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표기 | Filmtheorie(독일어), Analyse de Film(프랑스어), 電影理論(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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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론(電影理論, film theory)이란 영화 전반에 걸쳐 공통된 본질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영역으로, 초기에는 예술적·미학적 관점에서 어떤 이론 적용이 가능한지 탐색하려는 입장이 강했다.1) 이는 영화가 다른 예술형식과 어떤 원리의 차이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담론으로 볼 수 있다.
영화이론은 영화비평과 간혹 혼돈되기도 한다. 비평은 각각의 영화나 영화의 개별적 요소에 관심이 있다. 반면 영화이론은 모든 영화의 근거가 되는 일반적 개념이 중심이 되며, 그동안 과학의 한 분야로서 다루어져 왔다.
예일대 영화·비교문학과 교수인 더들리 앤드루(Dudley Andrew)는 “영화 이론의 목표는 영화의 능력에 대한 도식적인 이해를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앤드루는 영화이론가들이 가졌던 주요 의문 및 연구대상을 크게 네 가지로 유형화하였다.
첫 번째로는 영화소재(raw material)의 실재 존재 여부, 촬영, 시간, 공간의 활용에 대한 분석이나 색채, 음향, 영화관 내부 장치들에 관한 것들이다. 두 번째는 수단과 기법(method and techniques)으로 기술적 발전에 관한 문제부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 등 창조과정상의 모든 대상들이다. 세 번째 지금까지 만들어졌거나 미래 만들어 질 수 있는 영화들의 종류를, 네 번째는 목적과 형태(object and shapes)로 인생의 다양한 모습처럼 현실 생활에서 영화의 목적을 탐구하는 모든 의문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외에도 시각예술(視覺藝術,visual art)과 영화가 다른 점, 영화의 장르, 매체로서의 영화에 대한 미적·심리적 반응들을 연구대상으로 할 수 있다.
위의 여러 가지 연구방법론 중에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영화이론은 크게 형식주의(formalism)와 리얼리즘(realism) 영화이론으로 나누어진다.
영화는 120여 년이라는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진 새로운 매체이면서 문학이나 음악 등 다른 예술 장르의 여러 측면들과 결합되어 있다. 영화는 과학적 기술을 포함하는 종합예술이며 대중예술형식이여서 이론적인 연구 체계 및 결과 축적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론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감상 측면에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창작 입장에서는 표현과 구성이론에 대히여, 또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와 학문에 대해 연구 방향을 모색하였다. 영화는 191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적절한 상영시간과 작품으로서의 체계가 갖추어지면서 자연영화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와 견해 발표가 늘어났다. 1910년대 미국의 시인 린제이(Lindsay)는 ‘예술로서’ 영화를 인지(認知)할 것을 주장하였고,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는 러시아 영화감독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에이젠슈테인(Sergei Mikhailovich Eisenstein)이 주장한 ‘몽타주이론’이 중심이 되었다. 이외에도 무성영화 시대에는 영상의 특징을 화면 내의 풍부한 영상 표현력으로 체계화한 ‘포토제니론’이 등장했다.
1927년 유성영화의 등장 후에는 리얼리즘의 미학이 우세해져 영국의 다큐멘터리, 기록영화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활동한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존재론적 리얼리즘을 강조하면서 영화이론의 논의 초점을 사실주의로 옮겼다. 결국 바쟁은 몽타주의 비평과 함께 누벨바그(Nouvelle Vague)이론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1960년대 현대 영화이론에는 언어학, 기호학, 구조주의 등의 도입 등 다양한 패러다임들이 등장했다. 이로 인해 영화이론의 연구는 더욱 세분화되고 정밀화되었다. 1970년 이후 독일의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상징적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인류학(映像人類學, video anthropology)이라는 독자적인 이론 추구를 시도했다.
영화이론은 영화의 진화과정 중 나타나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에 반응하면서 생성되었으며 또한 영화제작에 영향을 미친 동시대의 현상들을 밀접하게 반영하였다. 시대별 장르의 추이, 기술적 혁신, 새로운 소비양식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고찰하게 만든다. 그런 이유에서 영화이론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더욱 필요하다.
