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발(危機一髮)
무엇을 취하겠는가? 지금 그들의 수색작전은 마치 거미줄처럼 빽빽할
걸세. 그리고 쾌락왕은 마치 거미처럼 중앙에 앉아있을 테고. 그래야
거미줄에 약간의 소식만 있어도 그가 금방 쫓아 갈 수 있을테니까 말일세.
그의 좌우 측근들도 당연히 모두 그를 따라 갈 테지. 그러니 우리들을
잡지 못하는 한 절대로 그는 돌아오지 않네. 이 쾌활림 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빈 집은 이 곳 뿐일 걸세."
하지만...... 하지만 그들은.......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한동안 절대로 이곳을 수색하지 못할 것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이 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할 테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의
약점이지.
하지만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생각이 난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서 우리들을 찾지 못했을 때 비로소 이 곳을 생각해낼
것이야. 하지만 이 넓은 쾌활림을 전부 다 수색을 하자면 적어도 세
시진은 필요하지.
그는 잠깐 웃고는 다시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그들이 이곳에 오려면 적어도 세 시진 이후에나 도착할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이곳에서 최소한 세 시진 동안은 안전하다는 결론이지.
이...... 이것은 너무 위험한 모험이군.
그렇네. 이것은 확실히 위험하지. 하지만 어차피 갈 곳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모험하는 수밖에는 없어. 그리고 이것은 그런대로 안전한
길이지.
자네는 조심할 때는 마치 할머니 같이 소심하고 간이 부었을 때는 사람
정말 놀라게 한다니까!
왕련화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심랑에게 탄복한 점이오."
주칠칠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당신도 심랑에게 탄복할 줄을 알다니. 당신은 드디어 양심있는 말을
하는군요.
심랑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우리가 이곳에 숨으면 또하나의 좋은 점이 있소.
웅묘아가 물었다.
어떤 좋은 점인가?
쾌활림 중에서 아마도 이곳에만 음식이 있을 것이네. 왜냐하면 쾌락왕은
매우 음식물에 까다로운 사람이거든. 그리고 자신이 먹는 음식에는 독이
있을 수 없지.
그가 말을 끝맺자 마자 그의 양손에는 기적 같이 술병과 한 접시의
건포도와 과일이 들려 있었다.
주칠칠은 하마터면 환호할 뻔했다. 그녀는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심랑, 당신은 정말로 사랑스러워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쾌활림 속은 매우 조용했다. 수백 명의 인원이 수색을 하면서도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단지 간간히 개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쾌락왕은 이미 한 시진 이상 말이 없었다.
그가 말하지 않으니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녁 안개가 짙어지며 하늘도 어두워졌고 천지간에는 살기가 충만했다.
쾌락왕은 갑자기 탁자를 치면서 매섭게 호통쳤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몇백 명이서 네 사람도 찾지 못하다니 살아서
뭣하느냐?
다시 약 한 시진이 지나자 더이상 감히 쾌락왕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양미간의 살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간이 서늘하게 했다.
이때 급풍일 호가 풀이 죽은 채로 돌아왔다. 나머지 열한 명도 멀리서
뒤따라 왔지만 감히 가까이 오지를 못했다.
쾌락왕이 매섭게 물었다.
아직도 못 찾았느냐?
급풍일 호는 땅바닥에 엎드렸다.
제자는 '청도관'사방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심랑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급풍일 호는 땅바닥에 꿇어앉아서 감히 다시 일어나지를 못했다.
한참 후, 급풍이 호도 돌아왔는데 안색은 역시 잿빛이었다.
쾌락왕이 물었다.
너도 못 찾았느냐?
급풍이 호도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제자는.......
쾌락왕이 매섭게 말을 받았다.
너도 '송향관' 사방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심랑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단 말이겠지?
급풍이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하고 답했다.
쾌락왕은 대노하여 호통쳤다.
멍청한 놈들! 너희들은 하나같이 쓸모 없고 말하는 것조차 멍청하구나.
급풍이 호는 너무 놀라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드디어 급풍사 호, 오 호...... 전부 다 돌아왔다. 그러나 전부 다
까마귀떼처럼 땅바닥에 꿇어 앉아서 누구도 감히 고개를 드는 자가
없었다.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똑 같았다.
즉, '심랑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였다.
쾌락왕은 연신 큰소리로 호통만 칠 뿐이다.
멍청한 놈들, 쓸모 없는 놈들 같으니라구.
급풍삼 호가 가장 늦게 사냥개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안색은 더욱 보기 안
좋았다.
쾌락왕이 말했다.
사람이 쓸모없으면 개라도 소용이 있었겠지.
급풍삼 호는 땅바닥에 엎드렸다.
제자는 개들을 데리고 계속 쫓아가다가 시냇가에 도착했습니다만.......
쾌락왕이 냉소를 날렸다.
심랑은 너희들보다 똑똑하니 물론 물 속으로 들어갔겠지.
네!
쾌락왕이 호통쳤다.
그러면 건너편? 그들은 육지로 올라갔을 것이 아니냐?
대흑과 이흑이 건너편으로 가서 한 시진 동안 냄새를 맡았지만 종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쾌락왕이 화를 냈다.
