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서적 번역·출판 기획자 (펌)
중국의 한국서적 번역·출판 기획자 .. 글쓴이 : 이은숙 (sooksunji)
1. 한중 교류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한국어과 졸업생들 - <그 놈은 멋있었다>의 번역·출판
기획자, 황홍
지난 번 기술한 바와 같이 중국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서적은 <국화꽃 향기>와
<상도>였다. 그러다가 이번 1월에 나온 <그 놈은 멋있었다>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하
였다. 그런데 이중 <상도>와 <그 놈은 멋있었다>가 한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그 출판사는
딱 두 권 출간한 한국서적을 모두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나는 지난 번 글에서 “<상도>로 재미를 본 북경의 世界知識出版社가 두 번째로 고른 한국
작품은 인터넷소설 <그 놈은 멋있었다>이다. 영화 상영에 앞서 번역 출간해내 영화의 인기
를 미리 이용하려는 발빠른 상업성과 최고의 인기 작품만 골라 출판한 이 출판사의 감각은
앞으로 눈여겨 볼 만하다.”라고 하여 世界知識出版社를 주목했었다.
나는 이 출판사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 놈은 멋있었다>역자와 연결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으나 출판사는 북경외대 졸업생이라는 것만 알려주었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북경외대
재학생을 통하여 역자와의 연락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역자, 황홍(黃?, 황횡)은 바로 북경외대 외국인유학생들에게 번
역 강의를 하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작년 9월부터 이곳에서 강의를 시작했다는데, 같은 학교
에 있으면서 모르고 있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학교에서 강의하는 선생
님을 만나기 위하여 출판사와 재학생 등 여러 다리를 거쳐 만나다니, 나도 한심했지만 내
주변 외에는 알기 어려운 중국의 그런 특성이 다시 한번 나를 답답하게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만나서 하루 5시간 동안이나 내리 데이트를 하였다. 그는 나와 만난
다음 날 계림으로 떠났다. 출판사가 <그 놈은 멋있었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 대한 감사
의 표시로 마련한 특별 보너스 여행이었다.
황홍은 2년 전 2002년 8월에 북경외대 한국어과를 졸업하였다.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에
들어갔으나 업무가 비교적 한가하고 전공과도 별 관련이 없어 일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한가
한 시간을 이용하여 주로 번역에 몰두했던 그는 드디어 그곳을 그만두고 북경외대 번역 강
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한국의 서적들에 관해 전반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가
골라낸 작품이 <상도>였다. 최인호의 원작이 드라마로도 방영되고 이것이 중국에서도 방영
되어 인기를 끌었는데, 그는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은 것도 중요했지만 이 작품이 중국과
의 무역 속에서 그야말로 ‘상도’를 말하고 있어 경제에 밝은 중국인들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추천을 받아들인 世界知識出版社는 역자를 선정하여 번역, 처음
으로 한국 책을 출판하게 된다. 처음 출간한 이 책이 6,7판을 찍어내는 판매율을 올리자 이
출판사는 황홍의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두 번째로 황홍이 고른 책은 <그 놈은 멋있었다>이다. 그리고 이책은 황홍 자신이 바로 번
역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저자나 독자들의 연령대는 황홍하고 맞지 않았다. 중고생
이 주 대상인 이 책은 문장감각도 그에 맞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서 중국 인터넷에 수없이 접속하여 중고생들의 새로운 문장 감각을 익혔고, 그리고 이미 출
간된 인터넷 소설들을 탐독하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청소년들의 잡지를 구독하였고, 친척
동생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사이트 등을 알아냈다.
그는 번역가는 단순한 번역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번역을 해야 하므로 많은 준비과정을 가져
야 한다고 말한다. 번역 문장에서는 그냥 1:1 대등이 아니라 불필요한 단어나 문장은 과감하
게 삭제하면서 보통 중국어와 같은 느낌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어 문장은 수식이
매우 많아서 중국어 문장이 굵직하고 명료하게 쓰여지는 것과 대조적이므로 때로는 과감하
게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자세하게 묘사하고 중국인은 전체적인 묘사에 중
점을 두므로 한국어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중국인들은 어지러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때 그가 탐독한 책은 <夢裏花落知多少>(꿈속에 꽃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我爲歌
狂>(나는 노래광을 위하여), <一光年有多遠>(일광년은 얼마나 먼지), <心的1/2>(마음의
1/2), <湖邊有?許愿樹>(호숫가 발원수) 등과 <理工大風流往事>(이공대의 풍류왕사), <此間
的少年>(여기 있는 소년>, <畢業之後一起失戀>(졸업 후에 함께 실연하다) 등등인데 후자는
인터넷 소설이다.
