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장. 何鐵手의 설명.
감히 그녀의 남편인 백검운을 넘겨다보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결코 그냥 두고볼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두 명의 여자들은 너무도 뛰어난 미모와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곽소봉은 건너편의 구석진 탁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모두들 식사를 끝냈으니 더 이상 여기에서 뭘 하겠어요?"
과연, 삼살은 이미 구석진 탁자에서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다소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오늘 이곳에서 너무도 심한 충격과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도저히 흥청거리고 마실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철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거침이 없던 그도 지금은 주문한 돼지고기를 절반도 먹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술잔만 느릿하게 들이키고 있었다.
강호의 인사가 무림에 출도하여 명성을 얻는 것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런 단계가 지나서 이렇게 수모를 당할 때가 오면 그것은 바야흐로 꽃잎이 지는 것과 같이 괴롭고도 불행한 일인 것이다.
이 유명한 세명의 악인들은 과연 명성이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이때, 제갈청청등도 이것을 보고 어쩔 수가 없는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은 기왕
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으니 백검운과 좀 더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이든 처자로서 남의 남편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심평의 경우는 다소 달랐다. 그녀는 성격이 순진한 만큼 그 생각하는 것도 전혀 엉뚱하면서도 격식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백검운을 향해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아참, 우리가 지금 당신들의 집으로 놀러 가면 어떨까요?"
상대방이 스스로 청하면 가는 것이지 자신이 놀러가겠다고 말하는 경우란 없다. 그것은 상대에게 난처한 입장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백검운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따로이 할 일이 많을 테니 우리 나중에 다시 인연이 닿을 때 만나는 것이 어떻겠소?"
'흥, 인연이 닿을 때라고?'
심평은 내심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라 내심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저는 사실...... 할 일이 없고, 이분 제갈낭자도 할 일이 없을 거예요. 그렇죠?"
제갈청청은 이때 심평의 행동이 다소 어이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속으로 백검운이 제법 괜찮은 작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감정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일인 것이다. 허나, 그녀의 이성과는 달리 감정은 따로 의지가 다른 모양이었다.
"예,"
그녀는 엉겁결에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는 잠시 망연한 표정으로 안색을 은은히 붉혔다.
그것을 보고 제갈범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가야 하지 않느냐?"
헌데, 그 말에 심평이 나서서 대신 대꾸했다.
"당신은 혹시 영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굳이 귀찮게 여동생을 달고 다닐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제갈범은 그녀가 갑자기 나서자 은근히 안색이 붉어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심평은 웃으며 밀어붙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혼자 볼일을 보러 가면 되잖아요. 나는 제갈낭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어서 그래요."
제갈범은 이 정도에 이르자 그만 더 이상 우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소생은 이만 가겠소."
이어, 그는 제갈청청을 향해 한번 조용한 미소를 보낸 다음에 몸을 돌려 사라져 갔다.
그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미소를 보낸 것은 너를 믿고 있으니 스스로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감히 자신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곽소봉은 일이 이 정도에 이르자 차마 그녀들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에게는 무림에서의 중대한 신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하지만 우리의 거처가 지저분하다고 흉보면 안 돼요?"
곽소봉은 그녀들 보다는 약 두살 정도가 많았기 때문에 다소 하대를 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심평은 좋아서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니. 내가 곽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곽소봉은 설마 다시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라 내심 흠칫했다. 이 심평은 겉으로는 순진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속에 불여우가 스무 마리쯤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곽소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심동생."
그 말에, 심평은 매우 기쁜 표정을 드러내며 제갈청청에게도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곽언니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고 뭐해요?"
"...........?"
사실, 제갈청청은 결코 곽소봉은 언니로 모시기로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공손히 곽소봉에게 인사를 했다.
"곽언니,"
곽소봉은 이 심평이라는 여인에게 넘어가서 두명의 동생을 두게 되자 내심은 매우 심란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전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친구이자 의동생들을 두게 되어서 자랑스럽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제갈청청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제갈동생의 언니가 되다니, 너무 호사하는 것은 아닌가요?"
