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캄보디아 사랑방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세계엔n 스크랩 워싱턴주 동부로 와인 여행을 다녀오다
권종상 추천 0 조회 169 09.08.09 23:29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푹  늘어져서 자고 조금 전에 일어났습니다. 지난 사흘 운전하고 다닌 거리가 7백마일에서 딱 2마일 부족한 698 마일이더군요. 사실 우리 집에서 부모님 모시러 갈 때는 카운트를 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7백마일을 훌쩍 넘겼을 겁니다. 그래도 7백마일 잡으면 1천 120 킬로미터. 그 2박 3일동안 다닌 거리가 그렇군요.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왔습니다. 다녀와선 우리 성당 사무장님 자제분 결혼식이 있어서 술, 그것도 소주만 마시고 일찍부터 뻗었다가 새벽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평소같으면 이렇게 대취하지 않았을텐데, 장거리 운전의 뒤끝에 소주의 기운이 겹져 몸이 못 견뎠던 모양입니다.

 

아직도 동부 워싱턴의 광활하고 웅대한 모습, 그리고 그 산비탈과 잡초밖에 자라지 않는 구릉들을 깎아 일구어 놓은 거대한 포도밭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맛보았던 포도주의 향기들... 에피쿠로틱한 여행이었고, 워싱턴주의 '저력'과 사람의 위대함이란 것을 두루두루 체험했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넓게 생각해보면, 결국 이들의 농업이라는 것이 어째서 해외시장을 그렇게 일구려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농업이 왜 이들로부터 수입을 받아들일 경우 결국 우리의 농업의 존재 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황무지를 일구어 대규모 농업 기지로 일궈놓은 이들의 근면함과 창조력 같은 것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도 인정해야 했습니다.

 

레벤워스에 도착한 첫날, 부모님과 함께 이곳의 명물 맥주를 마시러 갔습니다. 서북미에서 직접 담근 맥주도 정말 맛있습니다. 버드와이저니 밀러니 하는 대량생산 맥주들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맛이 담겨 있는 수제 맥주와 손으로 만든 소시지들을 안주로 삼아 첫날의 피곤을 푼 우리는 마을 광장을 아예 우리 집삼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이곳에 산재한 서북미산 와인들의 테이스팅 룸을 돌아다니며 와인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묵은 '레벤워스 빌리지 인'은 우리 가족이 벌써 몇 번째 찾는 곳인지라, 주인과 직원들도 저희를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숙박비 10% 디스카운트도 받고, 다음날 아침에는 이곳에서 제공하는 아침도 먹었습니다.

 

이 독일마을은 원래 이곳을 통과하던 기차가 노선을 우회하고, 기차 역을 없앰으로서  그들이 일단 살

아남으려 만들어 낸 인간 승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야키마, 치누크, 웨나치 족 등 3개 부족은 이곳을 중심으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골드러시가 다가오자 금, 모피, 그리고 풍족하고 비옥한 토양을 찾아 이곳까지 찾아온 백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던, 전형적인 서부의 역사를 지닌 마을이었습니다. 이들은 1890년 '이시클 평원'이라고 불리우던 곳에 정착지를 개간하기 시작했고, 이곳이 바로 레벤워스 마을이 되었습니다.

 

19 세기 말, 이곳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동서를 잇는 철도가 이곳을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레벤워스엔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적인 붐을 맞게 됐습니다. 또 목재산업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제재소는 이곳의 주민들을 거의 먹여살리는 큰 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도를 소유하고 있던 '그레이트 노던 레일웨이'사가 이곳의 역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결정을 하게 되자, 마을 전체가 급속히 침체됐습니다. 특히 이로 인한 제재소의 폐쇄는 이 마을에 거의 궤멸적 타격을 가져왔습니다. 이로부터 30년동안 이 마을은 거의 유령마을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 주민들은 이곳에 관광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게 됩니다. 마을 전체가 유럽의 고산지대와 비슷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관광 산업에 마을의 회생을 걸기로 한 것입니다.

 

마을 사람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그들의 아름다운 천연 자원을 활용하며 이곳에 맞는 분위기로 독일 마을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워싱턴 주 중부를 거의 완벽하게 독일 바바리아 지방의 마을로 바꿔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운타운 지역을 완벽하게 독일 마을로 바꿔버린 이들은 곧 몇몇 독일식의 축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연례 낙엽 축제로 시작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비롯, 관광객의 눈길을 한번에 잡아 끌 수 있는 수많은 축제들이 계속해 생겼습니다.

