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추억 담아
최명애
봄비가 아침부터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활짝 웃는 봄꽃이 떨어질까 염려하며 커피를 한잔 내린다. 헤이즐넛 향이 지난 베트남 여행의 추억을 부른다.
어른이 되어도 소풍은 설렌다. 여고 친구들이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달랏과. 나트랑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출발하는 날도 우리의 여행을 시샘하듯이 봄비가 내렸다. 5시간의 비행 후 나트랑 깜라인 공항에 도착해서 인천공항을 출발 한 친구들과 만났다.
“아이고 잘 지냈나?”
“서울 사람들은 역시 멋쟁이네.”
오랜만에 만났지만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여기저기 인사하느라 분주하다. 따뜻한 말투와 푸근한 표정들, 삶을 잘 가꾸며 살아온 세월의 흔적에 애정과 공감이 간다. 나이가 적고 주름이 없는 젊음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유란 21기 친구들의 행복하고 화려한 나들이’ 현수막이 공항 로비에 환하게 펼쳐지고 행복한 표정들을 인증사진으로 남겼다.
달랏은 최근에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는 곳이고, 나트랑에서 버스로 3시간 넘게 높고 험난한 산등성이를 구불구불 넘어가야 한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전경은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치와 키 작은 커피나무가 점점이 심겨있고 우리나라의 봄 풍경과 비슷하다. 가톨릭대학교 김종국 교수님이 비닐하우스를 개발, 보급하여 최근에는 딸기나 꽃을 많이 재배하고 있어 소득 수준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무척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가이드가 꼬불꼬불 산길 차멀미를 해소하려고 신나는 트로트를 틀자, 옆 친구가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으로 시작하여 과수원길, 어머님 은혜를 부르던 친구는 ‘엄마 보고 싶다.’면서 울먹인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번 여행에 마음에 품고 동행을 했단다. 나 역시 아픈 엄마를 돌보다 잠시 시간을 내어서 온 터라 울컥했다. 그녀는 위트와 재치가 넘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1인 3 역할을 제대로 하는 멋진 친구였다. 부산에서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그녀는 박사과정을 거쳐 대학에서 겸임교수까지 했고 퇴직 후에도 강의를 맡아 하는 열정적인 친구다. 여행 내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고 타고 난 달란트가 남다르다. 3박 5일 동안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룸메이트가 참 고맙다.
놀이기구 트라우마가 있어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니 룸메이트 친구는 자기만 믿으란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스릴을 즐기는 경험을 다시는 해볼 수 없기에 도전했다. 길이가 아시아에서 제일 길고 40㎞ 속도로 울창한 숲과 산을 통과하여 계곡 아래까지 가는 코스이다. 내려갈 때는 무서워 소리를 지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8자 모양으로 숲을 휘감아 돌 때는 몸도 이리저리 휘청거려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 해도 아찔하다. 계곡 아래까지 내려왔다. 내 가슴은 벌렁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으나 도전에 승리한 성취감은 그 누가 알리. 올라가는 거는 반대로 가만히 앉아서 기계의 힘으로 가면 되는데, 오르막에서는 몸이 뒤로 밀리니 뒤에 친구가 팔이 짧아 손잡이를 못 밀겠다고 도움을 청했다. 순진하게도 둘이 힘을 합쳐 브레이크를 얼마나 꼭 잡고 밀었던지 지금도 어깨가 뻐근하게 아프다.
황당한 일도 생겼다. A 친구는 귀중품이 든 가방을 들고 탔다가 계곡 숲속에 떨어뜨렸단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와서 가방을 들고 가라고 말한 친구에게 와서 “왜 가방을 들고 가라 했나”라고 화를 내며 말하여 둘의 사이가 잠시 어색해졌다. 다행히 직원들이 숲속에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어서 가방 떨어진 위치를 말해주니 신기하게도 찾아 왔다. 감정이 앞서 말을 쉽게 해버리는 바람에 듣는 쪽은 황당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다행히 빠르게 사과를 해서 어색한 분위기도 쉽게 해결되었다. 그녀는 계곡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는 레일바이크 안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불안했을까? 그리고 가방을 못 찾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정글 속을 내려와 폭포와 마주하며 ‘찰칵찰칵’ 사진으로 남기느라 다들 바쁘다. B가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난리다. 옆에 친구 누군가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순간 주변이 술렁거렸다.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 어쩌나. 남은 여행 기간 내내 힘들까 봐 걱정되었다. 버스에 돌아왔다. “야호, 여기에 있어.” B가 소리를 질렀다. 자리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 것이다. 모두 하나같이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똑같은 심정으로 걱정했던 모양이다. 잠시 착각을 한 것이다. 다행이다. 두 건의 에피소드는 다딴라 계곡에 추억으로 남겨 두었다.
SUV 차를 타고 1970m 랑비엔 정상까지 올라가면 달랏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달랏의 지붕이라 불리는 랑비엔 산은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랑과 비엔의 애절한 전설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곳 정상에서 친구들의 댄스 버스킹은 감동 그 자체다. 이렇게 화려하고 행복한 나들이는 처음이다. 이날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 연습했고 단체복까지 맞추어서 왔다. 황혼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가진 친구들이 참 아름답다. 댄스 버스킹이 시작되자 광장에 있던 외국인들도 함께 와서 어울렸다. 지나가던 베트남 아기는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어 인기 폭발이었다. 손자의 재롱을 보는 듯 모두 손뼉을 쳐 주었다. 음악으로도 함께 어울리는 다문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지막은 아리랑으로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을 베트남 하늘에 메아리로 남기고 나니 뿌듯하다. 시끌벅적했던 흥이 가라앉고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맹호부대 군가를 다함께 불렀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그 시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대한민국 장병들에게 연민의 정이 남는다.
3박 5일간의 나들이를 마치고 오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목련꽃이 길가에 줄지어 서서 우리를 반긴다. 떠나기 전부터 설레었던 마음까지도 추억으로 남긴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감을 안타까워하고 점점 더 추억을 더듬는다. 또 언젠가는 알알이 맺은 추억을 주워 담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첫댓글 기행수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여고 동기들과의 예쁜 추억이 하나 더 보태어졌네요.
다음 주 22일부터 달랏.나트랑을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