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가 무색할 만큼 토요일 서울 하늘은 고요하였다. 깨끗한 공기 탓에 햇빛이 더 강하게 와 닿음을 느끼다가, 오후 들어, 하늘은 서서히 회색빛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먹구름이 언제 비를 쏟아 부을지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우중산행, 우중 야외식, 육산길의 질퍽함 등 예견된 고행길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사당역에는 평소보다 산악버스 행렬이 단촐하였다. 태풍에 대한 노파심으로 다수의 산악회 일정이 취소된 듯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강우 외에는 큰 문제가 없음을 인지하고 예정된 스케쥴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이번구간은 9월 4일 새벽에 진행된 백두대간 32구간으로서, 세부 코스는 구룡령-구룡령옛길 -갈전곡봉-왕승골삼거리-연가리골갈림길-쇠나드리-조침령의 연장 21.25km구간으로서, 연가리골이 개략적인 산행 중간지점이고, 조침령에서 차량이 다니는 진동삼거리(지방도418호선)까지 약 1.5km의 접속구간을 더 걸어야 한다.
이번 구간은 수목이 울창하고 노출 암반이 거의 없어 조망이 안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맑은 날이면 잡목 사이로 설악산 서북능선과 점봉산, 방태산이 웅장하고 역동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날 하늘은 진한 곰탕이어서 조망의 꿈은 날아갔고, 땅은 비에 잔뜩 젖어 가뜩이나 특징 없는 대간길이 더더욱 변별력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른 구간에선 큰 봉우리 넘고 고개 지나면서 상대적 거리감과 성취감도 가질 수 있지만, 이번 구간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계가 불분명할 뿐더러, 이놈이 지속반복되어 산행 종점을 유일한 목표로 삼다보니, 많이 지루하였다.
지형 특성은 지난 구간과 동일하게 주로 시원생대 지괴가 오랜 세월동안 심층 풍화된 육산으로서, 이것은 점봉산 너머까지 이어지며 기름지게 하여 이 일대를 야생화 천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한편, 대간길 동쪽에는 국도56호선이 대간길과 거의 유사한 선형으로 개설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방태산 능선에서 발원되어 방태천으로 흐르는 아침가리골이 대간에게 친구삼자고 손짓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칸대장님의 코스 난이도 설명 중 다른 구간보다 쉽다는 말만 핀셋으로 정밀하게 골라내고서, 새로 오신 천지인화님의 간단한 소개를 받은 후 피곤한 몸을 버스에 의지한 채 구룡령 고갯길을 구불구불 올랐다.
구룡령(1,013m)에 도착하니, 범상치 않은 강원도 초가을의 서늘함이 감돌았다. 새벽 3시 30분이 넘어설 시간에 구룡령 표지석 앞 단체 인증 후 데크계단을 오픈게임으로 오르니 본격적인 대간길이 펼쳐졌다.
구룡령 들머리에서 대간길 따라 30분 정도를 걸으면 구룡령 옛길 정상(1,089m)이 나온다. 원래 구룡령은 한계령, 미시령 등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로서, 오래 전에 만들어진 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 이 지역 광물 및 임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구룡령 근처에 차도를 신설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차량이 다니는 구룡령이고, 이로 인해 종전의 길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지금은 등산객들이 가끔 찾는 옛길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구룡령 옛길은 홍천군 명개리에서 양양군 갈천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명승 제29호로 지정된 명승지이기도 하다.
