으며 세상과 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사대부들이 서울로 가던 길이 세 개가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경주와 영천 안동영주 풍기를 거쳐 죽령 넘어 서울로 가던 길이 열닷새 길이었고, 양산, 삼랑진 밀양 대구 상주 낙동나루를 거쳐 문경새재 넘어 가는 열나흘 길이었다. 마지막이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청주로 해서 가는 길이 열엿새 길이었다. 그러나 벼슬길에 오르거나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았고, 죽령은 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의 새재를 넘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난다
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지도록 노다나 가세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며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수심도 많다
아리 아이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진도 아리랑 속에 나오는 칠천만 우리민족의 노래아리랑 가락을 부르며 넘는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다.(...)
<택리지>지은 이중환은 ‘새재’와 ‘죽령’만을 나라의 큰 고개라 하고 나머지는 작은 고개라 했다. 그것은 고개의 높이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고 교통량이라든가 도로의 중요성까지 감안하여 붙인 명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모두 다 큰 고개임은 사실이다. ‘새재’라는 이름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한 고개라고 하여 그렇게 붙여졌다고도 하고, 억새풀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붙여졌다고도 한다.
하초리를 지나 중초리에 이르고 음식점 밀집거리를 지나면 문경새재 길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서 문경새재 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안태현씨와 동행하여 새재를 오른다.
이곳 문경새재에 산성과 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이 들어선 것은 임진왜란을 치르고도 100년이 더 지난 1708년(숙종 34)이었다. 세 관문 중 제 모습을 비교적 제일 많이 간직하고 있는 주흘관 위 초곡천 건너에 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 나라의 대동맥이었던 하늘재 즉 계립령을 대신하여 문경새재를 개척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새재발굴조사사업’을 실시한 결과에 의하면 이 고갯길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뚫려 있었고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하거나 묵어가기도 했던 객관, 즉 원(院)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자연히 이루어진 좁은 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령 제일 관문은 주흘관. 조령제일관문으로 불리고 있는데, 홍예문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문루가 있으며, 영남제일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그 동쪽에 주흘신사가 있다. 이 사당은 소사小祠로 되어 나라에서 봄. 가을로 향香과 축祝을 내리어 제사를 지냈다. .
문경새재는 나라 안에서도 중요한 천연의 요새임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에 제대로 방어된 적이 없었다. 1589년에 중봉 조헌이 도끼를 옆에 끼고 왜적 방비책으로 영남지방과 문경새재에 경계를 더할 것을 상소했으나 묵살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선산과 상주를 함락시키고 문경으로 진격해왔다. 신립은 충주의 단월역에 군사를 주둔시킨 뒤 충주목사 이종장, 종사관 김여물과 함께 새재를 정찰한 뒤에 작전회의를 열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충주에 있는 남한강가 탄금대 앞에 배수진을 쳤다. 조령의 중요성을 알았던 왜군은 새재를 넘으면서 세 차례나 수색대를 보냈지만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한 명의 조선군도 배치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된 왜군은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어서 왜군은 충주 탄금대(彈琴臺)에 배수진을 친 조선 방어군을 전멸시켰다.
그 때 신립 장군이 새재에서 적병을 막았다면 전란의 양상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유성룡은 당시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임진란에 조정에서 변기(邊璣)를 보내어 조령을 지키게 했는데, 신립(申砬)이 충주에 이르러서 변기를 위하로 불러들여 조령 지키는 일을 버리게 되었다. 적이 조령 길에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 수일간을 접근하지 못하고 배회하면서 여러 번 척후로 자세히 살펴 복병이 없음을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조령을 통과했다. 이제독(명나라의 이여송)이 조령을 살펴보고 탄식하기를, “이 같은 천연의 험지를 적에게 넘기다니, 신총병(申總兵)은 참으로 병법을 모르는 자”라고 하였다. 내가 이듬해인 계사년에 남쪽의 진중을 왕래면서 다시 조령의 형세를 보니, 관문을 설치하고 양변을 따라 복병하면 적을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군읍에 씻은 듯이 사람이 없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조선의 최정예부대를 거느렸던 신립은 문경새재를 넘어 밀고 올라오던 왜장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결국 참패하였고, 천추의 한을 품은 채 남한강으로 투신 자결하고 말았다.
조선시대 후기까지 영남사람들의 길목이었던 새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일제시대인 1925년이었다. 문경읍 각서리에서 해발 548m의 이화령을 넘어 충청북도 괴산군으로 가는 산길에 신작로와 터널을 뚫은 것이다. 곧 바로 역사와 전설의 고개 새재는 버려진 길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에 들어서 퇴락했던 관문들을 새로 복원하면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고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서는 TV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이 방영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고 그 바람에 <새재노래>역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갔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아기 손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 때,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새재 50리 길에 우거졌던 박달나무도, 한국전쟁 전까지 이 일대 주민들이 만들어 팔았다는 방망이도 이제는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중에서
“여기서부터 관평천변을 따라 아홉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외선유동이다.
조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송시열과 이준경 등 이름난 사람들이 즐겨 찾았으며, 그들이 오래도록 대代를 이어 살고자 했던 곳이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선유동 부근이다.
송면리는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 사면四面에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면松面이라 부른다. 이곳 송면리는 조선 선조宣祖 때 붕당이 생길 것을 예언했던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 장차 일어날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자손들의 피난처로 지정하여 살게 했던 곳이다.
