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 박래여
오랜만에 국산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을 봤다.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중국영화『와호장룡』을 연상시키거나 『영웅』의 이연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해바라기를 심어 놓고 그 해바라기가 자람에 따라 뛰어넘기 연습을 하는 주인공 홍이의 모습도 해바라기 꽃밭의 풍경도 전도연과 억새밭에서 검술 연습도, 궁궐 마당에서 친위대와 한판 승부를 겨루는 이병현의 등에 떨어지던 빗줄기, 덕기와 설랑이 찻잎을 따며 나누던 차에 대한 이야기가 내겐 신선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권력을 잡고 왕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과 우정마저 끊어버린 비련의 주인공 덕기, 그가 권력자로 군림하지만 왜 그렇게 불쌍해 보였는지.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권력을 잡고 놓지 않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권모술수와 살인도 불사하면서 가면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 영혼이 없는 사람의 집단을 보는 것 같은 오늘의 한국 정치판, 마지막 장면은 뭐라고 해야 할까.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를 찔러 죽이는 딸, 엄마가 원한 결과라지만 너무 비정한 결말이었다.
『협녀, 칼의 기억』은 전체적으로 엉성했지만 푹 빠져서 봤다. 여자는 사랑을 탐하며 살고 사랑을 탐하다 죽는다면 남자는 권력을 탐하며 살고 권력을 탐하다 죽는다는 것, 사랑과 증오는 하나라는 것, 찻잎은 짓이겨지고 상처가 날수록 맑은 차의 맛을 우려낸다는 것이 영화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칼의 기억은 차갑고 냉정하지만 잘 우려낸 차의 맛은 아련하고 따뜻하다. 딸의 칼에 찔려 죽는 설랑과 덕기, 그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는가. 끊임없이 갈구하던 것을 죽음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할까. 혼자 남은 홍이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나는 다시 자기연민에 빠진다. 미련이나 연민이 없는 인간이 있을까. 사람의 양심은 자기 성찰을 하면 양심이 고개를 들고 자기 성찰을 밀어내버리면 양심은 개에게 던져주는 먹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양심껏 산다는 것도 참 어려운 세상이다.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면 양심보다 생존본능이 먼저가 아닐까. 욕심내려놓기만큼 힘든 일도 없으리라. 사랑과 증오, 권력과 성취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에 따라 살 수만도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양심이 아닐까. 그들, 설랑과 덕기의 지독한 사랑도 딸 홍이, 세 사람의 인생도 참 슬펐다.
오랜만에 국산 영화에 푹 빠져 봤다는 것이 더 좋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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