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로 사상구의 백양산에 자리한 사찰(절)이다.
가야국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원효의 창건설이 전하고 있으나, 사료나 유적은 없어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60년(현종1)에 중건하였으며 이후 사세가 확장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정조 때 제작된 [여지도서(與地圖書)]에 따르면 범어사(梵魚寺)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불릴 만큼 큰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산이 높고 물이 깊다고 하여 운수사라는 절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건 아래로 많은 선승들의 수행 장소로, 또는 기도의 장소로 자리매김하였고 최근에는 부산 시민들이 정신적 의지처로 많이 찿고 있는 사찰이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896호로 지정된 운수사 대웅전(雲水寺大雄殿)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운수사 대웅전 석조 여래 삼존 좌상(雲水寺大雄殿石造如來三尊坐像)이 있다.
운수사의 창건에 관한 전설에 의하면 이 절 경내에 있는 약수터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는 것을 보고 운수사로 하였다고 하며, 절 입구의 두꺼비 바위에 얽힌 전설 등 많은 옛 이야기가 전해온다.
운수사와 두꺼비 바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는데,
첫째 이야기는 조선 시대 중엽에 한 걸인이 배가 고파 밥을 얻어먹기 위해 운수사에 들렸는데 주지가 문전 박대를 하자 그 걸인이 곡괭이로 들고 내려와서 운수사의 수호신인 두꺼비바위를 내려찍었다. 그리하여 두꺼비바위가 둘로 쪼개어졌는데, 그 후 운수사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결국 절이 쇠퇴하게 되었다.
둘째 이야기는 모라 뒷산에 있는 운수사가 옛날에는 번창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운수사의 주지는 신도가 많은 것을 귀찮아하고 불평했다고 한다. 하루는 초립동이 운수사에 들러 주지를 찿아뵙고 며칠간 절에 머물고 싶다고 했더니 주지가 또 귀찮아하면서 불평을 했다. 화가 난 초립동이 ''절에 신도가 많이 오면 고맙게 생각하고 중생 제도에 앞장서서 힘을 써야 할 스님이 신도가 오는 것을 귀찮아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주지는 ''제발 신도들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초립동은 주지에게 신도가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두꺼비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그 두꺼비바위의 턱을 쳐버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주지는 행자승을 보내어 두꺼비바위의 턱을 떼어 내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운수사에 신도들이 찿아오지 않았다. 주지는 처음에는 좋아 했으나 계속 신도가 한 명도 오지 않자 초립동을 찿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립동의 행방은 묘연하고 절은 점점 쇠퇴해져 갔다.
당황한 스님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두꺼비바위가 바라보는 쪽은 김해군 상동면에 있는 모 암자[당시에는 초라한 암자였다고 함]인데, 두꺼비가 거기에서 모이를 주워 먹은 후 변을 운수사에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해군 상동면의 암자는 크지 못하고 운수사만 날로 번창했는데, 이제 두꺼비의 턱이 없어져 두꺼비가 먹지를 못하므로 변을 볼 수가 없으므로 운수사는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운수사와 우운 대사]
운수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다. 운수사가 한창 번성했을 때 사찰의 규모도 크고 승려도 많았다. 그 중 자기 성도 이름도 몰라 얼핏 보면 좀 모자라 보이는 승려가 있었다. 팔푼 스님이라 불렸는데, 그는 항렬이 꽤나 높아 '대사님'이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승려들이 앞에서는 대사님이라고 불렸지만, 보통은 팔푼이로 부르며 온갖 궂은일을 은근슬쩍 이 스님에게 미루곤 했다.
하루는 젊은 승려가 오수를 즐기는 팔푼 스님에게 가서 ''오뉴월 대낮에 극락 구경이 어떻습디까?'' 하니, 이 스님은 농사를 짓는다 하며 심각하게 눈을 감았다.
또 한 번은 행자승이 자다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밤중에 밖에 나가니 법당 뒤에서 팔푼 스님이 바가지에 물을 퍼 들고 솔잎에 물을 묻혀서 서쪽으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이 행자승은 팔푼 스님이 정신이 나갔다하며 다른 승려들을 불러 모았다. 한 스님이 비아냥거리며 팔푼 스님에게 밤중에 무엇을 하느냐 하니, 스님은 ''해인사에 불이 났으니 불을 끄지''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스님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하며 다시 자러 들어가 버렸다.