제갈청청은 비록 마지못해 인사를 하긴 했지만 이제 그녀의 그런 말을 듣게 되자 금방 기분이 풀려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언니, 이 동생을 잘 이끌어 주세요."
"호호.........."
그녀들을 일시 서로를 쳐다보며 맑은 웃음을 흘려 내었다. 그러고는 곽소봉이 말했다.
"그럼 어서 가지. 내가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 줄 테니."
곽소봉은 내심 자신의 여동생 곽소유를 믿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 말에, 심평과 제갈청청은 저마다 웃으며 재잘거렸다.
"좋아요! 언니."
"그럼 어서 가요..........."
이윽고, 그녀들 삼인은 서로 어우러져서 주루를 나서기 시작했다.
원래 이곳으로 들어올 때는 곽소봉은 아주 공손하게 백검운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그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백검운은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담담하게 웃으며 뒤를 따를 뿐이었다. 삼살은 묵묵히 백검운의 뒤를 걸어갔다.
* * *
소요루에 이르자, 일행은 다소 예상치 못했던 일에 부닥쳤다. 그것은 아향이 느닷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곽소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형부와 언니가 나가고 난 뒤에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백화루주가 나타났어요. 그리고는 아향에게 자꾸만 이것저것 캐묻는 것이었어요. 그러더니 어깨를 한번 보자고 하면서.........
곽소유의 말을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았다.
백화루주인 상관낭랑이 나타나서는 아향에게 어릴 때의 여러 가지 일을 묻더니 어깨에 붉은 화염모양의 문신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놀랍게도 아향에게는 그런 문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관낭랑은 갖은 말로 설득을 하여 그녀에게 자신을 따라가자고 하더니, 그러다가 갑자기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곽소유는 설마하니 그들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런변을 당하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빛을 띠고 있었다.
백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가 백화루주를 따라간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소."
하긴, 백화루에서도 아향과 상관낭랑이 뭔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상관낭랑은 그때 거기에서 아무 말도 없더니 이렇게 직접 나타나서 그녀를 데려간 것이리라. 대체 상관낭랑과 아향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관계일까?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미 걱정한다고 아향이 돌아올 일이 아니므로 곽소유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와 아향이 미리 백검운에게 올리기 위해 마련한 음식들이 있었으므로 몇 가지의 음식을 그저 간단히 데워서 가져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음식 가운데는 간식 종류가 많았다. 지금 소요루에 나타난 손님들은 두 명의 여인이었고, 여인들의 기호라는 것은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곧 곽소유를 대동하여 대청으로 가서 즐겁게 얘기하며 놀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그녀들은 이제는 백검운의 존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검운 역시 전혀 아쉽지가 않아서, 스스로 혼자 서재에 들어가서 정좌를 하고 바닥에서 깊은 묵상에 잠겼다.
그런데, 바로 그러던 중에 아향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아주 기이한 형태였다. 백검운은 한참동안 묵상을 하고나서 깨어보니 이미 등 뒤에 한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심코 물었다.
"소봉, 당신이오?"
허나, 뒤에서는 대답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그 사람은 아향이 아닌가?
백검운은 즉시 신형을 일으켜서 그녀를 맞으며 물었다.
"아니, 너는 아향이 아니냐?"
아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이미 심하게 울었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을까?
하지만, 백검운은 그녀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물었다.
"아향, 너는 내가 전에 전수해준 대자대비관음선공을 이미 완전히 터득했느냐?"
아향은 그가 느닷없이 그런 것을 묻자 다소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아, 아직은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백검운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이리 와서 앉거라. 내가 그것을 자세히 풀이해 주마."
아향은 얼마동안 그와 함께 있지 못하다가 다시 이런 방안에서 그와 단둘이 앉아있게 되자 문득 안색이 붉어졌다. 허나, 결코 그녀는 그것이 싫지 않았기 때문에 얼른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백검운은 그녀를 향해 처음부터 천천히 구결을 일러주며 가르치기 시작했다.