닥쳐라! 심랑이 물 속으로 꺼지기라도 했단 말이냐?
급풍삼 호는 급히 땅바닥에 엎드리며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쾌락왕은 분통을 터뜨렸다.
밥통들, 모두가 밥통들이다. 겨우 네 사람을 너희들이 찾지 못하다니.
심랑이 귀신도 아닌 바에야 설마 땅 속으로 꺼졌단 말이냐?
급풍일 호가 땅바닥에 엎드려서 말했다.
제자 등은 확실히 쾌활림의 사방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쾌활림에 바늘
하나가 떨어졌다고 해도 제자들은 찾을 수 있었다고 자신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심랑을 찾을 수 없단 말이냐......?
그는 냉랭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마도 너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눈을 빛내면서 말을 멈췄다.
급풍일 호가 말을 받아서 말았다.
쾌활림 중에서 딱 한 곳만 아직 수색하지 않았는데 바로 대왕의
침궁입니다.
쾌락왕은 갑자기 뛰어 오르면서 호통을 쳤다.
너는 벌써부터 생각했어, 그렇지?
급풍일호가 떨리는 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제자...... 제자는.......
쾌락왕이 호통쳤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제자는 심랑이 설마 그 곳에 갈 줄은.......
쾌락왕은 호통을 쳤다.
멍청한 놈, 그는 당연히 남들이 생각못한 곳에 숨을 것이 아니냐. 멍청한
놈,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그는 자신이 생각 못한 것은 탓하지 않고 오히려 남들이 일찍 말하지 않은
것을 탓했다. 사실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그의 속하 중 누가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급풍일 호는 반박도 못하고 단지 연신 머리를 땅바닥에 쳐박으며
뇌까렸다.
제자가 못났습니다. 제자가.......
쾌락왕이 호통쳤다.
어서 빨리 가지 않고 뭘 꾸물 대느냐?
심랑 등은 모두 다 한 시진 이상을 잤다. 그들은 모두 힘들고 지쳤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맘놓고 깊이 잠들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다해도 그들의 체력은 많이 회복됐다. 특히 심랑은 보기에
정신이 맑은 것이 마치 삼 일 동안 잠을 잔 듯했다.
주칠칠은 그의 품 속에 안겨서 마치 작은 고양이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웅묘아는 안절부절 못 하였다.
우리는 언제 나가지?
심랑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게.
이때 창 밖에 개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멀리 있는
듯했다.
웅묘아가 탄식을 했다.
이상하군. 그들은 정말로 이쪽으로 오지를 않는군. 저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한 사람도 이 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야 쾌락왕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지.
주칠칠이 '픽’하고 웃었다.
그는 당신에게 속았는데 뭐가 무서워요.
쾌락왕은 평소에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오. 그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기에 평소에도 독단적으로 일을 행사하고 전혀 남들의
충고는 듣지 않았소.
주칠칠이 말했다.
그래요. 그는 독선적인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번만은 그도 소홀했소. 왜냐하면 이곳은 자신이 기거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소. 사람들은 자신들 주위의 일들은 가장 소홀하기 쉬운
거요. 특히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은 일사불란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신발과 양말이
어딨는지는 잊고 있지.
당신은 모든 사람의 심리를 그렇게 잘 이해하다니 정말 이상해요. 당신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남들보다 많이 알죠?
주칠칠의 말에 심랑은 약간 웃어 보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소홀했다면 그의 부하는 분명히 그를 일깨워줬을
것이오. 하지만 쾌락왕은 평소에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감히 그에게 말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테지.
주칠칠이 한탄을 했다.
난 정말 그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한 사람이 아무리 총명하고
똑똑하더라도 백여 명이 합친 것만큼 똑똑하지는 못할 것이라고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홀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한 번의 소홀함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요.
심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옛말에 세 명의 가죽쟁이가 한 명의 제갈량을 이긴다고 했잖소.
웅묘아는 아직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사람들은 왜 한 사람도 이곳을 보러오지 않지?
심랑이 말했다.
쾌락왕의 명이 없이는 아무도 그의 침궁에 들어올 수 없지.
웅묘아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렇군. 그는 너무 무서운 존재이기에 자신을 해친 거야. 이렇게 본다면
사람은 너무 무서워도 안 되겠어.
이때, 창 밖에 갑자기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만 해도 조용했지만 약간의 바람소리도 들렸고 개짖는 소리도
들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갑자기 공동묘지처럼 조용했다.
밤은 깊었고 창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은 심랑의 얼굴에 머물렀다.
심랑은 안색이 약간 변하면서 급히 일어났다.
이제 그들은 수색을 다 마쳤소. 곧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니 그만
떠납시다.
주칠칠, 왕련화는 즉시 밖으로 나갔다.
웅묘아는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탁자에서 붓을 들고는 먹물을 잔득 먹인
후, 백설같이 하얀 벽에다 글씨를 썼다.
댁들의 초대에 매우 감사를 드립니다.
다 쓴 후 뭔가 빠진 듯하여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몇 자 적었다.
다만 술이 너무 적었소.
처량한 달빛은 조용히 이 죽은 듯한 쾌활림의 나무들과 꽃밭을 비췄다.
