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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2. –歲月(세월)의 무게에 밀려서 묻히고 잊혀진 歌謠 再照明(가요재조명)-a
韓國大衆歌謠史(한국대중가요사) 唯一無二(유일무이)하게 “歌謠皇帝(가요황제)” 라 불리는 南仁樹(남인수)씨 生涯(생애) remake 곡을포함 약 800여곡을 취입했다고 대중문화 평론가 황문평씨에게
이야기한바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吹入曲(취입곡)을 詳細(상세)히 들어보면 解放前(해방전) 그의 歌唱力(가창력)은 결코”가요황제”水準(수준)은 아닙니다
해서 해방전 취입곡중 잘만들어진 노래이나 완성되지 못한 가창력으로 인하여 묻혀버린 노래들이 존재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을보고 물어보자 별을보고 물어보자
人生(인생)이 걷는길은 웃음이냐 눈물이냐
希望(희망)도 풋사랑도 日記帖(일기첩)에 남기고
달빛속에 별빛속에 가는곳이 어데냐
山(산)을보고 물어보자 물을보고 물어보자
내 靑春(청춘) 넘을길이 이고개냐 저고개냐
눈물의 깨진 꿈을 앙가슴에 안고서
산을넘고 물을 건너 떠난곳이 어데냐-------------------------------------------------------------조명암사 김해송곡 남인수노래<人生(인생)>
1941년, 8월경 조명암사, 김해송곡 으로 okeh-record 서 sp음반으로 발매된 이곡은 그시기 최고 작사, 작곡콤비로 이를을 떨치던 作品(작품)이나 後日(후일) 再吹入(재취입)이 되지않을정도로 묻혀버렸습니다
1941년, 7월24일, 7월27일, 8월17일 每日申報(매일신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歌謠(가요) 第一線(제일선) 部隊(부대)!!
酷暑(혹서)를 征服(정복)하는 今月(금월)의 힛트歌謠(가요)!!
31053 人生(인생) 남인수
故鄕(고향) 이난영--------------------------------------------------------------------------라고 평균수준의 선전을 하고있습니다
이어서 1942년, 2월, 6월 Okeh-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0發賣目錄-0발매목록-
三一0五三 人生(인생) 남인수
故鄕(고향) 이난영-------------------------------------------------------------------라 廣告(광고)가 실렸습니다
1950~60년대 이곡을 記憶(기억)하는 fan-팬- 들도 레코드 需要(수요)도 미미해서 결국 남인수씨의 많은곡들이 remake 되었으나 그의 재취입 음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허나 상기곡 以前(이전) 1940년,1월 그의대표곡<울며헤진 釜山港-부산항->에 발표되 人氣 上昇中(인기상승중) 이었으나 아직은 아마추어적 가창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歌謠天才(가요천재)
김해송씨 역시 그의 最高長點(최고장점)을 뽑아내는데 실패 김해송 특유의 세미클래식 분위기도 느껴지고 좋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잊혀지고 묻혀버렸읍니다
原唱歌手(원창가수) 가 需要不足(수요부족)으로 再吹入機會(재취입기회)를 갖지못했다다 해도 만일 고대원씨가 이노래를 그의전성기에 재취입을 했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국 이 노래는 신진레코드발매 lp음반-남인수가요걸작집-에 남인수 모창가수 남월수 목소리로 실려있을뿐입니다
義谷寺(의곡사) 우는 종이 가신님을 불러도
강물만 출렁출렁 九曲肝腸(구곡간장) 끊을뿐
晋州(진주)의 絶世佳人(절세가인) 몇이나 되는고
청치마 주름주름 청치마 주름주름 눈물이졌소
南江(남강)은 잠이들고 꿈을꾸는 矗石樓(촉석루)
丈夫(장부)의 百年言約(백년언약) 믿어야만 옳은가
강건너 모래사장 강건너 모래사장 님이 떠난 나루터
無心(무심)한 나룻배만 無心(무심)한 나룻배만 홀로 남았소
飛鳳山(비봉산) 고개너머 北斗七星(북두칠성) 잠들고
西將臺(서장대) 성터위에 달빛만이 어린다
00의 버들 꺾어) 00의 버들꺾어 호들기를 부노니
가시고 못오시는 가시고 못오시는 님이 그립소---------------------------------------강해인사 김해송곡 남인수노래<晋州(진주)의달밤>
상기곡<人生(인생)>보다 1년여전인 1940년,9월 okeh-record 서 강해인사 김해송곡으로 발표되었습니다
1940년, 8월27일, 8월28일, 9월16일, 9월19일 每日申報(매일신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九月傑作(9월걸작)!!
Ok-5005 남인수 晋州(진주)의 달밤
박향림 꽃뚜껑-----------------------------------------------------------------------------라고 紹介水準 (소개수준) 의 宣傳(선전)이 보입니다
진주를 잘아는 강해인이 맛갈스런 작사를 하고 역시 김해송이 창작을 했으나 힛트하고는 거리가 먼 拙作(졸작)이 되고말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吹入時期(취입시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비록 上記曲(상기곡) 發表以前(발표이전) 1938년,3월 조명암사, 박시춘곡<꼬집힌풋사랑>이 힛트를 했으나 이건 시에론레코드부터 그를 익히알고있던 박시춘작품이었고 김해송씨와는 아직은 서로를 너무 몰랐던 것이 失敗原因(실패원인)입니다
남인수씨가 그의 故鄕(고향)을 노래한 歌謠(가요)中(중) 첫번째인 이곡<晋州(진주)의 달밤>은 그 後續作(후속작) 1954년 손석우사,곡 union-record 발매<내 故鄕(고향) 晋州(진주)>, 1959년 손로원사, 이봉룡곡 century-record 발매<晋州(진주)의 하롯밤> 에 비하여 분명 完成度(완성도)에서 높은 境地(경지)를 보이나 그의 힛트곡 目錄(목록)에 들지 못했습니다
이노래역시 같은 최씨출신가수 최갑석씨가 remake 했드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1936년,8월경 小規模(소규모) 레코드사 chieron-record 서<哀愁(애수)의 小夜曲(소야곡)>의 할아지뻘쯤되는 김상화사, 박시춘곡<눈물의 海峽(해협)>으로 韓國大衆歌謠(界(한국대중가요계)에
登場(등장)한 최창수씨는 이시기 再婚(재혼)한 어머니의 남편 성씨인 강씨성 “강문수”로 데뷔를 를 하나 弘報不足(홍보부족)으로 첫취입곡이 不發(불발)로 끝나고 같은해 12월경 창립한지 3년여지난 okeh-record 에 再 debut-재데뷔-를 합니다
박영호사 손목인곡<돈도싫소 사랑도싫소><범벅서울>로 okeh-record 서 새출발은한 그는 新人歌手(신인가수)면 당연히 거쳐야할 修鍊期(수련기)에 上記(상기) 손목인의 작품을 받아서 발표하나 그에게는 굴욕만 안겨주는 결과를 거두고 시에론에서 歌手素質(가수소질) 테스틀 받았던 박시춘의 작품 박영호사<물방아사랑>이 소푹힛트를 하며 그의 音盤販賣(음반판매) 攻掠對象(공략대상)을 券番妓生(권번기생) , genre-장르를 elegy-悲歌(비가) 로 잠정확정을 합니다
결국은 오케이레코드사 專屬作曲家(전속작곡가)중에서 南(仁樹(남인수)) 를 제대로 읽어낸사람은 김해송도아니요 손목인도아닌 박시춘씨 였던것입니다
이노래는 남백송,진방남 씨등에 의하여 再吹入(재취입) 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긴 합니다
진방남 버전은 아세아레코드발매 lp음반- 흘러간옛노래 no5-side b 에 실려있고
남백송 버전은 합동레코드발매 lp음반-추억의노래 꽃다발 no 8- 등 에 나음파씨 편곡으로 보입니다
1323—再照明(재조명)-b
꽃피는 微風(미풍)속에 숨을쉬는 春情(춘정)은
비오고 바람불면 虛無(허무)한 꿈이로세
아~가는 이봄은 어이타 이다지도
울려주나 음~ 사나이 마음을
洛花(낙화)도 눈물이면 가는봄이 미워라
차라리 질바이면 피지를 말아다오
아~가는 이봄은 어찌타 이다지도
울려주나 음~ 사나이 마음을
거칠은 人生(인생)살이 지는꽃과 같으니
오로지 산다함은 아득한 꿈이로세
아~가는 이봄은 어찌타 이다지도
울려주나 음~사나이 마음을----------------------------------------------------------------김운하사 박시춘곡 이인권노래<눈물의 春情(춘정)>
上記歌謠(상기가요) <눈물의 春情(춘정) >은 1938년, okeh-record 발매 12월신보로 발매되었습니다
1938년,12월24일, 28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힛트傑作盤(걸작반)!!
12191 눈물의 春情(춘정) 李寅權(이인권)
紅燈街(홍등가)의 半月(반월) 徐鳳姬(서봉희)--------------------------------------------------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風角(풍각)쟁이”의 주인공 박향림과함께 咸鏡道(함경도)의 猪突的(저돌적)이고 억센기질의 소유자 singer 이인권의 ok-recor 에서의 데뷔곡이나”꿈꾸는 白馬江(백마강)”에 밀려 잊혀짐을
강요당한 身世(신세)의 가요입니다
이가요는 1940년,10월 okeh-record 발매 ok 傑作歌謠集( 오케이 걸작가요집) 에 삽입되있기도 합니다
臺詞(대사)---에레나, 흥! 이름이 좋다 오냐, 그렇게 부르마
너는 二年前(이년전)의 영자가 아니다
純情(순정)의 꽃 –amarylis-아마릴리스-의 香(향)내를 잏은 에레나야
希望(희망)을 품고 헤어지던 그날밤 上海埠頭(상해부두)에서 盟誓(맹세)하지 않았니?
둘이 成功(성공)해서 만나자고.
그러나 영자, 아니 에레나야 너는 이렇게 변했구나
모두가 다 눈물의 春情(춘정)이었더냐?
