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제 7구간:부련이재-대곡산(백운산)-천황산-대곡산-무량산-백운산-장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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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제 7구간

2014.12.21

부련이재-대곡산(백운산)-천황산-대곡산-무량산-백운산-장전고개

거리:19.2km

이동시간: 8시간 10분

-기적소리님 사진-

맑은 겨울날이다.

춥다고는 했지만 산꾼들을 쫄게 할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다.

등산할 때 발생하는 열기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산행에 적합한 날씨에 가까왔다.

하지만 들머리에서의 추위가 거슬렸던것은 아무래도 내 몸속에서 스믈거리는 몸살 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몸이 불편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대게 몸살은 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물러나는 법이 보통이다

나는 산행이 주는 자연 추유의 효험을 믿는 바이지만

집을 나서며 노로바이러스 감염으로 고생하던 아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저께 먹은 생굴탓이었다.

나는 겨울철 생굴을 유난히 좋아하는 편이지만

대간이나 정맥산행을 앞두고는 익히지 않은 해산물은 거의 입에 데지 않는다.

그날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서너개의 굴을 먹었지만 만약 양껏 먹었더라면

오늘 산행을 접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문제는 또 있었다

일행인 구름나그네님의 방광염이다

토요일 몸살 기운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나그네님은

뜻밖의 요로감염에 걸려있었다.

방광염인지 신염인지 약간 모호했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예상대로 아무 문제 없다는듯 산행을 결행했으며

내가 당부한 부탁도 거의 듯지 않았다.

나는 몇년전 바데산의 악몽을 떠올렸다.

신장결석을 앓고 난 후 첫 산행이었는데

그만 기진맥진하여 중도에 산행을 포기해야만했다.

그때 느낀 한가지 교훈은 나쁜 컨디션으로 산행을 계속하는 용기보다는

멈추어 서야할 지점에서 멈추어 설수 있는 용기가

산악인에게는 더 필요한 덕목이란 점이었다.

등산용 티셔츠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마스크겸용의 머플러를 착용했지만 이내 벗어버렸다

처음부터 시작된 문고개 오르막이 어지간히 급해서였다.

문고개에서 대곡산에 이르는 오르막은 더 심했다.

아무 생각없이 산을 올랐지만 그것은 백지와 같은 무념이라기보다는

흰도화지에 마구 환칠을 한듯한 복잡한 마음 심경일 따름이었다.

마치 벗어나야할 곳을 발광을 하며 벗어날려는 물고기처럼

나는 위를 향해 정신없이 걸어 올랐다.

오르막의 끝이 있다는것은 참 좋은 일이다.

삶이 그나마 살아 볼만한것도

고생의 끝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착각때문이 아닐까?

고생의 끝에 극락이 있는것이 아니다.일상이 있을 뿐이다

만약 고생을 끝으로 잠깐의 행복을 느꼈다면

우리는 일상에 고마와 해야할 일이다.

산을 오를 때 이런 무조건적인 위안 특히 언젠가는 그것도 가까운 시간내

고통이 끝난다는 낙관론은 굉장히 중요하다.

설사 그 고통이 얼마안가 재현되리라는 어엿한 현실이 존재하더라도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고통의 현실은 결국 가벼울 수 밖에 없고

우리는 그것을 즐기러 산에 오른다.

고사목과 지긋지긋한 잡목을 헤치며 길을 나아간다.

회초리와 같은 매서운 잔가지의 채찍질에 정신이 버뜩 들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듯

우리를 가로막는 저 관목의 악랄한 가시들도

다 매 순간 고뇌의 결과물일것이다

가시덤불이 고난의 삶을 상징한다면 고난을 즐겨 산으로 온 우리들에게는

별 교훈이 되지 않는다.

투박한 막사발 속에 조선의 얼이 어려있듯

이 지긋 지긋함이야말로

정맥길의 진솔한 묘미일지도 모르니까.

배곡고개 (정짱님 사진)

백운산 지나 한시간 남짓 걸어 배곡고개에 도착했다.

그 뒤로 한 115분정도 지났을까

특별할것이라고 없는 민낯의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조망되었다.