또한 저 정교하고 고아한 정자와 누각, 그리고 산석과 흐르는 물을
비췄다.
모든 나무와 모든 꽃밭, 그리고 모든 정자와 누각의 음영 중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위기와 함정이 매복되 있는 듯했다.
주칠칠은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조용히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심랑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가자'라고 말하면 웅묘아와 왕련화는 즉시 당신을 데리고 저
정자를 돌아 곧장 화신사의 동굴을 향해 달려갈 것이오. 하지만 절대 동굴
깊이 들어가지는 마시오.
주칠칠은 대경실색을 하였다.
화신사? 동굴에? 하지만. 하지만 쾌락왕은 그 곳에 있잖아요?
심랑은 약간 미소 짓더니 말했다.
쾌락왕은 갑자기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아니, 우리가
반드시 이곳에 있다고 단정을 하고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오. 그는 자신의
이 실수에 대해서 분명히 매우 부끄럽고 화가 났을 것이오. 부끄럽고 화가
났으니 그는 반드시 모든 인원의 힘을 동원할 것이며 절대로 주력을
그곳에 남겨두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서.......
그는 숨을 한 번 들이키고는 다시 말했다.
그곳에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당신들 셋의 능력으로는 넉넉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오. 그곳은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당신들이
결투를 벌인다고 해도 여기서 들리지는 않을 것이오.
주칠칠이 말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
심랑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다른 곳은 그곳보다 훨씬 못 하오. 첫째, 그 곳은 언제나 은밀하오.
그래서 몸을 숨길 곳이 다른 곳보다 많소.
주칠칠도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둘째, 그곳은 쾌활림의 외곽이라 나가는 출구가 많소. 특히 이 어둠
속에서 우리는 수시로 뛰쳐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주칠칠과 웅묘아가 동시에 말했다.
그렇군.
셋째, 쾌락왕의 웅대한 재능과 위대한 계략은 일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소. 그가 전력으로 이곳을 향해 덮쳐오고 있다해도 다른 곳도
역시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가라앉은 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내 추측으로 그는 분명 부하를 십에서 십오 개의 소대로 나눌 것이오. 그
중 최소한 반 이상은 이곳을 덮치게 하고 나머지는 부채꼴로 쾌활림에서
수색을 펼칠 것이오. 그리고 수시로 신호탄으로 연락을 할테고. 그러니 그
화신사 뒤의 동굴 외에는 쾌활림 도처에 위험이 깔려있다는 거요.
이때는 왕련화 마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쾌락왕은 조금 전에는 자신의 거처를 소홀히 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화신사의 동굴을 소홀히 할 것이오.
웅묘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내가 만약 쾌락왕이라면 분명히 화신사의 동굴을 유의하지 않을
것이오. 자신이 금방 그곳에서 돌아왔으니 말이오.
심랑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심리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오. 반드시
쾌락왕의 심리를 장악해야만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소.
주칠칠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의 추측이 틀리면 어쩌죠?
이번 작전은 우리의 생사를 건 것이오. 우리는 이미 목숨을 도박에
걸었소. 우리의 생사는 바로 일념에 달려있는 거요.
그는 하늘을 향해 길게 탄식을 내뿜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추호의 착오로도 곧 목숨을 다른 사람에게 잃게 되는
것이오. 비록 이번 도박이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소.
그가 말을 다 끝내자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침중했다.
웅묘아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목숨으로 도박을 하고 목숨으로 판돈을 삼는다...... 흠! 대단한
도박이군.
왕련화가 말했다.
심랑아! 심랑! 다만 당신의 판단이 옳기를 바랄 뿐이오. 당신은 절대
틀려서는 안되오. 당신이 도박에 건 것은 비단 당신의 목숨만이 아니오.
우리 세 사람의 목숨도 당신 손에 달려있소.
심랑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만 당신들이 목숨을 걸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단지.......
주칠칠이 그의 말을 막으며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우리 세 사람만 동굴에 들어가라는 말인가요?
그렇소. 당신들 세 사람이오.
당신......! 당신은요?
나는 이 곳에 남을 것이오.
주칠칠은 크게 놀랐다.
당신은 이 곳에 남는다고요? 왜죠?
당신과 내가 다 간다면 사냥개가 반드시 우리의 뒤를 쫓을 거요. 나는
이곳에 남아서 사냥개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만 하오. 당신들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주칠칠의 아름다운 얼굴이 핏기를 잃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들의 주력이 다 몰려오고 쾌락왕도 그렇게
무서운데...... 그렇게 무서운데 당신 한 사람만 남겨 놓는다면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비록 위험하지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오.
주칠칠은 그를 끌어 안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안 돼요. 저는 당신 혼자 남겨둘 순 없어요. 절대로 안 돼요.
심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어린애처럼 굴지말고 어서, 착하게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시오.
주칠칠은 발을 동동 굴렀다.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그녀는 눈물이 가득한 눈망울을 들어 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이번만은 제가 당신 곁에 있게 해줘요.
심랑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볍게 매만지면서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단지 내게 위험만 배가 시킬 뿐이오. 당신은 내가
위험하기를 바라오?