알겠다 네마음을 알겠다------------------------------------------------------
꽃피는 微風(미풍)속에 숨쉬던 春情(춘정)은
비오고 바람불면 虛無(허무)한 꿈이로세
아~가는 이봄은 어찌타 이다지도
울려주나 음~ 사나이 마음을
그리고 1942년,7월 okeh-record 발매 歌謠劇(가요극) 春香傳(춘향전) 중 제2곡 “西廂佳約(서상가약)”에 이몽룡으로 출연한 남인수의 목소리로 歌唱(가창)되기도 했습니다
이극에는 春香役(춘향역)으로 이화자씨가 出演(출연)했고 劇(극)에맞게 조명암씨가 改詞(개사)를 했습니다
꽃피는 微風(미풍)속에 붉은 精誠(정성) 숨겨서
盟誓(맹세)한 百年佳約(백년가약) 변할리 있으리오
아~ 가는 이봄은 어이타 이다지도
불러주나 牽牛(견우)와 織女(직녀)를
이곡은 정말이지 남인수씨의 解放後(해방후) 취입곡에 꼭들어가야했을 곡입니다
허나 金雲河(김운하)가 창작한 가사는 아주 激情的(격정적)인 人生旅路(인생여로)를 春情(춘정)에 빗대어 吐露(토로)하고있어서 곡을 歌唱(가창)한 이인권을 많이 닮아있읍니다
후일 朝鮮樂劇團(조선악극단)으로 개칭당해야 했던 okeh-record 산하 이철사장의 야망찬 기획작품 ok-grand show-오케이 그랜드쇼-가 北部朝鮮(북부조선) 에서 당시 dollar box로 각종흥행물의
공략대상이던 滿洲一帶(만주일대)에 걸쳐 巡廻公演(순회공연)을 하고 있을씨 一行(일행)이 咸鏡北道(함경북도) 國境地帶(국경지대) 회령을거쳐 淸津(청진)에 도착했을 때 18살정도의 작업복차림의
임영일이 쇼단 일행중 박시춘을 찾아서 동행중이던 이철,박시춘앞에서 발매된지 1개월여밖에안되는 남인수의<꼬집힌 풋사랑>을 원창가수 못지않게 불러서 그날밤 淸津(청진))舞臺(무대)에세워
”청진의 남인수”라소개되 갈채를 받읍니다
공연단이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자 이인권이 당시 平壤(평양)에 거주중이던 작사가 김운하를 찾아가 상기곡 歌詞(가사)를의뢰해 박시춘에게 내밀자 이청년의 熱情(열정)에 感動(감동)
“울듯이웃고 웃듯이 우는” 情感(정감)을 다하여 이곡을 만들었다 회고하고 있습니다
성음사발매 lp음반-가요반세기 3집-등에 고대원 목소리로 들립니다
1324—再照明(재조명)-c
보기싫다 듣기싫다 어서가라 하여놓고
간後(후)에 뉘우치는 마음이고나
싫어저도 당신은 미워저도 당신은
못닛겠드라 못 닛겠더라
손바닥이 아프도록 내마음껏 때려놓고
울면서 뉘우치는 因緣(인연)이구나
싫어저도 당신은 미워저도 당신은
못닛겠더라 못닜겠더라
偶然(우연)하게 사귄정이 이럴듯이 모질어서
알궂인 運命(운명)속에 안타깝구나
싫어저도 당신은 미워저도 당신은
못닜겠더라 못 닜겠더라------------------------------------------------------------------이부풍사, 전수린곡 이인권노래< 얄궂은 運命(운명)>
1938년 10월 victor-record 발매 sp음반 이부풍사 전수린곡 임영일노래 <얄궂인 運命(운명)> 입니다
異面(이면)에는 이부풍작사, 조자룡-김용환-작곡 황금심노래< 旅窓(여창)에 기대여>가 보입니다
이곡역시 okeh-record 서 발표한<눈물의 春情(춘정)>처럼 평소 이인권의 行動方式(행동방식)이 投影(투영)되 있습니다
허나 레코드사 가대에 훨씬못미치는 결과를 낳고 해서 음원이 稀貴(희귀)합니다
1938년, 10월26일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Kj 1252 얄구진 運命(운명) 林榮 一(임영일)
旅窓(여창)에기대여 黃琴心(황금심)----------------------------------------------------------------라고 선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每日申報(매일신보) 1938년, 10월 30일, 11월 3,4,6 朝鮮日報(조선일보 1938년, 10월 28일 )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도
Kj 1252 알구진 運命(운명) 임영일
旅窓(여창)에 기대여 황금심-----------------------------------------------------------------------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9년, 3월10일에는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新人concours-신인콩쿠르- 指定曲(지정곡)
Kj 1252 얄구진 運命(운명) 林榮 一(임영일)-------------------------------------------라 광고 그시기 유행했던 신인발굴 노래자랑에 지정곡 역할을 했음을 소개하고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눈치빠른 사람은 앞서 說明(설명)서 本名(본명) 임영일인 이인권이 고향 청진서<꼬집힌풋사랑>을 남인수 못지않게 불러서 현장서 ok-record 서 채용되었다 설명한바 갑자기 victor-record서 데뷔곡을
發表(발표)했다하니 “무슨문제가 생겼구나” 눈치챘을 것입니다
평소 猪突的(저돌적) 性格(성격)의 임영일이 歌謠界生活(가요계생활)이 처음이다하나 기여히 사고를 치고맙니다
오케이로가서 <눈물의 春情(춘정)>을 취입한후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말았습니다
그시기 각레코드사 간에는 치열한 情報戰爭(정보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에 그가 有名新人(유명신인) 소문이 날수밖에 없었고 victor-record 서 녹음현장에 사람을보내 정찰을 하고 소문대로
有望株(유망주)임이 확인되자 곧 買收作戰(매수작전)에 착수해 가요계 관행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거의강제로 전속계약을 맺어버리고 okeh-record 서 녹음을 한 것을 뻔히알면서도
서둘러 전수린곡을 취입시켜 마치 자기들 專屬歌手(전속가수)인양 okeh-record 보다 2개월빨리 발매해버리는 야비한 행동을 해버립니다
이에 결국 법정다툼으로 사태가 벌어지고 그다툼기간 동안에도 그는 그해 11월 이부풍사,문호월곡 <너는 아느냐?> 12월 박화산사 문호월곡< 港口(항구)에서 만난 女子(여자)> 다음해인 1939년
3월 노다지사, 조자룡곡<怨春詞(원춘사)> 등을 victor-record 서 발표하는 철부지짓을 합니다
결국 전수린등 비중있는 가요인들 중재로 이인권은 okeh-record 로 되돌아옵니다
1325--再照明(재조명)-d
울기도 안타까운 埠頭(부두)우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가는님 잡고
몸부림을 칩니다
태중소리 울리고 떠나가는 連絡船(연락선)
끊어지는 tape-태푸-만이 野俗(야속)합니다
달빛도 눈물겨운 港口(항구)밖으로
無情(무정)한 連絡船(연락선)은 내님을 싣고
俗節(속절)없이 떠난다
사랑없는 世上(세상)에 누굴믿고 살리요
名色(명색)없는 女子(여자)라고 버리지 마소
燈臺(등대)불 깜박이는 水平線(수평선)으로
떠나간 連絡船(연락선) 검은 煙氣(연기)만
달빛속에 어린다
怨讐(원수)같은 離別(이별)에 눈물젖는 내가슴
이내몸은 울며 시든 無名草(무명초)라오---------------------------조명암사, 엄재근작곡 장세정노래<港口(항구)의 無名草(무명초)>
상기곡은 1939년 2월 okeh-record 서 sp음반으로발매 異面(이면)에는 조명암사 김영파작곡 남인수의< 얼녀본 他關女子(타관여자)>가 실려있습니다
1939년,2월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12213 blues-뿌르스- 港口(항구) 의 無名草(무명초)----------------------------------------라고 곡의 genre-장르-를 强調(강조)하는 文句(문구)가 異色的(이색적)입니다
또다른 1939년 5월18, 2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에는
ok最新傑作(오케이 최신걸작)!!
壓倒的(압도적)人氣(인기)
近來(근래)의 稀有盤(희유반) 快速(쾌속) 魅惑(매혹)盤(반)
12213 港口(항구) 의 無名草(무명초) 장세정-------------------------------------------라고 過大宣傳(과대선전)하고 있습니다
허나 장세정 노래치고는 귀한 blues-rhythm으로 가창되는 가요이나 <連絡船(연락선)은 떠난다><아시나요>< 토라진눈물>등의 威勢(위세)에눌려 소폭힛트에 그치고맙니다
이가요는 1940년,10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ok傑作歌謠集(오케이 걸작 가요집)에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臺詞(대사)----오아시스의 門(문)밖에는 함박눈이 소리없이 쏟아진다
에레나는 미친듯이 港口(항구)로가는 길로 달음질쳐 나갔다
이승씨!! 아 運命(운명)입니다 참으로 알수없는 人生(인생)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피맺힌 悲劇(비극), 이것을 모르고 왜당신은 가십니까??
