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속 웃픈 마음
2023년 4월 14일 제22회 중앙연회에서 둘째 사위(李膝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날 한종우 감독의 집례로 열린 안수식은 연회 사모합창단의 입례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집례 감독과 감리사, 보좌 목사, 안수 후보자의 입장으로 시작되었다. 연회 서기가 안수후보자 이름을 호명하여 감독 앞에 세우니 감독의 예식사, 문답과 기도 후 안수례가 이어졌으며 사위는 10번째로 안수를 받았다. 안수보좌를 맡은 그의 부친과 내가 그를 감독에게로 인도할 때 딸 은지(恩智)도 그 뒤를 따라 함께 안수례에 동참하였다. “내가 이슬에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하노라.” 집례 감독은 17명의 목사 후보자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였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이들이 기독교 대한감리회 목사가 되었음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들을 축복했다. 만나교회 김병삼 목사는 앞으로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이기려고 하지 말고, 목사로서의 자존심을 반드시 지킬 것을 권면했다. 이에 감독은 이들을 하나님이 맡기신 목회 현장으로 파송함으로써 목사 안수식은 엄숙하게 막을 내렸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장정에 따르면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수련목회자 혹은 담임목회자로서 3년의 훈련 기간을 거치면 안수받고 정회원에 허입할 수 있다. 3년 전 2020년 2월에 딸은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에 있는 부발중앙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이 교회는 수십 년 동안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모진 풍파의 세월을 겪으면서 부임 당시는 출석 교인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딸 내외는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절기마다 산촌리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다가가 열심히 전도했다. 때마침 발생한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종교시설 집회가 제한받게 되어서 원활한 목회 활동이 불가능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래서일까 하나님은 이들에게 때를 따라 예배자들을 보내주셨다. 서울 본 교회에 가지 못해서, 이 지역을 지나다가, 기도하고 싶어서, 예배가 그리워서 등등의 갈급한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이들과 함께 예배했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을 절절하게 체험하는 시간들이었다. 비전교회 목회자들에게 투잡(two job)이 허용되어 사위는 인근 직장에 임시 근로자로 일하면서 자비량 목회자 경험도 해보았다. 한 겨울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기 누전 사고로 온 식구들이 추위로 떨기도 했고, 한 여름 무더위와 우중의 물난리는 추억이 되었다. 임시처소 같은 주택의 열악한 상황은 그들의 삶을 곤고하게 했어도 그 자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둘째 생명을 선물로 받은 생명의 산실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목회의 다양한 일상을 맛볼 수 있었다. 돌아보니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다.
언제부터인지 신학교는 정원에 미달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목사 안수자도 현저하게 줄었고 목사가 된 후에도 진로를 전향하여 목회와 무관하게 사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에게 사명이 부족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열악한 목회 환경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믿음만을 가지고 가기에는 막연하다는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내외는 꿋꿋하게 견디고 이렇게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으니 대견하고 한편 고마웠다. 목사 안수례 보좌로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서 나는 마음을 다하여 그를 축복했다. 감사와 감격의 마음은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흐른다. 양가 부모는 물론이고 그를 위하여 기도했던 모든 손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런데 유독 눈물샘이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 아내다. 안수받는 제 남편 등에다 손을 대고 함께 안수받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31년 전 1992년 3월 경기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던 때가 떠올랐다. 그 후 목사의 아내로 평생 걸어온 목회 길목은 희비(喜悲)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사거리 길과 같았다. 목회자 남자를 만났으니 거부할 수 없던 목양의 뒷길, 남들은 평지 같다고 부러워할 그 길 위에는 어찌 돌부리가 많았는지 그의 무릎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잘해도, 못해도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들어야 하는 책망, 옷을 잘 입으면 사치요 못 입으면 남루하다고 쏜 화살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목회 전면에 나서도 안 되고 숨어도 안 되는 애매모호한 자리에서 인내의 임계점에 다다르도록 그저 하나님만 부르다가 남모를 눈물을 삭힐 때가 다반사였다. 천부적인 재능도 게으른 종처럼 땅 깊숙이 파묻고는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며 지내온 목회 여정이었다. 목장에서 양들이 겪는 일들 때문에 너무 기뻐서 웃고 있지만 흐르는 눈물에는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다. 이런 오묘한 감정을 ‘웃프다’라고 한다는데 아내는 웃프게 지나온 목회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동시에 딸 앞에 펼쳐질 그 길을 생각하니까 아내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고 말았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하늘의 복이 약속된 길이라 묵묵히 걸어야 한다지만 그저 엄마보다는 더 좋은 목양의 길이 펼쳐지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할 뿐이었다. 웃픈 웃음이 아니라 웃음꽃이 활짝 핀 꽃길 목회를 위하여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가 지르밟고 가도록 뿌려 주고 싶었다. 딸 둘이 모두 이 길을 걷게 되었으니 눈물 속 웃픈 마음은 더 간절한 기도가 되어 그날 이후 아내는 새벽마다 더 절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아뢴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
이슬 목사 안수식
홍은지 사모와 이슬 목사
딸의 가족 귀엽고 예쁜 손녀들(이시아 이시율)
우리 가족들 인천에서 고모들까지 축하객으로 왔다.
사돈 이선재목사 내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