이후 실제로 해인사에 원인 모를 큰 불이 났는데, 갑자기 동쪽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를 퍼부어 순식간에 불이 꺼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에 승려들은 해인사에 불이 난 날이 팔푼 스님이 한밤중에 해인사의 불을 끈다고 혼자 땀을 뻘뻘 흘리던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다른 승려들은 스님이 오수를 즐기던 것도 몸은 여기에 있지만 또 다른 육신이 속세에 나가 일을 거들어 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승려들은 팔푼 대사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해인사에 비를 내린 것에 착안하여 비우(雨), 구름운(雲)을 써 우운 대사라 불렸다.
[운수사와 우운 대사] 이야기는 운수사 승려였던 우운 대사의 신이한 행적을 서술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다른 승려들이 모두 업신여기던 팔푼 스님이 사실은 매우 신통력이 뛰어난 승려임을 해인사 화재 사건을 통해 밝힘으로써 우운 대사의 이적을 이야기하고 있는 불교적 영험담이다.
대웅전大雄殿(보물 제1896호)
운수사 가람의 줌심에 있는 대웅전은 사찰의 주전각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1호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 1896호로 지정하였다.
부산 운수사 대웅전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理)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柱心包)계 맞배지붕 건물로, 우주(隅柱)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1/2정도 까지 원형 돌기둥을 세워 목재 기둥을 받치고 있다.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확인되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 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시대성을 볼 수 있는 공포는 배면이 정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배면 공포의 소박한 살미와 결구방법은 조선 중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양산 신흥사 대웅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동일한 형식이다. 반면, 정면은 후대에 화려한 치장형 살미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공포로 변화된 것으로, 동래향교 반화루, 범어사 종루와 유사한 모습이다.
운수사 대웅전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1655년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와 1771년 고쳐 지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운수사 대웅전은 부산에서 유례가 드물 만큼 잘 정제되고 뛰어난 기법의 목조건물로서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되며,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난 소중한 건축유구이다.
아울러 임진왜란 이전의 목조 건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부산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커서 2008년 9월 1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3월2일 보물 제 1896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雲水寺大雄殿石造如來三尊坐像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2호)
조선 후기의 석조 여래 삼존불 좌상으로 운수사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雲水寺大雄殿石造 如來三尊坐像)은 2008년 9월 11일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 92호로 지정되었다.
석조여래삼존좌상의 본존인 아미타여래는(실제 수인으로 보아서는 석가여래에 가까움, 법의는 통견의) 팔각 대좌 위에, 협시 보살인 왼쪽의 관음보살과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연꽃 대좌(蓮花臺座) 위에 앉아 있다. 1987년에 개금불사(改金佛事)가 이루어져 현재 전반적으로 도금과 채색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석재는 일명 '경주 불석[佛石]'(제오라이트)이라고 부르는 백색 석재로, 운수사 부근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 부산지역 불교 조각상의 재료로 애용 되었다. 아미타여래상은 92cm, 관음보살상은 86.8cm, 대세지보살상은 86cm이다.
절대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 삼존불상의 양식을 통해서 17세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가운데 18세기의 도식적이고 평판적인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는 데, 이렇게 판단된 조성 년대는 운수사에 현존하는 <중수목판기(重修木版記)>의 내용과도 다소 부합되는 사실이어서 더욱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정수리와 머리 중앙에 표현된 보석인 정상 계주와 중앙 계주의 뚜렷한 표현, 방형의 얼굴, 반달형의 긴 눈썹, 얇고 길쭉한 눈, 돌출되고 작은 코, 작은 입, 짧은 목, 좁은 어깨, 평판적인 가슴, 볼록 나온 아랫배, 두꺼운 통견식(通肩式) 대의(大衣), 어깨.팔꿈치.손목.다리 등에 표현된 몇 가닥의 간략한 주름 등은 18세기 조성된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仙岩寺)의 목조 석가불 좌상[1713년], 경기도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목조 아미타불상[1755년],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각황전(求禮華嚴寺覺皇殿)의 석가불 좌상[1703년]과 유사하다.
