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손 마른 사람 (막 3:1-6)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미국의 한 작가(마크 맨슨)가 보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
“그 나라는 ...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이 왜 가장 우울하게 보이나? 그 이유를 이같이 답함
1. 유교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대화된 나라
2. 집단 교육과 성공 공식으로 치열한 입시 경쟁의 나라
3. 상충된 가치관과 양극화의 엄청난 스트레스의 나라
4. 그 결과로 세계 부동의 자살율 1위인 나라
추가로 우리가 아는 실상을 말하자면
- 저출산과 초고령 사회로 가장 빠르게 진입하는 나라
- 청년들의 미래가 묘연하고 열정이 식어지는 나라
대한민국의 장점과 해답도 말했습니다. - 이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드문 ‘회복 탄력성’을 가진 나라이다”
“직면한 위기에서 또다시 길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참된 해답, 진짜 해답은 무엇일까요?
우리 나라를 너머 참극의 전 세계에의 참된 해답은 무엇일까요?
= (참된 해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은 물론 가정과 나라, 세계가 행복합니다.
우리 나라 과거를 볼 때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였지 않습니까?.
- 양극화의 문제는 = 영혼 사랑의 말씀으로 해결됩니다.
- 저출산의 문제는 =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의 명령으로 해결됩니다.
- 청년들의 낙담 문제는 = 주신 주님의 사명을 붙잡으면 됩니다.
- 초고령화의 문제는 = 존귀한 예수 그리스의 사람으로 서면 됩니다.
우리 이 나라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복음의 시즌이 다시 오고 예수 믿음이 유행이 되기를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 회당 (시나고개)
이스라엘 포로기와 이후의 그들을 지탱하게 한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탱하게 한 두 공동체는 기부츠와 회당입니다.
기부츠는 – 협동 농장인데 우리나라가 ‘새마을 운동’이 따온 것입니다.
회당은 – 신앙공동체입니다. 안식일에 모두 이곳에 모입니다.
- 오늘날 교회 같은 곳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유대인들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 유대인 남자 10명 이상이면 회당 설립이 가능했습니다.
- 핵심은 ‘쉐마’라 해서 율법을 낭독하고 제사장이 축도를 했다.
- 포로 귀환 후 성전에 모이기 어렵자 곳곳에서 회당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그 회당에 예수님이 들어가시는 모습은 은혜이고 은총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시는 곳마다 생명과 복이 넘칩니다.
오늘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회당에 또 임하시기 원하십니다.
- 내 마음의 성전 안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 내 교회 같은 내 가정에 들어오시기 원하십니다.
- 회당 같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원하십니다.
- 부족과 민족, 전 열방을 교회 삼고 오시기 원하십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임하시는 오시는 주님을 환영합니다.
찬송 534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영광 중에 계신 주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고 우리 구주 모시어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 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 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은 우울함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기에 입니다.
1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팔이 서서히 말라서 오그라드는 중풍 병의 일종
- 오늘날에도 난치병이고 당시에 불치병입니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북 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이 격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려고
손을 뻗자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손을 말려버리신 과거사 때문에..
왕상 13: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우울함입니다.
그 개인에게와 그 가정에 우울함입니다.
그가 서 있는 회당과 사람들에게 우울함입니다.
만병의 대 의사이신 예수님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이 필요한 회당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손 마른 사람’ 같은 ‘힘든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 저기...
의술이 발달해도 병은 더 늘어만 가고
병원을 많이 지어도 환자들은 넘쳐납니다.
이 땅에 부인할 수 없는 우울함의 한 모습입니다.
이런 몸과 마음, 영적 질고는 개인과 가정, 교회에 우울함을 줍니다.
하지만 해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답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개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밝은 마음의 사람이 됩니다.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가정 천국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신 교회에 생명과 사랑이 흘러넘칩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결핍을 해결자 =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갈증을 해갈하고도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병든 자, 모든 슬픈 자의 위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오시니 할렐루야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우울함이 있는 회당에 예수님이 오시니 모두 반길까요?
?손이 마른 사람이 고쳐지고 회복되는 은혜를 기대할까요?
우리는 주 예수님을 기대합니까?
우리는 주 예수님을 기다립니까?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치료하실 은혜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엿봅니다. 안식일을 범하나? 안 범하나..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여러분~ 이것이 은혜의 사람과 차이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은혜의 사람은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은혜의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로 나아갑니다.
이런 은혜의 사람은 항상 더 사랑을 입고 더 큰 은혜로 나아갑니다.
심마니라고 다 같은 심마니가 아닙니다.
어떤 심마니는 산삼을 바라보며 산을 탑니다.
어떤 심마니는 땀날 것이 싫어 산을 안탑니다.
산을 타는 심마니가 땀을 흘릴망정 “심봤다~” 합니다.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찰대는 서로 달랐습니다..
- 열 명의 정탐은 악평하고 백성의 간땀이 녹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크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 두 명의 정탐은 성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충성하였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나갑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 불신의 말은 한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 믿음의 말을 한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지배합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 26: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우리는 수고로움이 있을지라도 십자가의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좁은 길일지라도 생명의 길로 나가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로 모일 때
-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이 되어 주님을 바라봅시다.
- 오늘도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기대합시다.
- 성령님이 운행하시고 역사하실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 예수님은 항상 빛과 생명과 은혜의 주님입니다.
주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로 세웁니다.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둘러선 사람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함과 악의 두는 것 무엇이 옳은가?”
“안식일에 살리는 것 죽게 내 버려두는 것 무엇이 옳은가?”합니다.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 안식일, 주일에 무엇을 맞을까요?
영혼을 살리고 믿음을 주는 것이 맞습니까?
사람은 죽어가도 전통을 지키는 것을 맞습니까?
= 주일이든 언제든 사람을 살리고 믿음으로 주는 것이 맞습니다.
= 우리 주 예수님은 그 것을 위해 고치고 가르치고 천국을 선포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죽은 나를 살리시고, 밝게, 복되게, 빛나게 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주님은 탄식하시고 노하셨습니다.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 사람이 아파도 전통을 고집하는 그들의 완악함을 슬퍼하셨습니다.
- 사람이 썩어 죽어가도 의식에 몰두하는 무자비를 노하셨습니다.
- 고치고 가르치고 천국 선포의 주님을 엿봄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의 역사를 외면하는 이들을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셨습니다.
5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주님은 회당뿐 아니라 어디서도 고치신 주님입니다.
주님은 안식일뿐 아니라 전제나 치료하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손 마른 병뿐 아니라 모든 병을 고치시는 만병의 대의사입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파업을 하지 않으시는 나의 주치의이십니다.
회당에서 아픈 사람을 지나치지 않으신 주님이 나를 돌아보실 줄 믿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병을 고치신 주님이 몸과 영혼을 치료하실 줄 믿습니다.
이 주일에 주 앞에서 서 있는 우리를 어루만지고 고치시는 주님입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빠르게 완전히 변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신 주 예수님이 오셔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이 그들 앞에서 손 마른병의 사람을 고치셔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 악으로 치닫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불신세력과 의논합니다.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우리는 항상 빠르게 변하기 바랍니다.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은혜와 복됨으로..
우리는 날마다 나를 주님 앞에소 고치고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힘을 너머 주님의 은혜로 변하여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모두를 우울하게 했던 손 마른 자를 고치신 것처럼
오늘 이곳에 주님이 오시고 행하사
모든 어둠을 내어 쫓고 고치고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축복 합니다.
주님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