주칠칠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이 만일에.......
네 사람이 다 죽는 것보다는 나 혼자 위험을 맞는 것이 나을 것이오.
내가 이 곳에 남는다면 우리 네 사람이 활로를 찾을 수 있소. 그렇지
않으면 아마.......
주칠칠은 소리없이 통곡을 하듯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위험에 빠진다면.......
안심하시오. 나는 절대로 죽지 않소. 이 세상에 나를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소. 그 사람이 쾌락왕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요.
당신은 나를 믿어야 하오.
주칠칠은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그를 한참 주시했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절대 죽지 않아요. 나를 위해서라도 절대 죽지
않아요.
웅묘아가 눈을 비비고는 억지로 웃었다.
어째서 인간 세상에는 눈물을 억누를 수 없는 일들이 있을까, 왜......?
갑자기 '스스'하는 경미한 소리가 전해졌다.
심랑이 가볍게 외쳤다.
가자!
주칠칠은 여전히 그를 안고 싶었다. 그러나 심랑이 그녀를 밀쳐내자
웅묘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박쥐처럼 작은 정자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달빛 아래 주칠칠의 눈물어린 눈이 아직도 심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물같이 부드러운 온정을 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심랑, 당신은 조심하셔야 해요. 저를 위해서라도 제발 조심하셔야 해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몇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모두들 거의 소리가 나지
않게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다. 다만 사람이 많다보니 경미하게 '스스'하는
소리가 난 것이었다.
심랑은 마치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 숨어서 조용히 지켜봤다.
수십 개의 인영이 이집의 바로 악에 도착하자 곧 분산되더니 크지도 않는
이집을 빽빽하게 포위했다.
이 수십 명의 인영은 마치 칼빛이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놀래키기라도 하는
듯, 긴 칼을 팔 뒤꿈치에 숨겼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고양이처럼
가볍고 민첩했다.
심랑은 내심 생각했다.
(쾌락왕의 문하에 있는 자들은 과연 모두가 고수로구나.)
생각하는 동안 또다시 삼사십 명의 대한이 접근해 왔는 데 손에 모두 활을
들고 있었다. 그들도 이 집을 완전히 포위했다.
뒤에 온 대한들의 무공은 좀 약해서 행동할 때도 약간의 발걸음 소리를
냈다. 이제는 이미 집을 포위한 뒤라 집 안에서 알아챌까 염려는 하지
않았다.
심랑은 내심 생각했다.
(쾌락왕은 과연 비상하군. 이럴 때에도 이렇게 겹겹이 배치를 하면서
추호의 혼란도 없으니 말이야. 만약 그가 오자마자 안으로 뛰쳐 들어가려
했다면 그는 하수(下手)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드디어 쾌락왕을 발견했다.
쾌락왕의 눈은 마치 보석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비록 그는 조용히 서
있었지만 그 비범한 기세는 족히 사람을 억눌렀다.
갑자기 그가 손짓을 하자 백여 명의 인영이 내려와 엎드렸다.
쾌락왕이 대갈했다.
심랑! 어서 나와라! 너는 이미 본왕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다시는
도망갈 수 없다.
집 안에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쾌락왕이 매섭게 소리쳤다.
심랑, 본왕은 네가 영웅임을 존경하는 뜻에서 네 스스로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설마 자신의 처지도 몰라서 본왕이 나서야겠느냐?
집 안에서 응답을 할 리 만무했다.
쾌락왕은 다시 매섭게 외쳤다.
좋다, 그렇다면.......
그가 손을 휘젓자 갑자기 이삼십 개의 불빛이 밝혀졌다.
불빛들의 반짝임 속에서 또다시 이십여 명의 사람이 달려왔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발로 차는 자가 있고 또는 발로 문을 차는 자도
있었다.
이십여 명이 함께 쳐들어가더니 곧 소리쳤다.
심랑은 이곳에 없습니다.
쾌락왕은 안색이 변했다.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그의
몸은 마치 사막의 독수리처럼 사람의 무리에서 달려 나왔다.
심랑도 내심 찬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 경공이군.)
쾌락왕은 구불구불한 회랑에 도착하자 마자 크게 외쳤다.
뒤져라!
그는 이어서 다시 손뼉을 치니 한 대한이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곧이어 맹견들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심랑은 심호흡을 한 뒤 손바닥에 십여 개의 엽전을 쥐었다.
급풍삼 호는 네 마리의 맹견을 이끌고 나는 듯이 달려왔다.
이 네 마리의 맹견은 서장(西藏)산인데 성격이 잔혹하고 포악한 것이 마치
배고픈 호랑이 같았다. 여덟 개의 눈은 마치 여덟 개의 등잔불 같았다.
갑자기 그 여덟 개의 등잔불이 꺼졌다.
맹견들이 울부짖으며 악으로 덮쳐가자 급풍삼 호도 더이상 붙잡지 못했다.
결국 네 마리의 장님이 된 맹견들은 마치 미친 호랑이처럼 덮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맹견에게 목을 물려 목이 부러졌다.
대한들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쾌락왕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매섭게 호통쳤다.
개를 죽이고 사람을 뒤쫓아라!
