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서 잘라내기
cut-up technique
문학에서 잘라내기 기법은 기존의 텍스트를 무작위로 잘게 잘라 조합하여 새로운 텍스트로 다시 만드는, 우연성의 문학 기법 또는 창작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을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타인의 작품을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작품을 작가의 동의도 없이 제멋대로 잘게 잘라서 조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표절 또는 명예훼손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잘라내기는 (종이에 인쇄되어 완성된) 텍스트에서 단어, 문구, 문장, 문단 등을 잘게 잘라내서 뿔뿔이 흩어지게 한 다음 즉흥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지그재그로 조합해서 독립적인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자신의 기존 작품 속에서 뺄 건 빼고 더할 것은 더하고 바꿀 건 바꿔가면서 스토리 라인을 어느 정도 줄이거나 확장시키거나 수정 보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잘라내기 기법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참혹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1920년대 다다이즘적 풍경 속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시인 트리스탄 트라는 신문 기사에서 자른 단어들을 봉투 안에 넣고 무작위로 꺼낸 말을 사용해 시를 만들었다.
질 J. 보르만은 자신의 레트리즘 (Lettrism)적 창작의 일환으로 이 기법을 발전시켰고, 화가이자 작가인 브라이온 가이신은 이 기법을 사용하여 ‘Minutes to Go’라는 시를 썼다. 1977년 윌리암 S. 버로스와 브라이온 가이신은 이 창작 스타일에 관한 에세이를 모은 ‘The Third Mind’를 출판했다.
비트 세대에 속하는 동성애자 소설가 윌리암 S. 버로스 (그래서 그는 런던 시절 남성 동성애자의 집합소로 유명해서 남성 매춘부들이 자주 나타났던 리젠트 팰리스 호텔 입구를 어슬렁거렸다) 는 텍스트를 잘라내서 분해한 뒤 재배치해서 새로운 소설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문학 기법인 cut-up technique를 개발했다. 그가 소설에서 이 기법을 최초로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문학에서 잘라내기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무의미함의 의미’라는 다다이즘의 풍조 속에서 시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그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소설까지 확장되었는지는 그렇게 실제 쓰여진 소설들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서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내가 이 기법에 대한 짧은 소개글을 읽은 것은 불과 얼마 전이고 (2019년 경인가?) 그 후 계속 이 기법에 대해서 깊이 연구 할 기회는 없었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장편소설 「사하라」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인 이브라함과 만수라의 사랑과 귀향에 필요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발췌해서 잘라내고 재배치하여 새로운 단편소설(귀향 歸鄕)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 기법을 흉내 낸 것이 아니다. 다만 「사하라」가 품고 있는 수많은 주제 가운데서 묻혀버리기 쉬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사막에 대한 향수와 귀향 문제를 주제적 차원에서 확장하고 심화시켜서 부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방식처럼 우연히 무작위적으로 분절돼서 튀어나온 파편들을 주워 모아 맞춰보는 식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작품과 의절 (cut-off) 한 게 아니라 이미 발표한 작품이라도 잊지 않고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언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아마도 임종의 순간까지 계속 수정 보완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 발견한 재료를 검토하고 조금씩 변주하고 수정 보완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내 소설들에서는 언제나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수정하면 할수록 달라보인다. 당연히 더 나아 보인다. 나는 어떤 작품이건 간에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내 장편소설들을 의식적으로 분해해서 어떤 특정한 주제, 인물, 에피소드, 장면을 잘라낸 다음 중·단편소설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일관되게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장편소설에서 스토리의 전개와 관련하여 혹은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 지면 관계상 빠질 수도 있는 부분을 분리 독립해서 디테일을 추가하고 스토리텔링을 풍성하게 하여 관련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시나 단편 소설과는 달리 장편소설에서는 장소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고 시간적으로는 때로는 몇 세대에 걸칠만큼 매우 길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이 중요하고 그래서 주제와 동떨어지고 느슨하고 형체가 불분명한 장면과 에피소드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풍부한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소설 속에서 인물과 사물, 사건의 의미, 본질을 글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표현주의자이다. 그러므로 공허한 추상주의자가 아니라 정확하고 세밀하게 디테일을 추구하는 리얼리스트가 되고자 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글에서도 써야 하는 것은 모두 써야 하고 쓸 수 있는 것 역시 모두 쓴다.
