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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의 역사 (7)
성경 번역의 역사
7부 :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바른 시각에서 본 우리말 성경번역의 역사>
- 구약의 역사 -
1부 : 마조레트
2부 : 원문의 보존과 사해사본
3부 : 70인역과 오리겐
- 신약의 역사 -
4부 : 초대교회와 중세시대의 성경
5부 : 종교개혁 번역의 시작
6부 : 번역의 역사와 번역판들
7부 : 한글 성경 번역의 역사
※ (잠깐!) 'HTML 스크립트'로 표현할 수 없는 몇몇 한글 옛글자와 헬라어는 '○'(파란색) 기호로 처리하였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바른 시각에 대한 이해
성경을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는 책이기에,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는 연장선상에 있다. 성경을 잘못 번역하게 되면, 원래의 말씀의 부분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다른 의미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칫 살아있는 말씀을 담은 성경을 죽은 종교지식을 담은 경전으로 전락시키게 되고, 그 결과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자체에서도 그같은 행위를 철저히 금하여, 말씀에서 첨가하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재앙이 그 사람에게 더해질 것이며, 삭제하게 되면 아예 생명책에서 그의 부분을 제거해 버리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계시록 22:18,19).
번역한다는 것은 옮기는 것(translating)이다. 한 언어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런 가감 없이 순수하게 다른 언어로 옮기려면, 최소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말씀을 옮기는 사람이 거듭난 성도일 뿐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분간할 수 있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신실하고 정직한 인격의 소유자라야 한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natural man)은 아무리 박식한 학자일지라도 결코 성경을 번역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영과 생명으로서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으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말씀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둘째,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한 성경 자체가 바른 것이어야 한다. 이미 첨삭되고 변질된 성경을 가지고 아무리 잘 번역한다 해도 순수한 성경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른 성경이라 함은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신실한 크리스천들과 참 교회들이 지키고 보존해 온 순수한 성경을 말한다.
셋째, 번역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철저히 정확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번역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기 때문에, 번역하는 방법도 정확하고 철저한 것이라야 한다. 흔히들 정확하고 철저히 번역하는 것을 "직역"이라 부르는데, 그렇다고 그 의미가 기계적으로 "형식일치"를 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형식일치의 번역은 직역이 아니라 사실상 오역이다. 그렇다고 "의역"을 한다는 것은 성경의 경우엔 더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의역"이나 "자의적 번역"은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창작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 나이다의 번역이론은 부패한 이론이다. 성경번역에서 "직역"(直譯)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런 손상 없이 충실하게 그대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형식일치도 의역도 아닌 "정역"(正譯)이다. 곧 말씀을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말씀을 한 자도 첨가하지 않으면서, 의미도 통하고 흐름도 일치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mind)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와 같은 직역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듭난 영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바른 성경 번역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1Corinthians 2:9-12).
이제 성경번역의 최소한의 요건인 이러한 기준들을 가지고 우리말 성경번역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비록 지면의 제한으로 요점중심의 정리가 되겠지만, 독자 제위께서 "바른 눈"을 가지고 읽으신다면, 과연 우리말 성경 번역이 지금껏 바르게 되어왔는지를 판단하실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되어져야 할지도 알게 되시리라 믿는다. 우리말 성경번역의 역사가 몇 번에 걸쳐 연재되기 때문에, 항상 이 세 가지 기준을 기억하고 있으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시리라 믿는다. 세 가지 기준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린다.
"누가 번역하였나?"
"무슨 대본(臺本)을 사용하였나?"
"어떻게 번역하였나?"
물론, 우리말 성경번역의 역사를 정리하려면 객관적이고도 진실한 자료들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충분한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편향되어 있음을 본다. 인간의 역사란 항상 기득권 세력에 의하여 기록되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에 유리하게 편향될 소지가 상존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진정한 역사란 기록 안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알려진 역사가 있는가 하면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있고, 드러난 역사가 있는가 하면 감춰진 역사가 있으며, 보이는 역사가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역사도 있는 법이다.
우리말 성경번역의 효시
처음으로 우리말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존 로스(John Ross)로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에서 북중국과 만주로 파송한 선교사였다. 그는 함께 파송되어 온 매킨타이어(J. MacIntyre)와 함께 만주에 온 한국인들에게 선교하다가, 최초의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게 되었다.
