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민족지
학문 만행
문화 연구 정석
본질적으로 문화인류학 존재하는가
『머리사냥과
문화인류학』
김용환 저, 열린책들, 2002년 4월
1. 인류학의 본질과 인류학 정체성 논쟁
모든 인류학자들이 한번은 깊이 천착하여 논쟁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인류학의 본질과 학적 대상 및 학문영역에 관한 것일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과 문화의 다름과 같음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분석할 것인지, 유적(類的)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인류학이라는
학문분과의 중심개념인 문화의 소재는 어디인지, 그리고 이 개념은 계속 유용한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을 안고 산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에서
출판된 인류학 관련 저서들과 개론서들은 몇 개의 시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거나 아직 감당하지 못하여 조금은 초조하고 급하게
인류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를 소개하려고 부진 애를 썼다. 이 책의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기존의 인류학 개론서들은 인류학의 본질을 심도 있게
다루기보다는 인류학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예시하면서 마치 각론들을 간추린 형태로 늘어놓은 듯하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때문에 이 책은
기존의 인류학 개론서들과는 상당히 다른 논의의 폭과 체계에서 인류학을 소개하고 있다.
인류학의 학적 본질과 영역 및 방법론에 관한 논의는 미국 스텐포드 대학 인류학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면 논쟁에서 분쟁으로 치달아
학과를 분열시키기도 하고 학문의 특성을 바꾸기도 하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1998년 5월에 스탠포드 인류학과는 야나기사코(Sylvia
Yanagisako)가 학과장이 된 사회문화인류학과(Dept. of Cultural and Social Anthropology)와
더람(William Durham)이 학과장이 된 인류과학과(Dept. of Anthropological Science)로 분리되었다. 사회문화
인류학자들은 과도한 포스트 모던이즘에 빠져있었고 이들은 해석, 상징, 메타포, 의미에 지나치게 의존하였으며, 애매 모호한 개념들로 인류학을
의례화, 신비화하고 있다고 비판받았다. 한편, 소위 인류 과학자들은 비교방법과 다양성의 일반화에 의한 소위 '과학적' 연구방법을 주장하고,
인류학을 생물학적-문화적 진화론, 생태학, 언어학, 사회문화인류학의 4개의 하위분과 체계로 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전자의 사회문화
인류학자들이 범지구적 이슈와 근대성, 글로발리즘, 근본주의, 탈식민성, 민족주의, 초국가주의, 인권, 지방과 원주민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표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연구주제와 연구 방법과의 상충과 단절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이 책의 서평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저자가 다소 비교문화적, 인류과학적 입장에 경도되어 이 책을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개론서로서의 한계 때문에 저자는 명확히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나 행간의 서술 방식을 읽어보면 인류학의 본질을
사회생물학과 동물행태학 뿐 아니라 다른 행동과학들이 전제하고 있는 보편적 인간본성론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인류학의
학적 체계와 방법론을 모색하고자 하는 고심과 노력을 통해 기존의 각론 중심의 백화점식 개론서를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류학의 본질적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는 전문적인 연구서라기보다는 인류학 개론서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문화와 인류학에 관한 흥미진진한 논쟁을 즐길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고 또 다른 종류의 인류학 입문서가 나왔음에 만족해야 한다. 인류학에 입문하는
초년생들에게는 눈 높이가 맞지 않아 다소 어렵고 인류학의 정체성을 두고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운 여운이 남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 주요 내용과 논점들
저자는 이 책에서 문화인류학의 주제를 6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인류학의 형성과 태동 배경을 역사적이며 사상사적인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쿠퍼(Kupper)와 스토킹(Stocking)의 학사 연구에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지리상의 발견과 계몽주의 사상,
진화주의와 민족학, 문화 개념과 문화진화론 및 상대론, 언어결정론에 이르는 인류학적 사상과 개념의 형성 전개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인류학의 다각적인 접근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소위 ‘광의의’ 인류학적 관점과 연구영역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학적
연구 주제와 접근 방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이 부분에서 저자는 지나치게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종과 비인과 영장류와의 비교를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비교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체질적, 행태적 비교를 통해 보편소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인류학, 동물행태학,
고고학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접근방식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한편, 저자는 칸트의 선험적 인식과 내성방법에 의한 철학적
인간학(anthropologie)과 현대 인류학의 차이를 비교연구와 관찰방법에 의한 경험주의 전통에서 찾는다. 그러나, 칸트류의 철학적 인간학
개념과 방법이 현대 인류학의 그것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소 미흡하여, 왜 칸트의 인간학에서부터 현대 인류학의 목적과 방법이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분류(표3), 사회의 유형(표4), 고립된 원숭이의 발달
장애(그림2), 언어 발달단계(표5)에 대한 인용된 도표와 그림이 서술되고 있는 맥락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루소의 글을 중복 인용(p.