그렇다고 극사실주의자나 슈퍼사실주의자 (super-realist)는 아니고 맥시멀리스트로 자처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므로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극도로 축소되고 압축된 스타일인 미니멀리즘은 정말 불편하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서사 능력이 부족한 또는 필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쓰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21세기 大明天地다. 컴퓨터, 이메일, 인터넷, 스마트폰, SNS, AI 시대이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카카오, 네이버 같은 플랫폼들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짧은 동영상인 쇼트 폼에 광적으로 열광한다. 그래서 온갖 지식, 정보, 루머, 광고, 가설, 이론, 궤변이 끊임없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은 (그런 것들이 등장하기 전) 그 옛날, 근 반세기 전 미국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한 문학적 기법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니멀리스트의 소설에서 주제, 인물, 배경, 스토리 라인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서술이 빠져버린다면 그래서 이야기의 뼈대만 남게되어 건조하고 단순화되어 버린다면 심오한 소설적 깊이와 미적, 정서적 감각, 문장의 밀도, 질감이 사라져버린다. 그건 소설이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짓이다. 예술은 예술이 되어야만 한다.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소설적 기교, 문학성, 풍부한 상상력, (형식과 내용을 포함한 소설 쓰기에서) 과감성 등을 대부분 포기해야만 한다. 소설에서 서정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들, 문장의 리듬이 배제된다면 어떻게 심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겠는가.
3인칭 全知的 視點 (또는 觀點) 소설에서는 스토리 전개에 매몰된 나머지 話者 (또는 서술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누군가 ‘3인칭이란 인칭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다시 말하면 소설 속에서 전지적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뚜렷하게 의식되지 않아서 소설 자신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만 독자는 그게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리얼리스트 작가가 쓰는 리얼리즘 소설에서 (비개인적이고 비인칭적인) 객관적인 묘사(서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사회 비평적 리얼리즘 소설을 쓰기 때문에 작가의 관점에서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장편소설에서는 (괴테가 일찍이 세계문학을 주창하면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떤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시대상, 풍토, 상황, 민족성이나 지역성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성을 현현한 보편적인) 큰 주제에 딸린 작은 주제들이 매번 등장하는 여러 장면들과 맥락이 이어지는데 이때 어느 정도 안정과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게 장면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인물들과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논리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장편 영화의 경우 장면이 40~80개 정도 나오지만 장편 소설에서는 그보다 두 세배 넘게 크고 작은 장면이 등장하게 된다)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허구 세계(fiction)는 독창적이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에는 그 본질적 속성으로 개연성과 핍진성,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리얼리스트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소설이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스토리 라인을 특정한 역사적 실재, 인물, 사건의 맥락 속에 집어넣게 된다.
그러면 독자들은 당해 소설이 품고 있는 핵심과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정서적 힘에 이끌려서 어떤 지적 감동, 즐거움과 만족감, 정신적 혼란과 떨림 같은 복합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독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처음과 중간, 끝이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을 충족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내가 쓰는 글에서 ‘총량 불변의 법칙’을 신봉한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일정량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너무 많이 들어간 게 아닌가 하고, 그래서 균형이 깨지면 어쩌나 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면 다시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충분히 말해야 하는 것과 너무 많이 말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멈춰야 할 순간을 잘 알지 못한다. 스토리의 진행에 기여하지 않는, 부사와 형용사의 오남용에 의한 과잉 묘사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것이다. 글 속에서 한없이 헤매인다. 그러면 소설의 문맥 속에서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혹은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라는 중요한 핵심을 찾아낼 수 없다.)
종이책의 발간은 여간 어렵고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나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무수히 거절을 당했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입에 발린 몇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속내는 지금 팔릴만한 책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양심도 없고 예의가 없다. 참으로 무지막지하다. 작가가 열과 성을 다하여 애써 쓴 작품을 무시한다. 거의 예외 없이 왜 거절을 하는지 그 이유를 짧게라도 회신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체 가타부타 답신을 보내지 않는다.)
특히 장편이건 단편이건 분량이 많으면 무조건 손사래를 쳤다. 가뭄에 콩 나듯이 단편소설의 원고를 청탁받으면 어김없이 매수 제한을 한다. 그러므로 충분히 쓸 수 없다. 나중에 수정 보완하거나 별도로 일부를 쪼개고 분리해서 후속 작품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쓴다. 그런데 ‘지금’은 100년, 즉 한 세기를 말하고, ‘여기’는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 에코토피아를 포함한) 전 세계 지구촌을 아우르고, ‘우리’는 인종과 지역, 민족,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를 초월한 모든 인간을 말한다.
첫 장편소설 「사하라」는 최초 종이책으로 출판하였을 때는 330쪽에 불과하였지만 공간적 배경과 에피소드와 인물들과 주제를 추가하여 수정 보완을 거듭하면서 750~800쪽까지 불어났다.
그래서 주제들은 희미해지면서 문맥이 끊어졌고 스토리텔링은 지지부진하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이 大河 소설에서는 소설의 구조와 내적 논리에 따라 얽히고설킨 중심 플롯에서 파생된 남녀 간 사랑과 관련한 4개의 삼각관계를 포함해서 여러 하위 플롯 때문에 1,000여 개가 넘는 많은 장면이 나오게 된다.)
