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쯤은 되는것 같다. 기상청 예보에 강풍 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거리또한 만만치 않다. 힘든 산행이 될것같다.
오늘 산행에서는 자병산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 척추같은 백두대간이 상처를입고 병이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아왔던 백두대간의 훼손된 모습들(추풍령의 금산, 선자령 주변의 목장, 매봉산주변과 광동 이주단지 귀네미 마을의 고냉지 채소밭, 소사고개 주변의 과수원 등등)보다 더 큰 파괴의 모습을 볼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는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많은 생각을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백봉령 이야기는 지난 33회차에서 설명 했을 껄?
이 도로가 자병산에서 석회석 나르는 도로이다.
지리공부좀 할까요?
카르스트지형
카르스트는 유럽 발칸 반도 북서부 슬로베니아에 속한 카르스트 지방의 지명에서 나온 학술용어로, 석회암 분포지에서 용식에 의해 형성된 지형을 가리킨다.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는 임계면 직원리 산1-1 등 11필지에 해당되며, 2004년 4월 9일 천연기념물 440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543,000㎡이다.
한반도의 캄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의 조선노층군의 석회암 지대에는 카르스트지형이 발달한다. 이들 중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서 백두대간 상에 놓여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이곳에는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 중 하나인 돌리네와 폴리에 (돌리네가 커지면 우발레라하고 더 커다란 형태로 나타나면 폴리에라고 한다. 이번에 산행하면서 골짜기가 길지도 않은데 등로 옆으로 갑자기 급하게 골짜기가 형성된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런 지형이 폴리에라 할 수 있겠다.( 심곡생각))가 분포한다. 대부분의 돌리네는 대체로 넓이에 비해서 깊이가 아주 얕은 형태이며, 폭은 수 m를 갖는 작은 규모로부터 수십여 m에 달하는 것까지 발달된다.특히 임계면 가목리 북쪽 능선 주위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돌리네가 있다. 이 지역에 발달한 돌리네를 비롯한 카르스트지대의 영향으로 지하에 스며든 유수나 빗물들은 산계리 지역으로 흘러나와 계곡수 또는 용천수와 같은 샘물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복령일대는 다른 카르스트 지대와 달리 경작지로 이용되기보다는 식생으로 덮혀 있다. 백복령 카르스트 지대는 지질학적 특징이 일정한 면적에 집중적으로 발달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뿐 만 아니라 자연학습장으로서 가치도 높다.
산림청에서 2005년에 발간한 백두대간 백서의 일부를 옮긴다.
자병산아, 미안해
강원도 남부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의 경계에 자병산(872m)이 있다. 향로봉 에서 시작된 백두대간 산줄기가 청옥산(1,404m)과 두타산(1,353m)으로 이어지는 접점 이다. 백리향, 금강애기나리, 솔나리, 꼬리조팝나무 등 희귀식물 군락지와 함께 삵, 고슴 도치, 수달 등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 서식지가 산 전체에 걸쳐 펼쳐진 곳이다. 해발 고도 1천m에 못 미치는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석회석 지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상습적인 안개와 함께 남방식물과 북방식물이 교차하는 현상이 나타나 학술적 보존가치 또한 매우 높은 희귀지형이기도 하다.
자병산에는 그러나 더이상 안개도, 습지도, 울창한 희귀식물 군락지도 사라지고 없다. 대신 허연 석회석 암맥이 그대로 드러난 거대한 노천광산만이 벌거벗은 산자락을 펼치고 있다.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표토까지 걷어낸 뒤 계단식으로 길을 낸 산자락으로는 하 루종일 덤프트럭 수 십 대가 오르내리며 석회석을 실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2005 년 산림청이 만났던 자병산의 실상이다.
기존 등산 지도에 보면 높이가 872m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높이는 770m 정도이다. 앞으로 더 채굴이 되면 100m 정도 더 낮아질꺼라 한다.
자병산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날것같아 고개 푹 숙이고 생계령으로 향한다.
이내 생계령에 도착한다.
지난 대간산행중 덕항산 지각산을 지날때 우측으로 환선굴 주차장을 보면서 그 일대가 석회동굴이 많은 곳이라 했는데 이곳도 서대굴(간판 바로 아래)을 포함하여 바로 아래 남대굴, 산계리의 동대굴 그리고 오늘 지나갈 고병이재에서 내려가면 있는 석회동굴 등 다수의 석회동굴이 분포되어 있다.