존 로스는 동 만주·두만강 유역까지 와서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선교하다가 1876년부터 한국인 청년 이응찬(李應贊)을 만나게 되었다. 몰락 양반 출신으로 한약장사차 만주에 왔다가 배가 난파되어 만주 우장 지방에 있던 선교사 로스의 보호를 받게 된 이응찬은 그 때부터 로스의 한국어 선생이 되었다. 로스는 이응찬에게 한국어를 배운지 일년만인 1877년에 영문으로 「한국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내기도 했으며,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가며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응찬으로서는 내키지 않은 일이었으나 '밥벌이'였기에 마지못해 성경번역에 가담하였다(「빛과 소금」'93. 1월호 66쪽 우측상단 3째줄). 그 후에도 로스는 이익세를 비롯해서 이성하, 김진기, 백홍준 같은 젊은이들을 만주에서 만나게 되었고, 1878년경에는 인삼장사차 온 서상륜(徐相崙)을 만나게 되었다. 한문에 능숙한 서상륜은 로스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의주 청년들 및 김청송과 함께 성서번역과 출판에 힘쓴 나머지 1882년에 만주 심양(봉천)에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 「예수셩교요안내(요한)복음젼서」등 두 권을 출판하였고, 1883년에는 「사도행전」을 번역 발간하였으며,
마침내 1887년에는 신약성경 전체를 「예수셩교전서」란 표제로 출판하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우리말 성경번역의 효시로 알려진 소위 "로스역"이다.
존 로스가 1882년 본국에 보낸 선교보고서에 따르면, "로스역"에 사용된 대본은 주로 영국의 개역본(RV, Revised Version)이었고, 알포드(Alford)의 그리스어 성경은 참조만 하였다. 번역방법은, 한국인 번역자가 중국의 한문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다음, 그 원고를 그리스어 성경 및 영어역본과 대조하여 수정하였는데, 문자적 번역보다는 의미 중심으로 번역하였고 한국어의 관용구를 그대로 살렸다고 했다. 즉 직역 대신에 의역을 택한 것이다. 또 주석을 참조하였는데 주로 마이어(Meyer)의 주석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United Presbyterian Missionary Record, July 1. 1882).
이수정역과 고유명사의 음역표기
우리말 성경역사에 있어 고유명사를 비교적 정확히 표기한 매우 독특한 성경이 있었는데, 바로 "이수정역"이 그것이다. 당시 이수정은 1882년 우리나라 수신사로 일본에 간 박영효의 일행이었는데, 로스역에 동참했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과는 달리 일본 수신사로 파송될 만큼 사회적 지위도 있었고, 지적 수준도 높았다. 이수정은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기에 앞서 1884년에 한국 사람이 우선 한문성경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한문성경에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출간했고, 그 이듬해인 1885년에는 「신약마가젼복음셔언○」를 출간했다. 「언○」란 당시 '언문'이라 불려진 한글로 한문을 풀이했다는 것이며, 이는 최초의 국한문성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한글을 언문(諺文) 즉 저속한 글이라고 부른 반면 한문자는 진서(眞書) 즉 참글이라고 하였고, 한문은 사대부(士大夫)의 글인 데 반해 언문은 하층민의 글이요, 쉬워서 여자들도 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하여 천대하였었다. 이수정이 "언○"를 출간했던 것은 성경이 지식인이나 양반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일반 대중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수정역인 「신약마가젼복음셔언○」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고유명사 표기법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말 성경들의 대부분이 중국의 한자표기에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이수정역은 "고유명사의 음역표기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 최초의 우리말 성경이 되었다. "음역"(transliteration)이란 "원천어의 발음 그대로를 수용어에서 최대한 가깝게 옮기는 것" 즉 소리나는 그대로 번역하는 것을 말하며,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원래 음역을 원칙으로 하게 되어 있다.
고유명사란 지구상에 단 하나 있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고유명사는 나라와 언어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음역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수정역이 이 같은 음역의 원칙에 따라서 고유명사를 표기해 주었다. 이수정역은 「언○」의 성격이므로 문장에서는 우리말을 혼용하였고 한자에는 우리글로 음을 달았는데, 특히 고유명사나 우리말에 해당된 어휘가 없는 경우에는 한자 표기에다 그리스어 원어 발음을 우리말로 적었다. 가령 「耶蘇基督」에는 「예슈쓰 크리슈도스」를, 「耶路散冷」에는 「예루샬넴」을, 「洗禮」에는 「밥테슈마」를 달았다. 어쩌면 이 같은 음역의 표기방식이 일본어 성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일본어 성경이 바른 음역의 원칙을 살렸다면 바른 표기인 이상 본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수정역은 고유명사를 음역의 원칙에 충실하게 바르게 표기한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문까지 바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고유명사 표기를 음역의 원칙에 따른 것이 잘한 일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첫 선교사로 알려져 있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5일 인천에 상륙할 때, 그들은 일본에서 번역한 이수정역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두 선교사는 후에 이수정역이 언어상, 신학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대폭적으로 수정한 「마가의 젼○복음서언○」를 내 놓았다. 그러나 미국성서공회 본부에서는 그들이 이수정역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에 불만을 표시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번역을 위한 공식기구로서 번역위원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선교사가 입국한지 8년만인 1893년에 우리말 성경번역을 위한 상설성경실행위원회(常設聖經實行委員會, The Permanent Executive Committee)와 그 산하기구인 성경번역자회(聖經飜譯者會, The Board of Official Translators)가 조직되었다.