소설에서 공간(space) 또는 장소(place)는 소설의 척추가 되므로 아주 중요하다. 공간과 장소를 굳이 구별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공간은 너무 넓고 막연해서 특정하기가 곤란하고 장소는 좁아서 지리적으로 특징 지어진 작은 공간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와 특별한 개인적, 사회적 관계를 가진 장소에 깊은 애착이나 애증을 느끼면서 관련 지식이나 기억을 축적하고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관점에서 견고하게 뿌리가 박힌 장소 감각 혹은 장소성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하라」의 공간적 혹은 장소적 배경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아주 방대하다. 그래서 대하 소설이다. (특히 사막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소설의 핵을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탈영토적이고 지역주의 (regionalism)나 로컬리즘(localism)을 벗어났다. (벌교, 남쪽 바다, 부산, 서울, ㈜ 공간, 파리, 센강, 퐁데자르 다리, 리비아, 트리폴리, 프라하,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스페인 그라나다, 타클라마칸 사막, 세렝게티 평원, 멕시코 유카탄 반도, 엘도라도, 보르네오 섬, 오코방고, 젠네 등은 김규현의 장소이고, 사하라 사막, 타만라세트, 알제리, 알제, 마라케시, 페스, 카사블랑카, 통북투, 아라비아 반도, 지중해, 마르세유, 엘우에드, 크레타 섬,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등은 이브라함의 장소이고, 베트남, 빈롱, 투루빌, 파리, 소르본 대학, 생라자르 역, 1940년 프랑스가 패망할 무렵의 서부전선,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 사바나, 탕헤르, 케이프타운,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자크의 장소이다.
시대적으로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걸쳐있다.
그 시기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공산주의 악의 제국이었던 구 소련이 해체되는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국내적으로는 그 시기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으므로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역사적 사건들이 분출했다.
80년대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으로 시작되었다. 1985년 여름 그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0여 일에 걸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고문을 당하여 몸과 마음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 이르렀다. 1986년 당시 서울대생이었던 권인숙 양은 주민등록증을 변조 위장취업한 혐의로 경기도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성적 모욕과 폭행을 당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죽었고 그해 6월항쟁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1988년 가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으며,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그리고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사업은 1984년 착공되어 1995년 2월 준공되었고 2단계 사업은 2005년 6월 준공되었다.)
그 소설에서 작가는 극단적인 flashback 기법으로 세 주인공 인물의 인생행로를 조명하면서 [여행, 귀향, 사막, 사하라, 티베트, 낙타, 투아레그, 주술사, 종교와 신의 문제, 무슬림과 코란, 성경, 유신론과 무신론, 김규현은 건축가이므로 건축의 문제, 삼각관계의 사랑과 이별, 성적 욕망, 예술가의 초상, 죽음과 자살, 운명 혹은 숙명, 無相, 無常, 無想, 전쟁(제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리카 부족전쟁 등), 유대인과 반유대주의,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아프리카와 반식민주의 운동, HIV/AIDS, 삼인칭 전지적 시점과 화자 같은] 방대한 테마를 다루지만, 세 사람은 독립된 독자적인 주체로서 제각기 목소리가 (복수의 성부로 구성되어 각각 독립된 선율과 리듬을 갖고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대립하고 화합하는) 음악의 대위법처럼 교차하고 결합하므로 텍스트는 당연히 단성적이 아니라 多聲的 (polyphony)인 것이다.
김규현은 극동에서 온 동양인이고 최고 명문 대학인 S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 유학 온 벌써 유명한 건축가이지만 이브라함은 멸종위기에 처한 사하라 사막의 소수민족인 투아레그인이고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밀입국자이다.
자크(Jacques Rivérare)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보내졌지만 친아버지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했다. 그는 1940년 서부전선에서 괴멸하는 프랑스 보병연대 소속 사병으로 복무했다. 언제나 유색인종으로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돌아왔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프리카를 방랑했다. 하지만 마르세유 시절 이브라함을 만나서 아버지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김규현과 이브라함 간에는 인종적, 계층적, 환경과 지역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섹슈얼리티(성적 지향)에서는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똑같이 이성애자 또는 양성애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하라 사막의 남쪽에서 탈수증으로 죽어가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 모든 차이를 초월한다.
장편소설「사하라」에서 인물들의 대화 혹은 독백, 침묵은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독백 역시 작중 인물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대화이지만 연극에서 모놀로그처럼 청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화성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청자는 어떨 때는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alter ego일 것이다.) 침묵에 관해서 ‘말해서 후회한 적은 자주 있어도 침묵을 지켜서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했으니까 침묵의 대화성을 부인할 수는 없으리라.
뭐라고 너에게 말해야 할까?
침묵보다 더 좋은 말이 있겠는가?
나는 눈을 딱 감고 600여 쪽 남짓에서 종결했다.
그래도 그 범위 내에서 수정 보완을 거듭하면서 종이책 출판을 완전히 포기했다. 이 새로운 버전은 내 블로그에 실려있다.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2747311815)
그리고 분리 독립되어 잘라낸 부분은 디테일을 추가하고 수정 보완하여 단편소설로 넘겨졌다.