산행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선두에 서게 되어 왠지 불안하여 한결대장 뒤에 서며 주이님, 정딱님, 이공허님과 함께 걸었다. 오늘은 사송님의 불참으로 조르바님의 속도감을 소화해 줄 분으로 산음님, 설악산인님이 거론되었는데, 실제 이분들은 초반부터 안 보여 초선두에서 달리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어둠 속 갈전곡봉을 열심히 오르는 사이 청송님의 파이팅 소리와 특유의 기 발산 목소리가 산행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더니 이내 지칸대장님으로부터 큰 비가 내리기 전에 식사할 수 있도록 장소를 잡자는 무전이 왔다. 그러나 비는 대간길을 수북이 덮고 있는 나뭇잎 위를 때리며 정작 우리에겐 위협적이지 않았고, 다들 새벽 6시에 아침이 내키지 않는 기색이어서 선두팀들은 계속 전진하였다. 갈전곡봉은 만만한 봉우리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내리막을 내어주어 크게 어려움 없었으며, 지난 구간에 이어 이번에도 대구에서 오신 타 산악회와 섞여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갈전곡봉 정상(1,204m)에 도착하였다. 타 산악회에서 정상인증을 너무 오래 독차지하여 정딱님은 뿔이 났고, 우린 날렵하게 기회를 틈 타 사진 촬영 후 다음 목적지로 출발 준비를 하였다.
갈전곡봉은 이번 구간 주변 지세를 파악하기에 중요한 봉우리인데 이곳은 양양, 홍천, 인제의 경계지점으로서, 원래의 명칭은 치밧골봉이었는데, 이는 칡밭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게 갈전곡봉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능선따라 서쪽으로 가면 가칠봉-방태산 주억봉-방태산 깃대봉으로 이어져 종주코스로도 알려져 있다.
갈전곡봉에서 휴식 후 내려갈려는 찰나, ks현정님, 산촌님과 함께 내리막을 걸으니 어느새 각자 페이스대로 각개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길이 비교적 평탄하여 인상적인 장소없이 바로 아침식사 장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모든 분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비록 주변은 축축하고 기분은 엉망이었지만, 소소한 가족애가 싹트는 분위기였다. 늦게 도착하신 산타고님은 산행속도가 갑자기 거북이 닮아간다고 주이님께 일단 혼이 나고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식사 후 이공허님을 따라 출발하였다가 중간에 우두둑 떨어지는 비를 더는 피해가기 어려워 우의를 꺼내 입었는데, 대기 기온이 높지 않아 우의를 입어도 덥지 않았다. 무명의 오르막 끄트머리쯤에 이르니 산들님이 씩씩거리며 혼자 오르고 있었고, 여기서부턴 산들님과 날머리까지 함께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갈수록 비는 세차게 내렸고, 바지는 이미 다 젖었으나, 다행히 비닐을 준비한 탓에 등산화에 물들어가는 것은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연가리골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연가리골은 아침가리골 동생뻘로서, 여기도 계곡 트레커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현 위치 인근 연가리골 샘터에서 발원되어 방태천으로 흘러간다.
변별력 없는 대간 봉우리들 사이에서도 오늘 유난히 힘든 구간이 하나 있었는데, 오르막이 급하진 않았지만 길게 형성되어 이 산을 넘으면 꼭 쉬어가자고 산들님과 약속하였던 그 봉우리는 아마도 1,059 또는 1,080봉이었던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봉우리 이름 하나 지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우리가 섰던 자리도 정확한 피크는 아닌 것 같았고, 주변에서 조침령 잔여 7km 이정표를 발견하여 개략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 근처에서 간식 먹는 사이, 산촌님과 지칸대장님이 오셨고, 여기서부턴 4명이 뭉쳐 미끌미끌 기우뚱거리며 함께 대간길을 걸었다.
장구한 세월동안 다변성작용과 풍화, 그리고 수목 등이 썩어서 형성된 유기질토가 혼재된 세립토 땅이어서 비를 머금은 산길은 엄청 미끄러웠고, 내리막은 아이젠 없이 눈길을 걷는 듯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었으며, 좀 더 가니 산림청에서 대간길을 정비한다고 잡초가 제거된 땅은 더욱 미끌거려 우리를 춤추게 만들었다.
어느덧 조침령을 약 2km 남겨두고 쇠나드리란 곳에 도착하였다. 쇠나드리는 소를 방목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인근의 바람불이라는 곳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소가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하듯, 이 일대에 소를 많이 먹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이곳이 바로 옛 조침령이다.