잘 찾아보면 더 많이 있을 지도 모른다. ㅎㅎ
오늘 가야할 석병산(石屛山)은 바위병풍을 두른 산이라는 뜻이다. 이 자병산(紫屛山)은 산이 자줏빛 병풍같은 산이라는 뜻일텐데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근데 지금은 이산의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루종일 엄청난 바람이 불고있다. 느껴지시나요?
서대굴 간판을 지나 급한 경사면을 올라오면 오늘 처음으로 전망처에 오른다.(922봉인 듯)
춥고 강한 바람에대한 보상으로 날씨는 맑고 전망이 좋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바꾸던지 카메라를 사던지 해야겠다. 갈수록 사진이 개판이다.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 아래 계속 바위가 부서져 내리고 있다. 일월문과 같이 구멍이 뻥 뚤렸다.(아래 아래 사진) 뭐라고 이름 붙일까. . . .
일 망 무 제 ---!
여기에서 발왕산, 대화실산, 안반데기, 골폭산, 선자령과 황병산, 오대산까지 다 보였는데 사진에 담질 못해서 속상하다. 본인이 기술이 없음을 모르고 괜히 핑계를 댄다.이놈의 카메라. . . (잘 찍으신 분들은 댓글에라도 사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석병산을 지나 꼭 - 꼭 뒤돌아 석병산을 다시 보라고 대원들한테 얘기를 했다.
오늘의 주봉인 석병산을 지나 부지런히 삽당령으로 내 달렸다. 해 떨어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
지금부터 삽당령까지 울트라 바우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길이 정비가 잘 되어있고 걷기에 편하다.
다 왔다. ^^
삽당령
삽당령은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해발 680 미터의 큰 고개다.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꼿아놓고) 갔다하여 '꼿을 삽(揷)'자를 썼다는 지명 유래와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숙종 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금은 揷唐嶺으로 되어 있는데 산경표(19쪽)에는 揷當嶺 대동여지도에는 삽운령(揷雲嶺) 뭔가 꼽기는 꼽았나보다.ㅋㅋ
영하의 날씨와 강한 바람속에서도 18km가 넘는 긴 산행을 무사히 잘 마쳤다. 후미도 그렇게 늦지 않았으니 이제는 조금 큰소리쳐도 되지 않을까?ㅎㅎㅎ
오늘 가슴아픈 모습도 보고 멋진 석병산도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서 멀리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보았다. 잘 보존해야 한다. 우리가 산에서 얼마나 많은것을 얻는가. 이루 말 할수 없다. 산에 다니며 늘 감사해야한다.
내가 산이 되고자했다. 산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첫댓글 바람에 쫒기면서도 움푹패인 돌리네를 보며 지리공부는 잘했습니다만
휘어진 대간길 따라 훼손되고있는 자병산이 계~속 보여서 마음 아팠습니다.
하늘은 왜이리 파란지...
석병산 정상에서
저 멀리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장쾌한 대간길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뒤돌아본 병풍 석병산의 웅장한 모습도 멋졌습니다.
자줏빛 병풍같은 자병산!!
멀리서 파헤쳐있는 모습보며 마음이 좋지않았는데 자줒빛으로 멍들어서 병이들었나?생각해봄ㅋ(가운데자가 `병`자있음)
삽당령으로 하산시 타고가야할 차만보이더만 성황당은 어딨었던건가요~
대체 몆번을 더가야 구석구석 보이게 될까요?ㅋ
높고푸른하늘과 모진바람도 맞아보고
낙엽이 바람에날리는 장관도 보고
휼륭한 산행기까지
모든게 완벽하네요~^^
핸폰 탓하는 심곡님과 깍이어가는 자병산, 세찬바람에도 꺽이지 않고 드러누운 키 큰 풀,파랗기만 한 하늘, 파란댓잎사이로 난 길, 억울한 원혼을 달래주고 산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성황당까지 ~~~ 같이 하지 못한 일인이어서 ,,,씹듯이,길을 밟아가듯이 차근 차근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