(「사하라」에서는 단편 ‘바다’, ‘나는 걷는다’, ‘배반의 장미’, ‘낙타’, ‘파리의 이별’, ‘시인 혹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남자’, ‘마르세유’, ‘하딤 마흐메드’, ‘사하라 사막의 남쪽’, ‘카사블랑카’, ‘젠네의 대사원을 찾아서’, ‘결별의 기억’ , ‘라이언킹’, ‘강물은 흐른다’, ‘예술가의 초상’, ‘호모에렉투스’, ‘침묵의 노래’, ‘티베트 기행’, ‘신의 은총’, 중편소설 ‘달빛 죽이기’, 에세이 ‘에덴동산의 탈출 (혹은 인간해방)’, ‘오디세우스 (의 영원한 여정)’, ‘애니멀 킹과 호모사피엔스’, ‘신은 누구인가?’, ‘나는 무신론자인가?!’,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으로의 여행’ 등이, 「광화문광장」에서는 ‘그해 겨울’, ‘진실과 왜곡 – 영화 1987’, ‘1987년 7월 5일’, ‘광화문광장’ 등이, 「인간의 초상」에서는 ‘소총수들’, ‘내 고향’, ‘어느 일등병의 비망록’, ‘빈롱으로 가는 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영현병 김재수 하사’, ‘매복 작전’ 등이, 미발표 장편소설 「증언」에서는 ‘쥐새끼 박멸작전’, ‘해무’, ‘두만강’, ‘대화와 설득, 전향’, ‘고정간첩’ 등이 분리 독립 되어서 독자적인 완성체로 등장했다.)
소설에는 흔히 ‘작가의 말’이 後記처럼 붙어있고, 번역 소설에는 ‘번역자의 말’이나 작품 해설, 역주, 해제라는 부속품이 붙어있고, 책이 잘 팔리도록 혹은 아주 잘 읽히도록 하기 위해서 표지나 뒷표지를 디자인하면서 텍스트를 소개하는 짧은 글이나 추천의 글을 넣기도 하는데 이것을 파라텍스트(paratext)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 단편소설은 원래의 텍스트에서 분리되어있긴 하지만 상호텍스트(intertext)라는 관점에서 읽기 쉬움(readable)과 가독성, 세밀한 독해를 도와준다는 의미로 파악한다면 파라텍스트라고 할 수도 있다.
한 편의 소설이 발표되고 출판까지 됐다고 하여 작품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학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완성은 불가능하다. 작가가 살아있건 사후이건 간에 독자들은 끊임없이 작품을 해체하여 독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조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대단한 작품이라도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저자의 죽음’ 이론이고 독자의 텍스트 참여와 독자에 의한 텍스트의 의미 재생산이라는 독자수용 이론 (Reader response theory)이다.
그럴 경우 새로운 작품의 분리 독립은 불가피하다.
나는 항상 내 소설은 물론이고 다른 소설에 있어서도 작중 인물의 그 후가 매우 궁금하다. 그들은 그 후 어떤 인생역정을 걸어갔을까. 그들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장편소설 「사하라」에서 주인공인 작중인물 김규현과 그의 아내 심현숙은 헤어졌고 김규현은 사하라 사막의 남쪽에서 여행 중 탈수증으로 죽었는데(사망진단서에서 self-murder라고 되어있지만), 그들(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은 어떻게 다시 만나서 해후하고 화해하였는가? 그걸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문을 열고 집을 떠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19세기 북유럽의 사회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두 가지 길을 생각할 수 있다. 엄혹한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없이 추락했거나 (또는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져서 자살했거나, 자존심이 무척 강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바로 돌아와서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을 것이다. 도저히 엄격한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인 완고한 사회에서 여성이 독립해서 자립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아주 무책임했다고 할 수 있다. 노라를 제멋대로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김승옥 작가의 옛날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주인공들의 그 후가 너무 궁금해서 ‘무진기행, 그 후’를 썼다. 작중 인물인 윤희중(또는 윤기중)과 상대역인 음악 선생님 하인숙 (본명 金惠淑), 고시에 합격하고 세무서장이 된 조성식, 국어 선생님 박치순과 그 아내 등의 인생행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 영화 (노인시설에서 한 젊은이의 총격에 의한 집단사살 그리고 이어지는 자살로 시작되는) ‘플랜 7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인 감독 5인과 함께 만든 2019년 옴니버스 영화 ‘10년’의 다섯 편(‘플랜 75’, ‘장난꾸러기 동맹’, ‘데이터’,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나라’) 중 한 작품을 분리 독립해서 장편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 「그 후 それから」의 제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 후’이다. 「산시로」에서는 어떤 대학생에 대해서 썼는데, 이 소설은 그 후에 대해서 썼기 때문에 ‘그 후’이다. 「산시로」의 주인공은 단순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다음 단계의 인물이어서 이 점에서도 ‘그 후’이다. 이 주인공은 마지막에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그 후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도 ‘그 후’이다.”
