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추억이 아주 많다.
언니들과 동생들이 많아서 우리 집은 항상 복작거렸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 우리들 8남매 11 식구 대가족이었다. 음식도 대량으로 했다.
종갓집이다 보니 설, 추석, 명절만 되면 한 달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과, 약과, 강정, 다식, 콩산자, 조청 이런 것들은 미리준비하고
명절 이틀 전부터는 식혜, 각종 전 종류, 나물, 생선, 떡, 등 가짓수가 많았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생선 손질은 아버지가 했다. 아버지는 정갈하게 손질해서 찜솥에 넣어주면 끝난다.
밤 치는 일도 아버지 담당이었다. 우리들은 명절이나 제사 때만 되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서 유난히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뛰어다녔다.
설에는 닭을 잡아서 떡국을 끓였는데 맛있었다. 또 쑥떡을 많이 해서 봄까지 먹었다.
보리 밭매는 아줌마들 새참거리로 내 가기도 했다. 또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하지 않고 여러가지 콩을 넣어 찰밥을 했다.
추석에도 흰송편과 모싯잎송편을 많이 했다. 너무 많이 하다보니 애들까지 동원해서 하루종일 만들었던 기억이난다.
우리들은 하기 싫다고 꾀부리고 어른주먹만하게 만들다가 혼나기도 했다.
음식을 많이해도 종갓집이다 보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여 먹고 싸가기도 했다.
1년이면 윗대 시제에 제사만해도 고조,증조,우리 할아버지까지 5위를 따로 다 모셧다.
거기에 식구생일이면 애들도 그냥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 아버지는 말 할것도 없고 남동생들도 생일만 되면 찹쌀을 디딜방아에 찧어서 팥 시루떡을 했다.
생일떡은 찰지고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떡을 조금만 할때는 집에서 디딜방아에 찧어서 했다.
딸들 생일은 떡은 하지않고 팥을 넣은 찰밥에 미역국이었다. 나는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 미끌미끌해서 이상하다는 거였다.
엄마는 내 생일에는 특별히 생선찌개나 무를 넣어 고깃국을 끓여주셨다.
찰밥은 텃밭에서 금방 따온 강낭콩을 넣어 맛있게 해주셨다.
내가 일곱 살 때 일이다. 동동주를 담갔는데 달큰하니 맛있었던 모양이다.
부엌에 들락날락하며 동동주항아리에 동동 띄워놓은 쫑그레미(작은 바가지)로 홀짝홀짝 먹었던 모양이다.
나는 술에 취했다. 나는 온 마당을 빙빙 돌며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엄마 아버지에게 반말을 하면서 애들 혼내듯이 호령을 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애기라서 귀엽기도 해서 식구대로 마루에 앉아 박장대소하며 구경했다고 한다.
나중에 술이 깨고 난 뒤에 그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일꾼들이 먹는 막걸리는 큰 항아리에 항상 담갔다. 동동주는 명절이나 제사 어른들 생신. 특별한 날에만 담는 술이다. 그 시절에는 세무서에서 가끔씩 술 조사가 나왔다. 술을 못 담가먹게 하려는 방법이었는데 다들 몰래 담가 먹었다.
일꾼들 일 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술조사만 떴다 하면 안절부절 못하시면서 헛간 나무둥치 속에 숨겨둔 술 항아리 옆에 가서
나무를 들썩들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데 너무 답답해서
솜으로 가슴을 쳐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한 번도 들킨 적은 없었는데 아버지는 당신 공이라며 큰소리 치셨다
. 오히려 옆에 가서 얼쩡거리면 못 온다나 안 온다나 하시면서. 엄마는 어처구니 없어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이야기다. 오후반이라서 친구랑 같이 갈려고 그 집에 갔다. 친구가 밥을 먹고 있었다.
노란 밥이었는데 죽 같기도 했다. 친구는 그 밥을 시어 꼬부라진 김치에 맛있게 먹었다.
나도 먹고싶었는데 친구 엄마는 먹어보란 말 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밥을 먹고싶어 며칠을 더 갔다.
끝내 얻어먹지 못하고 엄마에게 그밥을 해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 이놈의 새끼야 너는 그밥을 못 먹어" 하시는거다.
나는 내 밥을 가져가서 바꿔먹겠다고 했다. 며칠 후 그 친구 엄마가 우리 집에 밭매러 왔다.
엄마가 그 이야기를 하셨는지 "세상에! 나는 부잣집딸은 그런밥을 못먹을 거라고 말도하지 않았는데 "
하시면서 내일 당장 오면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너무 먹고싶은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노란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나는 그 친구처럼 눈이 저절로 감기는 시어꼬부라진 김치에 맛있게 먹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 뒤로도 생각이 났다.알고보니 그밥은 겉보리를 갈아서 만든 죽밥이였다.
집이 가난해서 애들은 많고 그렇게라도 배부르게 먹일려고 만든 음식이였다. 그친구 아버지 엄마 부부는 삯일을 다녔다.
우리집에는 단골로 왔다. 일 하는날 저녁에는 애들이 한두명씩 꼭 따라와서 밥을 먹었다.
거기에 엄마는 또 밥한그릇을 고봉으로 담아 보냈다. 다른사람들도 우리집일을 오면 똑같이 해줬다.
엄마는 삯을 곡식으로 줄때도 됫박을 깍지않고 수복하게 올라오게 주었다.
암암리에 소문이 나서 우리집 일은 1순위였다고 한다. 일꾼이 없어 일을 못한적은 없었다고 했다.
우리집 보다 더 부잣집도 되를 막대로 싹 깍아서 줬다고 했다.
둘째언니는 남의집 밥이 너무너무 먹고싶었다고 했다. 오죽하면 품앗이간 우리집 머슴을 따라가서 밥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 밥이 진짜 맛있었다고 지금도 한 번씩 그 말을 한다. 음식 하면 일꾼들 해주는 새참거리가 진짜 맛있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하룻밤 숙성시킨후 팥암금을 넣어만든 팥앙꼬찐빵. 팥을 삶아 대바구니에 걸러 만든 팥칼국수,
슈가를 넣어만든 감자떡, 쑥개떡, 보리개떡, 가마솥밥 뜸 들일 때 호박잎 깔고 밀가루 반죽 부어 만든 호박잎개떡,
찰조고구마밥, 넣는 재료마다 맛이 달라지는 부침개, 동지팥죽등 셀수없이 많다.
새알로 만든 동지팥죽은 먹고 남으면 밤에 장독대 위에 두었다. 우리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얼어있는 동지팥죽을 맛있게먹었다.
여름에는 슈가나 삭카린을 넣은 냉수에 국수를 넣어 먹으면 달고 맛있었다. 호박잎개떡은 결혼해서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언니들이 했던 기억을 더듬어서 해보았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어려서 먹었던 맛있는 개떡 이라고 했다. 맛있으면 혼자 다 먹으라며 나를 놀렸다.
먹어보니 그때 그 맛은 온데간데없었다. 두 언니는 별미 음식을 잘 만들었다.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오면 항상 먹을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가 많아도 각자몫을 따로따로 담아놓았다.
나는 오늘은 뭐 맛있는 것을 해 놓았을까 기대하면서 학교에서 걸어왔던 기억이 난다.
나의 유년시절은 맛있는 음식이 많았던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