원래, 백검운은 그녀에게 가르쳐준 대자대비관음선공의 비급에도 모두 통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참동안 구결의 설명을 해주고 그 운용방법을 일러준 다음에 물었다.
"이제 완전히 알겠느냐?"
아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으리."
실로 그녀는 이제는 구결의 뜻을 모두 알게 되어서 당장은 비록 완전하게 체득하지는 못할지라도 나중에는 필시 십이성의 성취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자, 백검운은 미소하며 말했다.
"사실 이 내공구결은 마음이 심란할 때 사용하면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효과가 있느니라."
그 말을 듣자, 아향은 일시 백검운이 이 무공을 자신에게 일러준 것이 결코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나으리는 이미?........."
백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뿌리는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거기에 휩쓸려 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자신을 좋게 이끌면 되는 것이지. 너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내가 일러준 내공구결을 암송해 보도록 해라."
이에, 아향은 그만 왁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전, 전 절대로 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나으리의 곁에서 항상 시중을 들어드리면서 살거예요."
백검운은 그저 담담히 미소하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 * *
아향은 이윽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번에는 간식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백검운의 곁으로 다가들며 묻는 것이었다.
"나으리, 혹시 어깨가 아프시지는 않나요?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그녀의 이러한 시중드는 태도는 전보다도 더욱 극진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곧 헤어져야할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백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비록 어깨가 아프지는 않지만 네가 주물러주는 것이라면 사양하고 싶지 않구나."
그것은 바로 백검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비록 곽소봉과 인연이 이상하게 닿아서 부부지연을 맺었지만, 그래도 가장 오래도록 정이 많이 든 사람은 아향이었다. 그리고 어찌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섭섭하지 않겠는가?
아향은 간식을 백검운의 앞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아주 정성을 들여서 오랫동안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그러는 그녀의 손길에는 짙은 애정이 담뿍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마냥 그렇게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잔치가 없듯이, 어떠한 즐거운 시간도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하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 문득 방문이 열리며 곽소유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방안의 정경을 보고 다소 웃더니 정색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형부, 손님이 찾아왔어요."
백검운은 아향의 손길을 멈추게 한 후에 물었다.
"누가 찾아왔소?"
곽소유는 잠시 아향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백화루주가 왔어요."
그 말에, 아향의 얼굴은 가볍게 변하는 것 같았다. 백검운은 잠시 아향의 얼굴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가보자."
그리고는 앞장을 서서 대청으로 걸어 나갔다.
* * *
이때 대청안에는 곽소봉과 심평, 제갈청청 등이 한 사람을 맞으며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백화루주인 상관낭랑이었다. 상관낭랑은 백검운이 안에서 걸어 나오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맞았다.
백검운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자리에 앉아 계십시오."
이어, 그는 자리에 앉자 상관낭랑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상관낭랑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백검운의 뒷쪽을 살피며 뭔가를 찾는 듯 했다. 바로 그녀는 아향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향은 서재에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상관낭랑은 다소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이미 짐작은 하셨겠지만, 아향은 제 딸이예요."
그 말은 비록 충격적이었지만, 백검운은 이미 예상하고 있어서 그다지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매사를 신중하게 해결하는 성격인지라 웃으며 물었다.
"거기에 관해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해주시겠습니까?"
상관낭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지요."
말이 끝나자, 그녀는 문득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망사를 벗어들었다. 순간,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볍게 놀랐다. 이 상관낭랑의 얼굴은 바로 아향의 그것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아마 진짜 모녀지간이라고 해도 이렇게 닮은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아향이 만일 나이가 든다면 상관낭랑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관낭랑은 기질이 차분하고 조용한데 비해 아향은 맑고 청순한 기품이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상관낭랑은 자신의 얼굴을 백검운에게 보여준 뒤 다시 망사를 쓰며 말했다.
"저의 얼굴을 보여드린 것은 물론 확실한 증거가 되지 않지만, 실은 보다 중요한 증거가 있어요. 그것은 제가 딸이 어렸을 적에 그녀의 어깨위에 불꽃모양의 문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향에게는 그것이 있었어요. 바로 제가 만든 것과 모양이 일치해요."