나는 내 소설의 작중 인물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누구든지 정중히 대했으므로 언제나 내 마음속에 엄연히 살아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연결망에 묶여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소설 속 배역보다 훨씬 더 심오한 존재들이다. 그저 배경을 채우는 단순한 엑스트라 이상의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스토리텔링 이후인 그들의 그 後가 말할 수 없이 궁금해서 그들의 인생행로가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탐색했고 그래서 ‘인물들의 에필로그’를 썼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그때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운명이 어떻게 엇갈리고 따라서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되면서 결론이 달라졌을지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결론을 해피 엔딩이나 새드 엔딩으로 바꾸는 것 말이다.
지금은 컴퓨터와 문서 작업의 비약적 발달로 잘라내기인지 쪼개기인지 모방인지 변주인지 아주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다. 쪼개고, 잘라내고, 이리저리 옮겨서 이어붙이고, 추가하고, 그래서 스토리를 원하는대로 개조하고 주제를 바꾸고 결론을 바꿀 수 있다.
(지금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지나서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로 스토리 전개와 결말을 바꿀 수 있는 interactive movie가 나왔으니, 넷플릭스는 최근 새 장편 TV영화 ‘Black Mirror; Banders natch’를 공개했는데 시청자들이 이 영화를 시청하면서 중간 중간에 스토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스토리 전개 중에 나온 제안을 수락하는지, 거절하느냐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5가지 다른 결말을 도출할 수 있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음악인 original sound track도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독자가 아무리 잘라내서 재조립하는 경우에도 그걸 공개적으로 발표하려면 어느 정도 경계선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뼈대만 남길 것인지, 주제를 비트는 정도에서 디테일만 바꿀 것인지, 그럴 경우 모방의 한계는 어디까지이고, 오마주 또는 패러디의 한계는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공동저자라고 해야 할 것인가? 표절의 의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 우리는 (그 개념이 너무 넓어서 논자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는 하지만)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기반한 국민문학 (또는 민족문학)에서 탈피해서 세계문학에 편입해야 할 것이다.
괴테는 벌써 200년 전인 1827년 세계문학의 개념을 설파했고 그 이십 년 후인 1847년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서 세계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지구촌 시대이다. 21세기 大明天地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포스트 내셔널리즘, 포스트 오리엔탈리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 또는 안티 휴머니즘, 에코크리티시즘, 에코코스모폴리타니즘 (eco-cosmopolitanism)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나라 자본과 기업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은 일본, 캐나다, 영국, 미국으로 진즉 진출했고, 삼진식품은 부산 봉래시장에서 솥단지 건 지 70년 만에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이어 호주에도 어묵 베이커리 매장을 열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LG전자의 가전제품, 현대 기아차 그룹의 자동차 등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k-culture, k-food도 해외로 나갔다.
우리 문학은 국경이 무의미해진 지금 자폐적이고 일면적이고 편협한 한민족의 민족주의 또는 한반도의 지역주의라는 낡은 울타리를 과감히 파괴해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안과 밖, 주체성과 타자성,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이항 대립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소수 문학(minor literature)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우선 작품 속 세계의 지평을 제한 없이 넓혀야 한다.
예술은 무한이고 영원이고 초월이다.
원작자와 번역자의 관계에서 번역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생성형 AI가 일정 부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Endnotes
Dadaism은 제1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조형예술뿐만 아니라 폭넓게 문학, 음악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다다는 무의미함의 의미를 암시한다.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반도덕·비심미적인 것을 찬미하였다. 오늘날 말하는 자유분방한 오브제(objet)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기존 예술작품이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1차세계대전의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다다이즘은 입체주의(큐비즘)의 영향을 받았는데 콜라주는 다다이즘의 유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 후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 독특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타주의 새로운 면을 개척하는데 기여하였다.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괴물인) 히틀러는 모더니즘 예술과 유대인을 연결시켰다. 다다이즘, 표현주의, 큐비즘 등을 타락한 예술로 간주하고 혹독한 통제와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 Lettrism is a French avant-garde movement, established in Paris in the mid-1940s by Romanian immigrant Isidore Isou. In a body of work totaling hundreds of volumes, Isou and the Lettrists have applied their theories to all areas of art and culture, most notably in poetry, film, painting and political theory. The movement has its theoretical roots in Dada and Surrealism. Isou viewed his fellow countryman Tristan Tzara as the greatest creator and rightful leader of the Dada movement, and dismissed most of the others as plagiarists and falsifiers. Among the Surrealists, André Breton was a significant influence, but Isou was dissatisfied by what he saw as the stagnation and theoretical bankruptcy of the movement as it stood in the 1940. (Wikipedia, Lettrism)
