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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글 스크랩 김제 진봉 망해사
줄리아니 추천 0 조회 76 07.09.29 09: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제 진봉 망해사에서,

DSC01327_00[1].JPG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深浦里) 해발 72m의 진봉산 기슭에 자리한 망해사는 671년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고찰이라고도 하고 642년 백제 의자왕 때 부설거사가 세운

절이라는 기록도 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는 642년 백제 의자왕 때 부설거사가 세운 것을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고 이후 조선 선조 때의 이름난 선승 진묵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낙서전을 세웠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비공식적인 이야기가 있다.


망해사가 있는 이 지역은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르고 기름진

김제평야가 생기기 전,

뻘만 그득한 섬이었다는데 부설거사란 사람이 와서

이곳 처녀와 결혼한 후 지금의 망해사가 있는 곳에서 조그만 초막을 짓고

도인처럼 공부하며 살고 있었다.
백제 의자왕 2년 당나라 중도화상이 중국에서 만경강 하류를 질러 한국으로 오던 중

이곳에 들러 바다를 바라보며 100일 기도를 하기 위해 방 두 칸 정도의 조그만 암자를

짓고 망해사((望海寺)라 이름 지었는데 그 후 땅이 무너져 암자가 바다에 잠겨버린 것을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새로 지으면서 사라져버린 망해사의 명맥을 다시 이었다고 한다.

DSC01326.JPG

 


 

望海寺.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

참 근사한 이름이다.

그러나 근사하거나 이름답지 않게 초라한 건물 세 채 뿐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비구니 몇 분이 기거 한다는 낙서전, 그리고 요사채 와 이 절(?)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은 범종각이 전부인 망해사의 황홀한 낙조를 보고 싶었는데

이 절의 역사를 짐작하게 하는 거대한 팽나무만이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객을 맞고 있었다.

40여 년 전 인척 한분이 이 근처에 살고 있어 한번 찾아 와 본 일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번 근처 고속도로를 지나칠 때마다 ,

언젠가는 한번 들러 보리라, 던 다짐은 늘 빗나갔지만

이번에는 오직 절 이름에 반해 이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나의 무모함을 속으로 꾸짖었지만 그러한 기분도 잠시,

천년을 한 결 같이 똬리 틀며 우뚝 솟은 아름드리 팽나무 밑 평평한 돌에 앉은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너른 갯벌로 들러 쌓인 바다로 빨려들어 갔다.
아직 해가 지려면 이른 시각,

내 바로 앞에는 한쪽은 물의 바다요,

다른 쪽은 흙의 바다인 끝을 알 수 없는 갯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겨울이기는 하지만 귀가 시려 울 정도로 살을 에는 춥고 눅눅한 바닷바람이

생채기 난 가슴을 할퀴고 간다.

해풍에 실린 짜디 짠 소금기가 생채기에 닿아서일까?

가슴이 쓰라릴 정도로 아프다.
1500여 년 전의 부설거사나 중도화상, 진묵대사가 바라보았던 바다의 느낌도 이러했을까?

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목무소견무분별)  (이청무성절시비)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로 듣는 바 없으니 시비 또한 사라지네.
分別是非都放下  但看心彿自歸依

(분별시비도방하)  (단간심불자귀의)

분별 시비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 부처 보고 스스로 귀의할지라.  - 부설거사 -


부설 거사가 바라봤을 그 바다를 지금 나도 보고 있다.

물이 들 때는 시끄럽고,

물이 나가고 나면 호수 같기도 한 바다지만,

한 순간도 출렁거림을 멈춘 적이 없는 바다다.

무상(無常)으로 영원한 자연이 거기에 있다.

 

 


- 망해대, 잃은 것과 얻은 것 -


망해사를 보고 야트막한 오솔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슬슬 걷다보면 망해대라는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라고는 하지만 흡사 동네 어귀에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정자 같은 소박한 느낌이 나는 이 3층짜리 시멘트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3층 꼭대기에 오르니 보기와는 달리 확 트인 시야만큼 가슴이 시원해진다.

