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伝統舞踊(モッ)の息吹
풍습으로 내려오는 전통무용(モッ)의기풍
멋(モッ)は、粋とか味,と訳すことができる.
멋(モッ)은 멋이라든가 맛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멋이 있다.(モシイッタ)となれば粋だ,味がある,という意味になり,すっかり日常語化した現在の韓国語では、着こなしがよかったり、単にすてきね、かっこいいね、という時にもこのが使われている。
멋이 있다.(モシイッタ)가 되면 멋지다, 맛이 있다 라는 의미가 되고, 완전히 일상어화 된 현재의 한국어에서는 옷맵시가 좋다, 단순히 멋지네, 라고 할 때에도 이것이 사용되고 있다.
食物や飲み物の味は맛(マッ)だが、同じ一文字で味と訳せても持っている意味は全く 違う。
음식이나 음료의 맛은 맛이지만, 같은 한 글자로 맛이라고 번역할 수 있어도 가지고 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生まれて初めて韓国に行ってから、八年近く経った。
태어나서 처음 한국에 간 지 8년 가까이 됐다.
ソウル大学に入学してからは四年で、入学するまでは年に何回か東京とソウルを往復し、踊りを習ったり伽倻琴の稽古を受けていた。
서울대에 입학한 지 4년 만에 입학할 때까지는 1년에 몇 차례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춤을 배우거나 가야금 익혔다.
初めて発表することになった「ナビ・タリョン」という作品を書いたのは、八二年の四月のことだった。
처음 발표하게 된 나비타령이라는 작품을 쓴 것은 82년 4월이었다.
第一稿はソウルの下宿で、午前中は舞踊を、午後は伽倻琴を、そして夜は万年筆を握るという生活をする中で約一ヵ月半ほどで書き上げた。
제1고는 서울의 하숙집에서 오전에는 무용을, 오후에는 가야금을, 그리고 밤에는 만년필로 글을 쓰는 생활을 한 달 반 정도 했다.
その後は日本でいくつか作品を書き、書くことの甲斐とでもいうものを少しずつ実感していった。
그 후에는 일본에서 몇 편의 작품을 쓰고, 쓰는 것이 보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실감했다.
そしてまもなく留学を決意した。
그리고 곧 유학을 결심했다.
当時としてはさまざまな動機があった。
당시로서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다.
しかし今となれば、踊りたい、という一心からだったのではなかったろうか、そんな気がしてならない。
그러나 이제 와서는 춤추고 싶은 마음에서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学生生活は十年ぶりのことだった。
학생 생활은 10년 만의 일이었다.
それにそこは韓国であり、言葉の障害ももちろん大きかったが、一時の滞在では気がつかなかった空気の匂いや音、人々の表情の違いに驚かされた。
게다가 그곳은 한국이고 언어의 장애도 물론 컸지만 한때 머물면서 몰랐던 공기 냄새와 소리, 사람들의 표정 차이에 놀랐다
韓国は外国だった。
한국은 외국이었다.
外国でありながら、しかし始終ウリナラ(母国)という観念が重苦しくつきまとい、わたし、という個のためらいやうろたえを封じこめた。
외국이면서도 시종 우리나라(본국)라는 관념이 답답하게 따라다녔고, 나라는 개인의 망설임과 당혹감을 봉쇄했다.
日本において韓国人であることを隠そうとし、目に見えない壁の前でひとりでおろおろとしていた昔の自分と、韓国での不自由さはどこかで通じていたとも言えた。
일본에서의 한국인임을 숨기려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던 옛 자신과 한국에서의 불편함은 어디선가 통했다고 할 수 있다.
ほっとできるのは踊る時だけだった。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춤출 때뿐이었다.
稽古場はわたしにとっての避難所だった。
연습장은 나에게 피난처였다
そこに行きチマチョゴリを着、音の中でただ踊れば、韓国語も日本語も忘れられた。
그곳에 가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소리 속에서 그냥 춤을 추면, 한국어도 일본어도 잊을 수 있었다.
小説のことを考え日本語にこだわっている自分が、大学で講義や学生たちとの会話にすら、その言葉の響きに拒否感を覚え、聞き、話しながらも実は耳をふさぎ、口を閉ざしている時がある。
소설을 생각하며 일본어에 집착하는 자신이 대학에서 강의나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그 말의 울림에 거부감을 느끼고 듣고 말하면서도 실은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있다.