펜위익과 만민됴흔긔별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 중에서 로마 카톨릭의 혼합주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선교사로서 화란의 침례교 선교사인 말콤 펜위익(Malcom C. Fenwick)을 들 수 있다. 그는 세례 대신 침례(浸禮)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성직계 제도에서 볼 때 일개 평신도로서 교회개척의 사역을 감당하였으며, 교단의 입장보다는 성경대로 선교하려고 시도한 매우 이례적인 선교사였다. 펜위익은 1889년 12월에 내한하여 1898년에는 주한 외국 선교사들을 총망라하여 조직된 "성경번역위원회"의 부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펜위익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세례"(洗禮) 표기를 강행하고자 하고 토착화 신학에 따른 혼합주의적 성경번역을 밀어부치게 되자, 펜위익은 동 번역위원회를 탈퇴하여 독자적인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1899년에 요한복음젼과 비립비인서(빌립보서)를 번역 출판하여 배포하였고, 1917년에는 신약성경 "만민됴흔긔별"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의 활동지역이 원산을 중심으로 하여 만주, 시베리아, 몽고에 이르렀으므로 그가 번역한 신약전서를 "원산역"이라고도 부른다.
펜위익의 원산역은 대부분 기존 성경번역위원회에서 결정한 번역원칙에 따랐지만 몇 가지는 독특하고 참신하게 번역한 특징을 갖고 있다: "세례"(洗禮) 대신 "침례"(浸禮)로 표기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킹 제임스 성경의 "Holy Ghost"를 "성신"(聖神)이나 성령(聖靈)으로 하지 않고 "셩숨님"으로 표기하였으며, 대문자로 시작되는 "Spirit"은 "숨님"으로 소문자로 시작되는 "spirit"은 "숨"으로 한 것 등은 실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존대법에 있어서도 주님께 대한 존대어를 비교적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다른 한글성경과의 차별성을 갖는다. 가령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다른 한글성경들이 죄다 마귀가 주님께 반말을 한 것으로 번역해 놓았으나 펜위익역만은 "태○님○셔 하나님의 아○ 되시거던(태자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시거든)…"으로 번역하여 마귀조차도 주님을 알아보았기에 함부로 반말을 할 수 없었음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또한 주님의 존함을 "예수씨"로, 크리스트님을 "긔독"(기독)으로 표기한 것도 독특하다.
한글 성경 번역사
한글 성경 구역과 개역
가. 최초의 한글 성경과 구역(舊譯) 성경
179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천주교 신자인 최창현이 4복음서의 성경 구절을 발췌하고 해석을 붙인 한문본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경직해'(聖經直解)를 재편집하여 한글로 옮겼 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필사본 '성경직광익'으로 최초의 우리말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최초로 낱권 성경 전체가 번역된 것은 1882년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로스(Ross), 맥킨타이어(McIntyre)와 한국인 서상륜 등이 공동으로 번역한 '예수셩교 누가복음'이었다.
1883년 11월에는 일본에서 이수정이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한문 성경에 토를 달아 '懸吐韓漢新約全書'를 출판하고, 다시 한글 성경번역 작업에 착수 1885년 한 문 옆에 한글을 병기하는 형태의 '신약마가젼 복음셔언'를 출간했다.
미국인 선교사 언 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가져온 성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1887년에는 신약 전체를 번역한 '예슈셩교젼셔'가 출간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한글 신약전 서인 셈이다.
이후 신약 전서는 개정을 거듭한 끝에 1906년 최초의 공인 역본이 발간된다.
이어 1906년 '창세긔'와 '시편'의 발행을 시작으로 1911년 3월 '구약젼셔'의 번역을 마 쳐 한글 최초의 '셩경젼셔'를 발행한다. 이 성경을 개역(改譯)과 구별하기 위해 구역(舊 譯)이라고 부른다.