조망이라하기에는 끔직히도 소박했지만

더 끔직스러운것은 소박한 살풍경이 아니라 살얼음이 얼것같은 고요였다.

마침 바람 한줄없는 겨울날씨...

저 서쪽에는 눈이내려

세상이 온통 은빛이라는데

 꾸덕 꾸덕 말라가는 모래밭 해초같은

황량한 풍경 그대로였다.

조망을 거두고 다시 숲으로 접어들었다

출발 시간이 빨라서인지 숲속에서 요동치는 햇살의 향연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저 마른 풀잎에 불과한 건초들도 햇살을 받아 금새 황금빛으로 빛났고

남방명주나방의 초록빛 고치들도 새싹처럼 싱그러웠다.

길옆에는 아기들의 속살같은 꽃대를 품은 춘란들이

젖을 머금은 어미의 가슴처럼 윤이나는 초록빛으로 산꾼들을 유혹했고

횡재를 바라는 우리는 공연히 난초를 만날 때마다

밑둥을 해적거렸다.

배곡고개 지나 약20분쯤 걸어 342.5m의 천황산에 도달하였다.

높이에 비해 가당찮은 이름이었지만

오히려 이 이름때문에 이름없이 묻혀버릴뻔했던 이 산의 존재감이

더 선명해 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리고개(정짱님 사진)

천황산에서 대곡산으로 이어지는 남동의 맥길은

빨래판과 같은 오르내림의 연속이었다.

천황산에서 한 20분정도 걸었을까

우리일행은 가리고계(추계재)에 도착했다.

가리고개 삼거리에는 이탈자를 싣고갈 산악회 버스가 시동도 꺼지 않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버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스발트길을 유유히 올라 가리고개를 벗어났다.

가리고개 조금 지나자 다시 급한 경사길을 올랐다

승학산만 산을 일곱개쯤 넘어야 오늘 산행일정을 다 소화할 수 있다는데

도대체 몇개를 넘었고 몇개의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거칠게 밀려오는 산의 파도를 우리는 그냥 담담하게 넘어갈 뿐

서로간에 대화도 없는 묵행의 길이 길게 이어졌다.

가리고개 지나 약 한시간여

우리는 무덤의 순례자처럼 길가에 놓인 무덤들을 지나치며 길을 걸어

마침내 오늘의 터닝 포인터 대곡산에 올랐다.

앞으로 남은 길이 더 긴지 걸어 온 길이 더 긴지에대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후미대장님의 탈출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당에 탈출이라는 상황이 좀 생뚱스러웠지만

대간길,이보다 더한 악조건 속에서도 탈출을 염두에 둔적이 없던지라

일단 사슴목장이 보이는 길아래에 가서 어떻게 할지를 상의해보기로했다.

사슴농장이 보이는 아스팔트에 도달해 우리는 탈출을 상의했으나

당연히 가던길을 계속 가기로 하였다

후미대장님은 컨디션이 안좋은지 더 이상 산을 넘지 못하겠다고했다.

산대장님은 힘겹게 우리를 따라오시다

무량산 오르는 큰재 갈림길에서 우리와 헤어졌다.

큰재와 무량산으로 오르는 분기점(정짱님 사진)

무량산 오르는 길에 일행 중 한명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늘 우직하게 씩씩한 발걸음으로 여유를 보인 나그네님이

오르막을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무릎이 시원찮아 빠르게 걷지 못하는 바람에

체력 비축은 상당히 남아있었던터라

오르막이 오히려 부담이 덜했다.

서너발도 못가서 쉬어가는 나그네님이 안스러웠다.

좀 강력하게 산행을 말리지 못했던 책임감도 따랐다.

하늘에는 2-30마리의 독수리떼가 둥근 폐곡선을 그리며

머리 위를 선회했다.

평생 처음보는 독수리들의 군무였다.

새들은 나무에 걸릴만큼 위태 위태 낮게 내려왔다

때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이 올라 하늘을 배회했다.

멀리 몽골에서 날아온 진객들이다.

하지만 고성땅 여기서 대체 무엇을 먹고 겨울을 연명하겠다는걸까?