곧 수십 자루의 칼빛이 번쩍이더니 네 마리의 개는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때 심랑은 이미 수 장 멀리 있었다. 그는 이제 뒤쫓아오는 사람이
없겠거니 하고 뒤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이 장(二丈) 밖에서 한
쌍의 빛나는 눈동자가 쫓고 있었던 것이다.
쾌락왕이 직접 뒤쫓아 온 것이다.
쾌활림에는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즉시 이곳 저곳에서 나기 시작했다.
쾌락왕은 한편으로는 뒤쫓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 짧막한 호각소리를 내서
사방의 매복들에게 알렸다. 그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심랑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랑도 자신이 지금 겹겹이 싸인 포위망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수시로 누군가가 그의 악길을 막는 사람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길막는 사람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가 두려운 사람은 바로 줄기차게 자신을 뒤쫓고 있는 쾌락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체력소모가 너무 많아 이런 상황에서 쾌락왕과 대적한다면
결국은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도저히 쾌활림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쾌활림 밖의
활과 불화살은 피와 살로 된 몸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상황은 점점 더 위급해졌고 심랑의 옷은 이미 홍건히 땀에 젖어 있었다.
쾌락왕은 매섭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랑, 어디까지 도망갈 것이냐? 어서 멈추고 본왕과 생사를 건 일전을
벌이는 것이 어떠냐?
그는 지금 심랑이 절대로 그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이때 주칠칠과 왕련화, 웅묘아는 안전하게 화신사의 동굴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사오 명의 소녀가 탁자를 치우고 있었다.
이때 그 중 한 명이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오늘 정말로 화가 나셨나 봐.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은 처음
봤어. 심랑은 확실히 대단해.
또 한 명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야. 대왕께서도 오늘 심랑에게 한 방 먹었잖아. 겉보기에는
아주 점잖고 영기가 있어 보이더니 그렇게 무서운 인물일 줄은 미처
몰랐어.
얼굴이 동그란 소녀가 말했다.
그가 비록 대단하다지만 두 손으로는 절대로 네 손을 대적할 수는 없어.
내 생각에 그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어. 너희들 대왕의 무공을 본 적이
없지?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대왕의 무공은 정말로 놀라 자빠질 정도로
높아.
다른 한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심랑처럼 젊은 사람이 그렇게 죽게 되다니 너무 아깝다.
가만히 보니 너 혹시 그를 맘에 두고 있는 것 아냐?
얼굴이 동그란 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심랑 같은 남자를 누가 싫어하겠어?
주칠칠은 그 말을 들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웅묘아가 작게 말했다.
뛰어 나갈까?
먼저 저 등잔을 끌까요?
주칠칠의 말에 왕련화가 말렸다.
안 되오. 이들 다섯을 한꺼번에 죽이지 못하고 한 사람이라도 놓친다면
우리는 끝장이오.
그럼...... 그럼 어떻게 하죠?
왕련화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기서 꼼짝말고 기다리시오. 내가 먼저 나가겠소.
이때 얼굴이 동그란 소녀가 손에 쾌락왕이 마시다 만 반 잔의 술을 들고
웃으면서 외쳤다.
심랑, 여기서 당신에게 올리겠어요. 빨리 죽기를 바라겠어요.
다른 소녀가 웃으면서 물었다.
너는 그 사람이 좋다면서? 그런데 왜 그가 죽기를 바라지?
그가 비록 죽지 않는다해도 어차피 내 차례에는 돌아오지 않을 텐데 아예
죽는 것이 더 깨끗하지. 그래야 모두들 그를 얻을 수 없잖아.
넌 정말로 대단히 악랄하구나.
동그란 얼굴의 소녀가 말했다.
여자의 마음은 본래부터.......
이때 왕련화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걸어 오면서 말했다.
입으로는 비록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오. 내 말이
어떻소?
소녀들은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했다. 하지만 왕련화의 신색이 상당히
침착하고 빙그레 웃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기색이 약간 가셨다.
소녀들은 다시 왕련화가 멋들어진 미소년인 것을 보더니 이제는 두렵지도
않을 뿐더러 눈에 웃음기까지 돌았다.
둥근 얼굴의 소녀는 뚫어지게 왕련화를 보면서 호통을 쳤다.
네가 감히 이곳에 오다니 죽고 싶으냐?
그녀는 짐짓 아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왕련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들의 손에 죽는다면 소생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다른 소녀가 끼어 들었다.
당신이 잘 생겨서 우리가 못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왕련화가 탄식을 하였다.
소생도 사실 감히 오기가 두려웠소. 하지만 아가씨들이 하나같이
선녀처럼 아름다워서 소생은 자신도 모르게 그만...... 하물며 소생은
이미 살길이 끊긴 마당이니 이제 아
가씨들 손에 죽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오.
자, 아가씨들, 어서 나를 죽여 주시오.
그는 말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소녀는 깔깔 웃어댔다.
애, 저 사람 말하는 게 얼마나 불쌍하니?
멀리 숨어 있던 웅묘아도 가볍게 웃음 지었다.
왕련화는 여인에 대해서는 정말로 대단해.
주칠칠이 한탄을 하였다.