중국에도 귀여니만큼 유명한 고등학생 인터넷 작가 한한(韓寒)이 있다. <三重門>을 썼는데
이 작품은 10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었다. 상해 복단대에서 입학허가가 났으나 대학교육
이 필요없다고 거절하였다 한다. 성균관대를 선택한 귀여니와는 대조적인 길을 선택했는데,
제도권을 벗어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렇게 몇 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중고생들의 인터넷 문체와 감각을 익힌 그는 드디어 번
역에 들어갔다. 번역을 위한 준비 기간과 노력이 이처럼 많이 필요하므로 번역료가 높아야
하나 출판사는 그런 과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섭섭해한다. 그래서 돈을 보고는 번역 일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출판사는 그를 완전히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취급하여 귀빈대접이
란다.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극진하게 대접받으며 행여 다른 출판사에서 그의 존재를 알까
봐 장중 보물처럼 보호하고 있다. 원고료는 일시불로 받았단다. 앞으로 보너스를 받을 가능
성이 있는 것 같으나 받아야 받았나보다 할 거 아니냐며 웃는다.
이러한 산고 끝에 번역 완료되어 올 1월 출판된 이 책은 드디어 대박을 터트렸다. 1월에 나
온 책은 2월에 바로 재판에 들어갔고, 이에 맞게 해적판도 만들어져 지하도에 뿌려졌다. 필
자도 북경외대 지하도에서 해적판을 한 권 샀다. 상하 두 권으로 만들어진 책은 한권에 8원
을 달라 했으나 6원이면 살 수 있었다. 상권이 없고 <상도>도 없어서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묻자 오후에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아니 뭘 오후까지 기다리느냐 금방은 안 되느냐고 했더
니 그의 대답이 가관이다. 물건을 가져오려면 3시간 쯤 걸린단다. 즉 해적판을 찍어내는 곳
이 북경 근교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역자는 마침 내게 정본 상하 두 권을 선물로 주었다. 해적판하고 비교해보니 원본은 두 주
인공을 만화그림으로 그려 넣은 표지가 아주 고급스럽게 되어 있었는데, 복사본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정본은 그림이 섬세하고 물감도 반짝이가 섞여 있었고, 색상도 파스텔조로 우
아한데다가 그림이 약간 입체감이 있었는데, 복사본은 그냥 새까맣게 뭉개진 그림이 엉망이
어서 장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이면 정본을 찾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인터넷에서도 불이 붙어 있었다. 본문의 상당량을 인터넷 서점 사이
트에 올려놓았는데, 많은 아이들이 그 본문을 읽고 나서도 또 책은 따로 산단다. 본문의 대
부분을 50~70개 정도로 나누어 올려놓았으나 독자가 나머지를 직접 쳐넣어 올려놓기도 했단
다. 인터넷에서 거의 읽을 수 있는데도 책은 책대로 팔린다니 그것은 한 자녀들이 누리는
경제적 풍요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 아이들이 책을 읽고 짤막한 감상을 적은 댓글 2006개를 26일날 확인했는데, 댓글의 내용
은 가지가지였다. 상권은 이미 샀는데, 하권이 없어서 살 수가 없다고 하권을 어디서 사느냐
고 묻는 글에서부터 하권을 제발 살 수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는 글들까지 다양했
다. 그리고 많은 글들이 읽지 않으면 후회하는 책이니 바로 서점에 빨리 가서 사보라고 다
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었다.