본존삼과 보살상의 손 모습인 수인(手印)도 특징이 있다. 본존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이 아닌 아미타수인(阿彌陀手印)으로 판단되며, 보살상 역시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보살상이 선정인을 하고 있는 경우는 전라남도 강진무위사(無爲寺) 극락전의 목 관음보살 좌상[1476년], 경기 남양주 수종사 오층 석탑(水鐘寺五層石塔) 내에서 발견된 금동 불상군 중 관음보살 좌상[1628년]이 있다.
이들의 선정인 수인은 운수사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 중 좌 협시인 관음보살상의 자세와 동일하다. 그러나 무위사 극락전과 수종사의 관음보살 좌상은 선정인을 하고 있는 손에 보병을 들고 있어 운수사의 예와 동일하지 않은 형상이다. 운수사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 중 좌 협시인 관음보살상의 팔찌 4개 역시 아주 특징적이다. 조선 시대 여타 보살상에서 비교 예를 찿아보기 힘든 자료에 속한다.
[대웅전 아미타삼존도]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3호
[운수사 대웅전 아미타삼존도(雲水寺阿彌陀三尊圖)]는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 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불을 갖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입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도로 아미타 정토 신앙에 입각하여 조성된 불화이다. 화면하단에 적혀 있는 화기에 운수사의 정결도량(淨潔道場)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의식을 진행하던 공간에서 사용하던 불화로 추정된다. 2008년 9월11일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신중탱화
위태천(동진보살)을 중심으로 한 신중탱화인데 일반적인 탱화의 구성과는 다르게 제석천과 범천왕은 묘사하지 않고 있다.
석등과 부재
석등과 부재
삼성각(三聖閣)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1칸의 규모로 1996년에 지어졌으며 대웅전을 바라보아 외쪽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내부에는 최근에 봉안한 칠성탱, 산신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탱화
칠성탱화
칠성은 남극노인성 등 하늘의 전체와 관련있는 신들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명칭 칠성(七星)은 구체적으로 탐랑.거문.녹존.문곡.염정.무곡.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부처로 바뀌어 칠 여래가 되는데, 예를 들면 제칠 파군 성군 약사유리광여래는 칠성 중 파군이 여래로 바뀐 것이다.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두고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 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배치되어 있다.
칠성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제 1성(星)은 자손에게 만덕(萬德)을 주고, 제 2성(星)은 인간의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며, 제 3성(星)은 업장을 소멸시켜주고, 제 4성(星)은 구하는 모든 것을 모두 얻게 하며, 제 5성(星)은 일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제 6성(星)은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하며, 제 7성(星)은 수명을 오래도록 연장시켜 준다.
독성탱화(獨聖탱畵)
독성존자(獨聖尊子)는 부처님의 제자로 16나한(羅漢) 중의 한 분인 빈도라바라타자(Pindola-bharavaja)로 우리나라에서는 독성.수독성(修獨聖)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빈도라바라타자는 바차국 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승려가 되어 아라한과(阿羅漢果:성문들이 수행으로 도달하는 성문사과 중 네 번째 경지)를 얻었으나 세속인들에게 신통력을 드러냈다가 부처님의 꾸중을 듣고 염부제(閻浮提)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교화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열반에 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서 영원히 남인도 천태산(天台山)에서 수행하면서 부처가 열반한 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절의 삼성각이나 또는 독성각에 모신 독성(나반존자)는 불교의 것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단군(檀君)을 국조로 모셔온 민족 고유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라는 단군기원설을 주장하였다.
단군을 모셔오던 전통이 단군이 산으로 들어가 산신(山神) 혹은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전설을 받아들이면서 명산에 신당을 세우고 단군을 산신으로 모시거나 선황(善皇)으로 받드는 것으로 계승되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절의 뒤쪽 고요한 곳에 전각을 세우고 산신과 선황을 같이 모시고 또한 중국에서 들어온 칠성(七星) 역시 같이 모신 것으로, 단군상이 독성상으로 전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독성존자의 기록이 처음으로 보이는 의식문인 [제반문]과 [작법귀감] 등의 법요의식문이 조선조 숙종 때의 기록인 점을 통해 독성도로 제작된 시점도 이 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산신탱화
산신탱화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듣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세계로 들어와 신중탱화의 중단 내지 하단에 자리 잡다가 나중에는 그 기능이 강화되어 단독으로 모셔진다. 그 중에서 산인은 한국 민족 신앙의 주요 대상으로서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바짝 다가왔던 토속 신앙이다.