저들은 평소에 쾌락왕이 너무 엄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쾌락왕을 너무
무서워하지요. 그래서 일단 쾌락왕만 곁에 없으면 그녀들이 이렇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어요.
여인의 심리를 잘도 아는군.
나도 여자인 걸요.
왕련화는 아주 불쌍한 모습을 하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들의 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래서 불쌍한 사람
죽이기를 안스러워 한다는 것을 말이오. 하지만 아가씨들께서 나를 죽이지
않으면 아가씨 자신들에게 폐가 될 것이오.
그 소녀가 탄식을 흘렸다.
당신은 정말로 친절하시군요. 안타깝게도.......
아가씨께서는 설명 안 해줘도 됩니다. 나도 아가씨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는 이제 도망갈 수도 없고 곧 죽을 사람인데 어찌
아가씨들에게 누를 끼치겠소? 난....... 난 단지 죽기 전에 아가씨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을 뿐이오.
얼굴이 둥근 소녀가 말했다.
말하세요. 어떤 일이든 해주겠어요.
그 말을 하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나머지 아가씨들도 지그시 입술을
물고 얼굴에는 붉은 노을이 번졌다.
왕련화는 눈으로 이 광경을 보면서 내심 웃었다.
난 단지 아가씨씨들께서 나와 술 한 잔만 같이해 준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그 소녀들은 그의 요구가 단지 술 한 잔을 하자는 것이자 실망하는 빛을
띠었다. 둥근 얼굴의 소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물었다.
단지 그것 뿐인가요?
왕련화가 참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도 만족합니다. 그 이상 더 뭘 바라겠소?
둥근 얼굴의 소녀가 나무랐다.
겁장이군요.
왕련화는 일부러 모른 체 하며 물었다.
아가씨께서는 거절하는 겁니까?
둥근 얼굴의 소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 웃음을 치며 말했다.
방금 당신이 다른 요구를 했어도 우리 자매들이 들어줬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왕련화는 멍해진 듯이 말을 더듬었다.
난...... 난...... 지금.....
둥근 얼굴의 소녀는 웃으면서 얼굴을 꼬집었다.
당신은 바보예요. 지금은 이미 늦었으니 어서 술이나 따르세요.
소녀들은 교태를 부리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왕련화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술을 따랐다. 둥근 얼굴의 소녀가 술잔을 들더니
매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상심하지 말아요. 이 술을 마신 후 어쩌면 다시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까.
왕련화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손에 든 술을 온몸에 쏟았다.
그러자 소녀들은 더욱 재미있어 했고 하나씩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바보.... 겁장이 ......
모두 하나씩 술잔의 술을 깨끗이 비웠다.
왕련화가 중얼거렸다.
나도 다시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오. 다만 안타깝게도.......
둥근 얼굴의 소녀가 물었다.
뭐가 안타갑다는 거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다만 안타가운 것은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가 연달아 '다만 안타까운 것은'이란 말만 되풀이 하는 사이에 소녀들의
매혹적이던 눈들이 갑자기 색깔이 변했다. 흑백이 분명하던 눈들이 죽은
잿빛이 된 것이다.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몸은 마치 흙더미처럼 쓰러졌다.
왕련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정말로 안타깝구나. 한 남자가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를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유쾌하지 못한 일이야,
그는 고개를 돌려서 걸어 들어오는 웅묘아와 주칠칠을 보고 활짝 웃었다.
당신들은 이보다 더 빨리 발작하는 독을 알고 있소? 그녀들을 이렇게
통쾌히 죽게 하는 것도 그녀들에 대한 답례인 것이오.
한참 후, 주칠칠이 조용히 입을 땠다.
심랑이 올 때가 됐을 탠데.
왕련화가 말했다.
그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오. 그렇지 않.......,
주칠칠이 그의 말을 막으며 외쳤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죠?
왕련화가 한 글자씩 내뱉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기다릴 수 없소."
주칠칠은 화가 치밀었다.
닥쳐요. 이 양심도 없는 사람, 심랑이 아니었으면 당신이 이곳까지
도망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겨우 잠시 기다리고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구?
왕련화가 냉소를 쳤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 백비비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을 거요. 그리고
쾌락왕에게도 잡히지 앓았을 것이고 나는 그에게 전혀 감격 하지 않소.
주칠칠이 소리쳤다.
이런 말들 을 왜 아까 그의 면전에서는 하지 않았지?
감히 말할 용기가 없어서요. 이 대답에 만족했소?
웅묘아가 눈을 부라렸다.
난 또 네가 얼마간의 사람이 됐다 싶었는데 이제보니....,
왕련화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웅 형, 당신도 잘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이곳에 더 머물러 있으면
있을수록 위험만 더 가중될 뿐이오. 우리 다 함께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중 몇 사람이라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주칠칠이 분노를 터뜨렸다.
당...... 당신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이말은 바로 심랑이 한 말이었소. 심랑도 이 같은 상황에서는 분명히 나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오.
주칠칠은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묘아 오빠, 당....,
웅묘아가 단호히 말했다.
난 절대 심랑을 버리고 갈 수 없어.
왕련화가 탄식을 흘렸다.