한눈으로 보면 망망대해요,

또 한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 김제 평야가 아스라히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왜 이 고장의 지명이 만경(萬頃)이고 광활(廣闊)인지를 망해대에 올라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지평선이 보이는 유일한 곳,

김제평야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었다.

비록 황사로 인한 황토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지만

언 땅을 녹이고 파릇파릇한 보리 싹 때문인지 삭막했던 벌판에

점점 초록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3월이 지나면 이 보리는 파릇파릇한 청보리로 자랄 것이고 모내기가 끝나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누런 벼이삭의 물결로 장관을 이룰 것이다.

너른 김제평야와 잇닿은 심포의 갯벌은 물에 잠기는 것만 다를 뿐

물이 빠지면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갯벌이다.

갯벌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철새들이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다.

가끔 가다 왠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지른다,.

이 근처가 도요새의 도래지라 하던데 혹시 저 새가 도요새의 한 종류는 아닐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사업이 완료되면 사라져 없어질 갯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의 이해득실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찬반논리들과

수많은 말의 성찬들...

그 모든 말들이 스스로의 이해를 갈구하되 겉으로는 내가 아닌

대다수를 위한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상념에 잠기는 순간이다.

망해대 아래 양지바른 곳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두개의 산소가 나와 함께

저 너른 갯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돌봐주는 이 없는 듯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소 옆에 또 하나의 산소는

그런대로 묘비도 세워져 있고 잘 가꿔놓은 것을 보니 돌봐주는 이 없는 고총은 아닌듯한데 왠지 낯설다.
기껏 해봤자 몇 십 년 뒤면 모두 저 무덤 속의 주인처럼 될 텐데...

석양을 기다리기 지루하여 잠시잠깐 근처 심포항을 둘러보았다.

DSC01335.JPG

 


- 심포포구, 그래도 갯벌은 살아있다 -



옛 소금막 자리
갈밭 속에
황오리 쉰 울음소리

한번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는
제방 너머
바다에
내가 있다

안개가 내린다.
이제는 아픔도 없이 썩어가는 살
빈 파도소리의 무덤

물길을 잃고 돌아간
능쟁이 말뚝짱뚱이는 나를 알고 있으리.

온몸 메 흙칠 한 붉은 게 한 마리
저를 찾아 바다로 가고 있다

<박영근 / 바다에 내가 있다. 全文>

봄볕의 따스한 해안가의 정경과는 달리 심포 포구는 스산하다.
동진강과 만경강물에 떠내려 온 퇴적층이 마치 삼각주처럼 차츰차츰 쌓여 이루어진 갯벌, 물 빠진 갯벌은 광활하다.

썰물 때는 무려 4km나 물이 빠진다고 하니 김제평야 못지않게 드넓은 규모이다.

한 때 이 심포 포구는 돈을 건져내는 황금포구였다.

부안의 계화도와 함께 전국에서 질 좋은 백합조개를 생산하는 주산지이자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물고기의 산란 처로 뱀장어를 비롯한 각종 물고기들이

풍부하게 잡혀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었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싱싱한 회 맛을 보려는 관광객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횟집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잘 나갔지만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저녁 무렵이어서인지 왠지 설렁한 편이다.

몇몇 횟집 옆 주차장에 직접 캤다는 백합조개와 맛조개, 쭈구미 등을 빨간 고무대야에 넣고 손님에게 파는 아주머니 몇 명만이 보일 뿐이다.

경기도 좋지 않고, 갯벌도 죽어가고….

백합조개를 팔던 아주머니 중 한분은 말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많이 조개를 팔려는 그녀의 열정은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만큼 진실한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그녀에게서 백합조개와 살아있는 쭈꾸미 몇 마리를 산 후 서울까지 가도

이 생물들이 살아있을지를 걱정하니 옆의 아주머니가 그녀 대신 말을 거든다.

"화물로 보내도 끄떡 없이 살아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이 바로 이 백합조개라고..."