한라산이나 속리산.계룡산.지리산 등지의 사찰에는 드물게 여자 산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여자 산신은 트레머리에 댕기를 두르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호랑이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있는 모습이며, 손에는 대개 불로초를 들고 있다. 이 밖에 복건(福巾)이나 유건(儒巾).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지팡이를 든 유교적 산신도 있고, 삭발한 스님이 [묘법연화경]과 같은 불경을 들고 있는 불교식 산신도 흔하다. 이 경우 의상은 가사와 비슷하나 적.녹색이 주류를 이룬다.
용왕각(龍王閣)
용왕각은 맞배지붕에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로 1998년 세워졌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대칭되는 위치에 있다. 다른 사찰의 용왕각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로 지어진 용왕각 내부에는 2001년에 조성한 용왕탱과 가로 1m80cm의 목어 1점이 있다
용왕신앙은 불교나 도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바다에는 물고기를 다스리고 파도를 주관하는 용왕이 권역별로 존재하는데, 사해용왕(四海龍王)이라고 하는 용신은 도교의 신의 위계와 직능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관념이라고 보인다.
바다의 용왕은 배를 부리며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으로 숭앙되었다. 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어민들이나 무역을 위해 항해하는 사람들은 모진 파도와 싸워야 했고 파도를 일으키고 잠재우는 용왕신을 신성시하여 용왕제를 지냈다.
용왕이 신성시되면서 용왕의 가족인 용녀가 인간계에 출현하고 용궁의 보물을 얻는 사람이 발복(發福)을 한다는 설화가 많이 전승되었다.
해인사 창건과 관련된 해인(海印)의 유래나 공지천 유래 등의 설화는 용자를 구해 주고 용궁에 들어가 보물을 얻어온 이야기이다. 이처럼 용신신앙은 용궁이라는 신비의 이계(異界)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운수사전경
대웅보전과 종루
운수사의 아름다운 나비불과 꽃
대웅보전(大雄寶殿)
5층석탑(五層石塔)
대웅보전과 흰구름불(佛)
범종루
운수사 범종
운수사 범종(사진)은 불자들이 불사금을 모아 만들었으며 주조는 홍종사에서 타종일은 2018.11.25일에 봉행되었으며 중량은 1,500관(5,600kg)이다.
범종은 조석 예불과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울리는 것으로, 지옥과 천상에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며 새벽에는 28번(마하가섭존자 부터 중국의 보리 달마대사까지 28대 조사, 또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28천을 상징) 저녁에는 33번(욕계 2천의 도리천 정상 33천을 상징)을 친다.
☆범종의 연뢰와 연각 : 범종의 표면에 9개의 연뢰 4 방향의 연곽은 사생 구계를 상징한다.
사생(四生) :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의 탄생방법
구계(九界)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의 세계.
상부는 용뉴는 불계(부처님의 세계)를 상징.
'종신부조상(鐘身浮彫像)'
종신의 당좌와 당좌 사이 앞뒤 면 동일하게 주악천인상(주악천인상)과 공양자상(공양자상),비천상(비천상), 불.보살상, 보살입상 등을 장식한다.
통일 신라 종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을, 고려시대의 종은 비천상, 불.보살좌상을 장식하며 조선시대의 종은 보살입상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뢰(蓮雷).연곽(蓮廓)'
연꽃봉오리 형태로 돌출된 장식을 연뢰라고 하고, 그 장식을 싸고 있는 방형곽을 연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은 방형곽 안에 반드시 9개씩의 돌출 장식이 배치되며 그 형태도 의도적으로 연꽃봉오리를 묘사하고 있다.
용뉴와 음통
종의 꼭대기 부분은 '용뉴'라고 불리며, 전설에서
'고래만 보면 겁이 나서 큰소리로 운다' 는 '포뢰'라고 불리는 용모양의 조각상이다.
종 상단에 보이는 길쭉한 원통 모양의 '음통'은 우리나라의 종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로 종소리를 더 좋게 내기 위한 장치로 추정하고 있다.
'당좌(幢座)'
종을 치는 자리인 원형의 연꽃무늬와 그 주위의 당초무늬 장식을 말한다.
통일신라 종은 종신의 삼분의 일쯤 되는 가장 도드라진 종복부에 배치되며 고려시대의 범종은 하대 쪽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수도 통일신라 종은 반드시 앞뒤 두 군데이지만 고려 종은 네 개로 늘어나기도 하며 조선시대 종은 당좌가 생략되기도 한다.