사랑은 둘째요. 우선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가십니다 당신은 모르고 가셨어요
에레나의 眞情(진정), 아! 지금 이목에서, 지금 이목에서 탁터져나오는
새빨간 피를 당신은 이것도 못보시고 가셨어요 아! 이승씨
港口(항구)도 안타까운 埠頭(부두)에서
사랑이 무엇인가
가는님 잡고 몸부림을 칩니다
태정소리 울리고 떠나가는 連絡船(연락선)
끊어지는 tape-테푸-만이 野俗(야속)합니다
그전 1940년,1월 장세정걸작집이 okeh-record 서 발매 상기곡이 실립니다
臺詞(대사)-----歲月(세월)은 10년이 흘렀습니다
運命(운명)의 채쭉은 苛酷(가혹)한 것이었건만 사랑하는 까닦에 우리들은 이 매운 채쭉아래 살아왔습니다----후략-------
<무명초항구>는 oasis-record 발매 lp음반-장세정-에 remake 버전이 보이긴 합니다
백난아의 김영일사, 이재호곡<無名草港口(무명초항구)>와 混同惹起(혼동야기) 가요이기도 합니다
그시기 歌謠興行物(가요흥행물)이 “ok 演奏會(오케이연주회)” 라 불리던때 평양에서 연주회가 열렸을 때 그고장에서”노래잘하는 소녀가있다”는 소문을 들은 이철이 그녀를
牡丹峯(모란봉) 망월장에 초대하여 그자리에서 재빨리 계약을 해버리는 수완을 발휘합니다
그무렵 그녀는 화신백화점 상신악기점 점원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의 노래솜씨가 오케이레코드사 사내에 나자 당장 노래를 췽시키자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business sense-비즈니스 감각-이 남달랐던 이철은 선전효과를 노려서 concours大會(콩쿠르대회)
를 개최 선발하는 형식을 택합니다
과연 장세정은 일등을하고<꿈에본내 故鄕(고향)> 원창자 송달협이 이등으로 입상을 했습니다
1326-再 照明(재조명)-e
그일이있기전 1936년,11월경 그녀는 경성방송국 평양방송 開局祈念舞臺(개국기념무대)에 올라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때 이철이 선수를쳐서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1937년 2월 임시발매된 데뷔곡 박영호사 김해송곡 <연락선은 떠난다>로 일약 “歌謠界(가요계) cinderella-신데렐라-”로 불리며 이난영과 함께 오케이레코드를 대표하는 여성가수 가됩니다
허나 후일 두여자는 선의의 경쟁자에서 앙숙관계로 변하고맙니다
이는 처음본순간부터 그녀를 맘에들어한 이철사장과 연인관계로 변하여 박향림 가수데뷔의 방해물이 되기도하고 눈에띄게 그녀를 偏愛(편애)하는 모습에 이난영과 이철사장사이에 冷氣(냉기)
가 흐르고 끝내는 scandal-스캔들-을 감추기위하여 일본으로 성악가 하라노부코의 지도를 받는다는 핑계로 일본으로 피난을 가야하기도 했읍니다
곡을 작곡한 엄재근은 okeh-record 산하 c.m.c-band-조선뮤지컬 클럽--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1950~60년대 크게활약한 映畵俳優(영화배우) 엄앵란의 부친되기도 합니다
恨(한)많은 斷髮嶺(단발령)에 검은머리 풀어쥐고
限(한)없이 울고간다 한없이 울고간다
아~~情(정)든님아 잘있거라
두눈에 피가흘러 시들어진 진달래는
恨(한)많게 붉었구나 恨(한)많게 붉었고나
아~情(정)든님아 잘있거라
斷髮嶺(단발령) 참나무에 붉은댕기 풀어걸고
마즈막 울고간다 마즈막 울고간다
아~情(정)든님아 잘있거라-------------------------------------------------------조명암사 김해송곡 장세정노래<잘있거라 斷髮嶺(단발령)>
1940년 11월 okeh-record 발매 臨時盤(임시반)으로 조명암사 김해송곡입니다
異面(이면)에는 조명암사 박시춘곡 남인수노래<눈오는 neon 街(네온가)>가 실려있습니다
1842년 2월 okeh-record발간 新譜紙(신보지)------------------------------------------------에는
<本月(본월)普及(보급) 特選(특선)目錄(목록)>
31005 잘있거라 斷髮嶺(단발령) 張世貞(장세정)
눈오는 neon 街(네온가) 南仁樹(남인수)-----------------------------------------------------------라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40년, 11월9일 每日申報(매일신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恨(한)많은 斷髮嶺(단발령) 조명암사 김해송곡 장세정
後面(후면) 눈오는 neon街(네온가) 박시춘작편곡 남인수---------------------------------------------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곡은 音盤企劃(음반기획)段階(단계)에서부터 장세정의 쭉쭉 뻗어가면서도 가볍게 코에걸린 sexy-섹시-함을 간직한 바꾸어말하면 淸楚(청초)한 色氣(색기)를 느끼게하는 창볍을 최대한 살린곡으로
歌詞(가사)속 “斷髮嶺(단발령)”은 金剛山(금강산) 서쪽 천마산에있는 고개입니다 금강산을 하눈에 내려다볼수있는 景勝地(경승지)입니다
“斷髮嶺(단발령)”이란 이름은 新羅(신라) 마지막 王子(왕자) 麻衣太子(마의태자)가 이언덕에서 동쪽 金剛山(금강산)을 내려다보면서 削髮(삭발)하고 중이되었다는 傳說(전설)에서 由來(유래)합니다
데뷔곡<連絡船(연락선)은 떠난다>가지닌 悲哀(비애)와는 느낌이다른 곡으로 高音(고음)을 살린 餘韻(여운)있는 melody-멜로디-에 장세정의 뛰어난 가창력이 돋보이는 명반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아세아레코드발매lp음반-장세정 백년설 힛트송집-에 실려있습니다
Oasis-record 발매lp음반-장세정-에서 “잘있거라 秋風嶺(추풍령)”으로 改題(개제) 실려있고
l.k.l-record 발매 10인치음반-백년설 장세정 추억의 힛트송-에서도 “잘있거라 秋風嶺(추풍령)”으로改題(개제)하여 remake 했습니다
이곡은 <종횡무진 가요사 375>에 상세하게 설명되 있습니다
1327-再照明(재조명)-f
여봐라 春香(춘향)이 걸어온다 저봐라 春香(춘향)이 걸어와
오이씨 같은 보선발로 살금살금 걸어온다
저고리는 물겹이요 치마는 주릿대
실버들 실허리에 은고리가 좋을시구
여봐라 春香(춘향)이 그네뛴다 저봐라 春香(춘향)이 그네 뛴다
나풀거리는 갑사댕기 요리조리 춤을춘다
그얼골은 반달이요 맵씨는 물제비
그네에 오락가락 다홍치마 좋을시구
여봐라 春香(춘향)이 바람났다 저봐라 春香(춘향)이 바람나
五里亭(오리정)離別(이별) 관계치않소 死生決斷(사생결단) 바람났다
廣寒樓(광한루) 붉은난관 도령님 무릎에
죽여주 살려주 一片丹心(일편단심) 조을시구-----------------------------------------처녀림사 김교성곡 진방남노래<그네줄 傷處(상처)>
1940년,8월 태평레코드서 처녀림사 김교성곡 진방남노래로 발매됩니다
異面(이면)에는 처녀림사, 이재호곡 나성려의<철뚝길 팔십리>가 실려있습니다
1939년,12월 첫취입곡 여덟곡중 김영일사,김교성곡<沙漠(사막)의 哀想曲(애상곡)>을 발표하며 가요계 데뷔를 한 본명 박창오 인 진방남은 여덟곡중<불효자는 웁니다>를 취입중 실재로”모친사망”
이라는 전보를 받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일을 당합니다
悲劇的(비극적)으로 노래의내용이 그대로 일어난것입니다
그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심정으로 이노래를 취입했고 그의 自敍傳(자서전)이 되버린 이노래는 가요계에 전해지며 대중들의 공감을얻어 熱狂的(열광적)反應(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해서 곡이 발매도되기전 全國的(전국적)으로 流行(유행)의 물결을 일으키며 irony-아이러니- 하게도 이 悲劇的事件(비극적사건)이 그의 新人歌手(신인가수)生活(생활)을 有利(유리)하게 해줍니다
비내리는 故鄕(고향)땅 馬山港(마산항)을 우산도쓰지않고 떠나던날 반드시 성공하라고 격려했던 어머니 그어머니의 영혼이 그를 도우고나섰던 것입니다
상기가요<그네줄 傷處(상처)>는 우리나라 古典中(고전중) 最高興行物(최고흥행물) 春香傳(춘향전)에서 motive-모티브-를 가져와 古風(고풍)스런 文句(문구)를 華麗(화려)하고도 細密(세밀)하게
驅使(구사)해 맛갈스런 民謠風(민요풍)의 大衆歌謠(대중가요)로 창작한 것으로 작사를 한 처녀림의 言語驅使能力(언어구사능력)의 頂點(정점)을 보여주고 작곡을한 김교성의 作品性(작품성)도
돋보이는 가요이나 진방남의<不孝子(불효자)는 웁니다><꽃 馬車(마차) >,< 잘있거라 港口(항구)야>등 힛트곡들의 威勢(위세)를 꺾지못해 묻혀짐을 당해야했던 不運(불운)의 가요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노래가사중에 다른대중의 제목으로 借用(차용)된 부분이 많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우선 1절에”주릿대”는 임서방사, 이재호곡, 선우일선의<주릿대치마> 3절의”五里亭(오리정)離別(이별) ”은 박재홍의데뷔곡<눈물의 五里亭(오리정)> 과 김용만의<五里亭(오리정)離別(이별)>에
보이고”춘향이바람났다”는 야인초사 한복남곡 황정자의<南原(남원)의 봄事件(사건)>에 보입니다
그리고 이가요는 김용만에의하여 再吹入(재취입)됩니다
성음레코드발매 lp음반-세월따라 노래따라 no3-side a 4에 보입니다
아이구 흥흥흥 내八字(팔자)야 데이구 흥흥흥 내 身世(신세)야
七寶丹粧(칠보단장)을 어대다두고 주릿대치마가 왠말이냐
둥기당실 당기당실 다다다다 당실
아이구 요놈의 내 八字(팔자)자야--------------------------------------------------임서방사 이재호곡 선우일선노래<주릿대치마>
南原(남원)에 봄事件(사건)났네 全羅北道(전라북도) 南原(남원)고을
바람났네 春香(춘향)이가
신발벗어 손에들고 버선발로 걸어오네
쥐도새도 모를듯이 살짝살짝걸어오네
烏鵲橋(오작교)로 廣寒樓(광한루)로
도령찾아 헤매도네 남원에 봄事件(사건)났네---------------------------야인초사 한복남곡 황정자노래<南原(남원)의 봄事件(사건)>
1328-再(재)照明(조명)-g
눈보라가 휘날리어 얼굴을 치는구나
찬뺨에 흐르는물 눈녹음이 아니로다
이한밤 외진산길 몰아치는 바람길에
헤어진 옷자락이 떠는구나 어는구나
얼어붇은 옛生角(생각)에 서글픈 옛生角(생각)에
절절이 사무치는 어리석은 옛일들이
무산령 고개넘어 몇천리냐 몇만리냐
끝없이 돌아돌아 定處(정처)없는 나그네야
울어십년 웃어십년 靑春(청춘)이 애달퍼라
넋두리 이십년에 歷史(역사)도 한없구나
전봇줄 울어 울어 故鄕消息(고향소식) 망망한데
못잊을 어머님의 주름살이 野俗(야속)하오--------------------------------------반야월사 김교성곡 진방남노래<넋두리 二十年(이십년)>
상기가요는 1942년 4월 태평레코드서 반야월사 김교성곡 진방남 노래로 발매됩니다
異(이)面(면)에는 반야월사 이재호곡 진방남노래로<꽃馬車(마차)>가 실려있습니다
