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다라니의 인도교적 성격
불교가 흥기한 초기에 있어서 인도고유한 민족종교로서의 바라문교(婆羅門敎)가 큰 타격을 입었으나 불교는 민간신앙과 합하여 인도 사회조직과 밀접한 관련성을 유지하여 갔다. 한편 바라문교도 그러하였으니 인도교[Hinduism]로서 부흥하게 된 시기를 곧 7세기의 중엽부터 인도교는 대승불교에 영향을 미쳐 대승불교는 급격히 밀교화하였다.
그리하여 밀교적인 주술과 신비한 의궤(儀軌)가 경전의 형식으로 가르쳐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는 7세기 이후에 인도민족고유의 주술과 인도민족이 숭신(崇信)하는 신을 모시는 신비적인 제의방식(祭儀方式)을 수용하게 되니 이렇게 하여 형성된 것이 밀교이다.
밀교는 본래 이러한 뜻에서 대승불교와는 이질적인 것이었으나 7세기 후반에 서인도에서 밀교경전으로서 <대일경>, <금강정경> 등이 형성되어 대승불교의 기본적인 사상에 의해서 그의 바탕이 만들어지고 그에 의해서 불교의 정통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8세기 이후가 되자 인도는 회교도의 침입으로 불교가 파멸의 위기를 당하자 불교는 민중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부조하는 구실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도교를 받아들인 밀교에서는 중생구제의 제화불(諸化佛)과 제화신(諸化身)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화신으로서 제보살 중에서 관세음보살에서 보더라도 불공견색관세음(不空羂索觀世音)은 인도교의 '시바'(śiva)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또한 이 관세음에는 1면(面)3목(目)의 범천(梵天)의 모습을 한 것도 있게 되고, 비사문천(毘沙門天), 변재천(辨財天), 부동명왕(不動明王) 등 밀교의 화신은 모두 '힌두'교의 제천제신(諸天諸神)이 화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그들의 제천제신이 일찍이 우리들의 구제자로서의 가능태(可能態)로서 중생제도를 발원하여 이제 그 인연이 있어서 제보살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우리들 앞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불타의 자비행의 표현이니, 불타의 정각(正覺)의 지혜가 방편을 의지하여 인간에게로 와서 인간으로 하여금 정각에 이르게 하는 자비방편문(慈悲方便門)이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이 지혜는 자비방편으로서 전개되고 그것에 의하여 또한 지혜가 개출(開出)되는 것임으로 결국 지혜는 자비방편과 동체(同體)이니, 밀교에서는 이것을 혜방편(慧方便)이라고 하고 그것이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법계(法界) 그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신증(身證)하는 수도의 방편으로서는 입으로 '다라니'(Dhārani, 주문)를 부르고 손으로는 '무드라'(mudrā, 印相)을 맺고 마음에는 삼매(三昧, samādhi)에 주한다는 여러 가지 방식을 가르치고 있다. 밀교에서 본존으로서 의용(依用)하는 '만다라'(maṇdala, 曼陀羅)는 이 혜방편을 상징적으로 도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교의 영향으로 밀교의 성격이 형성되었음은, 곧 밀교가 이교적인 '힌두'교의 세계에 대처하면서 세계종교로서의 대승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본 천수다라니의 본존은 청경존(靑頸尊)이요, 생연화제(生蓮華臍)의 성존이고, 저용존, 사자용존, 연화수존, 보륜상응존, 나패음존, 존병집지존, 호피의존이다. 이 여러 성존은 물론 천수관음의 변신을 나타낸 것이다.
천수관음이 인도교의 천비(天臂)를 가진 '시바'신(神)을 수용하였다는 것을 '시바'신(神)의 성격과 본 다라니경의 성격에 미루어 입증되니 그것은 다음에 고찰하겠으나 여기서, 청경존, 연화수존, 보륜상응존, 나패음성, 존병집지존 등은 관음보살의 자비구도의 모습을 상징화 한 것이라고 보아지고, 문제는 호피의존, 저용존, 사자용존과 같은 '데모닉'(demonic)한 것으로 표현한 점이다. 이것은 바로 본 다라니의 성격이 되기도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세계종교로서의 성격을 띠기 위하여는 이교(異敎)인 인도교의 요소도 수용소화하는 것을 불사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밀교에는 자연 괴이, 포외(怖畏)한 인상을 주는 제상(諸像)이 있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1면3목의 불공견색관음이나 천수관음, 법화경보현권발품에 보이는 보현보살의 무서운 표현 기타 서장불교(西藏佛敎)의 제존상에서 볼 수 없는 무서운 상모(相貌)는 소위 종교의 순잡성(純雜性)으로 보아서는 전근대적인 성격의 잔재라고 말해지겠으나 이러한 demonic한 것은 인간의 숙죄(宿罪), 업장의 깊은 것을 자각케 하는 자비방편으로서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체중생의 각양각종의 형태는 모두 하나의 총체로서 우리들의 본심(本心)과 관련지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인연이 익으면 또한 우리들의 당상(當相)이 되는 것임으로 우리 중생들은 어떤 모습의 응현신(應現身)의 방편시현(方便示現)에 의하여 당상성불(當相成佛)하게 될는지는 우리의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업보를 측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밀교에서 괴이하고 무서운 모습의 응현신(應現身), 화신(化身)이 설해지는 것은 우리 중생의 숙죄, 업장의 자각을 위한 것이다.