사실 저들은 몽골에서 먹이 싸움에 밀려 이곳까지 도망온 새들에 불과하다.

텃새인 까치무리에게도 쫒겨나야할 처지다.

하지만 경위야 어찌되었건

먹이를 발견하고 금방이라도 내려앉을것 같은 위압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독수리의 진풍경도 잠시

고난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중에

무량산 정상에서 헬리콥터가 물주머니를 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도 나지 않는 상황이니데 왠 헬기...

혹 일행 중 다친 사람이 발생했는지 사뭇 긴장 되었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다.

무량산 갈림길에서 백운산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 시간이 지체되어서다

그 유명한 이번 코스의 알바구간인 봉화산 갈림길을 지나니

멋진 암릉구간이 나타났고

비로소 산은 산다운 면모를 보였다.

산을 내려갔지만 기대했던 백운산은

마치 그릇을  엎어놓고 얼치기를 기다리는 야바위꾼처럼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세개의 언덕을 입에 욕을 단 채 오르내린 후에야 비로소

바위에 새겨진 백암산 표지를 발견했다.

-정짱님 사진-

백암산에서의 하산길은 깍아지를듯한 급경사였다.

시커먼 흙 아래 얼어붙은 서리들은 혀를 날름거리는 악마처럼

걸음을 위협했다.

하지만 빤히 보이는 산아래의 풍경들은 동시에 용기를 주었다.

산행이 아니라 고통의 끝이 보였다.

하산을 하고 동료들이 라면을 권하였지만

뭘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땀에 젖은 몸으로 풀썩 자리에 앉았다.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괴로움이 신기루처럼 넘실거렸다.

-기적소리님 사진-

- 후 기-

빨래판같은 산들을 넘으며

오늘 고생이라는것을 맛보았다.

먼 산 위에서 산아래를 바라 볼 때

언제나 희망이라는것이 보인다.

우리는 희망을 구체화하기 위해 산에 오른걸까?

고생의 끝에 행복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우라에 불과하다.

지친 몸을 쉬게하며

따끈한 라면 국물에 쓴 소주 한잔 나누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상.

그 소박한 일상이 존재할 뿐이다

 일상이 곧 행복이다.

 (Aspri mera Ke Ya mas / Agnes Baltsa)

아그네스 발차: 우리에게 좋은 날이 오겠지

[초이]

이번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을 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어달리기에서 웬만해선 한번 빠지기가 싫은 것이 맥꾼들의 마음일겁니다.
년말 잘보내시고 새해에 활기찬 모습으로 뵙길 바라겠습니다

[poll]

사진 찍는 일도 귀찮아지네요..
대간 탈때 다친 무릎 고장이 자꾸 재발해요 ㅠㅠ

[구름나그네2]

무리한 샨행 고행 길 !
형님때문에 땡방면하고 결석안하고
좋은 교훈 얻어 담부터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발 하갰습니다.
그 고생도 낙으로 삼겠습니다.

[poll]

저때문에 생사람 잡을뻔해서 산행 내내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요.
소처럼 우직하게 뚜벅 뚜벅 걸어가는 나그네님의 뒷모습 속에서 한편 측은하고 한편 대단하다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약 잘 챙겨드시고 오후에 뵙도록합시다^^*

[봉팔이]

폴행님
오늘의 글귀는 저에게도 꼭와닸는 글입니다
한동안은 마음처럼 따라주지않는 몸뚱이가 미치도록 싫더니만
이제는 어느정도안정을 잡아갑니다
폴행님 항상건강하시고 늘행복하세요~~~

[poll]

그만큼 몸과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겁니다.
봉팔님의 타고난 강건한 힘으로 잘 극복해 나가시리라 생각됩니다.
먼 발치에서나마 하이팅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앤디(박종인)]

성치도 않은 몸을 이끌고 산행하메 참으로 대단스럽게 생각합니다.고행이 곧 희열로 승화됨을 아시는 폴님! 화이팅입니다.^^

[poll]

앤디님 다사다난한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려운 시기 잘 헤쳐나오시는 한층 성숙한 모습에 갈채를 보냅니다.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산에 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을미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