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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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 과학예술영재학교와 예술영재학교
이영조 (작곡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과학예술영재학교와 예술영재학교
교육부 산하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가 잉태되어 새봄이 오면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라는 밝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이러한 교육 제도는 이스라엘의 과학예술영재학교(ISA)에서도 이미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라틴어의 “ars”와 그리스어 “techne”의 합성어 어원을 가진 오늘 날의 영어 “art”는 17세기말 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향유해야 할 모든 종류의 기술을 의미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면서 기술과 구분되는 순수예술(fine arts) 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즉 진리를 규명하는 과학적 기능에 바탕 한 단순기교로서의 예술성과 순수예술의 이라는 감성적 예술로 구분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부터 오늘 날까지 다시 융합을 시도 하고 있다.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가 현재는 과학중심에 예술과목을 접목시키는 융합형태로 시작하겠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장래에 반드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융합교육의 장으로 우뚝 설 것으로 믿는다.
교육면에서 과학과 예술 재결합을 보면서 예술분야의 교육을 되돌아본다.
2008년 최초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설립된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그 파급 효과로 많은 영재교육 기관과 제도를 낳았다. 교육부 산하의 시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영재학교, 영재학급 이외에도 여기저기서 영재교육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고 영재교육과 조기교육이 구분됨 없이 영재교육이라는 허구 속에 빠지는 경우를 체험했다.
지금의 예술영재교육은 무대공연 분야에 무계를 더 많이 두고 있으며 따라서 음악, 무용 등이 주를 이루며 미술이 그 뒤를 이룬다. 특히 음악, 무용 등은 조기교육에서 해결해야 할 근육 운동(Muscle memory)의 정착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어 아주 일찍부터 교육받는다.
음악영재교육에 있어서는 조기교육에 제한을 받는 분야가 있다. 성악은 변성기라는 문턱을 넘어야 하며 호흡의 무리가 오는 관악기, 어린 몸에 비해서 큰 악기도 있기 때문이다.
음악 분야의 경우 전공이 좁고 깊기 때문에 기교적인 손재주의 왜소한 교육에 그치기 쉽다. 기악 안에서 세분되는 여러 악기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과학이 예술과 융합을 이루는 이 때에 예술분야에서 음악과 미술, 무용 연극 영화 등과의 융합교육을 시도해 볼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이미 오래전에 있었고 외형적으로는 이미 이러한 조직과 구조를 가진 교육기관들이 꽤나 있다. 그러나 그 내부를 세밀히 관찰해 보면 필요한 만큼 유기적인 체계를 가지고 교육적 효과를 내며 운영되는 데는 현재로서는 많은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장르가 다른 예술분야간의 교차 융합교육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학교에 재직 시 음악감상 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전교생이 수강토록 한 경험이 있었다. 졸업할 때 까지 수백 곡을 듣고 제시한 음악에 대하여 알아야 했다. 성악과 학생들이 기악곡을, 기악과 학생들이 성악곡을, 기악과 내에서도 현악기와 목관악기, 금관악기 곡들 중 높은 예술성을 지닌 곡을 체득해야 했다. 지적인 양을 요구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음악예술을 체험케 하고 거기서 자아의 창의적 상상력을 유발시키기 위한 강요되고 강제된 축복이었다.
학점은 없어도 필수 과정으로 두어(Pass-Fail)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었다.
시간 상 학생들은 힘들어 했으나 점점 교과 과정에서 제시한 곡에 매료되기 시작하였고, 그 외의 곡들도 스스로 찾아서 듣는 힘이 생겼으며 음악예술을 보는 시야도 넓어 졌다.
이같이 음악분야 안에서도 다른 전공과의 융합을 통해 예술교육의 충일함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과학과 예술을 융합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가 되었다.
이미 구축한 예술의 융합 교육이 더 실효적으로 확대 현실화 되어야 할 것이다.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듣지 못 하여도 어느 날 들판을 바라보면 그득히 푸른 초장에 덮여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왜소하고 영혼이 가난한 음악인이 아닌 여러 의미에서 예술적으로 가득 차고 넉넉한 음악인을 위한 융합교육도 더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