3. The Third Mind is a book by Beat Generation novelist William S. Burroughs and artist/poet/novelist Brion Gysin. First published in a French-language edition in 1977, it was published in English in 1978. It contains numerous short fiction pieces as well as poetry by Gysin, and an interview with Burroughs. Some chapters had previously been published, in slightly different form, in various literary journals between 1960 and 1973. The book is a combination of literary essays and writing showcasing the cut-up technique popularized by Burroughs and Gysin in the 1960s. Cut-ups involves taking texts, cutting the pages, and then rearranging and combining the pieces to form new narratives. The technique was adapted for filmmaking, as demonstrated by Burroughs and director Antony Balch in their early 1960s short film, The Cut-Ups. "Proclaim Present Time Over" (in: The Award Avant-Garde Reader)
Contents
(1) "Let the Mice In" (in: Brion Gysin Let the Mice In (1973))
(2) "The Cut-up Method of Brion Gysin" (in: A Casebook on the Beat)
(3) "Cut-ups Self-Explained," "Cut-ups: A Project for Disastrous Success," and "Fold-ins" (in: Evergreen Review)
(4) "The Exterminator" (in: The Exterminator (1960))
(5) "Formats: The Grid" (in: Insect Trust Gazette)
(6) "Films" (in: May fair)
(7) "First Cut-ups" and "Intersection Readings" (in: Minutes to Go (1960))
(8) "Technical Deposition of the Virus Power" (in: Nova Express)
(9) "Interview with William S. Burroughs." (in: The Paris Review)
(Wikipedia, The Third Mind)
4. 윌리엄 시워드 버로스 2세는 미국의 작가이자 시각 예술가로 비트 세대의 주요 인물이자 대중 문화와 문학에 영향을 미친 주요 포스트모던 작가로 여겨진다. 버로스는 18개의 소설, 6개의 단편소설 모음집과 4개의 에세이 모음집을 썼고, 그의 인터뷰와 편지 등에 대한 5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처음에는 초기작인 정키(Junkie)에서 사용한 윌리엄 리(William Lee)라는 필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버로스는 말년에 수많은 공연자 및 음악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했고,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의 유명한 "샷건 아트"를 포함하여 수천 개의 시각 예술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 버로스는 1951년 멕시코시티에서 그의 두 번째 아내 조안 볼머를 죽였다. 그는 술에 취해 빌헬름 텔 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볼머의 이마를 쐈다. 그는 그의 초기 작품 ‘퀴어 Queer’의 서문에서 해당 사건이 자신이 작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버로스의 작품 대부분은 반자서전적이며, 헤로인 중독자로서의 그의 경험에서 도출되었다. 버로스는 브라이온 가이신과 함께 The Nova Trilogy와 같은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문학 기법인 컷업 기법을 대중화했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어릴 적부터 꾸준히 집착해왔던 오컬트, 저주, 마법 등의 주제가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1944년, 버로스는 잭 케루악과 그의 아내 이디 파커의 아파트에서 조안 볼머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버로스와 케루악은 데이빗 캐머러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한다. 루시엔 카는 자신을 끊임없이 스토킹하던 데이빗 캐머러를 살해한 후 케루악과 버로스를 찾아가고, 그들은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버로스는 아버지가 보석금을 내주어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버로스와 케루악이 1945년에 공동집필한 And the Hippos Were Boiled in Their Tanks라는 제목의 소설로 쓰이게 된다. 원고는 당시에는 출간되지 못하였으나 2008년 11월에 그로브 프레스와 펭귄 북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사건은 2013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46년 봄, 버로스는 마약 처방전을 위조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볼머는 그녀의 정신과 의사에게 버로스의 석방을 위한 보증서에 서명해 달라고 요청했고 덕분에 그는 석방되었다. 이후 볼머가 벤제드린 중독으로 정신병동에 갇히게 되자 버로스는 즉시 그녀의 석방을 위해 뉴욕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들의 결혼은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둘은 사실혼 관계로 살았다. 그들은 텍사스로 이사했고 볼머는 곧 버로스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들의 아들, 윌리엄 S. 버로스 주니어는 1947년에 태어났다. 그 가족은 1948년에 뉴올리언스로 잠시 이사했다. (나무위키, 윌리엄 S. 버로스)
5. 윌리엄 S. 버로스는 cut-up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소달구지의 일 처리 방식이고, 어색한 도구이며, 그것들은 결국,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주 시대에 일어날 일입니다. 대부분의 진지한 작가들은 과학 기술이 할 수 있는 작업을 활용하는데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테이프 녹음기를 두려워하며, 문학적 목적을 위해 기계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일종의 신성 모독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cut-up에 대한 모욕으로 보입니다. 나는 작가가 아닌 사람들, 즉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개방적이고 꽤 지적인 사람들이 작가들보다 cut-up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아는 한 cut-up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유럽에서 30년 동안 살았던 미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친구 브라이언 기신(Brian Gysin)이었습니다. 그의 단편시 ‘Minutes to Go’는 BBC를 통해 방송되었고 나중에 팜플렛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나는 이 기술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각해 보면 The Waste Land는 최초의 훌륭한 cut-up 콜라주였으며 Tristan Tzara도 같은 맥락에서 작업했습니다. 모든 서술적 구절이나 시적 이미지의 구절은 다양한 변형의 대상이 되며, 그 모든 변형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타당할 수 있습니다. 잘라서 재배치한 랭보의 한 페이지는 아주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할 것입니다. 플롯은 항상 무대 연출, 즉 캐릭터를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시키는 명확한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cut-up과 같은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미적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확장시킵니다.