1943년, 3월 태평레코드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0發賣(발매) 00 目錄(목록)>
五0三二 꽃馬車(마차) 진방남
넋두리 二十年(이십년)----------------------------------------------------------------------라고 紹介(소개)水準(수준)의 선전을 하고있습니다
이음반에서<꽃馬車(마차)>은 blg-hit-빅힛트-를해 <不孝子(불효자)는웁니다>와함께 그의 代表曲(대표곡)이되나 相對的(상대적)으로<넋두리 二十年(이십년)>는 관심밖으로 밀려납니다
후일 Oscar-record 발매 lp음반-진방남 흘러간노래수첩-에 대사버전으로 remake 되있습니다
臺詞(대사)---눈보라가 뺨을치는 大關嶺(대관령)고갯길에
외로운 나그네가 울고가네 떨고가네
전봇줄 울어울어 故鄕消息(고향소식) 막막한데
먼길 어머님의 주름살이 野俗(야속)하오--------------------------------------<남해연>
눈보라가 휘날리어 얼굴을 치는구나
찬뺨에 흐르는물 눈녹음이 아니로다
이한밤 외진산길 몰아치는 바람길에
헤어진 옷자락이 떠는구나 어는구나------후략--------
<불효자는웁니다>를 비롯하여 태평레코드 주요가수로 성장한 진방남 이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않고 그가 평소꿈꾸었던 文筆家(문필가)를 향해 노력을 하기시작합니다
이윽고 작사에도 손을대어 眞價(진가)를 발휘합니다
그가 작사를 시작한 것은 평안북도 영변에서 특별출연으로 백난아,김교성씨와 함께 亞細亞(아세아)樂劇團(악극단)공연에서 부터입니다
처음떠난 지방공연에서 작곡가 김교성과 함께 투숙하고있던 진방남은 창너머비쳐드는 초승달바라보며 이불속에서 바스락 거리고 있었습니다
펜을잡고 가사를 쓰고 있었던것입니다
그노래에<넋두리 二十年(이십년)>이라는 제목을 붙인그는”반야월”이라고 筆名(필명)을 사용 김교성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글을 읽어보고 이시가 마음에든 김교성은 그자리에서 곡을붙여 서울본사로 보냅니다
얼마후 이곡은 진방남의노래로 녹음되어 히트하지만 회사는 그제서야 작사자 반야월이 진방남이라는 사실을알고 모두 놀라워했읍니다
1329-再(재) 照明(조명)-h
玉唐木(옥당목) 행주치마 고이 펼쳐서
그리운 당신에게 보내는 便紙(편지)
“이봄이 가기전에 어서 오세요 응”
이봄이 가기전에 이봄이 가기전에
꼭 오세요
軟粉紅(연분홍) 손수건에 이맘을 싸서
그리운 당신에게 드리는 便紙(편지)
“보리꽃 필적에는 어서 오세요 응”
보리꽃 필무렵은 보리꽃 필무렵은
꼭 오세요 네
옷고름 한짝사서 매듭을 지어
그리운 당신에게 전하는 便紙(편지)
“丹楓(단풍)이 들기 전에 어서 오세요 응”
丹楓(단풍)이 들기전에 丹楓(단풍)들기전에
꼭 오세요 네--------------------------------------------------------------------------------------------이부풍사 이면상곡 박단마노래<꼭 오세요>
1938년 7월 victor-record발매 sp음반에 이부풍사 이면상곡 박단마노래로 실려있습니다
異面(이면)에는 강영숙사, 문호월곡 박단마의<왜 몰라주나요>가 실려있습니다
이곡은 kj1207로 <나는 열일곱살>이 kj1205이고 1938년, 7월발매이므로 이무렵 발매되어을것으로 推定(추정) 됩니다
1938년 7월 victor-record 發行(발행) 每月(매월)新譜紙(신보지)--------------------------------------------------------에는
七月新譜(7월신보)
Kj1207 流行歌(유행가) 꼭오세요 朴丹馬(박단마)--------------------------------------------------------라 소개되있습니다
朝鮮日報(조선일보) 1938년,7월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꼭오세요 박단마-------------------------------------------------------라고 짧게 선전되있습니다
이러한 당시 광고수준으로 呼應(호응)이 신통치않았음을 알수있습니다
Elegy-엘레지-의 達人(달인) 전수린표 情人(정인)을 향한 女人(여인)의 애타는 心情(심정)을 呼訴(호소)하는 내용의 노래인바 그녀의 경쾌 발랄한 雰圍氣(분위기)의 노래에 익숙한 fan-팬- 들이
그녀의 變身(변신)에 당황한 모습일수도있고 拒否反應(거부반응)일수도 있습니다
지금같으면 여성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을만한 일이지만 그당시 外貌(외모)가 馬(말)를 닮았다해서 예명을 朴丹馬(박단마)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가수박단마는 1921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그무렵 모든 演藝人(연예인)들이 그랬듯이 演劇舞臺(연극무대)에섰고 1934년,8월9일 그녀나이 십대초반에 jodk-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백파와함께<봄맞는 꾀꼬리><거지의노래>
를 부를정도로 특출한 재능이있었고 당연히 인기를 얻었읍니다
그리고는 이런인기에 힘입어 1937년,6월 victor-record 전속가수로 채용되고 이부풍사,전수린곡<날두고 참말><相思九百里(상사구백리)>로 가수데뷔를 합니다
이때”愛嬌(애교)와 귀여움과-----演劇界(연극계)의 star-스타- 第一聲(제일성)”라는 선전문구를 사용합니다
1937년,11월 victor-record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斷然好評(단연호평)의 最近傑作盤(최근걸작반)!!----------------------------이란 宣傳文文句(선전문구) 도 보입니다
1330—再照明(재조명)-i
1937년 6월 李扶風 詞(이부풍 사), 全壽隣 曲(전수린 곡) <相思九百(상사구백)里(리)><날두고 참말 眞情(진정)>으로 歌謠界debut –가요계데뷔-를 한 朴丹馬(박단마)는 이곡이 그간 가요들과 전혀다른
“新民謠(신민요)이면서도 流行歌(유행가)맛까지 내는곡”으로 fan –팬-들사이에 각인되며 이후 이부풍작사에 전수린작곡의 combi-콤비-가 형성됩니다
이어서 그해 9월 新民謠(신민요)로 박화산사, 전수린곡<歲月(세월)아 네월아> 1938년,2월경 박화산사, 이면상곡<大將軍(대장군)고개>, 이부풍사 이면상곡<짜릿짜릿사랑가>를 만요가수 이인근과
듀엣으로 부르고 이부풍곡 이면상곡<modern 난봉가>, 3월 남북평사 이면상곡<새로동동 못잊어요>등을 계속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인기를 決定(결정)짓는 노래인 이부풍사 형석기곡<아이고나 요맹꽁>을 1938년 5월경 이부풍사 이면상곡 이규남노래<地球(지구)는 돈다>와 함께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어서 7월경 이부풍사 전수린곡<나는 열일곱살>를 연달아 힛트시키며 1937년,12월<알뜰한당신>을 힛트시키며 victor-record 看板歌手(간판가수)가된 황금심과 더불어 star-singer-스타가수-로
등극합니다
이런중에서도 1938년7월경 발표한 강영숙사,문호월곡<왜몰라주나요>는<나는 열일곱살<<아이고나 요맹꽁>같은 big-hit에 밀려 잊혀져갑니다
해서 remake 버전도 찾기가 힘듭니다
벙어리 가슴앓듯 애타는 내 事緣(사연)을
친절한 당신께서 왜 몰라주나요
어서요 어서요
밤이면 밤마다 울면서 새우는 이가슴을
제발 좀 알어주세요
옷소매 걷어쥐고 긴한숨쉬는 속을
菽麥(숙맥)도 아니면서 모른체 하나요
어서요 어서요
나혼자 나혼자 어쩔줄 모르는 이가슴을
제발좀 알어 주세요
그리운 萬端事緣(만단사연) 어떻게 하나요
어서요 어서요
당신만 당신만 찾으며 바라보는 이가슴을
제발좀 알어 주세요-------------------------------------------------------------강영숙사, 문호월곡 박단마노래<왜몰라주나요>
역서 작사를 한 姜英淑(강영숙) 은 한국작사계의 巨木(거목) 李扶風(이부풍)의 또다른 藝名(예명)입니다
그외도 盧多之(노다지), 李高麗(이고려), 등의 筆名(필명)이 있습니다
그의 本名(본명)은 朴魯洪(박노홍)으로 忠北(충북) 淸州(청주)출신으로 1931년 東亞日報(동아일보) 新春文藝(신춘문예) 에서 문단에 등장후 1935년 동아일보에<빈귀빈>을 연재하면서 victor-record
專屬歌謠作詞家(전속작사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황금심의<안오시나요><이별넋두리><당신입니다><旅窓(여창)에 기대여> 박단마의<나는 열일곱살><아이고나 요맹꽁> 그리고 남인수의 데뷔곡<눈물의해협>을 개사한<애수의소야곡>을 쓰고
해방후 첫힛트곡<가거라 38선>을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외도 흥미로운 사실은 만요가수 이인근 의데뷔곡<장가를 들게되면><春風(춘풍) 三千里(삼천리) ,이규남, 백우선의듀엣곡<사랑은 소근소근> 홍난파가 나소운이란 예명으로 작곡한 안옥경의
<여인의호소> 이규남의 <유랑의 나그네> 설도식의 < matross-마도로스-의 노래>, “진주라천리길”의 이규남의 만요<장모님 전상서><눅거리 飮食店(음식점)>---등등을 작사했다는 점입니다
歌謠界(가요계)代父(대부) 김용환이 춘사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을 악극으로 만들어 공연시 脚本(각본)을 쓴것으로 유명-----하고
“선우일선의 데뷔곡<꽃을잡고>라는 노래를 듣노라면 마치 아득한 하늘에서 옥통수소리를 듣는듯했다”며 “후에 이화자가 나와 많이 힛트시켰지만 선우일선의 단정하고 아름다움을 따를수는
없었다”며 그녀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1331-再照明(재조명)-j
눈물만 흘려서 무엇하나 한숨만 쉬어서 무엇하나
人生(인생)一場春夢(일장춘몽) 이거니
놀기도 하며 걱정하세
니나노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좋다
얼시구나 좋아 봄나비는 이리저리 펄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路柳墻花(노류장화) 꺾어 들고서
春風花柳(춘풍화류)를 戱弄(희롱)하세
成火(성화)만 받쳐서 무엇하나 짜증만 내어서 무엇하나
걱정할일 하고많으니 놀기도하며 살어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좋다
얼시구나 좋아 봄나비는 이리저리 펄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路柳墻花(노류장화) 꺾어 들고서
春風花柳(춘풍화류)를 戱弄(희롱)하세-------------------------------------------------강남월사 정사인곡 선우일선노래<太平宴(태평연)>
1935년, 12월경 polydor-record서 sp음반으로 발매
異面(이면) 에는 김목은사 김용환곡 김용환노래<春夢(춘몽)>이 보입니다
