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중년인(中年人).
적어도 외모로는 분명한 중년인이었다.
허나, 어찌 보자면 청운(靑雲)의 야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약관청년의 파릇파릇한 기백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달리 볼 것 같으며 일백 세도 넘은 노인의 쌓여진 연륜에 의한 치밀함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손(手)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눈(眼)은 극히 따스하고 온화하다.
이 사나이,
스스로 느껴 천하에 적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또 새외변방인에게 있어 그는 신(神)으로 불리운다. 일개 농부에서 하찮은 주루의 점소이라도 모조리 일류고수라는 백만마국, 그 가공할 집단의 하늘이 바로 그인 것이다.
신도능비.
그렇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백만마국의 하늘이 되었으며, 나아가 그 순간에 이미 천하제일인이 되었다는 신화를 지니고 있는 인물, 그가 바로 신도능비인 것이다.
한 권의 고서(古書).
고서는 평범한 가운데 진리를 담고 있는 오인요략(奧引要略)이었다.
단아한 자세로 서탁 위의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 인물, 그 태도는 극히 고매한 수양을 쌓은 대학사의 그것일진대...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바로 십여만 절정고수들의 생사를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백만마국의 하늘 신도능비인 것을.
지금, 오인요략을 넘기던 신도능비의 손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앞에는 훤칠한 키에 황의를 걸친 한 명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한 옆에 놓인 죽도(竹刀)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문사풍의 청년이었다.
청년은 신도능비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강물 속처럼 깊은 침묵이 흐르길 얼마만이었을까? 문득 신도능비의 입술이 떼어졌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극히 차분하게 가라앉은 조용한 음성이었다.
"예! 사부님, 그곳의 분위기는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애써 감추려 하고 있었으나 소문은 사실임이 확실했습니다."
죽유(竹儒) 소사(蘇査).
그는 대군황 신도능비의 삼대제자 중 두번째 인물이었다. 또한 백만마국 서열 칠위(七位)의 고수이기도 했다.
금년 나이 스물아홉.
성격이 차분하면서도 깔끔한 그는 무인답지 않게 단아한 용모에 조용한 성품을 지녀 신도능비로서는 확신이 필요한 일은 반드시 그에게 지시하곤 했다.
"그가 진정 죽었단 말이지?"
신도능비는 소사의 말에 한동안 천정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생각에 잠겼다.
"그렇습니다. 마교잠마일천군성의 새로운 대종사는 대군황에 비교되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나 신궁의 비밀을 풀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가 의문의 참사를 당한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아까운 일이군. 누군가의 음모였겠지."
문득 신도능비가 한숨 비슷이 입을 열었다.
소사가 움찔 눈을 들어 신도능비를 바라보았다.
"왜 놀라느냐? 이 사부는 젊은 인재가 그토록 허무하게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사는 무어라 말하려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어, 조용히 눈을 들어 신도능비를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드디어 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때라... 움직일 때를 말하는 것이냐?"
"예! 지금 현재 마교잠마일천군성은 수뇌를 잃은 상태, 이 기회를 놓치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기회라......?"
신도능비가 소사의 말을 받아 조용히 되뇌었다.
"그렇습니다. 본국 일천 년의 염원이 아니었습니까......?"
"그래! 중원, 그곳을 밟는 것이 천 년의 한이었지."
착각이었을까? 죽유 소사는 어쩐지 사부의 태도에서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방심 같은 것을 느꼈다.
허나 그렇게 느꼈다 싶은 순간, 신도능비의 전신에서는 서서히 기이한 기세가 일고 있었다.
감히 숨도 못쉴 엄청난 거웅의 기도, 그것은 이제 곧 천하를 향해 포효를 터뜨릴 무서운 잠재력이 응집된 해일을 대하는 듯한 기도였다.
소사는 자신이 착각했음을 느끼며 가슴 벅차게 솟아오르는 패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다소 격앙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습니다. 중원의 마도삼십육가(魔道三十六家)와 십칠사문(十七邪門)은 이미 본국에 충성할 것을 약속했고 이백구십여 개 문파 중 거의 삼할 가량의 문파가 암중으로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이때, 신도능비의 입에서 불쑥 엉뚱한 말이 흘러나왔다.
"소사, 너는 본국이 반드시 중원을 침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음성은 잔잔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꼭 소사에게 질문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어떤 여운을 담고 있었다.
"예......?"
소사는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해서 눈을 들었다.
신도능비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가서 검(劒)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운아(雲兒)를 후원으로 불러라, 그 아이에게 검을 가르치겠다."
일순 망연해 하던 소사의 몸이 미미하게 진동되었다.
"소, 소공자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제 그 아이도 무공을 익힐 나이가 되었지 않느냐?"
신도능비가 말과 함께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소사가 이토록 격동하는 이유를 남이 들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군황께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소공자님이 무공을 익히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다. 헌데 이제 무공을 익히게 하신다는 것은......?'
그렇다!
이로써 그는 신도능비의 결심이 확고해졌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한 번도 무공익히는 것을 허락치 않았던 아들에게 무공을 익히게 한다는 것, 그것도 직접 입문(入門)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만에 하나 있을 만약의 일을 대비해 후사를 도모하는 무인의 자세인 것이다.
이것은 전장(戰場)에 나서는 무인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전(決戰)이 임박해오고 있는 것이다.
바닥에 두 손을 짚고 무릎꿇은 자세로 격동에 몸을 떨던 소사가 문득 입을 뗀 것은 신도능비가 마악 방문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사부님!"
"뭐냐?"
대답은 있었으나 신도능비의 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허나, 그의 걸음은 이어지는 소사의 말에 불현듯 멈춰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중원침공을 원치 않으시고 평화를 원하신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할 신민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돌아선 신도능비의 몸이 미미하게 흔들린다고 느낀 것은 소사의 착각이었을까?
그 순간 신도능비는 멈췄던 걸음을 조용히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
"운아를 보내라. 후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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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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