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시인>>
<<이수영 시인>>
* 서울 출생.
* 숙명여대 졸업.
* 월간 <문예사조> 시인상.
* 시집 : 『깊은 잠에 빠진 방의 열쇠』, 『시간의 반란』, 『언어로 만든 집 한 채』, 『금빛 해를 마중할 때』, 『어머니께 말씀 드리죠』, 『안단테 자동차』, 『무지개 생명부』.
* 산문집 : 『잠시 또는 영원의 생각』.
* 천상병 시상 수상(2004),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2004). 서울문예상 수상(1999).
* 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이사, 숙명여대 문인회 회장.
<<이수영 시인>>
화폐개혁이랑 아버지랑/이수영
내 어릴 적 을지로5가 사거리 조흥은행에서
엄마는 제법 큰 돈다발을 주고
새파란 새 지폐 몇 덩어리를 받아들었다
무게와 부피에 관한 엄마의 산술적 설명
보다는 교환의 경이로움에 두 눈이 반짝거렸다
엄마, 아버지 말이에요
내 어린 날의 싱싱했던 아버지로 바꿔주세요
무지개 생명부/이수영
벤치에 그늘이 앉아 있다
나는 그 그늘에 앉는다
특별한 그늘, 그러나 시한부 그늘,
창대했던 그 그늘 속에서
그리운 거 하나 없었는데,
그늘은 점점
햇빛을 제 몸에 들이고 있다
그늘과 햇빛이 만드는 저,
무지개
제네시스 EQ 900 3.8 -세계의 창 김종훈/이수영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아버지처럼 든든한 무게감
누구라도 든든하게 기대고 싶다면
제네시스를 운전함이 옳다
묵묵히 감싸안는 침묵의 보살핌
끝내는 눈물보가 폭발해도
받아주고 또 받아준다
완전무결하게도 속 깊은 정
제네시스와 함께
날로 새롭게 열어간다
세계의 창.
볼보/이수영
―너의 눈이 호수 김춘희
파란 호수가
내 눈 안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은 아버지
―네 눈이 호수예요!
아,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시로 말했다
그렇게 시는 나를 향해 윙크하며
나와 놀자고 졸라댔다
―내 눈이 호수야!
아버지의 진심으로
나의 호수는 늘 잔잔했다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온갖 생명들을 가슴에 안으며.
벤틀리 S3/이수영
―베다니의 마리아 나의 초상 최은하
아드리아해
그물을 던지는 한 어부가 말한다
―내 피에 소금이 들어 있어요.
피 속에 소금이 들어간 사람은 바다를 떠날 수 없지요.
옳거니, 비로소 눈을 크게 뜨고
나의 피 속을 들여다본다
용솟음치는 피돌기 환한 그 한가운데
고즈넉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아
문지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빛
긴 머리채를 풀어 향유로 적시고 있는
네,
그 분의 발에 입을 맞춘 장본인
바로 저예요
베다니의 마리아예요.
세아트 아테카 SUV/이수영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방산
세 박자
하나아, 두울, 세엣
들숨과 날숨을 고이 어루만져
살살 달래가면서
기타의 퀭한 뱃속에 밀어 넣는다 그런 다음,
기타의 목덜미를 잡고
날이 선 푸른 힘줄을 튕겨본다
한 줄
두 줄
세 줄을 한꺼번에 붙잡고 튕겨대면
기타는 당신을 연주한다
아다지오로 시작해서 포르테로
다시 피아니시모,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마무리한다.
소한을 생각한다/이수영
작은 고추가 맵다는...
생각나니?
살얼음의 무늬가 잘 잡혀야
얼어붙는 강
가장자리로부터 서서히 피돌기를 끊고
중심은 맨 나중에 꽁꽁 마무리한다
열은 열끼리 뭉치는 법... 너 아니?
극한이어도 어느 틈바귀에선
슬며시 얼음땅 들추고 일어서는
생명의 부드러움
기실 얼음장도 뜯어보면
열의 집합체인 것을
바람의 그 잔혹한
입소문에
훌훌 물의 옷을 벗어 던지는
이 겨울
이 대책없는 여자를...
알기나 해?
말의 무게/이수영
보고 싶다는 말은 은 열 냥의 값이다
그립다, 그리워요 이 말의 무게는 백금 닷 돈이다
사랑해요, 이 마음의 값은 성경의 중량과 같다
말보다는 침묵이라지만
이 순간,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눈을 떠보세요!
내 마음속의 말을 저울에 올려놓는다
베드로처럼 말하다/이수영
박태기 꽃 붉은 마음으로 흘렀어라
조팝나무 떨기모양 희디 흰 창공,
꽃이 뜨고 달이 뜨고
마음이 뜬 봄밤!
오, 더불어 쑥도 뜯었네
봄날의 아름다운 어지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