나. 개역(改譯) 성경
구역의 출판 이후 곧바로 영국 성서공회를 중심으로 개역 위원회를 구성하여 1911년 개 정작업이 없었던 구약부터 개역 작업을 시작했다.
1912년∼1937년에 번역을 중심으로 한 중요 작업이 이루어진 끝에 1937년 '개역성경'이 간행되고, 이후에는 번역보다는 편집 체 제와 철자상의 변화가 주를 이루어 195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해 1952년 개정 출판하 고 다시 1956년 최종적으로 개역과 편집 체제의 수정을 마쳐 오늘날의 '개역성경'이 완성 되었다.
60년대에 들어와 원문에 충실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현대어역이 요청되어 60년 9 월 대한성서공회는 신약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67년 12월 '신약전서 새번역'을 발행한다.
새번역을 끝낸 성서공회가 구약의 번역을 준비하는 중에 신구교가 함께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특히 30세 이하 청년들을 위해 전도용으로 사용할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한다.
이 에 68년 구약공동번역위원회를, 다음해 신약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 번역에 착수하고 71년 신약, 77년 외경을 포함한 '공동번역 성서'를 발행한다.
이 성경은 우리 나라 성경학자 들만으로 원전에서 직접 번역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1983년 대한성서공회는 개역의 뒤를 이어 사용하기 위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의하고 1993년 '표준 새번역 성경'을 출판한다.
한글 성경 해방 이전 이후
가.해방 이전
한국에 성경을 소개한 사람은 1832년에 화란 선교사 구츨라프 목사였다.
그는 홍주 고대도에 얼마동안 머물면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로스(John Ross)와 한국 사람 이응찬, 백홍준은 1883년에 누가복음 3천부를 발행했다.
1887년에 로스목사는 같은 계통에서 파송된 매킨타이어(John Mclntire)와 함께 신약성경 전부를 번역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한국 관비 유학생 이수정이 1884년에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1885년에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그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 왔다.
1887년에 아펜젤러 역 마가복음, 1890년에 언더우드역 누가복음과 스크랜톤 역 로마서, 1892년에 3인 공역인 마태복음, 1894년에 펜윅(Fenwick) 역 요한복음, 1895년에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1897년에 골로새서와 베드로전.후서, 1900년 5월에 신약성경 전부가 완역되었다.
1904년에 신약전서가 개역되었고, 1906년에 이것을 재수정하여 결정본으로 공인역으로 출판되었고, 1937년에 다시 개역하여 일제 말기를 지나 8.15해방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공인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해방 이후
1961년 1월 25일에 한국 학자들만의 노력으로 마태복음이 번역되었다.
1967년 12월 15일에 새 번역 신약성경이 출판되었다.
한글 고문으로 한갑수, 문장 위원으로 전영택.안신영.임한영.박영준.석용원.김재준 제씨, 원문 대조위원으로 지원용.윤성범.곽안전 제씨, 서기는 정용섭 목사가 수고하였다.
1968년 2월 15일에 신.구교 성경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에 김정준 박사, 서기 정용섭 목사, 위원에 배제민.문익환.선종완(신부).최의원(사정상 사퇴) 제씨다.
1971년 부활절에 신약성경 공동번역이 출판되었다.
위원에는 구교측에 백민관 신부, 최창덕 신부, 김창렬 신부(사정상 사퇴), 평신도측에 김진만 교수(성공회), 이근섭 교수(감리교), 신교측에 정용섭 목사(성서공회 직원), 박창환 목사다.
1977년 4월 부활주일에 공동번역 성서(신.구약합본)가 출판되었다.
한편 생명의 말씀사에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영어판 리빙 바이블을 기초로 하여 1977년에 《현대인의 신약성경》을, 1985년에는《현대인의 성경》을 발행했다.
또한 대한성서공회에서는 1967년에 나온 새번역 신약성경을 수정하고 구약성경을 다시 번역하여 1993년《표준 새번역 성경》을 발행하였으나, 이 성경이 진보적 신학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지나친 의역이라는 이유로 보수 신학계와 교회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바른 성경 없이는 바른 신앙이 없다.
바른 성경 없이는 바른 신앙이 없다. 성경은 교리를 재는 잣대(Cannon)인데 틀린 잣대로는 교리를 올바로 잴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어떤 조명도 주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이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개혁을 이루는 것은 변개되지 않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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