아마 딸자식의 어깨에 불꽃모양의 문신을 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관낭랑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백검운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왜 그때 백화루에서는 꺼내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말하는 것입니까?"
상관낭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당시 백화루에는 성모께서 계셨었지요. 그래서 감히 저의 사사로운 일을 꺼내놓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러나 사실 여러분이 누각을 나간 뒤에 저는 계속해서 아향의 행적을 수소문해 왔어요."
상관낭랑의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어떻게 집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에 나타나 아향을 데려갈 수가 있겠는가?
백검운은 담담한 시선으로 상관낭랑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헌데 어떻게 해서 딸과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얘기를 해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상관낭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제 딸과 헤어진 것은 바로 십삼 년 전이예요. 그때는 난리를 만나서 저의 남편과도 헤어지고 저는 딸을 안은 채 쫓기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잠시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딸을 숨겨놓고 나서 다른 곳으로 적을 유인하고 도아오니 이미 제 딸은 없어졌어요. 그 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그 부근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제 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백검운은 다시 물었다.
"당시 딸과 헤어질 때 무슨 증표라도 남겨둔 것이 있습니까?"
상관낭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워낙 촉망중이라, 그때는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약간의 보석을 놔두기는 했었지만 다른 것은 남길 겨를이 없었어요."
백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관낭랑의 말은 사실과도 매우 부합되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맞는지는 아마 아향이 더 잘 알 것이며, 그녀는 이미 그것을 확인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상관낭랑은 아향의 어머니가 분명하다.
원래, 아향의 부모가 누구인가가 매우 궁금했고 또한 부모를 찾아주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검운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부군은 무엇을 하는 분인지 말해주실 수가 있습니까?"
아마 상관낭랑의 남편은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 뻔했다. 그런데, 상관낭랑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그 점 이해해 주세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해졌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그녀의 남편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만일 그녀의 남편이 아직 살아있다면 어째서 그녀는 지금 일개 기루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실로 간단치 않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기를 꺼려하니 더 이상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백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재를 향해 아향을 불렀다.
"아향, 이리 나오너라."
그러자, 잠시 후에 아향이 마지못해 천천히 방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그러나 상관낭랑의 곁에는 가지 않고 다소 울먹이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겠어요."
백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너의 친어머니가 아니냐?"
상관낭랑은 벌떡 신형을 일으켜서 그녀를 불렀다. 아마 아향은 그녀가 처음에 데리고 갔었는데 도망쳐 왔었던 것 같았다.
"얘야, 나는 너를 강제로 데려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네가 필히 나를 따라가야 한단다."
아향은 그 말에 고개를 쳐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여태 제가 없어도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상관낭랑은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얘야, 거기에 관한 사항은 여기에서 말해서는 알 수가 없고 네가 필히 나서야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게 되었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향은 즉시 반박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일이 아닌가요? 제가 그렇게 필요했다면 왜 여태 나를 찾지 않았죠?"
그것은 그녀가 여태 수없는 고생을 한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상관낭랑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얘야, 나는 그간 너를 매우 찾아 헤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향은 소리쳤다.
"그것은 다만 핑계가 아닌가요?"
그녀의 두 볼은 흘러내리는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상관낭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너를 일시의 잘못으로 잃어버려 많은 고생을 하도록 했으니 할 말이 없다. 나는........ 더 이상 네게 강압적으로 말할 수가 없구나."
아향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는 비록 떠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당신을 따라가지 않겠어요."
백검운은 그것을 보고 나서서 상관낭랑에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 갑자기 떠나려고 하니 생경스런 마음이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제가 천천히 달래볼 테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관낭랑도 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그렇게 신경을 써주시겠다니 정말로 감사를 드려요. 아무쪼록 그동안 제 딸을 잘 보살펴 주세요."
백검운은 마주 신형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점은 염려 마십시오."