1939년,1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二月(이월)新譜(신보)
朝鮮普(조선보) 第二回(제2회)發賣(발매)
x-515 新民謠(신민요) 太平宴(태평연) 鮮(선)于(우)一(일) 扇(선)
流行歌(유행가) 春夢(춘몽) 金龍煥(김용환)------------------------------------------------------------------라고 紹介水準儀(소개수준) 선전을 하고있습니다
헌데 그전 1935년,11월21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十二月(십이월)新譜(신보)
19229-新民謠(신민요)太平宴(태평연) 南江月(남강월)詞(사), 鄭士人仁(정사인) 曲-곡-
鮮于一 扇(선우일선))
가을의 노래 金正鎬(김정호)詞(사), 金冕均(김면균) 曲-곡---------------------------------------------------------------------------------라고 紹介(소개)되있어서
이노래가 두번에걸쳐서 發賣(발매)되었음을 알수있게합니다
이곡은 지금까지도 一般(일반)大衆(대중)은 물론 民謠界(민요계)에서 조차도 口傳民謠(구전민요) <太平歌(태평가)>로 알고있는 곡의 原曲(원곡)입니다
곡을 만든이 鄭士仁(정사인)은 韓國(한국)西洋音樂(서양음악)의 先驅者(선구자)로 안기영의<내 故鄕(고향)>을 만든사람이기도 합니다
곡을 취입한 선우일선은 한국최초 券番出身(권번출신)歌手(가수)인 왕수복과함께 平壤所在(평양소재) 箕城券番(기성권번)에 소속되있었고 polydor-record 의 朝鮮進出(조선진출)에 맞춰
文藝部長(문예부장이)된 多才多能(다재다능)한 藝能人(예능인) 왕평이 歌手scout-가수스카웃-에 熱中中(열중중) 平壤(평양)에왔을떄 그녀의 所聞(소문)(을) 접하게되고 곧 가수로 인도했다는
紀錄(기록)이 보입니다
그녀는 特異(특이)하게도 歌手(가수)가된후에도 서울에서 계속 妓生生活(기생생활)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332—再照明(재조명)-k
에헤요 에헤요 꼬공 꼬공 찧는 숲사이 閑暇(한가)한 물레방아
물은흘러 방아돌고 물결따라 밤도갚다 짝도없이 혼자도네
꼬공꼬공 찧는다
에헤요 에헤요 꼬공 꼬공 찧는 숲사이 閑暇(한가)한 물레방아
바퀴위에 비친달빛 물결조차 흐트지니 마음조차 散亂(산란)쿠나
꼬공꼬공 찧는다
에헤요 에헤요 꼬공꼬공 찧는 숲사이 閑暇(한가)한 물레방아
가는봄을 뉘라막고 지는꽃을 어이하리 綠陰芳草(녹음방초) 散亂(산란)쿠나
꼬공꼬공 찧는다
에헤요 에헤요 꼬공 꼬공 찧는 숲사이 閑暇(한가)한 물레방아
물결위에 꽃이지니 방아속에 봄이간다 봄도한철 情(정)도한때
꼬공꼬공 찧는다------------------------------------------------------------------------이고범사, 김면균곡, 선우일선노래<숲사이 물레방아>
1934년,6월--- 李孤帆(이고범)-이서구-詞(사), 金冕均(김면균) 曲(곡) 鮮于一扇(선우일선) 노래가 실린 sp음반으로 polydor-record 발매
異面(이면)에는 김봉혁사, 미면상곡,김주호 선우일선 듀엣의<遠浦歸帆(원포귀범)>이 보입니다
1934년,6월2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七月新譜(칠월신보)
六月(유월) 二十一(이십일) 發賣(발매)
19143 新民謠(신민요) 숲사이 물레방아 鮮于一扇(선우일선)
遠浦歸帆(원포귀범) 金周鎬(김주호) 鮮于一扇(선우일선)-------------------------------------------------라고 소개수준의 선전이 보일뿐입니다
1934년 10월 polydor-record 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十一月(십일월)新譜(신보)
大好評(대호평)의 流行歌(유행가)와 新民謠(신민요)
新民謠(신민요) 숲사이 물레방아 선우일선
원포귀범 김주호-------------------------------------------------------라고 광고 하고있습니다
상기 두번의 廣告(광고)水準(수준)으로 보아 이곡의 반응이 期待以下(기대이하) 였음을 알수있습니다
곡을 취입한 선우일선은 1918년경 평양에서 출생, 권번기생이 되기전 妓舞學校(기무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소재 가성권번에 소속되어 가생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권번에서의 유명세 덕분에 왕평의 눈도장에찍혀 polydor-record 에 電擊(전격) scout-스카우트-되어 1934년 신보에서 김안서작사 이면상작곡의<꽃을잡고>를 발표 일약 star-singer 가된 선우일선은
그인기에 힘입어 1935년, 5월28일 jodk 放送局(방송국)에 出演(출연)하는 絶頂(절정)의 人氣(인기)를 누립니다
이방송에서 그녀는 데뷔곡인<꽃을잡고><無情歲月(무정세월)>,<숲사이 물레방아><원포귀범><그리운 아리랑>,남포의 追憶(추억)>등을 불렀고 일본전국에 中繼放送(중계방송)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1936년 新春特別(신춘특별)新譜(신보)서 편월작사 형석기작곡<朝鮮八景歌(조선팔경가)>를 발표 폴리돌레코드사를 “民謠(민요)의 王國(왕국)”으로 끌어올립니다
6월 신보서는 그녀의 또한곡의 代表曲(대표곡) 추야월사 김교성곡<능수버들>을발표합니다
허나 상기곡<숲사이물레방아>는 그녀의 다른힛트곡<능수버들><조선팔경가><꽃을잡고>등에 밀려서 묻히고맙니다
해서 재취입 음반도 보이지 않습니다
1333-再照明(재조명)-l
에~ 먼동이 터온다네 닻감아라 沙工(사공)들
씩씩한 목소리로 뱃노래 부르면은
바닷가 處女(처녀)들의 가슴도 울렁
에~ 어기여 어기여차 노를 져라 沙工(사공)들
이까짓 물결쯤은 두려워 하면은 얘
바닷가 處女(처녀)들이 숭을 본다네
에~잡었다 잡었고나 집채 같은 고래를
기여이 잡을야고 애쓰는 그놈을 얘
바닷가 處女(처녀)들의 사랑도 내것
에~두둥둥 북을치며 힘껏 맘것 저어라
저멀리 浦口(포구)가를 보느냐 동무들아
바닷가 處女(처녀)들이 손짓을 하네------------------------------------------------------------범오사 김준영곡 강홍식노래<먼동이 터온다네>
1935년 1월 Columbia-record 서 sp음반에실어서 臨時發賣(임시발매)
異面(이면)에는 徐斗成(서두성) 詞(사), 古關裕而(고관유이) 曲(곡)채규엽노래<순풍에돛을달고>가 실려있읍니다
1935년,1월2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臨時發賣(임시발매) 一枚(일매)
二大傑作(이대걸작)!!
먼동이 터온다
순풍에 돛달고---------------------------------------------------------------------------------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1935년,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八月新譜(8월신보)
<0發賣(발매)>
專屬(전속)作曲家(작곡가)의 0發賣傑作盤(0발매걸작반)!!
金駿泳氏(김준영씨) 傑作 record-걸작 레코드-
四0五九一(사공오구일) 먼동이 터온다 姜弘植(강홍식)-------------------------------------------------------------------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어서 人氣(인기)가 上昇(상승)하고 있음을 알수있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36년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十一月(십일월) 新譜(신보)
朝鮮代表(조선대표)特輯盤(특집반)과 名唱特選盤(명창특선반) 美麗(미려)한 카톤복스 絶好(절호)의 chance-챤스-!!
朝鮮代表(조선대표)特輯盤(특집반) 第一輯(제1집) 40591 流行歌(유행가) 순풍에돛달고 蔡奎燁(채규엽)-----------------------------------------라고 華麗(화려)한 文句(문구)를 動員(동원)해
宣傳(선전)하고 있어서 인기가 絶頂(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東海岸(동해안)어느 작은漁村(어촌)의 活氣(활기)찬 아침風景(풍경)을 民謠風(민요풍)으로 창작한 이 가요는 삶의意慾(의욕)이 넘치는 浪漫的(낭만적)인 雰圍氣(분위기)가 好評(호평)을 받아
널리 愛唱(애창)되었고 곡을 歌唱(가창)한 강홍식의 인기를 確固(확고)하게 만듭니다
이곡은 그의노래<處女(처녀)總角(총각)><靑春(청춘)打令(타령)>등 여러곡을 remake 한바있는 남백송의 맛갈스런 재취입이 存在(존재)합니다
허나 歲月(세월)의 먼지가 쌓여감에따라 이노래역시 60대이상 silver fan-노년층-이나 기억하는 노래로 잊혀졌습니다
성음레코드발매 lp음반-歌謠(가요)半世紀(반세기)- 2집에 보입니다
1334-再(재) 照明(조명)-m
아~白頭山(백두산) 솟아서 精氣(정기)를 떨치니
三千里(삼천리) 山野(산야) 기름이 졋네
에라좋아 얼수 에라 좋아라
五大(오대)江(강) 十大(십대)山(산) 널린곳에서
二千萬(이천만) 百姓(백성)이 잘도나 사네
즐겁다 朝鮮(조선)을 祝福(축복)을 하세
아~ 田畓(전답)에 五穀(오곡)이 金波(금파)를 지으니
三千里(삼천리) 山野(산야) 춤속에 뛰네
에라좋아 얼수 에라 좋아라
金剛山(금강산) 妙香山(묘향산) 山(산)과 山(산)들은
奇花(기화)라 妖草(요초)에 비단을 짜네
즐겁다 朝鮮(조선)을 祝福(축복)을 하세
아~文物(문물)이 燦爛(찬란)히 꽃같이 폈으니
三千里(삼천리) 山野(산야) 노래에 차네
에라 좋아 얼수 에라 좋아라
鴨綠江(압록강) 豆滿江(두만강) 江(강)과 江(강)들은
金魚(금어)라 銀魚(은어)에 玉流옥(류)를 짔네
즐겁다 朝鮮(조선)을 祝福(축복)을 하세
아~ 뛰어난 人物(인물)이 수많이 낳으니
三千里(삼천리) 山野(산야) 살아서 뛰네
에라 좋아 얼수 에라 좋아라
英雄(영웅)과 豪傑(호걸)에 文章(문장)니 나니
말함과 행함이 힘있게 사네
즐겁다 朝鮮(조선)을 祝福(축복)을 하세---------------------------------------------유도순사, 전기현곡 강홍식노래<朝鮮打令(조선타령)>
1934년, 11월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으로 異面(이면) 에는 유도순사, 전기현곡 강홍식,조금자 듀엣의<豊年(풍년)맞이>가 실려있습니다
1934년, 12월2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半島(반도)을 振動(진동)시키는 朝鮮(조선)打令(타령) 강홍식 즐겁다 朝鮮(조선)을 祝福(축복)하세--------------------------라고 노래가사 일부를 借用(차용) 過大宣傳(과대선전)을 하고있습니다
Columbia-record 1936년, 6월 發行(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六月(6월)新譜(신보)
<0發賣(발매)>
專屬作曲家(전속작곡가)의 0發賣(발매)傑作輯(걸작집)!!
