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한 시집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 별꽃기획시선 1
이금한 저자(글) 별꽃 · 2023년 11월 10일
이금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는 라캉이 이야기했듯 시니피앙에 대한 해독이 우선돼야 한다. 기호의 연속선 상에 놓여있는 시니피앙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 속에 마침내 이금한의 의도를 읽어내게 된다.
문학은 철학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했다. 이금한은 인간 존재의 허무함과 부조리함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철학과 문학의 조우를 시도하고 있다.
이금한의 시가 추상적이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연관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모호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징과 비유와 알레고리의 기호로 점철된 이금한의 시는 흡입력이 강력하다. 심연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이금한 시의 윤곽을 유추하면서 마침내 이금한과 조우하는 순간의 기쁨은 매우 크다.
이번 시집은 불안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과 불확실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순을 폭로하면서 부조리함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시지프스가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천형을 피할 수 없듯, 이금한은 사색을 거듭하면서 인간 실존의 불투명함을 규명해낼 뿐이다.
저자(글) 이금한
1959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울교동초·균명중·우신고·인하대·건국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로펌좋은합동, 엔에스아이앤씨」에 재직 중이다. 2004년 월간 『시사문학』으로 등단하면서 문단 생활을 시작한 시인은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사랑문인협회」 「용인문학회」 회원, 「샘동인회」 동인이다. 시집 『바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2015), 『관덕정 일기_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여행』(2019),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2023) 등을 냈다.
시인의 말
오늘의 날씨를 가늠해 본다
의미가 상통하는 마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눈을 제대로 열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잊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다
봄에서 다시 봄이 되도록
너의 날씨는 불손했다
두려움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비로소 전율이 있었다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
오늘을 닦으면 선명해지는 너의 날씨
너의 날씨는 늘 새로웠다
2023년 가을 금악재에서
이금한
목차
1부 질량 불변의 법칙
장떡
간월도
거미의 고백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
춘분절의 거리
엄마를 잊다
베란다의 꽃
뻐꾸기 둥지에서 떨어진 새
질량 불변의 법칙
깨끗한 구두가 빛나는
묵은 그리움
태풍의 이면
어둠이 사라지는 순간
외달도에서는
순천만 갈대숲
그때의 그 자리인 것이냐
2부 투명 카네이션
푸른 바람이 분다
마음이 붉게 물드는 시간
나비잠
도루묵 연가
조적공의 하루
폭설, 겨울비 혹은 사랑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정표
신기루
투명 카네이션
거실과 안방에 시차가 생겼다
표식
기억하는 순간 기억되었다
너는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3부 내금강 두타연
금악리의 봄
꽃이 아닌 것은 없다
풍등
너를 상기하다
폭설주의보
밤을 먹을수록 어둠은 깊어지고
피부건조증
내금강 두타연
겨울나기
깨끗하게 잊었기 때문이다
팔월의 하늘
장마가 끝나고
파빌리온
과거로 들어가는 사람들
꽃이 만개하는 순간
독산성의 봄
4부 벽을 쌓는 사람들
이별을 약속한 사람들
9단지 미화원
구조조정
파뿌리의 꿈
줄을 맞추다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목공23
벽을 쌓는 사람들
잡부 한 씨
그림자 없이 노을이 진다
길 없음 표지
관계의 복원
너에게 가는 길
우리가 언제 꽃으로 만난
출판사 서평
이금한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상재했다. 이시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5년 《용인문학》에 실린 시 「목공 23」과 「이방인들」을 통해서이다. 당시 그의 시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주 노동자들의 고달픈 노동 현장과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시는 실제 건설 현장을 오가며 그의 시안(詩眼)을 통해 펼쳐진 주옥같은 시편들이다. 이후 첫 시집 『바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과 두 번째 시집 『관덕정 일기』가 출간되었다.
그는 첫 시집에서 자신이 직면한 고통에 솔직하게 대면하고 문학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두 번째 시집에서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을 주요 메시지로 담아냈다.
이번 시집을 통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더 다양해진 그의 시안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불안한 삶, 죽음에 대한 슬픔과 기억, 그것이 만드는 그리움과 희망의 확장은 그의 시가 지닌 큰 장점인 동시에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핵심 요소일 것이다. ‘오늘의 날씨를 가끔해 본다’는 것, ‘너를 닦으면 선명해지는 오늘의 날씨’, 그러기에 ‘너의 날씨는 늘 새로웠’을 것이라는 시인의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