과학자들은 더욱 창의적이 되고 작가들은 더욱 과학적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술계가 매디슨 애비뉴와 절대적으로 합쳐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팝아트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담은 광고를 할 수 없는 걸까요? 이미 매우 아름다운 컬러 사진 중 일부가 위스키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6. 「The Third Mind」에 실린 10개의 에세이를 읽고 이해하면 소설에서의 cut-up technique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7. 레이먼드 카버의 경우 단편소설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는 판본이 네 가지나 있다. 그는 “그것들은 모두 다른 작품들이고 각기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한때 모든 작품을 다시 쓰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8.작가들에게 수정 보완 작업은 숙명과도 같다. 톨스토이는 그의 젊은 시절 작품인 「전쟁과 평화」를 쓸 때 당시 오직 펜과 잉크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번을 다시 고쳐서 썼고 출판되기 직전까지도 교정쇄에 수없이 많은 수정 사항을 적어 놓았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쓸 때 1908년에 시작하여 1918년까지 초고를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 그 후에도 원고와 교정쇄를 수십 번 수백 번 손보았지만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22년 세상을 떠났다. 미국 시인 도널드 홀은 16행에 불과한 어떤 시를 3년 동안 쓰면서 100번쯤 고쳐썼다. 그래서인지 여러 작가들은 기존 발표한 작품의 수정과 재출간 때문에 불안 강박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어떤 원로 작가는 팔십이 넘은 나이에 그간 발표한 백여 편의 소설에 대하여 수정 재출간 작업에 착수했다고 선언했다. 과연 의도한 대로 완수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9. 나는 반평생을 변호사, 법학자로 살면서 수많은 법률문서, 학술논문, 판례평석, 벽돌처럼 두꺼운 전문적인 법학책을 썼기 때문에 극도로 세밀하고 엄밀한 길고긴 산문적인 글을 쓰는 것이 당연하고 그게 내면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쓰는 법률소설이나 사회비평 소설들은 우선 법률가들, 변호사, 법학 교수,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주된 독자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그들에게 무언가 모르지만 권력과 법률 세계의 어두운 이면, 감춰진 진실을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표면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좁은 시야 때문에 완고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여기, 지금, 우리의 세상을 재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이 낯선 이들의 삶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세상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드물지만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바랄 뿐이다. 그건 경험 자체를 위한 비현실적인 경험의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 살면서 지금, 여기, 우리는 극단적으로 정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영역에 시도 때도 없이 정치가 개입한다. 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오지랖 넓게도 너무나 고통스럽게 숙고한다. 나는 신문사 논설위원, 대한변협의 이사, 무슨 위원장, 민변의 무슨 위원장, 법률 관련 여러 학회의 회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200여 편이 넘는 칼럼 등을 발표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뼛속 깊이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일 수밖에 없다.
10. minimalist는 역사적으로는 제정 말기 러시아 사회 혁명당 내 온건파, 즉 최소 강령주의자를 말하고 maximalist는 요구의 전부를 관철하려고 드는 과격주의자를 말하는데 제정 말 러시아 사회주의자 중에서 극좌 분자(bolshevik)를 말한다.
11. 레이먼드 커버는 비평가들이 한때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세계를 매우 좁게 보고 좁게 수용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있어요. 이런 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조금 더 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니멀리즘을 버리고 보다 폭넓은 소설을 쓰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더 풍성하고, 더 길고, 더 상세하고, 훨씬 더 긍정적이고, 충만하고 보다 희망적인 분위기로 채워진 소설을 썼다. 그는 1938년생이니까 나와는 대략 9년 터울이어서 우리는 contemporar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키가 188센티미터의 거구이지만 나 역시 183센티미터이니까 그게 그거다. 그는 알코올의존증인지 알코올중독인지 재활치료를 받았고 두 번이나 파산을 했으며 이혼을 했지만 동성애자는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다.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이성애자이고 단편소설의 대가였다 (그래서인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장편은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나는 그의 고달팠던 삶과 작품, 언어에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기존 작품에 대해 그걸 만약 다르게 썼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버전을 마무리 지으면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이야기를 썼지만 충분히 깊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멈출 만한 자리를 봤고 그래서 멈췄죠. 하지만 그 이후로 어떤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내내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레이먼드 카버의 말」 (마음산책, 2024.) 서문 참조.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안톤 체홉은 70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분량이 꽤 긴 단편이 있고, 짧은 장편을 몇 편 쓰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장편을 쓰려고 시도를 했지만 해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은 장편을 써서 낼 만큼 오래가는 집중력이 없다고 말했다. 쉽게 지루해하는 편이었다. (이 역시 체홉을 존경하고 추종했던 커버가 말한 내용이다.)