쇠나드리에서 구룡령 방향으로 약 600m 지점에 인제양양터널이 통과하는데, 이것은 춘천양양 고속도로의 백두대간 통과 터널로 국내 최장(10.952km) 터널로 알려져 있다.
이 근방에서 떡, 과일 등 달달한 음식은 모두 꺼내 먹고 출발하려는데, 우비소년 프론님이 홀연 나타나셨다. 이제는 5명이 함께 마지막 구간을 홀가분하게 하산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고봉 두 개가 나타나 마지막 놓은 정신줄을 급히 수습한다고 애먹었다.
종점부 어떤 오르막에서 추모비를 발견하였는데, 대간 3구간 남겨놓고 세상과 작별하신 분을 기리고 있어 사진에 담고자 하였으나, 휴대폰 화면이 비에 젖어 작동되지 않아 실패하였다. 고이 잠드시길..
이제는 종착지가 얼마남지 않음을 직감하는 사이 좌측에 임도가 보여 우리가 하산할 접속도로임을 알게 되었고, 연이어 철조망이 나타났다. 철조망 문 바깥으로 나와 임도따라 단목령 방향으로 약 10분 거리에 이르니 조침령 표지석이 나타났다. 주변 철조망은 아프리카 돼지열병 전파 차단을 목적으로 설치한 시설이라고 한다.
조침령은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는 고개로서, 우리가 접속구간으로 이용했던 임도가 최초로 만들어진 차도용 조침령 고갯길인데, 이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쇠나드리에 있던 조침령의 명칭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지방도418호선 조침령터널(연장:1,145m)이 개통되면서 현재는 임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조침령 표지석에서 진동쪽으로 1.5km 정도 내려오면 터널 동측입구에 도착하고, 서림쪽으로 1.5km 정도 내려가면 터널 서측입구와 만난다.
조침령에서 마지막 기념촬영 후 지나쳐왔던 철조망 입구까지 되돌아서 임도따라 꾸불꾸불 둘러 내려오니 도로 끝지점에 반가운 버스가 보였다. 버스가 기다렸던 진동삼거리는 곰배령 탐방시점인 설피마을로 가는 도로 입구이자 인근 양양양수발전소 진입도로이기도 하다.
기사님 안내로 난장판인 몸 그대로 방태천에 입수하고 얼얼한 상태에서 버스로 가니, 벌써부터 옅은 홍어 냄새가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비는 계속 내렸지만 강도가 약해 비닐 천막으로 충분히 커버되었고, 그 속에서 홍어, 삼겹살에 각종 쌈재료와 나물, 그리고 마가목주, 당귀뿌리주 등 갖가지 재료와 어우러진 우리들만의 잔치를 치루었다. 많은 양의 홍어를 멀리 흑산도에서 주문해오신 이공허님 감사드리고, 많은 분들이 조금씩 싸오신 맛난 재료들 덕분에 훌륭한 잔치가 되었다.
참석해주신 타박이회장님, 예송고문님, 지칸대장님, 한결대장님, 욱이총무님, 산촌님, 아차산님, 청송님, 천지인화님, 산음님, 영원한쌤님, 주이님, 설악산인님, 이공허님, 프론님, ks현정님, 산타고님, 산들님, 푸른마루님, 조르바님, 오두막님, 정딱님, 두만강님, 야간비행사님, 인생은즐거워님 모두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날 함께 고기먹고 비 속의 분위기를 나누신 기사님, 늘 감사드립니다.
후기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빗속 진흙스키 길을 무산님과 함께 걸은 코스로 기억될 대간 길이었음요
그렇죠, 형님! 비만 안 왔으면 굉장히 좋은 길이었을텐데,
대신, 비가 와서 잊지 못할 구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구룡령, 조침령은 라이딩 세계에서도 유명할 고개라고 가르쳐주셨죠.
수고 많이 하셨어요.
대간 지명의 자세한 설명이 산행 후 알게되는 묘미?가 있네요.
구갼에대한 공부없이는 알수없는
데 무산님의 후기는 다녀온 우리
산우들을 즐겁고 정겹게 합니다.