全基玹(전기현) 氏(씨) 傑作record-걸작레코드-
四0五六五 朝鮮打令(조선타령) 姜弘植(강홍식)-----------------------------------------------------------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Tv talent 겸 映畵俳優(영화배우) 최민수씨의 외할아버지로 더알려진 歌手(가수)강홍식씨는 1934년,2월 Columbia-record 서 범오사 김준영곡으로 발표한<처녀총각>의 空前(공전)의 대힛트로
歌手生活(가수생활) 草創期(초창기)를 華麗(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로부터 1935년봄까지 <靑春(청춘)打令(타령)><개나리고개><서울명물>등 잇달아 대단한 힛트곡을 잇달아 발표합니다
특히 이중에서<靑春打令(청춘타령)>은 1935년 4월 유도순사,김준영곡으로 그의 최고힛트송 이요 2박인 ”處女總角(처녀총각) ”과 전혀 雰圍氣(분위기)가 다른 3박자로 창작 또다시 큰성공을
거두는 氣焰(기염)을 토합니다
강홍식이 舞臺幕間(무대마간)에서 <청춘타령>등을 輕快(경쾌)하게 노래하면 觀客(관객)들도 신이나서 함께 불렀다고 합니다
에~색보고 오는 胡蝶(호접) 네가 막지말아라
꽃지고 잎이피면 찾아올리 없구나
에~靑春(청춘)아 이날을 즐겨웁게 맞어라
七(칠) 仙女(선녀) 그사랑 몸에감고 놀세나
얼시구나 절시구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두리둥기 둥실 靑春(청춘)이로다--------------후략----------------------------------유도순사,김준영곡 강홍식노래<靑春打令(청춘타령)>
허지만 “朝鮮最初(조선최초) 舞踊record)-무용레코드-”로 紹介(소개)되기도한 상기<朝鮮打令(조선타령)>은 강홍식의 <愉快(유쾌)시골 令監(영감)>등 다른힛트곡의 有名稅(유명세)에 밀려
팬들사이에서 잊혀지고 맙니다
1335-再照明(재조명)-n
尙州 山間(상주 산간) 흐르는 물에 상치씻는 아가씨야
손을씻어 누굴 주려고 치마춤에 감추는가
상추잎은 남을 주어도 마음만은 나를 주려무나
晋州 南江(진주 남강) 흐르는 물에 빨래하는 저 處女(처녀)야
눈결같이 고운빨래에 눈물흘려 우는구나
그대마음 서를때면 이내마음도 알어주려무나
藥山東臺(약산동대)바위를 잡고 나물캐는 아가씨야
온갖나물 다캐어도 杜鵑花(두견화)만 꺾질마오
두견화나 치는때라 님이 오는줄 알어주려무나-----------------------------왕평사 김용환곡 김용환노래<山間(산간)處女(처녀)>19319
선우일선의 <님맞이>가 “19321” 이며 1936년,7월 발매된것으로보아 “19319”인<山間處女(산간처녀)>이무렵 발매된것으로 추증되니다
1936년,7월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서 確認(확인)됩니다
19319 流行歌(유행가) 山間處女(산간처녀) 王平-왕평- 詞(사) 李冕相(이면상) 金龍煥(김용환)곡 金龍煥(김용환)-----------------소개하고있어서 곡 창작에 이면상도 관여한것으로 보입니다
1936년, 10월6일 Polydor-record 발행 每月(매월)新譜(신보)--------------------------------------------------------------에는
<0發賣(발매)目錄(목록)>
流行歌(유행가) 19319
山間處女(산간처녀) 金龍煥(김용환)
꽃피는 上海(상해) 鮮于一扇(선우일선)----------------------------------------------------라고 소개되있습니다
1939년 ,2월25일 東亞(동아)日報(일보) 1939년,2월26일 朝鮮(조선)日報(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Polydor-record 朝鮮譜(조선보) 00 十錢盤(십전반)
第三回(제3회)發賣(발매)
三月(삼월)新譜(신보)
x-527 流行歌(유행가) 山間處女(산간처녀) 金龍煥(김용환)-----------------------------------라고 선전하고 있어서 이곡이 2회에걸쳐서 발매되었음을 알게합니다
이곡은 大文章 家(대문장가) 王平作品(왕평작품)답게 당시 朝鮮(조선)의 有名場所(유명장소)를 擧名(거명)하며 맛갈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3절은 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에서 도입부를 그리고 동학혁명 주인공 전봉준 추모가 <파랑새> 에서 motive 를 가져오고
2절부분 “진주남강 흐르는물에 빨래하는 저 處女(처녀)야---“하는부분은 야인초사 백영호곡 박재홍의<南江(남강)은 살아있다> 2절에 차용되고 손로원사 이봉룡고 남인수의
<晋州(진주)의 하롯밤> 2절에서 들을수있습니다
2절----西將臺(서장대) 黃昏(황혼)지고 날저물어 오는데
칙칙폭폭 칙칙폭폭 들려오는 소리는
호국사 저녁종에 목탁치는 소리냐
빨래하는 악낙내들 방마칠 소리냐
아니요 천만에요 찰랑찰랑 南江(남강)물에
晋州(진주)라 千里(천리)길 숨쉬는 소리요------------------야인초사 백영호곡 김재식 원창 박재홍 remake<南江(남강)은 살아있다>
2절---하롯밤 울고갈길 내어히 왔던고
世上(세상)이란 虛無(허무)하다 南江(남강)물도 우는구나
빨래하는 아가씨가 불러주는 저노래
구슬프다 論介(논개)넋을 불러만 주네--------------------------------------------손로원사, 이봉룡곡 남인수노래<晋州(진주)의 하롯밤>
3절부분은 또 정주희사 정주희곡 이수미노래<방울새>에도 차용되었습니다
새야 새야 방울새야 꽃가지에 앉지마라
우리님이 오시면은 보여드린단다------후략---정주희사,곡 이수미노래-<방울새>
1절부분은 <인천 고무공장아가씨>라는 구전가요에서도 비슷한 분위기 의 노래로 들을수있읍니다
허지만 이곡역시<눈깔먼 노다지><落花流水 hotel-낙화유수 호텔-><天堂(천당)과 地獄(지옥)><장모님전항의>등 그의 힛트곡에 가려 잊혀졌습니다
1336-再照明(재조명)-o
밭고랑 잔디길로 소몰고 오는 저 牧童(목동)이
꼴망태 둘러메고 노래도 구성지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長短(장단)에 소를 몰며
아리랑 고개 고개를 넘어간다
콩밭밭에 눈 팔지말고 음음 어서가자
臺詞(대사)—해 넘어갈라 어서가자 이랴 으흥
때묻은 무명수건 목위에 질끈 동이고
소등에 올라앉아 고삐를 툭툭 채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長短(장단)에 소를 몰며
아리랑 고개 고개를 넘어간다
콩이삭 다치지 말고 음음 어서가자
臺詞(대사)—해 넘어갈라 어서가자 이랴 으흥
마을에 저녁煙氣(연기) 붉은 노을에 묻힐 때
장수연 한대쥐어 백통에 피워물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長短(장단)에 소를몰며
아리랑 고개고개를 넘어간다
오양간 송아지 울라 음음 어서가자
臺詞(대사)—해 넘어갈라 어서가자 이랴 으흥------------------------------------------김성집사, 조자룡곡 김용환노래<꼴망태 아리랑>
1939년,7월 victor-record 서 김성집사,조자룡곡 김용환노래 로 sp음반에 실어서 발매
異面(이면) 에는 이부풍사,이면상곡 박단마노래<변할수있나요>가 실려있습니다
1939년,7월6일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빅터 一週間(1주간) 特別發賣(특별발매)
Kj-1335 新民謠(신민요) 꼴망태아리랑 김용환-------------------------------------------------------라고 선전하고있습니다
1939년,7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00無雙(무쌍) 이태크
Kj-1335 꼴망태아리랑 김용환
新(신) 歌謠曲(가요곡)에 아리랑을 接木(접목)한 新民謠(신민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0년,1월 victor-record 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꼴망태 아리랑 김용환
지난 一年間(일년간) 傑作(걸작) 新民謠(신민요)-----------------------------------------------------------------------라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上記曲(상기곡)<꼴망태 아리랑>을 歌唱(가창)한---------韓國歌謠史(한국가요사) 最初(최초) Singer song writer싱어송 라이터-요 “歌謠界(가요계) 代父(대부)”로 평가되는 김용환은 1912년
咸鏡南道(함경남도) 元山(원산)胎生(태생)입니다
그는 앞서 소개했듯이 음악에 관해서는 특이한 재능을 가진 傑物(걸물)로 바이얼린을 비롯하여 트럼펫등 器樂(기악)演奏(연주)에 能爛(능란)했고 노래나 作曲(작곡)演劇(연극)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八方美人(팔방미인) 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고향 원산에 거점을 둔”동방예술단”에 에 입단하여 바이얼린 연주와 流行歌(유행가)로 人氣(인기)를 얻었습니다
이극단은 1931년경”조선연극공장” 이라고 改稱(개칭)합니다
그는 한편 作曲(작곡)에도 손을대어 朝鮮日報社(조선일보사) 의 歌詞募集(가사모집)에 당선된 <豆滿江(두만강) 뱃沙工(사공)>에 곡을붙이며 有名(유명)해집니다
1932년경 polydor-record 의 朝鮮進出(조선진출)에 따라 專屬作曲家(전속작곡가)겸 歌手(가수)가되어 그해 10월 1대 “눈물의여왕” 이경설과 sketch-스켓취- 장르<朝鮮(조선)行進曲(행진곡)>과
劇(극)<國境(국경)의 哀曲(애곡)>을 발매하며 레코드계에 登場(등장)합니다
상기음원<꼴망태 아리랑>은 서울음반, 신나라레코드 sp음반 복각 cd에 보입니다
1337-再照明(재조명)-p
장가들면 마누라가 第一(제일)좋다고 하더니
妻家(처가)집의 丈母(장모)님이 더욱 좋았소
丈母(장모)님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요다음 가거들랑 송아지 한마리 잡아주
송아지 한마리 잡아주
妻家(처가)집 가는 것이 좋은줄은 알지만
사위 대접 잘하는데 아주 놀랐소
丈母(장모)님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요다음 또 갈 테니 암탉 한마리 잡아주
암탉 한마리 잡아주
요것도 좀 먹어보게 요지가지로 권하던
고추장도 장조림도 아주 맛났소
丈母(장모)님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우리 丈母(장모)님
요다음 또 갈 테니 生鮮 (생선)전야를 부쳐주
生鮮(생선) 전야를 부쳐주--------------------------------------------------노다지사 석일송곡 이규남노래<丈母(장모)님 前(전) 上書(상서)>
1938년,12월 노다지사,석일송곡 이규남노래로 victor-record 서 sp음반으로 발매
異面(이면)에는 같은작가진의 이규남노래<눅거리 飮食店(음식점)>이 실려있습니다
Victor-record 發賣(발매) 音盤(음반)---------------------------------------------------------------에는
Victor kj-1263 눅거리 飮食店(음식점) 盧多之(노다지) 詩(시) 石一松(석일송) 作曲(작곡) 李圭南(이규남) 伴奏(반주) 日本(일본) 빅타 管絃樂團(관현악단)
Victor-kj-1263 丈母(장모)님 前上書(전상서)----------------------------//--------------------------------------------------------//---------------------------------------라 表記(표기)되있습니다
이노래는 김용환의 김성집사, 김양촌곡<丈母(장모)님 前抗議(전항의)>과 混同歌謠(혼동가요)이고 흔히들 김정구씨 原唱(원창)으로 잘못알고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는 김정구씨가 臺詞(대사)버전등 여러 번 remake 한 음원이 음반계에 나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臺詞(대사)------- “장모님예~”
“ 왜그러나 사위?”