12. 전두환 자신은 뭘 변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두환 회고록 1, 2, 3」 (자작나무숲, 2017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13. 김근태 지음, 「남영동」 (도서출판 중원문화, 1987년) 참조.
14. 단편소설 ‘성고문 고발장’ 참조.
15. 단편소설 ‘그 해 겨울’ 참조.
16. 1987년 6월항쟁에 관해서는 역사소설이면서 사회비평 소설인 「광화문 광장」 참조.
17. 그 소설은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토대로 하면서 다섯 명의 여성 인물은 보조적, 파생적 역할에 그치므로) 남성중심주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두 남자 주인공 김규현과 이브라함, 제3의 남자 주인공 쟈크(Jacques)와 이브라함의 소설 속 대화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진다.
18. 작가들이 초고를 가지고 또는 발표한 후에도 수십 번 수정과 재수정을 거치면서 열 편 내지 스무 편의 판본을 만드는 것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한 지적 독자들 역시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에 따라 ‘만약 다르게 썼다면 어땠을까?’ 하고 의심을 품고 스토리 라인을 재설정하고 주제를 변주하여 드러내면서 여러 가지 판본을 독창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표절까지는 삼가야 하겠지만 모방이나 모작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방은 배우는 과정이어서 그냥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필요한 것은 먼저 의식적으로 모작하고 나서 그 뒤에 다시 한번 독창적으로 숙달되는 것이다. 다만 무의식의 이면에서 평생 모작을 계속하려는 어떤 욕구만은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숙달은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대성공하기 전에 10여 년 동안 도제 생활을 하며 무수히 모방하고 나서 숙달되었다.
19. 1967년 롤랑 바르트는 문제적 논문 ‘저자의 죽음 (The Death of the Author)’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작품의 구조를 철저히 분석해야한다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구조주의에서 후기 구조주의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무렵 정치 분야에서는 엘리트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전이, 교육 분야에서는 객관주의에서 구성주의로, 건축, 예술, 회화에서는 초현실주의,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변화가 일어났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축이 이동하여야 후기 구조주의에 부응한다고 했다. 롤랑 바르트는 작가가 텍스트의 기원이고 의미의 근원이며 저자의 의도를 작품의 해석 기준으로 삼는 것에 강렬히 비판하며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을 수사학적으로 사용한다. 그 자극적인 ‘저자의 죽음’이라는 표현은 그 논문에서 단 한번 나온다.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에 의해서 代贖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저자의 죽음은 작품의 객관화에서 시작되었다. 작품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담론이 생성된다. 저자의 죽음은 이제 텍스트를 변형시킨다. 바르트에 따르면, 저자가 사라진 후 텍스트에 남게 된 것은 언어이다.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은 언어이지 저자가 아니며, 글쓰기는 오직 언어만이 작용하고 활동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로부터 독자로 작품의 주도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논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후 나온 ‘작품에서 텍스트로 (From the work to text)’ 논문과 ‘텍스트의 즐거움 (The pleasure of text)’ 논문을 더 읽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creeepy/220834663753)
20. 독자수용 이론 또는 독자반응 이론은 독자의 작품에 대한 반응에 초점을 맞춘 독서의 방법으로 1960 ~ 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비평이론이다. 독자반응 이론은 신비평과 형식주의를 비롯한 전통적 해석이 작가의 창작 의도와 작품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독자는 단지 수용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수동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에서 출발했다. 전통적 독법이란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 완결적 정전(canon)이라는 전제하에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수동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독자반응 비평과 수용미학의 이론가들은 작가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이고 작품보다 의미 있는 것은 텍스트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독자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텍스트를 읽어서 작품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독자반응 이론과 수용미학을 제안했다. 롤랑 바르트는 후기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작가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선언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텍스트는 의미 생성의 장소이고 텍스트를 완성하는 진정한 창조자는 (작품을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독자다. 독자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읽고 그 의미를 완성해 나가는 것을 미적(esthetic) 창조라고 했다.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mlm00/221388957714)
2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저, 윤상인 옮김, 「그 후」 작품 해설 참조.
22. 레이먼드 카버가 말했다. “저는 제 등장인물들을 깎아내리거나, 그들을 놀리려고 치켜세우거나, 교활하게 그들을 가지고 놀지 않습니다. 저는 제 글을 읽을 어느 잠재적인 독자보다는 제 인물들, 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어떤 식으로든 제 인물들을 무시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기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 속의 사람들을 돌봐줘야만 합니다. 이들은 제 사람들이에요. 저는 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고, 그러지 않을 겁니다.”
23. An interactive film is a video game or other interactive media that has characteristics of a cinematic film. In the video game industry, the term refers to a movie game, a video game that presents its gameplay in a cinematic, scripted manner, often through the use of full-motion video of either animated or live-action footage. In the film industry, the term “interactive film” refers to interactive cinema, a film where one or more viewers can interact with the film and influence the events that unfold in the film. (Wikipedia, Interactive fil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