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진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60여년전 나의 12대조 도산공 할아버지께서 진주마진에 남향의 차령산을 배산으로하고 물좋은 남강을 임수로하여 이비옥한 들역에 터를 잡으셨다
백여호 재령이씨 일문일촌으로 가문의 세도를 누리며 오손도손 살아왔다 다들 마진을 칭하기로 뼈대있는 집안으로 부른다
그 연유를 살펴보면 고려말 두문동 72현중 한분으로 선비의 몸으로 어떻게 2군을 섬길수있느냐며 함안으로 낙향하시여 이조와 담을싸고 담 안을 고려동이라 칭하며 살으셨던 우리18대조 모은공 할아버지와 또
경북영양에서 노론의 폭정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굳굳하게 퇴계의 학맥을 이어오신 남인의 거두 갈암 할아버지가 계시고 갈암하면 정부인 장씨할머니가 계신다
자신도 시문에 능하시고 유가의 훌륭한 보전은 물론 8남매를 판서와 유학자로 길러내시며 여성이쓴 최초의 한글요리책 다미방은 유명한 문화재로 그 인기가대단하다
이런 훌륭한 선대의 후광을 이어받아 마진에는 우리9대조 소암공 할아버지는 천석의 부호를 누리시고 주위를 호령하며 인근 고을 원들과의 친교로 그세도가 대단했다고한다
학문으로는 세상에 유례업는 3대 유학자 집안으로 그 명망이 높다 우리나라 유림의 지도자 면우 곽종석선생의 수제자이시며 파리장서 서명자 137인의 한분이신 매당 할아버지와 그 아들 정산은 면우선생 문하에서 유학에 매진하며 파리장서 표단으로 지명 받으시고 그아들 굴천은 한학자로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의 한문비서로 등용되시니 유학자 3대가 탄생하게 되었다
파리 평화회의에 유림대표로 참여하여 세계만방에 나라독립을 호소코자 장도에 오르시는 심산김창숙대표를 보좌하는 대표단의 일원으로 면우선생께서는 정산할아버지를 지명하시고 심산김창숙 대표께서는 소정할아버지를 직접 천거하여 참여하게 되시니 두분은 종형제 간이시다 이 어찌 가문의 영광이요 자랑이 아니곘는가
모든 출국준비가 끝나고 서울모처에서 대기중에 일본 앞잡이 들의 기습만행에 감금되시니 심산은 대사를 그르칠수없다며 통역 한사람만 대동하고 만주봉천행 기차에 몸을 실으셨다
원대한 꿈이 사라진 소정할아버지는 마음을 상하시여 그해 4월 문중의 애통속에 나이 30에 요절하시니 가문의 비극이요 유림의 큰손실이 아닐수없었다 해방이되자 소산할아버지는 진주향교 전교를 연임하시다가 유림의 대표로 초대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하셨다가 낙선하게 된다 소산은 소정의 삼형제중 백시이시다
마진에는 민속문화재 3점이 정부의 보호를 받고있다 하나는 입마진하신 도산공의 재실 도산재이고 하나는 9대조 소암공이 창건하신 마호당이며 하나는 매당 의 제자들이 뜻을모아 만든 매호서당이다 ,
선대의 청빈하고 고매한 선비정신과 지금도 후손들은 예의 범절과 그 얼을 잊지않을려고 노력하며 팔도에 흩터저 살면서도 가문의 일이라면 내일같이 앞장서는 자손들이 있으니 이게 바로 우리집안을 모두가 뼈대있는 집안으로 칭송하고 존경받는 이유가 아니곘는가 모은19세손 병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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