 

이곳이 주는 분위기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것이지만, 한때 붐타운으로 각광받았던 이곳이 경제적으로 극한의 침체를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을을 완전히 바꾸어낸 스토리는 말 그대로 인간의 의지야말로 변혁의 주인공임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우리는 이곳의 과수원들도 찾아다녔고, 이곳을 휘돌아감는 웨나치 리버의 강변을 걸으며 잘 가꾸어 놓은 시립 공원을 즐겼고, 다음에 올 때는 꼭 이곳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아이들과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 마을을 떠난 날, 우리는 레벤워스 마을 초입에 있는 스몰우드 팜이란 농장에 들렀습니다. 이 농장에선 자기들이 만들어 소개하는 포도주도 있고, 온갖 신선한 과일과 야채들, 그리고 요즘에는 정말 싱싱한 살구와 복숭아 등을 만날 수 있지요. 또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작은 동물농장도 만들어 놓았고, 옥수수대로 만든 미로들, 그리고  우유통으로 만든 기차를 탈 수 있게도 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몇시간을 앉아 놀면서 우리는 가지고 간 전기포트를 활용해 쌀로 만든 인스턴트 국수와 남은 밥을 거둬 점심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벤워스를 벗어나 엘렌스버그 쪽으로 향하자, 금방 경치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로 빽빽했던 숲은 어느새 푸른 빛을 잃은 평야와 구릉지대로 바뀌고 있었고, 나무 대신 관목과 다른 잡풀들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엘렌스버그를 지나 I-90 번 고속도로를 다시 탄 후에 금방 야키마로 향하는 I-82번 도로로 갈아타면서, 길 주변으로는 끝없는 황무지만이 보였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광대한 삭막함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땅 크기를 실감케 하는 이런 경치가 이어지더니 어느새 야키마 근처에선 다시 푸르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야키마는 이미 농업과 농산물 가공을 기반으로 하는 큰 도시가 되어 있었고,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금방 '워싱턴주 와인 지역으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가로 곳곳에 걸려 있어서 이곳 와인산업의 빠른 성장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긴, 제가 미국에 올 당시만 해도 40여개에 지나지 않았던 워싱턴주의 와이너리들은 오늘날 6백개가 훨씬 넘어가는 숫자로 성장을 했으니 그 성장의 폭을 알 수 있겠지요. 경제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닫은 곳도 꽤 되는데도 이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워싱턴주 와인의 인기를 반영하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야키마를 지나 프로서로 향하는 길은 삭막한 황무지와 풍요로운 농장이 교대로 교차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윽고 프로서에 도착, 베스트 웨스턴 인에 여장을 풀었고, 이곳에선 애완동물의 반입이 가능해 강아지도 모처럼 늘어지게 휴식을 만끽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성윤네와 함께 저녁을 했습니다. 성윤과 가족들이 사는 곳은 리치랜드라는 곳인데, 이곳의 패스코, 케니윅 등 3개의 도시를 함께 묶어 트라이시티라고 부르지요. 이곳도 며칠전엔 110도 가까이 올라가는 기온 때문에 모두들 고생했다고 합니다. 제가 6학년일때 어머니도 교동국민학교로 전근, 6학년을 맡으셨고 이런 연유로 벗이 된 성윤과의 해후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성윤의 부군과 두 아이들도 즐겁게 저와 가족들을 반겨 맞아주셨고, 어머니와 성윤의 이야기꽃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유쾌한 가족들과의 해후를 마친 저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푸짐하게 먹은 저희는 처음엔 리치랜드에 위치한 버나드 그리핀 와이너리를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서북미산 와인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와이너리라고 늘 생각해 온 와이너리이고, '서민적 와인'과 '고급 와인'의 경계에서  제 주머니를 조금 헛갈리게 만들어주는 와이너리이기도 하지요. 이곳에서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테이스팅 룸에서 노닥거리며 몇 잔의 와인맛을 보고 결국 두 병을 구입했습니다. 한 병은 어머니께 바친 리저브 비오니에, 그리고 한 병은 포트였습니다. 평소엔 겁나서 못 사는 것들, 이번 여행에 신나게 질렀습니다.

 

그 다음엔 호그 셀라에 잠깐 들렀다가, 스노퀄미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 두 와이너리들이야말로 저렴하면서도 서북미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다는 평을 듣는 터, 여섯 병인가를 질렀는데도 50달러가 안 되는 착한 가격... 그리고 여기에 시중에 나오지 않는 몇몇 와인들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패터슨의 콜럼비아 크레스트 와이너리로 향했습니다. 이곳으로 가는 길도 내내 끝없는 광야와 농장이 겹쳐졌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구릉에서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이는 농기계가 그 광막한 광야를 갈아엎으며 농지로 만들어내고 있는 광경은 경이를 넘어선 감동까지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콜럼비아 크레스트. 저는 그 끝없는 포도밭 안에 들어가 막 달려봤습니다. 한쪽 구릉지를 벗어나니 콜럼비아 강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뛰어든 그 포도밭은 79년에 심은 소비뇽 블랑 밭이었는데, 벌써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풍성하기만 했습니다. 그 끝없는 포도밭이 바로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그랜드 에스테이트' 였고, 여기서 자란 포도들은 바로 '그랜드 에스테이트' 레벨로 만들어지는 포도주들이라고 합니다. 역시 샤토 생 미셸과 더불어 워싱턴주 와인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울 만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병당 4-5달러짜리 막와인부터 한병에 40달러가 넘어가는 '월터 클로어'까지 다양한 버전을 생산하고 있는 와이너리인만큼, 그 규모와 주는 감동의 규모가 틀렸습니다.