영화이론에 대한 연구영역이나 접근방법에 대해 획일적이고, 뚜렷한 것은 없다. 영화이론은 개별적인 영화의 이론들이 모아져야 실질적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이론에 대한 연구의 주된 관심 분야는 영화의 본질 탐구와 영화가 다른 예술과의 형식적 차이점 등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이론은 영화매체의 광범위한 맥락, 즉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의미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에 대한 연구는 주로 프랑스 등 유럽 이론가들이 주도해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이론적 분석보다는 실용적 비평에 집중되었고, 최근에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영화매체의 이론적 의미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화이론이란 절대 진리가 아니며 단지 지적 기준점(intellectual grid)일 뿐이다. 특정 영화를 미적 기준으로 일반화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어떤 이론도 모든 영화를 절대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이런 연유로 최근 영화이론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이론을 종합적 또는 절충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이론 연구는 통상 세 가지를 대상으로 한다. 예술작품, 예술가, 그리고 관객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예술작품에 대한 비중이 제일 높다. 영화를 예술작품으로 중시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의사전달방법과 전달 시 사용되는 언어체계나 표현형식 등을 탐구해왔다. 따라서 예술작품으로서 영화이론은 영화가 최초로 생기면서부터 사실주의와 형식주의(표현주의)가 중심이 되어왔다. 사실주의의 전통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된 뤼미에르 형제(Auguste et Louis Lumiere)의 〈열차의 도착(Arrivee d'um Train en Gare de la Ciotat)〉이었다. 이 영화는 현실세계의 과장 없이 사실적 묘사가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형식주의의 전통은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의 〈달나라 여행(Le Voage dans la lune)〉이라는 영화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1910년대 이후에는 편집과 몽타주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다른 영화이론의 연구 접근방법은 편집을 최대한 절제하고 화면구성을 통해서 다층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미장센이론과 다양하게 촬영한 장면들의 편집으로 표현한 영상미를 나타내는 몽타주에 관한 이론이다. 이 이론들은 독자적으로 또는 융합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이론은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란 너무나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미국 심리학자 후고 뮌스터베르크(Hugo Münsterberg)는 영화란 ‘촬영된 드라마’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극영화(photoplay)는 시공(時空)과 물질적 형태를 벗어난 “우리의 정신적 경험이 갖는 자유로운 유희(play)로 귀결”된다고 했다. 뮌스터베르크는 1916년에 발행한 그의 저서 『영화의 심리학적 연구(The Photoplay: A Psychological Study)』에서 새로운 예술형식에 대한 통찰력은 바로 영화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에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출신 하버드대학 교수인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 역시 1932년 『예술로서의 영화(Film as Art)』라는 저서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영화란 현실을 새롭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몽타주를 발전시킨 러시아 영화감독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1920년대 무성영화 전성 시기에 영화역사를 이끌어간 대표적인 사조는 몽타주와 표현주의이다. 몽타주(montage)는 프랑스어로 ‘짜맞추다’, ‘마무리하다’, ‘결합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1920년대에 영화에 있어서는 촬영된 필름의 단편을 편집하는 기술용어였다. 몽타주의 중요성을 최초로 강조한 사람은 러시아 이론가 레프 블라디미로비츠 쿨레쇼프(Lev Vladimirovich Kuleshov)다. 그의 제자 프세볼로트 푸도프킨(Vsevolod Pudovkin)은 영화예술의 핵심은 숏들의 병치(juxtaposition)와 조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 기술(Film Technique)』이라는 저서에서 ‘영화는 찍히는 것(shot)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built)이며, 마치 벽돌을 쌓듯이 A+B=AB로 shot의 결합을 통해 제3의 상징적이고 감성적인 의미’를 창출한다고 했다.
에이젠슈테인은 미국에서 번역·출간한 『영화 형식(Film Form)』이란 저서에서 ‘촬영(shot) 그 자체는 단지 ‘몽타주의 한 조각’에 불과하고 이러한 조각들은 ‘충돌’과 ‘갈등’을 통해서 변형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갈등’은 각 프레임의 구성요소들(카메라 각도와 거리, 조명, 카메라 이동)이나 등장인물 자체로부터도 발생하여 변증법적으로 양자의 상호작용으로써 합(合)이 지양된다고 했다. 즉 A+B=AB가 아니라 전혀 다른 C가 된다고 주장했다. 몽타주 이론가들의 기본 입장은 시간적·공간적 단편들을 배치시킴으로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연속성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사실주의이론의 배경은 1930년대 러시아의 스탈린 정부에 의해 주도된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였다. 사실주의이론은 영화예술이 외부의 현실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다큐멘터리 측면이 강조되었다. 카메라는 표현보다는 기록매체로서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또한 사실주의 영화에서는 주제가 최상위에 존재하고 기교는 주제를 보조하는 역할로 보았다.