어쩌다 승용차만 지나는 작은 길 따라 냇물이 흐르고 냇물 위에 기이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대개 괴산 선유동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30m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고 바위에 선유동문仙遊洞門이라는 글씨가 음각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선유구곡이 펼쳐져 있다. 바위가 깎아지른 듯 하늘에 솟아 있는 바위가 경천벽驚天壁 이고, 옛날 암벽 위에 청학이 살았다는 바위가 학소암鶴巢岩이다. 학소암 위에 있는 바위로 그 생김새가 화로처럼 생겼는데, 옛날 이곳에 살던 신선이 약을 달여 먹었던 곳이라는 곳을 연단로燃丹爐라고 부르며, 와룡臥龍이 물을 머금었다 내품는 듯이 급류를 형성하여 폭포를 이룬 곳을 와룡폭臥龍瀑이라고 부른다. 와룡폭 위로 방석같이 커다란 형상을 지닌 바위를 난가대爛柯臺라고 부르고, 바둑판 같이 생긴 큰 바위를 기국암棋局岩이라고 부른다. 거북같이 생긴 구암龜岩, 두 바위가 나란히 서 있고 뒤에는 큰 바위가 가로 놓여 그 사이에 석굴이 있는 은선암隱仙岩 등이 선유동구곡으로 주위의 수석층암과 노송이 어우러져 세속과는 거리가 먼 이상향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선유구곡 중 난가대와 기국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 명종 때 이곳에 살던 어떤 나무꾼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 나무를 하던 중 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발견하였다. 가까이 가서 구경을 하자 한 노인이 나무꾼에게 말하기를,여기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이니 돌아가시오. 하였다 .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옆에 세워둔 도끼를 찾았는데 도끼자루는 이미 썩어 없어진 뒤였다. 낭패감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낮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구인가 물었더니 그의 5대 후손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곳에 간 날을 헤아려보니 바둑 구경을 하고 보낸 세월이 15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도끼 자루가 썩은 곳을 난가대라고 불렀고 노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을 기국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닌 아름다운 곳들이 유난히 많은데, 바위위에 큰 바위가 얹혀 있어서 손으로 흔들면 잘 흔들리는 바위가 흔들바위다. 큰 소나무 일곱 그루가 정자를 이룬 칠송정터, 바위에서 물이 내려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바위가 울암이라고 불리는 울바위다. 울바위 옆에 있는 바위로 사람의 배처럼 생겨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배바우가 있고, 근처가 모두 석반인데 이곳만 터져서 문처럼 되어 봇물이 들어온다는 문바우등이 이곳 송면리의 선유동을 빛내는 명승지이다.
문처럼 터진 바위에 선유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강물은 수정처럼 맑다.
이곳 선유동에 남아 있는 선유정仙遊亭터는 약 220여 년 전에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던 정모라는 사람이 창건하고 팔선각八仙閣이라고 지었는데 그 뒤에 온 관찰사가 선유정으로 고쳤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신정일 지음<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중에서
언제 가도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길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1.일시: 2011년 9월 4일 (일요일) 오전 7시 서울 양재역 8번 출구 출발
전주 종합경기장 6시 30분 출발
2,어디로 모이나요: 서울 양재역 8번 출구, 전주는 종합경기장
3,참가비 35,000원.
4, 장소: 문경새재와 괴산 선유동 길,
5, 안내 도반; 신정일(문화사학자.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상도>.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의 저자.
6,참가비는 (국민은행 754801-01-479097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로 참가비 입금
7,처음 참가자는 주민번호를 (010. 0000. 0000. 문자) 우리 땅 걷기 전화(010. 9144. 2564)로 알려 주십시오.
참가 신청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로 부터 5일전 까지 취소 시: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합니다.
2, 행사일 4일전부터 2일전까지 :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합니다.
3, 행사일 2일전부터 당일까지 취소 시(미 참가 포함); 환불액 없습니다.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사항:
1. 우리 땅 걷기에서는 단체 여행자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2. 하지만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보시고 꼭 필요할 때에만 연락 주십시오
참가합니다/나정임/010-9665-9033/전주출발
참가합니다. /김형주/010-2753-2319/전주출발
참가합니다/김숙자,이규진/010-5023-4700/서울출발/입금완료
참가신청합니다/김정숙/011-9640/1713/전주출발
참가신청합니다./김인영/010-2648-0252/전주출발
가정사정으로 인하여 참가를 취소합니다
박철성도 함께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참가취소합니다. 죄송합니다
참가합니다./최순자/017-626-3181/전주출발
참가합니다/ 김미성 010-2313-7398/ 서울출발/ 입금완료/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건가요?
일단 대기자이시구요. 취소자가 생길경우 참여 가능하십니다.
점심은 매식합니다~ 자리가 생기면 연락드립니다.
처음으로 참가 하는데 ...제가 너무 늦께 신청을 합니다.(대가자 신청) /황성규:010-6305-4148/서울 출발/ 입금을 해야 하는지요?
일단 입금하지 마시고 연락드릴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참가를 취소합니다/ 김숙자,이규진/ 죄송합니다 ~~
참가하고싶은데 너무 늦은감이... 대기자라도 입금까지 해야하나요?
윤미자, 조명구/010-2517-8313/안성출발
연락드릴게요. 입금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어제 등업되었읍니다 등업기념으로 참가하고 싶은데 가능하면 연락주세요 정명신 010-4202-8101
연락드릴게요.
유숙자 참가합니다.011/683/7934/전주출발/입금완료
참가합니다 010-3670-8563 /전주출발
오희 참가합니다/010-65775259/전주출발/입금완료
죄송합니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참가를 취소합니다/김형주(푸른사과)/
참가신청했습니다/최용철 011 689 9354/서을출발/입금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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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군요, 대기자가 많은가요?
최 은영 010-2315-2353 양재출발 대기자 4번으로 참가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