“내사 장모님이 좋아서 죽겠는 기라요”
“어허 늙은 장모를 좋아하면 뭐하나 우리딸을 좋아해야지”
“그사람은 그사람인거고 내사 장모님이 최고인기라”
“어허 이사람 또 암탉잡아 달라는 얘기군”
“왓하하하 어제도 한마리 축내지 않았읍니까요??”-----------------------------------대충 이런 臺詞(대사)가 삽입된 버전이 김정구씨 목소리로 녹음된 음반이 과거 존재했습니다
김다인사 김해송곡, 백년설노래<故鄕雪(고향설)>, 조명암사 김해송곡 고운봉의<船倉(선창)>과 함께 1930~40년대 소위 學生(학생)등 知識層(지식층)이 애창한 3대힛트송의 한곡인
이가실사,이운정곡<晋州(진주)라 千里(천리)길>을 부른것으로 韓國(한국)大衆歌謠(한국대중가요)史(사)에 膾炙(회자)되고있는 이규남은 본명이 윤건혁으로 충청북도 연기 출신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휘문고보를 졸업후 일본 도요음악학교 피아노과에서 3년간 공부를 하다 가정사정으로 일시귀국했으나 그무렵부터 성악을 자습하여 1932년경 임헌익이란 예명으로 Columbia-record 서
여산정길편곡의<빛난 江山(강산)>과 스왈스곡 <봄노래>를 취입합니다
허나 이음반의 데뷔곡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이어서 구정신보로 漫謠(만요)<어린 新郞(신랑)><깡깡 博士(박사)>를 낸후 1934년에걸쳐<노세 젊어서><北國(북국)의 處女(처녀)><船遊歌(선유가)><農夫歌(농부가)><흘러가는물>< 黃昏(황혼)맞는
農村(농촌)><머슴의 넋><찾노래 그대여><人生(인생)恨歎(한탄)>-----등등 그의 最大長技최대(장기)를 뽑아기위한 修鍊期(수련기)를 보냅니다
1338—再(재) 照明(재조명)-q
어서가자 낙타야 해는 西山(서산)을 넘네
千里(천리)멀리 머나먼 끝없는 이 沙漠(사막)
定處(정처)없이 헤매는 나그네 몸 고달퍼라
오아시스 찾아서 낙타를 옆에 매고
종려나무 우거진 그늘아래 쉴 때
바람결에 들리는 집시노래 그리워라
어서가자 낙타야 해는 西山(서산)을 넘네
이 한밤을 어디서 눈물 흘려대나
자고나면 또다시 갈곳없는 나그네몸-------------------------------------------홍희명사 나소운곡 이규남노래<沙漠(사막)의 旅人(려인)>
1936년,11월 Columbia-record 서 sp음반으로 발매 이면에는 전수린곡 설도식노래<哀想(애상)의 가을>이 실려있습니다
1936년,11월20일 朝鮮日報(조선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十二月(십이월)新譜(신보)
沙漠(사막)의 旅人(려인) 李圭南(이규남)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6년,11월 22일,27일 每日申報(매일신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感想(감상)의 가을을 읊은 新人(신인)의 明調(명조)!!
레코드번호 49438
流行歌(유행가) 沙漠(사막)의 旅人(려인) 이규남------------------------------------------------------------------------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37년 5월29일 朝鮮日報(조선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圓盤(원반)界(계) 十傑(십걸)
49438 沙漠(사막)의 旅人(려인) 이규남-----------------------------------------------------------라 선전했습니다
이음반은 kj-1250으로 발매된 기록이 보입니다
聲樂
先驅者(성악선구자) 홍난파가 “羅素雲(나소운) “ 이란 예명으로 victor-record 서 大衆歌謠(대중가요) 몇곡을 창작했는바 그중의 한곡입니다
그가 창작한곡은 안옥경의<女人(여인)의 呼訴(호소)> 이규남<高原(고원)의 黃昏(황혼)><流浪(유랑)의 나그네> 백우선<외로운 사랑> 설도식의<matross-마도로스- 의노래>
<靑春(청춘)行進曲(행진곡)> 김복희< 시골 큰얘기><우지마세요><세골 큰얘기><그리운 廣寒樓(광한루)><無情歲月(무정세월)> 이일남,손금홍<人生(인생)은 三十(삼십)부터>등이 있으나
큰힛트곡은 없습니다
앞란서 言及(언급)했듯이 Columbia-record서 수련기를 보내던 이규남은 별무 반응으로 실망한듯 레코드계를 떠나서 도쿄로 건너가 聲樂硏究(성악연구)를 시작합니다
1935년 7월1일~2일 양일간 조선일보 주최로 在(재)도쿄 음악가의”故土(고토)방문 음악회”에 김영길, 김안라, 장비등과 함께 출연합니다
허나 결국 포기한듯 다음해인 1936년 victor-record 에서”新人(신인)이규남” 으로 再登場(재등장) 마치 自己身世(자기신세)를 얘기 하는듯한 노래<고달픈 身世(신세)>를 發表(발표)합니다
이어서<한숨><高原(고원)의 黃昏(황혼)><사랑의뱃노래><流浪(유랑)의나그네>등을 잇달아 발표합니다
保險用歌謠(보험용가요)인 듀엣곡도 吹入(취입)해야 했습니다
이는 이규남 솔로곡이 호응이부족하자 기존가수와함께 곡을취입 이를 보충하기위한 기획입니다
박단마와<그대와가게되면> 김복희와<純情(순정)의 象牙塔(상아탑)> 김옥진과<얼럴럴 打令(타령)> 이 그것입니다
1037년경부터는 빅터일본반에서 “미나미 구니오”란 예명으로 < matross-마도로스- 日記(일기)>등 몇곡의 일본노래를 취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1년 Columbia-record 로 복귀 不朽(불후)의 絶唱(절창) 이가실사 이운정곡<晋州(진주)라 千里(천리)길>을 10월발표합니다
1339—再照明(재조명)-r
椰子樹(야자수)그늘 밑에서
둘이서 놀던 그때가
뚜렷이 내눈 앞에서
哀(애)끓는 서름만 짜낸다
아~아~지금은 追憶(추억)만 남아
아~아~窓(창)앞에 보슬비 소리
울고만 싶구나
흐르는 달빛 아래서
사랑을 플던 꿈이여
이즉도 나의 가슴은
그時節(시절) 노래를 부른다
아~아~이제는 追憶(추억)만 나마
아`~아~외로운 내노래 소래
눈물에 젖는다-----------------------------------------------------------------작사 미상 이경주작곡 황금심노래<追憶(추억)의 tango-탱고->
1939년, 8월 victor-record 서 李景州(이경주곡)曲(곡) 黃琴心(황금심)노래로 발매헸습니다
sp음반으로 이면에는 金茶人(김다인)詞(사) 李景州(이경주)曲(곡) 송달협노래<鄕愁馬車(향수마차)>가 실려있습니다
이곡은 번호체제가 <victor 1252<,<kj-1337> 로 2가지로 표기되있어서 혼란스랍읍니다
그리고 1939년, 3월6일 錄音紀錄(녹음기록)이 보입니다
그리고 1939년, 6월1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朝鮮日報(조선일보) victor-record 放送(방송)------- 廣告(광고)--------------------------------------------에는
jodk今日(금일)의 빽프로
黃琴心(황금심) 放送(방송)
十二日(십이일) 午後(오후) 八時-8시- 三十分(삼십분)
追憶(추억)의 tango-탱고--------------------------------------------------------로 선전하고 있어서 3월6일녹음이 이루어진것으로 추정되고 8월발매전 放送(방송)서 먼저 始唱(시창) 이 이루어졌고
發賣遲延(발매지연)이 어떤 회사사정인지 정확히 알려져있지 못합니다
1938년, 8월8일, 15일 每日申報(매일신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Kj-1337 流行歌(유행가) 追憶(추억)의 tango-탱고- 황금심----------------------------------------이라고 표기 하고있습니다
그외 1938년,8월6일 동아일보 1939년 8월4일 朝鮮日報(조선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도
Kj-1337 流行歌(유행가) 追憶(추억)의 tango-탱고- 黃琴心(황금심)-----------------------------------------------------으로 비슷한내용의 선전이 보여서 8월발매를 확인시켜주나 發賣遲延(발매지연)
理由(이유)는 不正確(부정확)합니다
모처럼의 황금심씨tango-rhythm-탱고리듬-가요인 이곡은 그녀의 草創期(초창기) 發表曲(발표곡)들이 모두힛트했으나 그러한 힛트곡에 밀려서 묻혀버린 가요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곡을 창작한 이경주씨는 이곡외에도 한인덕노래<가시면 그만이지요>,구룡포<거리의 香氣(향기)><즐거운 戀歌(연가)> <新相思(신상사) 打令(타령)><사라의 팔맷돌> <꽃없는 追憶(추억)>,
강남향<님사는마을><목화를 따며>,손금홍<바다는 부른다><빛나는 朝鮮(조선>,
문일화<사나이사랑><소리도없이><꺽지를 말아요> 황일경<水鄕(수향)의 달밤>, 이인근<술잔에뜬 고향>, 최남용, 강석연<勝利(승리)의거리>,<新相思(신상사) 打令(타령)>,최남용
<靑春(청춘)아 부르짖어라><애닯은 피리>, 석진향<月下(월하)의 정한><아! 마시어라> 문일화, 장복실<하이킹의노래><가을의 鍾路(종로)>, 송달협<鄕愁馬車(향수마차)>--------등을 창작했읍니다
1340-再(재) 照明(조명)-s
사랑이 깊다고 내 몰랐드니
가슴속 千萬(천만)겹이 사랑 뿐일세
말고삐 붓잡으며 소리쳐 우니
가는님 어이할까 막을길 없네
離別(이별)이 쓰리다고 말만 있더니
물명주 소매깃이 눈물에 졌네
누구라 지는 夕陽(석양)막을가 보나
大丈夫(대장부)가는길을 어찌 막으리
歲月(세월)이 빠르다고 안 믿었드니
빈방안 외론꿈이 三年(삼년)이 넘네
봄이면 철을따라 꽃은 피건만
영영코 피지않은 내마음이라---------------------------------------------------추엽생사 양상포작곡 황금자<지는 夕陽(석양)어히 하리>
1937년,12월 okeh-record 서 sp음반에 추엽생사 양상포곡 황금자노래로 발매
異面(이면)에는 김용호사, 문호월곡, 이은파,고복수 듀엣의<豊年頌(풍년송)>이 실려 있습니다
이노래는<알뜰한당신><외로운 街路燈(가로등)><한양은 처리원정>등의 큰힛트에 밀려서 묻혀지는 신세가 된노래입니다
1937년 12월26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지는 夕陽(석양)어히하리 黃錦子(황금자)
豊年頌(풍년송) 고복수,이은파----------------------------------------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7년,12월 2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正月新譜(정월신보) 特作盤(특작반)
지는 夕陽(석양)어히하리 黃錦子(황금자)-------------------------------------------------------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본명이 황금동인 황금심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덕수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녀가 가수데뷔전-- 1937년 어느날 남인수의<꼬집힌 풋사랑>을듣고 신세를 비관한 요정의 어느 기생이 음독자살을 한 같은 장소인 서울의 청진동소재 旅館(여관)에서 매일 이화자 못지않은
魅力的(매력적)인 노랫소리가 흘러나와 길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했습니다
이 노랫소리에 完全(완전)히 魅了(매료)된 靑年(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victor-record 문예부원이었고 다음날 이소녀와 全屬契約(전속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황금심으로 예명을짓고 조명암사 전수린곡<알뜰한당신>조명암사 이면상곡<漢陽(한양)은 千里(천리)遠程(원정)>을 녹음을 합니다
그리고 1937년 12월 victor-record 서sp음반으로 발매합니다
헌데 이철부지 소녀는 그전 이미 okeh-record 서 황금자라는 예명으로 추엽생사,손목인곡<지는석양어이하리> 이노홍사,박시춘곡<왜못오시나>를 녹음을 한후였습니다
빅타문예부원 以前(이전) 所聞(소문)乙(을) 感知(감지)한 오케이레코드 문예부장 대리인 김상진이 그녀를 손목인 박시춘 두작곡가에게 소개했고 star-singer-스타가수-소질이있다고 인정한
두사람은 황금자로 예명을짓고 상기 2곡을 녹음해 1938년,정월, 2월신보발매를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37년,12월에<지는석양어히하리>를 1938년,1월<왜못오시나요>를 김용호사, 이시우곡 김정구노래,눈물젖은 豆滿江(두만강)>과함께 실어서 발매합니다
그녀의 좋은 노래솜씨에 이철사장도 기뻐하며 큰기대를 품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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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二重契約(이중계약)을 해버린것입니다 그녀는 이일이 그렇듯 큰문제가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치못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咸鏡道(함경도)의 저돌적인 사나이 이인권의 데뷔 時節(시절)을 生角(생각)나게 합니다
결국 두회사의 감정싸움으로 법정까지 가버립니다
결국은 전수린이 황금심의 언니를 설득하고 同業者(동업자)들의 설득으로 화해하고 okeh-record 가 가수가 많다는점등으로 양보를 얻어내 빅타에입사를 하게됩니다
1342-재조명-t
믿으려 믿었나요 그님을 믿었지요 믿었지요
누구를 怨望(원망)하리 누구를 怨望(원망)하리
모두 모두 거짓소리 아~아~내가잘못
못맏을 당신인줄 알고 믿었지요 믿었지요
누구를 한하리까 누구를 한하리까
모두 모두 한속을 아~아~ 내가잘못
가실걸 안다마는 고히 막으리까 막으리까
갈대로 가옵소서 갈대로 가옵소서
女子(여자)는 000지 아~아~ 이 期約(기약)--------------------------------박영호사, 손목인곡 이은파노래<女子(여자)된 허물>ok1962
Okeh-record 음반번호 1961인 남인수의<물방아사랑>이 1937년 3월발매이므로 上記(상기)曲(곡)도 이무렵 발매었을 것입니다
1937년,3월 okeh-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四月新譜(4월신보) ) 0發賣(발매)
1962 流行歌(유행가) 女子(여자)된 허물 李銀波(이은파)
애달픈 幸福(행복) 高福壽(고복수)
最近傑作盤(최근걸작반)
애달픈 幸福(행복) 고복수-------------------------------------------------라고 表記(표기)해서 이를 確認(확인)시커줍니다
1937년, 4월 Ok-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0發賣目錄(발매목록)
黑盤支部(흑반지부)
流行歌(유행가) 新民謠(신민요) 漫謠(만요)
1962 流行歌(유행가) 女子(여자)된 허물 李銀波(이은파)------------------------------------------------------라고 표기 하고있습니다
1937년, 3월5일 每日申報(매일신보), 3월3일 朝鮮日報(조선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三月新譜(3월신보)
流行歌(유행가)와 jazz song-재즈송-
1962 女子(여자)된 허물 李銀波(이은파)
애달픈 幸福(행복) 高福壽(고복수)---------------------------------------------------라고 紹介水準儀(소개수준)의 선전을 하고있습니다
이로보아---- 상기곡<女子(여자)된 허물>은 다른힛트곡에 가려 잊혀져버린 곡이되고 맙니다
해서 여기에 소개해보는 것입니다 이런가요도 있었다고!!