크라카우어는 ‘영화의 본질은 현실세계의 추가 손실 없이 재현 가능하며 예술가 역할도 조작과 간섭의 최소화가 가능한 사진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크라카우어의 사실주의에 대한 관점은 ‘영화주제는 현실세계의 우연성을 보여주는 열린 형식으로 무한가능성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쟁은 『사진적 영화상의 존재론』에서 영화의 복제적 특성을 고대 이집트의 미아라에서 ‘시간을 방부처리하여 자연 부패 상태로부터 구해내고자’하는 인류의 염원에서 찾았다.
바쟁은 영화에서 현실과 가장 근접하게 재현하는 영화형식을 현실을 잘게 나누기, 몽타주(montage)가 아닌 길게 찍는 롱 테이크(long take)로 보았다. 즉 영화는 사진을 담은 ‘액자’가 아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창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약 10년간 이태리에서 성행한 신사실주의(neorealism) 영화는 외적으로는 미국과 프랑스의 사실주의와 진실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신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딥 포커스(deep focus)와 길게 찍기(long take)라는 심도 깊은 촬영기법을 이용한 조지 오슨 웰즈(George Orson Welles)의 〈시민 케인(Citizen Kane)〉이다. 또한 나치 친위대의 고문장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 로베르토 개스톤 제피로 로셀리니(Roberto Gastone Zeffiro Rossellini) 감독의 〈무방비 도시(Open City)〉가 있다. 바쟁은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이 지향하는 도덕적, 윤리적 열정이 중요하며 “네오리얼리즘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이고 그것의 제작 스타일은 부수적인 것이다”라고 했다.
1902년 멜리에스 감독의 〈달세계 여행(A Trip to the Moon)〉이 형식주의 영화의 출발이 되었다. 이 영화에서 멜리에스는 거의 최초로 연속 편집 스타일을 고안해냈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차이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형식주의는 내용보다 형식을 강조하며 소재를 정형화하거나 왜곡시켜 대상물에 대한 영상이 현실적, 시공적 맥락에서 벗어난다.
미국 영화평론가 제임스 모나코(James Monaco)는 영화 역사에서 표현주의와 형식주의라는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리얼리즘에 반대하는 경향이지만 미학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표현주의(expressinism)는 1918년에서 1925년까지 독일 바이마르 공화기의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사조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후 독일 국민의 자포자기 상태의 암울한 풍조가 영화의 내용으로 그대로 나타났다.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은 영화의 표현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조명, 세팅이 중시되는 미장센, 시점의 극적 처리와 카메라 움직임이 자주 사용되었다.
반면 형식주의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개념으로 좀 더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다. 형식주의 이론가들은 영화를 일정한 패턴(pattern)을 기준으로 내용이나 주제보다 현실세계를 미학적 디자인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 패턴은 미장센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정형화된 대사나 상징적인 음향효과를 통해 청각적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형식주의로는 소비에트 몽타주기법이 주로 언급된다. 에이젠슈테인(이론과 실천의 겸비)과 아른하임(철학과 심리학적 배경 제공), 벨라 발라즈(Bela Balazs)(여러 예술과의 비교)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촬영과정은 진실을 왜곡한다’는 아른하임의 가설처럼 사실주의 영화가 물리적으로 현실세계와 유사하기 때문에 관객은 형식주의보다 사실주의 영화에 더 감동을 받게 된다.
작가주의(auterism)는 영화의 배후에 존재하는 창조적 의식의 주역이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에 주안점을 둔 연구 접근방법으로 형식주의의 변형이기도 하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의 영화평론가들은 그간 중시되던 영화의 예술성에 반기를 들었다. 영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감독)가 추구하는 주제와 스타일의 생성과 발전을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서 비평가 프랑수아 롤랑 트뤼포(François Roland Truffaut)는 최초로 작가주의를 주장하여 영화비평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 후 작가주의 이론은 1960년 등장한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클로드 앙리 쟝 샤브롤(Claude Henri Jean Chabrol) 같은 누벨바그 감독 등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기존 전통을 배제한다. 일반적으로 인물을 사실적이고 비감성적이며 자연스럽게 처리했다. 대표작으로 트뤼포의 〈쥴과 짐(Jules et Jim)〉,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등이 있다.2)
실제 미국과 독일에서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제작에서 탈피하려는 ‘작가주의 영화’ 운동을 일으킨 원동력은 바로 누벨바그 운동이다. 할리우드의 스타 및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뚜렷한 주제를 추구했던 알프레드 요셉 히치콕(Sir Alfred Joseph Hitchcock), 존 포드(John Ford), 빈센트 미넬리(Vincente Minnelli)등이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추앙되었다. 작가주의 이론과 누벨바그 감독들의 성공은 비평가와 대중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를 감독의 예술로 인정하고 유명 배우처럼 감독의 스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주의는 관객 중심의 사회학적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 영화비평의 위상을 문학비평의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특권화하는 등 낭만적 개인주의(스타화)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3)
기호학(記號學, semiology)이라는 용어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로부터 시작되었다. 기호학은 언어적, 비언어적인 모든 유형의 기호 사용 논리를 일반화하는 데 목표를 두는 학문이다. 구조주의(構造主義)와 마찬가지로 의미의 코드화와 탈 코드화에 관심을 가진다.