그러자, 상관낭랑은 잠시 아향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몸을 돌려서 대청 밖으로 걸어나갔다.
백검운은 그녀를 문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말에, 상관낭랑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별 말씀을,"
이어, 그녀는 가볍게 신형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마치 허깨비처럼 번쩍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신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백검운은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때, 곽소유가 문득 아향에게 물었다.
"친어머니를 저렇게 떠나보내면 마음이 아프지 않아?"
아향은 다소 표정이 어두워졌으나 이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알게 뭐야......."
그리고는 서둘러서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심평과 제갈청청이 작별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사실 백검운과 얘기를 하기위해 이곳으로 왔었으나 다만 곽소봉과 얼마간 놀고 난 뒤에 그냥 가려는 것이다.
백검운은 그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일부러 놀러 오셨지만 변변히 대접을 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것은 그저 의례적은 인사였다. 그런데, 심평은 그의 말에 작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곽소봉을 가리키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거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우리는 오늘 곽 언니와 같은 분을 모시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매우 만족해요."
그리고는 백검운은 전혀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백검운은 그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를 향해 제갈청청이 말했다.
"다음에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래요, 백공자."
그녀는 백검운이 비록 서생이지만 이미 무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를 공자라는 호칭으로 부른 것이다.
백검운은 포권하며 마주 답례했다.
"제갈낭자도 매사가 잘 이루어지길 빌겠소."
그런 가운데, 다시 두 명의 여인이 떠나갔다. 그러자, 이 소요루는 다소 조용한 정적에 사로잡혔다. 특히 아향의 일로 인해 다소 우울한 분위기였다. 곽씨자매도 아향을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와 같은 시중을 드는 사람이 떠난다고 생각을 하자 매우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함께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검운은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 * *
늦은 오후무렵에 한 사람이 백검운을 찾아왔다. 그는 바로 남궁호였다.
"사부님........"
아마도 남궁소소의 얘기를 듣고 찾아온 것 같은데, 그는 백검운을 만나자 여전히 배사지례를 하면서 친근하게 굴었다. 백검운은 부드러운 안색으로 그를 맞아서는 서재의 한쪽에 앉게 하고 아향을 불렀다. 다과를 내오게 할 셈이었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아향이 아니라 곽소유였다. 다소 의아해하는 백검운에게 곽소유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삼살과 함께 밖으로 나갔어요."
백검운은 의아해져서 눈을 크게 떴다.
"삼살과 함께 밖으로?......... 그건 무엇 때문이지?"
곽소유는 웃으며 설명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언니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삼살이 찾아와서는......."
곽소유는 말을 하다말고 뭐가 그리 우스운지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삼살은 자기들이 뭐 할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그들은 아주 기가 많이 죽어 있었어요. 아향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좋은 수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삼살을 데리고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고 했어요."
중주삼살이 매우 기가 죽어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요근래 들어 전혀 기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두려움에 떨고 위축이 되어 있었던 데다가, 아까 주루에서 염소천의 일개 수하들에게 그 지경이 되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원래 그들은 악인이었으나 그래도 사람인지라 뭔가 구실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백검운은 내심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체 아향은 무슨 생각으로 삼살을 데리고 나갔을까?
백검운은 곽소유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대가 다과를 좀 가져다 주겠소?"
곽소유는 이 형부가 자신을 다소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참에 그런 벽을 없애주려고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럴게요. 나중에도 시키실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세요."
백검운은 담담하게 웃었다. 이윽고, 곽소유가 나가자 그는 남궁호에게 물었다.
"집안은 전처럼 별일이 없느냐?"
남궁호는 대답했다.
"예, 하지만 저는 이제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지금은 몰래 나온 길입니다."
아마, 남궁수는 그가 백검운을 찾아갈까봐 여러가지 구실을 붙여서 그에게 제약을 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남궁세가는 명문세가이고, 또한 이번에 영웅대회라는 큰 일을 치루게 되어서 그는 될 수 있으면 어지러운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백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집안이 별일이 없다면 됐다. 너는 그럼 당분간은 나오지 말고 무예에 전념하도록 해라. 그렇게 해야 아버님께서 편하게 움직이시지 않겠느냐?"