11, 62)하는 것도 발견된다. 이러한 탈맥락화된 인용보다는 오히려 광의의 인류학적 연구주제와 대상 및 방법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세밀한
논의가 필요했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인간의 이해를 위해 인류의 체질적 행태적 특징과 변이, 인간의 고유성 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장에서도 저자는 생물학적 지식과
배경을 활용하여 다소 과중하게 인간의 체질적 특징들을 영장류와의 비교 관점에서 나열하고 있으며, 인간의 행태적 변이의 원인을 뇌의 작용, 즉
학습, 상징, 언어, 사고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인간의 고유성을 영혼, 이성과 자의식, 도구, 학습, 감정이입과
협동, 문화, 상징과 제스쳐, 언어, 비이성적 금기, 놀이와 예술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체계와 설명은 상당한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이 모든 인간 능력의 고유한 특징들은 바로 문화라는 질적 개념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이며, 이는 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질적인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테마는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라고 볼 수 있는 문화의 이해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사회와 문화, 상징과 문화, 문화표상과 명제, 문화
상대성과 합리성, 문화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극단적인 문화상대론의 예시로서 이롱곳의 머리사냥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문화결정론과
함께 극단적인 문화상대론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의 통문화적 보편소를 부정하는 극단적 상대주의를 경계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나, 과연 보편적 합리성을 지닌 문화, 문화특유의 합리성을 지닌 문화, 어떠한 합리성도 찾을 수 없는 문화와 같이 문화를 합리성의
관점에서 유형화(p. 161)할 수 있는 것인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제5장에서는 문화인류학의 방법론적 특징인 문화기술과 비교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민족지 조사, 문화비평, 문화 보편소와 인간 본성에 대해 각각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문화비평에 대해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문화비평으로서의 인류학(Marcus and Fisher 1986)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던 탈친숙화와 문화병치에 의한 민족지 문화비평의 개념과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발견된다. 문화
보편소(cultural universals)와 인류 보편소(human universals)라는 개념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 책 전체에서 이러한 개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보편소란 비교와 분류를 위한 개념들의 조작적 범주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모든
문화가 보편성 혹은 보편적 합리성을 지닌다는 가정은 아니다. 비교문화 방법에 의한 문화 보편소의 추구를 인류학의 본질적 과제로 설정한다면
인류학은 지금까지의 현장연구와 참여관찰 방식에 의한 심층 문화기술 방법이 아니라 사회생물학과 행동주의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을 택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장은 민족의 문화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최근 세계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적 문제들 -민족갈등과 분쟁, 문화의 지구촌화, 혼혈화,
사라져가는 민족들, 문화 경쟁력, 다이아스포라 등-에 대한 인류학적 탐색과 논의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적 문제들에 직면하여
인류학자들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선택적으로 절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문화의 이질성과 편견의
장벽을 극복하고 문화다양성과 경쟁력을 증진시키는 문화의 전면 개방이 절실히 요구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순차적 적응을 위해
선별적 개방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상황에서 인류학자들의 문화비평 작업은 더욱 중요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결론에서는 문화상대론의 극복과 문화의 비교연구를 통한 문화비평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인류학의 기여는 비교론적 시각에서 비롯된다는 논의를
인용하면서 책을 끝내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필자의 견해를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저자가 책의 부록으로 수록한
저자의 대학 도서관 열람실 하위문화에 관한 인지 인류학적 연구 논문과 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28쪽의 그림 인용 자료가 왜 수록되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점이다. 인류학 개론서의 새로운 구성과 체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저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자못 희석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 비교문화와 문화비평이라는 대안에 대해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인류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인류학자의 ‘일관성 없는 직업’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 세계는
더욱 파편화, 분산, 다원주의, 해체를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인류학자들도 점점 더 과거보다 질서가 없고, 진로가 불분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심지어 도덕적 이념적 단순화와 정치적 음모에 둔감한 조건에서 연구해야만 한다고 그는 판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학의 본질과 학적 체계 및
인류학자의 문화비평 작업은 얼마나 일관성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의 결론과 논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문화결정론이나 문화주의 뿐 아니라 문화상대주의도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극단적인
문화상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과 문화의 보편소를 전제하는 비교문화 연구를 통해 문화비평 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견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고 인류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실천적 함의를 지니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개론서에 맞게 많은 현실적 문제와 문화비평 사례들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마가렛 미드의 민족지 사례 뿐 아니라 홍세화의 글과 파란 눈
스님의 한국 선 수행기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교문화 및 문화비평 방법은 전통적인 민족지 연구 방법으로부터 일종의 방법론적 단절과 연속성이라는 긴장관계에서 논의되고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류학자들은 이미 민족지가 지니는 과학적 지식체계로서의 객관성과 권위에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자성의 단계를 거쳐 범지구적인 현실문제들에
대한 개입과 변호, 대안적 지식의 발견으로 그 역할과 방법론을 수정하면서 새로운 민족지론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비평 작업은 저자가 강조하듯이
인류 보편소라는 가치 기준을 전제로 한 비교문화 관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조건지워진 다양한 주체에 대한 민족지 연구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친숙화와 문화병치와 같은 문화비평의 방법론은 민족지 연구 방법의 심화와 확대를 통해 가능한 것이며, 탈맥락화된 진화주의적
비교연구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비교연구와 문화비평은 앞으로 기대되는 인류학자들의 현실개입과 참여의 영역임에 분명하고 이
점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대안의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대안적 지식체계의 발견으로서 민족지 연구가 지니는 강점과 토대를 더욱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지평의 확대가 기대되는 것이다.
요컨데, 인류학 내부의 자성적 비평인 문화의 기술과 재현, 텍스트에 대한 비평과 인류학 외부로부터의 비평인 민족지의 실천과 인류학자의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비평은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이 양자가 문화비평의 중심적 방법론과 과제이기도 하다. 두 가지 모두 민족지 비평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어 비교문화로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태 주(한성대 교수, 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