우중산행 곰탕날씨 머드등로
오래도록 기억될것입니다.
참가한 님들 수고하셨습니다.
고문님, 후기 쓰다 보니 모르는 것, 새로운 것 공부도 하게 되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구간에 보석이 숨어 있는 경우도 발견합니다.
저는 머드 등로 헛바퀴질한다고 노심초사 하는 사이
흐트러짐 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시는 모습에 감복했습니다.
엄청나게 바쁘실텐데
후기 마무리해서 올려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지질에 대해서도 배우고
산 지명, 특히 산우들의
디테일한 묘사가 생생하네요~
오늘도 굿데이 보내시고
곧 뵈어요~^-^
만강 아우님, 대간 뛰고도 후기 쓰기 전까지 우린 대간 뛴 게 아닌 공통점을 가진 운명이네요. ㅎㅎ
아우님의 후기는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을 거에요.
산행에 필요한 지식이 굉장히 많아 다른 산우님들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몇 시간 있으면 함산하겠군요. 준비 잘 하고 있다 봐요.
바쁜와중에 후기쓰느라 고생하셨습니다.감상 잘하고갑니다.
회장님이 지침으로 주신 후기 데드라인을 넘겨 지송합니다.
오늘 막걸리 한잔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통 크게 가져오신 대하 잘 먹고도 감사 인사 못 드린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좀 있다 한계령에서 뵙겠습니다.
제가 1기 다녀온지가 오래 되었지만
무산님의 지형특성이나 지리적 설명과 빗속에 산우님들의 걸어온 산행길을 상상하며 후기읽으니
제가 예전
앞선두에서만 냅다 달렸던 구간구간들이 조금씩 생각나며 몰랐던것들을 많이 배우게 되네요.
무산님의 바쁨속에서 휼륭한 후기를 읽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한구간 또접수 고생많으셨고
8기 남은구간도 화이팅하시고
늘 안산즐산하세요.
전설의 대장님,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1기 이후 숱한 시간이 흘렀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변하지 않는 게 대간길 같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걸었던 그 길이 대장님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정겨운 길일 거에요.
후기가 추억 상기에 도움되셨다니 저도 많이 기쁩니다.
건강하십시오.
산행후 개운하게 알탕하고 빗속에 홍어와 삼겹살에 막걸리 한잔이 생생하네요 ~~ ㅎㅎ
산행 중반 이후는 참기름 반질반질한 길을 쭉 함께 하셨지요.
사진과 야생화 공부에 관심 많은 대장님이 지나치며 일러주시는 야생화 이름에 무산도 조금씩 배워나간답니다.
비오는 날 사진촬영과 대원들 챙긴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구령룡/조침령구간
빗속 진흙탕미끄러운 산행
등산화 첨벙첨벙!!
잊지 못할 구간인듯~~
함께 선두 잘 따라 오던만
없어졋어ㅎ
걷기 바빳던 구간구간
지나쳣는데
무산 후기로
다시금 펜 들게 하게 되네!!
우리 넷 함께햇던
추억 생각낫구
후기글 고맙구 감사해~!!
누님, 무산은 순하게 생겼지만 언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안 보이면 그러려니 하시면 된답니다. ㅎㅎ
작년에 한계령 들머리 찾는다고 뒤적이던 모습과, 점봉산에서 곰탕 진국 마신 아쉬움이 기억나네요.
이번에 임도 하산하면서 마을 근처에서 함께 발씻었던 개울이 보여 그때 기억이 나더군요.
오늘은 점봉에서 최고의 조망을 기대하며 다시 함 올라보시죠.
즐거운 산행했네요~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멋진 후기 넘 감사 합니다~
8기얼마 안남은 구간도 무산형님표 후기 기대 댑니다~
아우님, 이제 설악산 구간만 남았네.
몇 번을 다시 가도 언제나 가슴 설레는 설악산 풍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 구간을 넘으면 영광스런 8기 졸업!
그때까지 조금 더 안전하고 즐겁게 함산합시다.
딱!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