남궁호는 공손히 대답했다.
"예,"
백검운은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 네가 혼자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느냐?"
남궁호는 다소 얼굴을 붉혔다.
"예, 그것이 좀........"
남궁호는 사실 백검운이 나간 이후에 전혀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백검운은 그의 내심을 아는지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하든지 급히 서둘러 달성하려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무공도 그렇지만 학문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너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책을 다시 읽어보도록 해라."
"예, 사부님........."
남궁호는 이제 백검운이 사부가 아닌데도 계속 사부라고 불렀다. 달리 부를만한 호칭이 없기 때문이었다. 백검운도 그것을 말리지 않았다. 이윽고, 남궁호는 백검운과 곽소유가 가져온 다과를 들면서 얼마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헌데 그즈음 소요루에는 한 가지 놀라운 사건이 터졌다. 남궁호를 내보내고 났을 때, 느닷없이 하철수가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경황없이 들어왔던 것이다. 마침 남궁호를 배웅하기 위해 문 앞에 나와있던 곽소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당신 혼자서만 오는 거죠?"
하철수는 그 말에 안면을 시뻘겋게 붉히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습죠, 그렇습죠. 나는, 이 하철수는 맞아도 쌉니다. 이렇게 혼자서만 돌아오다니........ 나는 맞아도 쌉니다."
백검운은 그 말을 듣고 실로 그들에게 뭔가 사고가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는 하철수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소?"
하철수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선을 땅으로 처박으며 대답했다.
"예, 있었습니다. 있었으니까 이 하철수가 혼자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곽소봉이 안에서 나오며 다소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게 허둥대지만 말고 자세히 말해 봐요."
그제야, 하철수는 다소 말을 더듬으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우리는 아까 기세 좋게 길을 가고 있었죠."
헌데 문득 곽소유가 물었다.
"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던 것이죠?"
하철수는 잠시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우리는 영웅대회에 참가하게 될 사람들을 조사하려고 했습지요. 아, 아향이 그것을 조사한다면 주인님께서 좋아할 것이라고 해서....... 예, 이것은 오로지 그녀의 생각이었죠."
그제서야 곽소유등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밖으로 나가게 됐는지 알아차렸다. 아향과 삼살은 똑같이 백검운에게 잘 보이려고 특별한 일을 하려다가 무슨 사건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곽소유가 물었다.
"그래서 당신들은 뭔가 알아낸 것이라도 있나요?"
하철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예, 우리는 주루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의 신분을 알아보려고 했습죠. 그랬는데...... 그랬는데......"
곽소유는 그가 말을 더듬자 급히 다시 물었다.
"그랬는데 어찌 되었다는 말이죠?"
하철수는 얼굴이 붉어지며 애써서 설명을 했다.
"우리는 그러니까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죠."
곽소유는 물었다.
"그 사람이 남자였나요, 아니면 여자였나요?"
하철수는 그 말에 미처 생각을 해보지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남자였던가, 여자였던가?......... 아아, 그들은 바로 여자였습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철수는 일시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쳤다. 곽소유는 물었다.
"뭐가 생각이 났죠?"
하철수는 대답했다.
"우리는 별로 소식을 알지 못해서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했습죠. 그런데 갑자기 그 두 사람이 나타나서는....... 아향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죠. 아,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중이죠? 그러자 그 두 사람 중 하나가 말했습죠. 아냐 동생, 우리는 단지 놀러 나왔을 뿐이야."
하철수는 원래 징그럽게 생긴데다가 그가 여자의 흉내를 내자 마치 돼지목 따는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곽소유 등은 총명해서 곧 그의 말뜻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럼 그녀들이 아향과는 이미 아는 사이였단 말인가요? 그래서 어찌됐죠?"
곽소유는 절로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급히 물었다. 하철수는 얼른 다시 대답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다시 말했습죠. 우리 저기에 있는 주루에 가서 한잔할까?"