백합조개의 생명력만큼 갯벌도 오래 오래 살아있어야 할텐데..

아직까지 심포 포구의 갯벌은 이 검은 비닐봉지에서 생생하게 숨을 쉬는 백합조개의

생명력만큼 굳건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른지...

백합조개 봉지를 트렁크 속에 조심스레 넣어두고 석양으로 차츰 물들어가는 망해사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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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무는 노을, 금빛물길 속에 잃은 나를 다시 찾다 -


태양이 점점 그 빛을 감추고 느지막하게 그 빛을 대지에 뿌릴 무렵,

어느새 석양의 넓이만큼 바닷물로 스르르 채워지고 있었다.

예로부터 참선공부를 하기 위한 조건은 바다와 50리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봐도 이곳 망해사 앞의 갯벌은 수도승들에게

지울 수 없는 번민과 어김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끈적끈적한 삶의 갈망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여전히 불안하다.
삶의 갈망이 더욱 깊어질수록 어김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의 자욱 또한 깊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全文>

아니나 다를까?

이곳 망해사는 다른 수도도량과는 달리 수도를 하더라도 상당히 많이 한 승려들이 와서

마지막 단계의 공부를 하는 곳이란다.

하기야 웬만한 내공을 지니고는 소금기가 배인 해풍 속에 느껴지는

이 치열한 삶의 갈망에 의연하기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절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은 범종각이 만들어진 것도 종소리로

불안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리라.

망해사 팽나무 밑에서 속절없이 서해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해가 점점 빛을 잃어갈수록 갯벌은 어느새 밀려오는 바닷물에 자취를 감추고

고요한 해수면은 석양빛으로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태양은 산산이 제 몸을 부숴 바다를 물들인다.

하늘도 붉고 바다도 붉고 팽나무가지 사이에도,

범종각 지붕 밑에도 어느덧 붉은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금빛을 이룬 바다는 차가운 해풍으로 스산해진 가슴,

소금기로 할퀴어진 생채기 가득한 마음에도 온기를 가득 채워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가슴 속에 담아둔

수많은 말을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마음 속 깊은 번민과 그리움의 멍에를 짊어지고 수많은 언어의 소음에 질려하며

도망치듯 멀리 이곳을 찾아온 불안한 영혼 하나가

정작 석양에 물드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침잠하더니

어느새 잃어버린 나를 조금 조금씩 찾고 있는 순간이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번민이 있는 자,

불끈불끈 일어났던 뜻 모를 노여움과 괴로움으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

망해사에 들러 석양 빛 가득한 서해바다를 바라보자.

금빛 서해바다는 시원하게 대답을 해줄 수 없지만

대신 자신만의 해답을 사유해낼 수 있는 넉넉한 자유로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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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사

                  윤 선도


문을 열면

모두 잃겠네.

主人은 木鐸을 잃고

석가모니는 衆生을 잃고

나(我)는 나를 잃고

바다의 품으로 모두 돌아오네.


一切(일체)는 하나의 空虛로

萬波는 하나의 秋波로

서역 만리 불 가슴 펴고

지는 해도 안겨오네.

하늘은 넓게

바다를 펴고

짐짓 갈매기도 깨우친 大佛의 展開여!



- 蛇足 -

이글은 10여 년 전에 적어 두었던 것이다.

지난 3월 어느 조선 블로거 한분이 윗글 속의 <망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항구도시 군산항을 여행하면서 소개한 군산 소재 은파호수에 놓여진 <물빛다리>를

소개하는 글을 읽고  <물빛다리>라는 이름에 반해 다음날로 은파호수를 찾은 일이 있다.

그날도 짙은 황사가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작지만 예쁜 <물빛다리>를 구경하고 내친김에 <망해사>까지 차를 몰았다.

드넓은 평야와 바다를 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다 잡기장속에 묵어 있던 이글을 기억 해 내고

최근 끄집어내어 수정 보완을 하였고.

사진은 지난 3월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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