기호학은 각각의 기호들의 의미와 그 의미들을 통합하여 범주화시키기는 과정이 포함되는 구조주의적인 틀을 지니고 있다. 초기에는 문학작품의 언어학적 접근이 중심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 영화, 연극, 건축, 음악 등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장르에도 도입되었다.
기호학은 언어의 일종이며 기호의 과학이다. 세련된 언어와 개념으로 현대 영화이론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우리는 현실세계에 산재한 기호학 코드의 무수한 체계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예술작품들은 이런 기호의 코드화를 통해 우리에게 일정한 의미를 전달한다. 즉 영화의 생산자인 감독(기호의 암호화)과 관객의 수용(해석과 이해)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의 하나로 기호학의 비중과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기호학의 대표이론가는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인데, 그는 『영화 언어: 영화의 기호학(Film Language: A Semiotics of the Cinema)』에서 코드에는 문화적인 코드와 특수화된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문화적인 코드는 ‘말할 때 동반되는 몸동작 따위’ 같이 일상생활에서나 영화에서 현실세계를 묘사하는 데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몽타주, 카메라 이동, 시각적인 효과 등과 같은 특수화된 코드는 영화에서만 적용 가능한 코드로 사용된다고 하였다.
1910년대 제7예술론(Club des Amis du 7e Art)을 이론적으로 최초로 주장한 이론가는 이탈리아의 리치오니 카뉴도(Richloni Canude)이다. 그는 영화는 기본예술(건축과 음악)과 보완예술(그림, 조각, 시, 무용)을 포함하는 움직임의 조형예술로 제7의 예술이라고 했다.
포토제니론(photogenie)은 프랑스의 루이 델뤼크(Louis Delluc)가 주창한 이론이다. 영화의 영상은 사진 요소인 장치, 조명, 억양, 면 등 네 가지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결합하는 창조성을 바탕으로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델뤼크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발달한 전위영화의 대표적 이론가가 되었다.
1948년에 젊은 영화 작가 알렉산드르 아스트뤼크(Alexandre Astruc)는 카메라 만년필설(camera style)을 제창했다. 카메라를 펜이라고 가정하고 마치 소설가가 펜으로 글을 쓰듯이 영화감독은 카메라를 펜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예술적인 억압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영화 운동으로,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 영화의 한 사조이다. 대표작으로는 당시 사회환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루키노 비스콘티 디 모롱(Luchino Visconti di Modrone) 감독의 〈강박관념(Ossessione)〉이 있다.
• 딥포커스(deep focus): 카메라에 비교적 가까이 있는 물체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초점이 맞도록 촬영하는 기법을 말하는 용어이다. 전심초점(全深焦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길게 찍기(long take): 테이크(take)는 카메라를 한 번 작동시켜 하나의 숏을 촬영하는 것을 뜻하며, 롱 테이크는 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한 숏은 10초 내외인데 비해 1~2분 이상의 숏이 편집 없이 진행되는 것을 롱 테이크라고 한다.
• 누벨바그(nouvelle vague):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의 영화 운동이다.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으로 인물 묘사 및 표현에 감상을 배제하고 사실적, 혁신적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1951년 앙드레 바쟁, 자크 도니올 발크로즈(Jacques Doniol-Valcroze), 로 뒤카(Lo Duca) 등이 창간한 중요한 프랑스 영화 비평지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Eric Rohmer)같은 젊은 비평가들의 비평 작업을 통해 1950년대 중반 작가주의 비평을 발전시켰으며 당대 영화의 경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영화평론가(신문,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한 영화평론)
• 영화비평가(전문 비평지, 학술지에 비평)
• 영화학자(교수, 영화이론 연구가 등)
• 영화기자(방송, 일간지, 전문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