아마 그녀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철수는 그녀들의 말을 옮긴다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 붙어서 한잔할까로 설명을 했던 것이다.
곽소유는 그 말을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찌됐죠?"
하철수는 대답했다.
"아향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습죠. 그대가........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아무런..........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하철수는 이 부분에서 잘 생각이 나지 않는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곽소유는 그 말을 듣고서 내심 매우 우스꽝스럽게 생각을 하면서도 아미를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그 말은 혹시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두렵지 않다는 말이 아니예요?"
하철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생각하다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두렵지 않다는 말을 했습죠. 그러자, 그녀는 말했습죠. 너는........ 너는 감히 용기가 있느냐?"
곽소유는 이 부분에 있어서 도저히 그 뜻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었다.
"대체 뭐가 용기가 있느냐는 거예요?"
하철수는 그 말에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비록 열심히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선, 위인 됨이 미련스러웠고 또한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과거의 기억들 중 단지 일부의 편린들만이 그의 뇌리에 떠오를 뿐이었다. 하철수는 곽소유의 질문을 받자 일시 해명할 수가 없어서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문득 백검운이 나서서 물었다.
"그녀들은 아향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던가?"
하철수는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녀들은 술을 마시자고 했습죠."
곽소유가 아미를 찌푸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술을 마신 사람은 당신들 세 사람이 아니고 아향도 술을 마시게 됐다는 말인가요?"
하철수는 곽소유의 질문을 받자 다시 머리가 일순 어지러워지는 모양이었다.
"글쎄 그게........ 우리들은 확실히 술을 마셨지만, 그녀는 술을 마셨는지..... 마셨는지 그게 잘 알 수가......."
백검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대는 아향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는 말인가? 그럼 그녀는 분명히 앞에 술을 놓고 있었겠지?"
하철수는 그 말에 다시 정신이 크게 밝아진 듯 소리쳤다.
"바로 맞았습니다. 그녀도 우리처럼 술잔을 하나 들고서........ 들고서 이렇게 말했습죠. 내가 이것을 마시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이건 아니고...... 어쨌든 우리는 그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요."
백검운이 웃으며 물었다.
"아향이 말한 것은 혹시 이게 아니었던가? 좋아요, 내가 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화냥년이라고 해두죠. 그때 그대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철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습니다. 주인님은 마치 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때 그 화......."
하철수가 다시 말을 더듬자 곽소유가 옆에 있다가 말했다.
"화냥년,"
그러나, 그녀는 곧 그 말뜻을 생각해 보고는 일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대체 그 당시의 얘기 가운데 어째서 그런 욕설이 오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화...... 화냥년의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마...... 마시고 있었습죠. 사실, 우리는 매우 갈증이 나서.......... 술이........"
하철수는 말을 하면서 일시 매우 분개한 표정으로 크게 더듬거렸다. 그것을 보고 곽소유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그 술을 마신 다음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군요?"
하철수는 갑자기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곽소유의 손을 얼른 뿌리치고는 대답했다.
"예, 예. 제가 깨어났을 때는 그녀들은 내게 말했죠. 빨리 너의 주인을 모셔오지 않으면....... 않으면....... 이, 이......."
곽소유는 그가 계속 말을 더듬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혼절하여 쓰러져 있었나요?"
하철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습죠. 예, 맞습니다."
곽소유등은 일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철수는 원래 이렇게 말을 더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래들어 성격이 매우 소심해지고 지금 상황이 너무도 다급하다 보니 그는 자연 이렇게 마구 횡설수설을 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일순 그의 말을 알아 듣느라고 진땀을 다 뺄 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체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아향과 삼살은 길거리에서 두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들은 계획적으로 아향의 심기를 격분시켜서 술을 마시게 하고, 아마 그 술속에 미혼약같은 것들을 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대체 그 두 명의 여자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한 것일까?
곽소유 등은 그런 것을 하철수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단은 직접 가보는 것이 현명하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곽소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하철수에게 말했다.
"그럼 어서 우리를 그것으로 안내해요."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