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요일, 오래 전에 약속된 상담이 있었는데 요즘 정신머리에 깜빡하고는 건축사사무실에 앉아있었습니다.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반갑게 맞이해주는 가족들. 아이와 아이엄마, 그리고 외할머니가 멀리 서울에서 방문해 주었습니다. 아직 50개월이 안된 아이의 외할머니가 너무 젊어보여 깜놀!
아이를 지켜보고,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갑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합니다. '늦어지는 발달'에는 수많은 조짐과 희망 내지 절망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조짐현상 중에서 무엇을 희망으로 분류하고 무엇을 절망으로 분류할 것인가는 분명 전문가의 판단과 대책제시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는 전문가의 의견이 너무 분분하면, 배가 산으로 가고 있기도 합니다. 발달장애 영역에서는 상당수의 전문가가 독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를 탓하기에 앞서 '발달장애'라는 복잡한 과제는 '장님 코끼리만지기'하고 똑같은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코끼리를 매만지며, 긴 코를 코끼리로 볼 수도 있고, 큰 귀를 코끼리로 볼 수도 있고, 튼튼한 다리를 코끼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두 틀리지는 않으나 그렇게 파악된 코끼리라는 동물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코끼리의 일부신체 특징이 '~~같이 생겼네'라고 확신보다 추측을 하는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래와 같이 코끼리 일부를 만지면서도 그것에 대한 오판을 하게 되면 그렇게 제시되는 판단과 대책들에는 큰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코끼리 코를 만지면서 뱀으로 여기고, 코끼리 배를 만지며 벽으로 여기며, 꼬리를 밧줄로 여긴다면 전혀 다른 방향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아이를 진단하려는 전문가를 만나거든, 장님 코끼리만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부분적 수용자세가 필요할 것이라 보입니다. 더우기 위의 두번째 경우처럼 전혀 다른 진단을 해버리면 거기에 따른 대책은 당연히 쓸데없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태균이 어렸을 때 양육을 맡아주었던 외할머니가 귀신씌였다라는 무당의 말을 믿고 굿하는데 큰돈을 썼던 것도 그런 일환입니다.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장님 코끼리만지듯' 조언을 하는 전문가가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어찌보면 부모가 어떤 전문가에게서 상담을 받고 어떤 치료책을 선택하느냐는 아이의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제 만났던 아이는 근본이 보통 자폐증으로 의심되는 아이들과 긍정적으로 다른 면이 꽤 있습니다. 주변에서 '지적장애'로 규정하려는 측면은 전정감각의 단련이 지연되었던 원인에만 촛점을 맞추고 개선해 주었다면 충분히 장애를 붙일 필요가 없었는데, 이런 깨달음을 알려주는 전문가가 없었다고 봐야합니다. 오히려 몇 가지 측면은 아이가 좋아질 수 있는 반대의 조치를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훗날 아이가 정말 지적장애가 된다면 그건 엄마탓일꺼라고 제가 긴 상담 끝에 덧붙였으니 부모가 인식을 바꾸고 제대로된 방향으로 도와주는 일이 이제부터는 꼭 필요할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가 아직은 어리니 더 큰 가능성이 보이고 부모와 외할머니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으니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여기 행자카페에 수많은 진실이 있음에도 글들이 너무 많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서 어제 왔었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리를 해야할 싯점입니다. 상담을 하면할수록 정리에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코끼리 전체를 정확히 보고 코끼리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 그게 태균이와 저의 삶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환영하지만 문제의식에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 또한 필수입니다. 심장병에 걸렸는데 신장을 치료하고, 간암인데 위암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오류진단과 대책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중심을 갖게 해주는 일, 얼마나 중요한지요! 절망적 요소에도 분명 대책은 필요합니다.
종일 부슬부슬 비가 뿌린 날, 상담마치니 오후 1시가 훌쩍 지나고 그 다음의 바쁜 일정들이 주루룩 딸려옵니다. 그렇게 흐린 월요일 동분서주했더니 녀석들이 돌아오고, 빗 속에서도 바로 운동나서는 태균이! 벌써 성큼성큼 저멀리 가버렸습니다. 엄마의 빨간우산을 빼앗아 쓰고는 미소를 만면에 채우니 자식의 미소만큼 부모에게 좋은 선물은 없을 듯 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먼 길을 달려 온 4살 어린이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장애인도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