本当の自分はそうなのに、観念はそのことを許さず、自分自身を嘲笑すらし、追いつめる。
진정한 나는 그런데 관념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고 나 자신을 비웃기까지 하고 따라잡을 수 있다.
踊っている時だけが、二つの言語の間でうずくまっている自分を起き上がらせることができた。
춤을 추고 있을 때만이 두 언어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일어나게 할 수 있었다
멋、という言葉はあまりにも安易に使われてしまっ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멋이라는 말은 너무 안이하게 사용되어 버리는 것 같다.
そんな生活の中でこの言葉に対する思いも大きく変わっていった。
그런 생활 속에서 이 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韓民族としての멋、そして恨。
한민족으로서의 멋, 그리고 한.
しばらくの間もなお、これらの言葉はわたしにとって憧憬そのものであり、在日同胞としての、いわばアイデンティティ獲得のバネ、自覚を絶えず鼓舞させる想像力の核としてとらえられていた。
한동안 이 말들은 나에게 동경 그 자체이며, 재일동포로서의 이른바 정체성 획득의 계기, 자각을 끊임없이 고무시키는 상상력의 핵으로 여겨졌다.
しかし、アイデンティティ獲得あるいは自覚への鼓舞と自分で今書いたばかりのそれらの言葉を、わたしはここで、サルプリを踊る時に手にする白く長いスゴン(手市)や僧舞を踊る時に着るチャンサムという黒い衣装の長い袖ですっぽりとくるみこみ、自分の背中、その遠くうしろの方に思いきりほうりなげてしまいたいと思う。
그러나 정체성 획득 혹은 자각에 대한 고무와 내가 방금 쓴 그 말들을 나는 여기서 살풀이 춤을 출 때 얻게 되는 하얗고 긴 수공이나 승무를 춤을 출 때 입는 장삼이라는 검은 의상의 긴 소매로 푹 싸매고, 자신의 등, 그 멀리 뒤로 마음껏 던져 버리고 싶다.
その遠くうしろの方に思いきりほうりなげてしまいたいと思う。
그 멀리 뒤쪽으로 마음껏 던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歴史や民族、同胞としての義務、使命等々、理屈としての観念か、あるいは思いこみ 昂ぶる素朴な感傷、それらにつき動かされていたころのわたしにとって、踊ること、その行為自体が自分自身に対する拷問だった。
역사나 민족, 동포로서의 의무, 사명 등등 이치로서의 관념이거나 혹은 생각에 격앙되고 소박한 감상, 그것들에 의해 움직이던 시절의 나에게 춤을 추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나 자신에 대한 고문이었다.
だが同時にその行為の時間こそが、逃げられ、救われる、言いかえれば個に立ち返ることのできる時間でもあった。
하지만 동시에 그 행위의 시간이야말로 도망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는, 말하자면 개개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わたしはわたしでありたい。
나는 나이고 싶다.
そう心から思い始めた。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稽古場は避難所以上の意味を持つようになっていった。
연습장은 대피소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멋 、とは誰でもがその人なりの個として自分らしくあろうとする心のあり様を示す言葉なのではないだろうか。
멋이란 누구나 그 사람 나름대로의 개인으로서 자신 다우려는 마음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멋は徹底して個の中に宿り、個の中でこそ育まれる。
멋은 철저히 개인 안에 깃들어 있고 개인 안에서만 자란다.
けれどもその個は個を支える死者と生者から成る集団、歴史ともあざない合っていく。
하지만 그 개는 개를 지탱하는 죽은 자와 산 자로 이루어진 집단, 역사와도 서로 조롱해 간다.
だからだと思う.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멋には恨、そして俗ということが必ずふくまれ、連想される。
멋에는 한, 그리고 풍습이라는 것이 반드시 담겨 연상된다.
韓国語で、リズムのことをチャンダン(長短)という。
한국어로 리듬을 장단이라고 한다.
各チャンダンの変わり目は一つの休止、息つき、と普通ならみなされるかもしれない。
각 장단의 환절기는 하나의 휴지, 숨소리로 보통이라면 간주될지도 모른다.
しかし、わたしの中で常識化されていたそういう知識は、踊りこんでいくうちにはっきりとくつがえされた。
그러나 내 안에서 상식화되어 있던 그러한 지식은 춤을 추면서 확연히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