본 다라니는 관자재보살마하살에게 구제를 비는 것이면서 여기서는 청경존, 생연화제존, 저용존, 사자용존, 연화수존, 보륜상응존, 나패음존, 존병집지존, 흑색신승존, 호피의존 등 10성존(聖尊)의 이름을 열거하여 길상있기를 빌고 있다.
이 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하니 여러 성존의 이름은 관자재보살의 변화신이라고 보아진다. 그리하여 청경존, 생연화제존, 연화수존, 보륜상응존, 나패음성, 존병집지존, 흑색신승존, 호피의존 등 관자재보살의 구도중생하는 자비행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다.
또한 저용존(猪容尊), 사자용존(獅子容尊)은 무엇인가. 이는 인도교의 viśnu신(神)의 화신으로 나타나는 야저(野猪, varāha)와 인사자(人獅子, Nṛsiṃha)를 상상한 것이다. 인도교에서 제3위에 있는 최고신 viśnu가 인류의 복지를 가져오고 천지우주를 받들어 유지해주는 신으로서 숭상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10종의 권화신(權化身, avatāna)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22의 화신 혹은 기타의 여러 화신으로 나타난다고도 생각되어 있다. 그의 10종 화신중에 야저(野猪)와 인사자신(人獅子身)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야저(野猪)는 '히라니야아크샤'(Hiraniyākṣa)라고 하는 악마가 대지를 바닷속으로 탈취해 갔을 때에 viśnu가 야저로 화신하여 수중에 잠입하여 1천년간 전투 끝에 그 악마를 죽이고 대지를 건져냈다는 것이다.
'푸라아나'(purāṇa) 문헌에 의하면 이 야저는 대지가 홍수로 파괴될 위기에 임했을 때에 '비슈누'신(神)이 야저로 변신하여 토지를 잇발 위에 올려 떠받친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야저는 희생의 인격화된 것으로서 세계가 그에 의하여 악의 대해(大海)부터 구제된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형상은 머리는 야저요, 왼쪽 무릎에 여성이 앉아 있고 두 다리로 용과 거북을 밟고 있다. 무릎에 앉은 여성은 대지요, 용과 거북은 악마이다. 이 야저는 '비슈누'신이 세계의 괴멸시에 현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비슈누'신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형상으로 화하여 악마 '히라냐카시푸'(Hiraṇyakaśipu)를 퇴치한다. 그런데 이 악마는 범천의 은총으로 인간이나 맹수들에게 잡히지 않고 3계(界)를 영유(領有)하여 신들에게 받친 공양을 받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프라흐라아다'(prahrāda)가 '비슈누'의 존재를 인정하여 이름을 찬탄하였음으로 이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기둥속으로부터 '비슈누'신이 사자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악마인 아버지를 죽였다. 상(像)의 면모는 사자요, 4비(臂)또는 8비(臂)를 가졌고 손톱으로 악마의 장부를 갈기 갈기 찢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두 화신은 오탁한 '사트야유가'(satya-yuga) 시대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관자재보살이 후5백세중의 박복중생을 귀신의 침해로부터 구제하는 위신력을 나타냄에 있어서 이러한 인도교의 옹호신의 화신을 상상(想像)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비슈누'신은은 비(非) '아리안'계의 문명 중에 있는 것이다.
상기한 신화에서 본 바와 같이 Hiraṇyakaśipu의 아들 prahrāda는 '브라흐마'의 은총을 믿지 않고, '비슈누'신을 믿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노여움을 받았다는 것은 곧 viśnu신은 Āryan계의 문화속에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에서 이 신(神)의 화신을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천수관음다라니의 연구/ 정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