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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스크랩 아름다운 민속 시리즈 2 - 그림으로 보는 무당 굿
이재선 추천 0 조회 149 09.08.12 09: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림으로 보는 무당 굿

 

『4대문 안에서는 하지마라』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무속(巫俗)을 억압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당은 4대문 안에 거주할 수 없게끔 규제했고, 도성 내에서 굿을 하는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곤장형에 처했으니 그 정도를 알만하다. 그런데! 유교사상과 무속이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조상신(神)에 대한 인식이다. 주지하다시피 양자 모두 조상에 대한 치성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무속을 ‘완전히’ 배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법제적으로 막아 놓았던 4대문 안에서의 무당거주 및 굿 금지도 달리 생각하면, 4대문 밖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한 폭 살펴보자.

 

 

 

<무녀신무도>

 

 

<무녀신무도 중에서>

 

이 그림의 이름은 무녀신무(巫女神舞)다. 홍철릭을 입은 무당이 굿을 하고 있는데, 아낙네 몇몇이 열심히 지켜보고 있다. 분명히 사대부 집안의 지체 높으신 부인 같은데, 유독 쓰개치마를 쓰면서까지 몸을 가리고 있는 여성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무녀 뒤편에 상차림은 지나치게 간소하며, 초가집의 문은 어디로 다 떼어먹었는지 앞이 뚫려 있다. 누군가에게 걸리지 않으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장구잽이도 장구의 끈을 최대한 늘려 소리를 작게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만 이라고 하기에는 앞줄에 앉은 세 여성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 뵌다. 게다가 노랑 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턱까지 괴면서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담 밖에 종 놈도 보라는 망은 뒤로 한 채 굿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긴장과 여유가 오고가는, 참으로 의문투성이인 그림이다. 의문을 풀기 위해 민속박물관을 다녀 와 보자.

 2008년 12월 민속박물관에서 ‘귀신축제’가 열렸다. 우리가 살펴 볼 것은 성주굿이다. 보통 굿은 열두거리(막)로 연행되는데, 쉽게 말해 12명의 신을 각 각 한 명씩 기쁘게 해드리는 과정으로 나뉘어져 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神)을 모시는 것이 성주굿이다.

 

 

 

<실제 무당과 무녀신무도 속의 무당>

 

작년 귀신축제에서 성주굿이 구연되었는데, 보라 이 무당의 옷차림이 신윤복의 그림에 나오는 무당의 그것과 쏙 빼닮지 않았는가. 이 둘은 모두 성주굿을 하는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성주신이 어떤 신인가. 예부터 성주신이 노하시면 남편이 바람나고, 지신(地神)이 노하시면 부인이 바람난다고 했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이들은 혜원의 그림에서 아낙네가 왜 무당을 통해 성주신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지 알 것이다.

 이야기인즉 이러하다. 양반가의 바깥주인이 바람이 났으니, 전전긍긍 속앓이를 하던 안주인이 궁리 끝에 굿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도성 밖에 사는 무당을 찾아 갔더니, 남편이 바람난 것은 성주신이 심통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줬을 것이다. 날을 잡고 굿당을 찾아갔는데 초가집을 개조한 것인지 신기하게도 굿을 할 때에는 미닫이식 문을 다 떼어 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의 감시를 피하는 속임수는 무궁무진 했으리라. 그래도 남 보기에 부끄러운 안주인은 쓰개치마 밑에 숨어있고, 따라간 여편네들은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에 마치 재미난 영화를 보듯이 푹 빠져있다. 애끓는 당사자는 부인일 뿐 다른 사람은 구경꾼에 불과한 것이다.

 

『아픔을 치료해 주는 사람들』

 

 그렇다면 무당은 어떠한 인물인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무당은 인간과 신을 소통시켜주는 사제자다. 무당의 종류는 참 다양한데 성별에 따라 남자는 박수, 여자는 무당 · 무녀라 부른다. 지역별로 한강 이북에서는 무당 · 무녀라 하고 한강 이남에서는 당골 · 단골네라 하며 제주도에서는 심방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무당의 능력별로 또 구분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두 타는- 무당은 강신무(降神巫)라 한다. 이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다가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는 경우로 현대과학으로도 해명이 불가능한 기현상을 보여주며, 신의 능력을 빌려 사람들에게 공수(운을 점 봐주는 행위)를 준다. 재미있는 것은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면 특히 전라도에서는 당골이라 불리는 세습무(世襲巫)가 있다는 사실이다. 세습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당골은 신이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습을 통해 굿을 주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점을 볼 수 없고, 제사만 지낼 수 있는 무당이다. 대신 예술성이 뛰어나 전라도에서는 여전히 당골의 굿을 최고로 여긴다고 한다. 근래에는 젊은이들이 점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성향을 겨냥해 우후죽순 사주카페니, 사주팔자니 하는 가게들이 오픈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점 봐주는 사람은 신이한 능력은 있지만 굿은 할 줄 모르는 ‘점쟁이’라 부른다. 사진을 한 번 보자.

 

 

 

<무당의 모습> 

 

왼쪽은 박수무당인 장주억 씨, 오른쪽은 김옥염 무녀다. 둘 다 서울에서 꽤나 유명한 분들이다. 화려한 차림과 화장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참 평범한 분들이다.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무당과 당골들이 우리들처럼 보통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만, 남들보다 상처가 깊다는 것! 무당들의 개인회고를 듣다 보면 이렇게 기구한 삶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픔이 많다. 게다가 한 세기 전만 해도 무당이라 하면 천민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노(老) 무당 중에는 직업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인간문화재를 시켜주겠다고 해도 세상에 무당으로 알려지는 것이 싫다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알 만하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아픔은 치료해주면서 정작 본인은 더 아프게 사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무당인 것이다.

 

『굿 떡 먹는 사람들』

 

 굿을 하고나서 그 효험을 보는 것을 가리켜 ‘굿 떡 먹는다’고 표현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굿을 하나 싶어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다. 과거, 마을단위로 살 던 시절에는 해마다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서울에만 아직도 한 해에 4~50회에 달하는 마을굿이 열린다고 하면 놀랍지 않은가.

 

 

<굿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진 속 많은 사람들은 그 중에 하나인 행당동 마을굿(동제)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무당의 공수를 듣는 이들의 표정이 그야말로 진지하다. 이외에도 무당의 말을 들어보면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모습도 굿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무당의 경우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의 30% 정도는 ‘유일신(唯一神)’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당의 수도 자연스레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의 더 큰 욕심을 이루어주기 위해, 욕심을 쫓아 무당이 되는 사람들의 수도 더불어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본래 굿판은 소박한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굿을 하는 무당도 아픔을 간직한 여성이오, 굿을 보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이었다. 무당이 구슬프게 바리데기 공주의 이야기를 노래할 적이면 구경하러 온 어머님들은 그렇게 슬피 울곤 한다. 바리데기가 부모를 그리듯, 버림받고도 부모를 위해 희생을 하듯 우리네 어머님들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굿판에서 한을 풀 수 있던 것이다. 자, 이쯤 되면 무당굿이 지켜야할 우리 문화재라 할 만하지 않은가.

 

 

 

▲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박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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