책에 대하여 제법 구체적인 평을 해 놓은 글도 눈에 띄었는데, 역자의 글이 번역문 중에서
는 제일 잘 된 것 같다, 마치 원래 중국어로 씌어진 글 같다, 너무나 잘 읽힌다 등등 번역에
대한 찬사가 많았다. 지금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영화의 주인공이 송
승헌이라는 점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송승헌은 나이도 많고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 책을 읽고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토로한 글들도 눈에 띄여 아, 번역서는 당연히 해당국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지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이들은 인터넷 참여로만 만족하지 않고 출판사로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미 2만통
이상의 편지가 출판사로 왔다 한다. 이들은 남주인공이 정말 귀엽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는
지 궁금하다는 내용을 많이 묻고 있는데 출판사는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또 독자들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남녀주인공 뽑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인공과 닮은 남녀를 뽑아
한국 여행을 보내주기로 한 이 행사는 지금 응모를 기다리고 있다.
이전에 인터넷 소설 <엽기적인 그녀>도 많이 팔렸는데 2003년 중국 10대 영화에 들 정도로
인기를 얻었던 영화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놈은 멋있었다>는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이처
럼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엽기적인 그녀>가 이미 다져 놓은 한국 인터넷 소설
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라고 본다. 인터넷 소설이라는 특징은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인터넷
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시대 조류에 뒤떨어지지 않고 그에
동참하려는 욕망이 청소년들의 서적 구매를 부추긴 것이 아닌가 싶다. 어른들처럼 감상을
속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발언하는 중고생문화의 특징이 이 책의
판매로 이어진 것이다.
이 두 작품의 인기로 당분간 중국의 청소년들은 한국의 인터넷 소설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일 것 같다. 이 책은 실제로 중국의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중국
에도 10대 소설이 있었지만 이 책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는데 이 책이 출간된 후 자극을
받아 10대가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작가 귀여니
의 5월 중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상해, 광주 등등을 일주일 정도 방문할 예정인데 황홍이
모든 일정을 같이 하게 되어 있단다. 귀여니는 중국 CCTV 인터뷰 방영과 심천, 광주, 상해,
남경 등 일주일 동안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엽기적인 그녀>는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을 본 출판사가 북경외대 당시 4학년 학생들을
찾아 번역을 부탁하면서 출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 <그놈은 멋있었다>는 역자가 직
접 작품을 골라 작가와의 연결을 시도하여 정식으로 번역권을 따고 나서 번역 출판했다는
점이 다르다. 전자는 영화의 인기가 자연스럽게 서적 출판으로 이어지는 소극적인 출판방식
이었다면, 후자는 한국 서적문화에 밝은 현지인 전문가의 안목으로 적극적인 기획 출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우리 서적의 해외 번역 출판은 궁극적으로 현지의 모
어 구사자가 중심이 되어 전문성과 시장성을 확보하는 이런 방식으로 가야하는 것인데 바로
황홍의 번역출판이 바람직한 해외 번역 출판의 그런 선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이것은 지한파, 그것도 전문적인 현지인 지한파의 육성이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데 얼마
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93,4년경에 주로 설립된 한국
어과가 배출한 인재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한중 문화교류의 가교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
는 것이다. 황홍, 그의 공로는 중국의 한국어과 졸업생들이 이룩한 쾌거 중의 하나다.
이 책을 읽은 중학생들은 평생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런 작품을 읽으며 자라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한국이 가고 싶은 나라,
꿈의 나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그가 고른 다음 작품은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다. 앞으로는 성인
을 대상으로 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 다음 학기에는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그
의 필운을 빌며, 그의 필운과 함께 중국에서의 한국 서적의 번창을 빈다.
* 곧 이어 지난 번 예고한 번역자 위멍에 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 놈은 멋있었다>의
최근 열기도 때맞춰 전할 겸 이 글을 먼저 올립니다. 중국에서의 한국 서적 번역에 관해서
는 다음 글이 마지막입니다. 그 다음은 한국어 배우는 조선족에 관해 쓰겠습니다.
연일 날씨를 종잡을 수 없더니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북경의 봄바람은
흙바람으로 부는데 오늘은 비 덕분에 맑은 바람이어서 기분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
온 끝에 부는 바람이 한국의 가을바람 같아 북경 소주교 근처 전가루에서 한국 생각을 하며
이은숙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