당신들도 이치를 생각해 보시오. 지금 쾌락왕의 온 신경은 온통심랑의
몸에 쏠렸으니 우리가 이 틈에 도망간다면 희망은 대단히 클것이오.
그는 눈알을 굴리면서 웃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하물며 심랑에게 우리 같은 부담이 없다면 그 혼자서는 그래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은 그가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소?
글쎄....
웅묘아의 마음이 약간 움직였다. 그것은 왕련화의 말이 확실히 이치에
맞았기 때문이다. 주칠칠은 그들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좋아요. 당신들 가보세요.
왕련화가 물었다.
당신은?
주칠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나는 여기서 그를 기다리겠예요.
그가 영원히 나타나지 앓는다면?
나는 그래도 기다리겠어요.
언제까지 기다릴 작정이오?
죽을 때까지 기다릴 거에요.
왕련화는 웅묘아에게 물었다.
당신은 저들은 같은 운명의 원앙이라지만 설마 당신도 그녀와 함께 있을
거요?
윈묘아가 답했다.
널 따라 가겠다.
왕련화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래야 사내 대장부의 처세라고 할 수 있지.
주칠칠이 처참하게 웃었다.
정말로 의리의 사나이군요. 웅묘아, 이제야 당신의 진면목을 보게
되네요.
그런가?
주칠칠이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꺼지세요, 어서 꺼지세요. 난‥.....
왕련화가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꺼져야겠어.
말과 동시에 그의 손은 바람처럼 주칠칠의 가슴에 있는 대혈(大穴)을 향해
찍어갔다. 그의 무공으로 주칠칠이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심랑은 뒤따라 오는 쾌락왕이 점점 더 가까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절대의 무림효웅은 과연 뛰어난 점이 있었다. 비록 수년 동안 주색에
빠져 있었지만 여전히 이렇듯 놀라운 경공을 지니고 있었다. 심랑은 모든
신법을 다 썼지만 그래도 그를 따돌리지 못했다. 갑자기 칼빛이
번쩍이더니 심랑의 앞길을 막았다. 심랑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휘두르며 호통쳤다.
친다!
이 '친다!'라는 말은 과연 벼락 같은 위엄이 있어서 앞을 막았던 자가
놀라며 몸을 비켜 섰다. 그들이 심랑의 손이 비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심랑은 칼빛 속에서 이미 벗어난 후였다. 이어서 다시 한 인영이
지나카면서 모든 사람들의 따귀를 세게 갈기자 모두들 땅바닥에 쓰러졌다.
쾌락왕이 화가 치밀어 호통쳤다.
이 짐승들, 이 쓸모 없는 짐승 같으니라구.
대한들이 하나같이 얼굴을 움켜 잡고 일어났을 때 심랑과 쾌락왕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 두 가닥의 인영은 마치 귀신처럼 쾌활림 속에서 종잡을 수 없이
떠다녔다. 쾌활림에 매복해 있는 대한들은 거의 그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이때 심랑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역시 쇠로
만든 사람이 아닌 이상 쓰러질 때가 있는 것이다.
이제 심랑이 쾌락왕의 추적을 따돌리고 다시 주칠칠과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든지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모두가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심랑만은
그렇지 않았다. 심랑은 '불가능'이란 것을 절대 몰랐다.
쾌활림에는 이미 도처에 불빛과 칼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쾌락왕의 폭발할
듯한 호통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나무의 높이보다 더 높은 깃대 위에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깃발 위에는 '쾌활림 (快活林)'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져 있어 이 정원의 이름이 얼마나 유명한 가를 나타냈다.
이때 한 대한이 깃대 위에 기어 올라가 있었다. 그는 손에 불은 등을 들고
있었는데, 심랑이 동쪽으로 도망가면 동쪽을 향해 비춰 주고 심랑이
서쪽으로 가면 등불을 서쪽으로 비췄다. 빽빽하고 겹겹이 들어선 불빛과
칼빛은 붉은 등불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자 포위망이
점점 더 좁아졌고 심랑은 이제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쾌락왕이 광소를 날리며 외쳤다.
심랑, 이런 상황에서도 몸부림 칠 것이냐? 설마 이곳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심랑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관을 보지 않고는 절대로 포기하지 앓는 성미요.
웃음소리와 함께 갑자기 그의 신형이 위로 뛰어 오르더니 곧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너무 급해 경황이 없는 듯했다. 그가 몸을 드러내자 그의 몸은
화살받이가 됐다.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가자 쾌락왕이 오히려 신형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 심랑이 나뭇가지의 탄력을 이용하여 재차 몸을 위로 날리니
사장(四丈)높이 위로 뛰면서 독수리처럼 깃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깃대 위에 있던 대한은 놀라면서도 발을 날려 심랑을 쳐나갔다.
하지만 순간 이 발은 심랑에게 잡혔다. 심랑이 그의 발을 뒤로 잡아 끌자
대한은 비명을 지르면서 날아가는 멀리 있는 숲 속에 떨어졌다.
심랑의 몸은 깃대에 닿자 뱀처럼 깃대 꼭대기 위로 감기 듯 올라섰다.
그리고는 왼발을 들어 금계독립(金鷄獨?)의 자세를 취했다.