 

이 와이너리에서 저는 제 블로그를 직원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있었고, 제 블로그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담당 직원은 결국 제게 30%의 '인더스트리 디스카운트'를 주었습니다. 제가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와인을 꽤 열심히 한국에 소개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덕분에 다양한 포도주를 맛보고, 여섯 병인가의 와인을 남들보다 저렴하게 사고 나서, 우리는 이 에스테이트의 중앙에 파진 인공 연못 부근의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선, 밥도 해 먹고 라면도 끓여 먹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마, 이 와이너리 생기고 나서 여기서 전기밥솥으로 밥이랑 라면 해 먹은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 아닐까." 하이고... 저도 그 말에 동감을... 이곳에서 포도밭 사이를 걷고 뛰고 하며 에너지를 소비한 우리는 와이너리가 닫은 후에야 출발했습니다.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마운트 레이니어 산을 넘는 410번 도로를 선택했습니다. 야키마 강을 끼고 운전하는 것이어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저는 워싱턴주의 모든 과수원들이 거기에 몰려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했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과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보이는 경치들에 초록색이 더해지기 시작하고, 나중에 우리가 마운트 레이니어를 넘는 치누크 패스 정상에 다다라선 10미터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 때문에 조금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서부 워싱턴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불갈비를 구워 먹으며 이 장도의 여행을 잘 끝낸 것을 축하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마 시간이 나면 다시 이곳들로 돌아가보려 할 것입니다. 아, 정말 기분 좋은 여행입니다. 덕분에 와인도 많이 맛보고... 이 여행기에 올리지 못한 수많은 와인 시음기들은 아마 천천히 쓰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 내킬 때 떠날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마 우리의 삶에 큰 양념이 되어 줄 테지요. 아내와 손잡고 풍성한 포도밭을 거닐면서, 그리고 어머니보다 훌쩍 커 버린 우리 큰놈의 뒷모습과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을 카메라에 잡으면서, 저는 참 많은 생각들을 했고,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비료가 됐을 터입니다. 제 삶은 이번 여행으로 또한번 기름진 토양이 된 듯 합니다. 그리고 이 토양에 무엇을 심고 키울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애해야 할 듯 합니다.

 

 

시애틀에서....

 

 

 

 

 

 

 

 

 

 

 

 

 

 

 

 

 

 

 

 

 

 

 

 
다음검색
댓글
  • 09.08.10 00:41

    첫댓글 북구라파, 독일계 미국인들이 많은 곳이 와싱턴 주 동부..75~79년 MIKE HANES, RON WHITBECK 등이 촌에 가서 뭘 한다고 한게 아마 이런 결과를 가져 온것 같네요...그 이후 이야기를 이렇게 자상하게 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옛 추억이 되 살아 납니다.

  • 작성자 09.08.10 03:15

    예... 많이 달라졌지요. 그리고 가볼만한 곳도 엄청 늘었습니다.

  • 09.08.10 13:14

    Zapata 선배님의 멋진 댓글 오랜만에 접하네요... 집에 무사히 도착하시고 시차도 극복하신 모양이십니다. ^.^

  • 09.08.10 06:13

    스타분의 가족분들을 화면으로나마뵈니 왠지 기분이~업~ 되네요 즐건 한주가 시작되는 업 된 기분으로 ~고~고~고~ 잘 보고감다...건강 하시구요..

  • 작성자 09.08.10 07:31

    웬.... 스타.....

  • 09.08.10 13:12

    스타 맞쥐이~~~ ㅋㅋㅋ ><

  • 09.08.10 13:16

    역시 기자 출신이시라 글도 멋지게 잘 쓰십니다. 가족과 함께한 감동의 시간들... 읽고 보는 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렇게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을 우리 카페에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 작성자 09.08.10 13:57

    하이고...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갑자기 웬 '사명감'이....

  • 09.08.10 15:12

    저는 와인을 잘 모르지만 종상님의 글만 열심히 읽다보면 와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기본 상식은 알수 있을것 같네요...가족동반 즐거운 나들이 참으로 멋지네요...더우기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오셨기에 더욱 부럽습니다...잘 봤구요..늘 건강하십쇼...

  • 작성자 09.08.10 20:57

    감사합니다. 와인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술이죠.

  • 09.08.10 17:19

    참 맛나게 멋지게 와인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지난번 찾아온 손님 당뇨로 해서 무게가 좀 줄으셨나요? 그리 오래 운전하시면 피곤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하긴 젊음은 이래서 좋지요. 참 단란한 한때 같이 즐겁네요^^

  • 작성자 09.08.10 20:58

    예... 22파운드 정도 줄였으니 꽤 줄인 셈이지요. 당일은 몰랐는데, 그 다음날 확실히 피곤하더군요. 그래도 아직은 할 만 합니다.

  • 09.08.12 14:47

    여행이 삶을 풍효하게 만든다더니 정말 좋은 여행하셨군요.가족이 모두 함께 할 수있는 점이 더 부럽습니다~

  • 작성자 09.08.12 15:19

    예... 가족이 모두 한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정말...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