'당좌' 우측에는 '공양자상'이 새겨진 '종신부조상'과 사찰에서 아침마다 종을 치며 외우는 '아침종성 예불문'이 새겨져 있다.
'아침종성 예불문'
원차종성변법계(願此鐘聲邊法界)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삼도이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위산 아래 어두운 지옥 밝혀주고
지옥 아귀 축생 삼도의 고통과 칼산의 지옥고통
없애주며 모든 중생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이 종소리 듣고 번뇌는 사라지고
지혜는 늘어나고 깨달음의 마음 환희롭네
저 지옥중생 어서 어서 해탈하고
다같이 손잡고 삼계의 고통 벗어나세
'하대'
범종의 아랫부분인 '하대'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굵은 울림소리가 나도록 만든 구조이며 우리나라의 범종각은 대부분 아래쪽에 돌로 만들어져 있고,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해 오목하게 파 놓은 '명등'이란 장치가 있는데, 운수사 범종 각 바닦이 목재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명등'이 없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팔작지붕에 정면7칸 측면4칸의 규모로 1993년에 착공 2006년에 완공 했다. 10년이 넘는 대규모 불사로 그 위용을 드러낸 운수사 대웅보전은 대웅전과 기타 부속건물들이 자리한 경내지보다 훨씬 위쪽 언덕위에 위치한다.
대웅보전은 앞뒤 사방이 모두 트여 전면으로는 백양산 아래 낙동강 지역까지 조망이 가능하고 뒤로는 백양산 푸른 숲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외호하듯 둘러서 있다.
사시예불에 동참하고 있는 운수사 불자님
대웅전 주련
응무소주 행어보시(應無所住 行於布施)-금강경 제 4분
보살 당응여소교주(菩薩 但應如所敎住)-
금강경 제 4분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금강경 제 5분
법상응사 하황비법(法尙應捨 何況非법)-
금강경 제 6분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 제 10분
여래자즉 제법여의(如來者卽 諸法如義)-
금강경 제 17분
실무유법 명위보살(實無有法 名爲菩薩)-
금강경 제 17분
불취어상 여여부동(不取於相 如如不動)-
금강경 제 32분
공포
삼세불
법당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대형 금동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이 협시하고 있는 삼세불을 봉안하였고 다시 그 양옆으로 관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좌상이 협시하고 있다.
이들 존상들은 각기 높이만 2m60cm에 달하는 대형불상으로 높이가 2m가 훨씬 넘는 불단과 좌대위에 모셔져 있어 그 위용에 압도될 듯하다.
또한 각각의 후면으로 후불탱이 있는데 좌로부터 지장탱, 아미타탱, 본존후불탱, 약사탱, 관음탱이 4m 안팎의 높이로 걸려 있다.
이들 존상들은 대웅보전 착공 후인 1996년 모셔졌고 후불탱은 2000년 조성됐다.
대웅보전 신중탱화
대예적금강과 위태천을 같이 묘사했을뿐만 아니라 화엄 신중 모두를 묘사한 신중 탱화이다.
☆참고
상기 자료는 본인 보운(寶雲)이 속해있는 범어사 모 신행팀에서 부산.경남 사찰 해설용으로 제작된 내용을 보운이 편집기록한 글이오니 혹시 오타나 의문 내용은 보운(寶雲)에게 연락주시면 아는데까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절(雲水寺)에 대한 소중한 자료이오니 참고하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운수사 불교대학 40기 졸업
운수사 금송회(金誦會=金剛經讀誦會)회원
보운합장(寶雲合掌)🙏
첫댓글 운수사 도량곳곳과 일체부처님 이렇게 상세 설명은 처음인듯합니다.
보운거사님 어떤분이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ㅎ
각 부처님과 탱화에 대한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공부의 장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사진과 글,
다시금 배워봅니다~()^^
늘 초심으로 수행정진합시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관불심보살(觀佛心菩薩)님🙏
푸른심보살(靑心菩薩)님🙏
늘 부처님빽믿으시고 수행修行정진합시다.댓글 고맙고 감사합니다🙏寶雲두손모음🙏
운수사에 대해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_()_
정각행보살(正覺行菩薩)님🙏
고맙습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강건하소서🙏寶雲두손모음🙏
사진과 한께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