깃대의 높이는 거의 십여 장이나 됐다. 그 위에 옷소매를 휘날리며 서
있으니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갈 듯이 보였다. 천하의 모든 영웅이 전부
그의 발아래에 놓인 것이다.
긴 화샅이 아래에서 위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꼭대기까지 올때쯤에는
힘이 약해져서 심랑이 옷읕 벗어 살짝 쓸자 전부 나가 떨어졌다.
쾌락왕은 매섭게 소리쳤다,
심랑!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나? 그이가 그 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얼마 동안을 있든지 당신은 감히 올라올 수 있겠소? 당신은 나를 볼
수가 있지만 나를 잡으러 올라올 수 없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소? 당신이
내 발 아래에서 화를 끓이는 것을 보니 정말로 영광스럽기 짝이 없군.
쾌락왕은 대노했다.
내가 못 올라갈 줄 아느냐?
그의 신형이 갑자기 날아갈 듯이 올라가더니 나뭇가지의 탄력을 이용해서
곧장 깃대 꼭대기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가볍고 민첩하며 아름다운
신법은 가히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심랑의 손에 있던 옷가지가 구름처럼 덮쳐왔다. 비록 가벼운
옷이었지만 심랑의 손으로부터 마치 천 근의 힘이 깃든 듯했다.
쾌락왕의 몸은 허공에 떠있어서 감히 맞받아 치지를 못했다. 즉시 양발을
오무리고 양주먹을 앞으로 쳐나가면서 깃대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바람소리가 일면서 옷은 이미 그의 두 눈을 쓸어갔다.
바로 이 순간 드디어 이 무림 영웅의 뛰어난 무공이 펼쳐졌다. 이 간발의
차이도 용납지않는 순간에 손을 뒤로 돌려서 옷자락을 잡더니 이 잡는
힘을 빌어서 앞으로 덮치려 한 것이다. 심랑의 손이 한 차례 떨자
'찍'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졌다. 이 떨치는 힘에 의해 쾌락왕은 멀리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신형은 당황하지 앓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서서히 땅에 닿았다.
심랑은 큰소리로 웃었다.
대단한 신법이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신법이라도 결코 이 위로는
올라올 수 없을 것이오.
쾌락왕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다시 그의 옆에 있던 대한의 활을
뺏앗다시피 잡더니 화살을 장착하고는 기합을 넣었다.
받아라!
'빡'하는 소리와 함께 활이 부러졌다. 그가 당기는 힘을 못이긴 것이다.
그는 연달아 활을 세 번 바꿨지만 활들은 전부 그의 힘에 의해 부러지고
말았다. 결국 한 자루의 화살도 못 쏘아 올리자 심랑은 깃대 꼭대기
위에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쾌락왕의 힘은 대단하군요. 다만 너무 대단해서 탈이지.
쾌락왕은 갑자기 깃대 아래로 달려가서 한껏 소리 높여 웃으며 외쳤다.
좋아, 심랑아! 이제 본왕의 수단을 맛봐라.
광소와 함께 기마 자세를 틀고는 깃대를 향해 일 장을 날렸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세숫대야만한 굵기의 깃대가 그의 일 장에
부러졌다. 심랑은 곧 땅에 떨어질 처지였다.
사방의 대한들은 모두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심랑은
양다리를 깃대에 꼭 감았다. 깃대가 비스듬히 남쪽으로 쓰러져 가는데도
그의 몸은 여전히 깃대에 꼭 붙어 있었다. 십여 장 길이의 깃대는 십여 장
밖의 지붕 위로 넘어졌다.
심랑은 큰소리로 웃으며 외쳤다.
내가 노린 것이 바로 당신의 이 수단이었소.
'펑,하는 소리와 함께 깃대는 지붕 위의 기와장을 깨부쉈다. 심랑은 이
깨진 기와 지붕에 더 큰 구멍을 만들고는 물고기처럼 쏙 들어갔다. 심랑은
정말로 여우 같았다.
쾌락왕은 놀랍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해서 발을 구르면서 고함을 쳤다.
어서 집을 포위해라. 지붕을 잘 지켜라.
고함을 치는 동시에 그도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것은 작고 정교한 집이었다. 세 칸의 방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쾌락왕이 자세히 보니 아직 집 안에서는 나온 사람이 없었다.
수백 명의 대한들이 이집을 겹겹이 포위했다. 건장한 궁수들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화살을 장착한 채 지붕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은 말아야 했다.
쾌락왕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심랑아, 네가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 갈 줄은 미처 몰랐구나.
하지만 자신을 탓하지는 말아라, 어차피 너는 도망갈 길이 없었으니까.
급풍일호가 성큼성큼 걸어 와서는 몸을 굽혔다.
화공을 쏠까요?
쾌락왕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매섭게 고함쳤다.
심랑! 잘 들어라! 차 반 잔 마실 동안 본왕이 셋을 세겠다. 그 셋을 셀
동안 나오지 않는다면 본왕은 이 집에 불을 질러 너를 화장시킬 것이다.
급풍일호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심랑아! 심랑아! 네가 이번에도 살아서 도망간다면 나는 그길로 내
고향인 소주(蘇州)까지 기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