1937년, 5월14일 朝鮮日報(조선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無敵(무적) okeh의 連發(연발)하는 힛트!!
1062 女子(여자)된 허물 李銀波(이은파)----------------------------------------------------------------------------라 조금 剛度(강도)높은 語句(어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上記曲(상기곡)을 吹入(취입)한 李銀波(이은파)氏(씨) 는 선우일선, 이화자씨를 이어서 新民謠(신민요)를 많이 노래한 妓生歌手(기생가수)입니다
그녀의 profile-프로필-은 아직 정확치 못합니다
1934년 victor-record 서 6월경 流行歌(유행가) <野俗(야속)한 꿈길>, 新民謠(신민요) <봄거리>로 데뷔한것으로 추증된니다
이어서<비나리는 밤><베짜는 處女(처녀)> 등을 발매했습니다
이듬해인 1935년에는 태평레코드로 移籍(이적)하여 5월경<청사홍사>와 최남용과 듀엣으로<돈바람분다>를 내고 이어서 신은봉, 박세명과 함께 녹음한 詩劇(시극)<情恨(정한)의 밤차>를
내서서 크게힛트시킵니다
1343-再照明(재조명) –u
단벌치마 자락이 구름 속에 휘날려본다
하늘이라 반영창에 그네 뛴 근얘기들아
아서라 말도마라 뒷동산에 떠온다
탐스러운 다른별이 波濤(파도)속에 기다려본다
綾羅島(능라도)라 귀여운 저기 저기 고기 잡는 아가씨들아
물새냐 아가씨냐 아가씨냐 물새냐
아서라 말도마라 뒷동산에 아리랑
쟁반 같은 개인비가 바람결에 살랑거린다
서울비라 노들강에 00던 시악시들아
벗이냐 시악시냐 시악시냐 벗이냐
아서라 말도마라 뒷동산에 아리랑---------------------------------------박영호사 박시춘곡 이은파노래<큰얘기 行進曲(행진곡)>12085
그시기 名作詞家(명작사가) 박영호의 작품이긴하나 너무 抽象的(추상적)인 표현이 많아서 이해가 難解(난해)한 作品(작품)입니다
1937년,12월 okeh-record 서박영호사,박시춘곡 이은파노래로 sp음반에 실어서 발매
異面(이면)에는 박연호사, 낙랑인작곡 고복수노래<馬車(마차)의 방울소리>가 실려있습니다
1937년,12월20일 조선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正月(정월)新譜(신보)
큰얘기 行進曲(행진곡) 李銀波(이은파)
馬車(마차)의 방울소리 高福壽(고복수)------------------------------------------------------라고 紹介(소개)水準(수준)의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1937년, 12월26일, 1938년, 1월 4일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正月(정월)新譜(신보)
큰얘기 行進曲(행진곡) 李銀波(은파)
馬車(마차)의 방울소리 高福壽(고복수)----------------------------------------------라 표현하고 이어서 <큰얘기 行進曲(행진곡)의 呼應度(호응도)를 알수있고 묻혀지고 잊혀진 곡 임이
확인됩니다
victor-record 서 1934년 6월경 데뷔해 1935년 태평으로 移籍(이적)해서 詩劇(시극)<정한의밤차>를 크게힛트시킨 그녀는 7월말경 또다시 okeh-record 로 이적하여 8월경 그녀의 대표곡중 한곡이요
이적 1작인 김능인사, 문호월곡<關西(관서)千里(천리)>를 발표 크게힛트시킵니다
이어서 9월경 같은 작가진의<앞강물 흘러흘러>를 발표 동시 발매된 이난영의<木浦(목포)의 눈물>과 함께 크게힛트하며 그녀의 또한곡의 대표곡이 됩니다
離別(이별)을 앞두고 솟구쳐 오르는 정을 가슴에안고 다만 남자가 성공해서 돌아올날을 기다리는 朝鮮時代(조선시대)나 있을법한 女心(여심)을 노래 한 이곡은 日帝植民治下(일제식민치하)
朝鮮(조선)民衆(민중)의 心情(심정)을 新民謠(신민요)에 잘 投影(투영)시킨 걸작입니다
1937년, 2월에는 또 名作詞家(명작사가) 박영호의 맛갈스런 歌詞(가사)에 天才歌謠人(천재가요인) 김해송의 天才性(천재성)이 돋보이는곡<요핑게 조핑게>를 발표 또한번 힛트시킵니다
이노래는 당시 男女關係(남녀관계)에대한 封建的(봉건적)인 社會狀況(사회상황)을 諷刺(풍자)한것으로 그내용은 대수롭지 않으나 곡이 律動的(율동적) 임이 힛트요인 입니다
헌대 재미있는 것은--이은파는 內省的(내성적) 性格(성격)이며 해서 곧잘 錄音時(녹음시) ng 를 내곤했다 합니다
당시에는 伴奏(반주) 오케스트라도 함께 生錄音時代(생녹음시대)였기에 스텝들도 함께 애를 먹었고------
다음날 아침 다시 녹음을 시작하자 이번에는 단한번에 成功的(성공적)으로 吹入(취입)을 하자 樂士(악사)들도 자기들도 모르게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녀는 庶民的(서민적)이고 情(정)겨운 목소리로 많은 fan-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합니다
1344-再照明(재조명) -v
복숭아 꽃이피는 三四月(삼사월) 蘇州(소주)땅
물새가 울어 울어 해질 무렵에
저멀리 돌아든다 흰돛대 붉은돛대
幸福(행복)의 꿈을 싣고 꿈을 싣고 손짓을 한다
꽃잎이 부서지는 바다의 뱃머리
바람아 불지마라 봄날이 간다
저멀리 떠나가는 蘇州(소주)땅 뱃沙工(사공)은
唐明紬(당명주) 가득 싣고 가득 싣고 어데로 가나
한산사 종소리에 해지고 달이 떠
흐르는 물결마다 흐르는 달빛
뱃沙工(사공) 아저씨에 보내는 便紙(편지)에는
그리운 나가사키 나가사키 港口(항구)의 소리---------------------이가실사, 손목인곡 이해연 노래< 蘇州(소주) 뱃沙工(사공)>40890
1942년, 7월 Columbia-record 서 李嘉實 詞(이가실 사) 孫牧人 曲(손목인 곡) 李海燕(이해연) 노래로 sp음반에 실어서 發賣(발매)했습니다
異面(이면)에는 이가실사, 손목인곡 金英椿(김영춘)노래<沙漠(사막)의 歡呼(환호)>가 실려있습니다
1942년, 7월24일 每日申報(매일신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李海燕 孃(이해연 양) 傑作盤(걸작반)
40890 蘇州(소주)뱃 沙工(사공) 李海燕(이해연)-------------------------------------------------------------------------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42년 8월28일 每日申報(매일신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40890 新歌謠(신가요) 蘇州(소주) 뱃沙工(사공) 李海燕(이해연)
第三回(제3회) 入荷(입하)-----------------------------------------------------------------------------------------------------라고 표기 하고 있습니다
1943년 五月(오월)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五月新譜(5월신보) 0發賣(발매)
40890 蘇州뱃沙工(소주 뱃사공) 李海燕(이해연)
沙漠(사막)의 歡呼(환호) 金英椿(김영춘)----------------------------------------------------------------------------라고 宣傳(선전)합니다
1943년,5월 日蓄(일축)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人氣(인기)獨占(인기독점)의 日蓄(일축) 最近傑作(최근걸작) 歌謠盤(가요반)!!
蘇州 뱃沙工(소주 뱃사공) 李海燕(이해연)----------------------------------------------------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곡을 취입한 이해연씨는 1924년 黃海道(황해도) 海州(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41년,10월경 1세대가수 치고는 비교적 늦게 Columbia-record 서 이가실 개사로 일본곡 고가마사오작곡 영화주제가로 이향란<홍0000>의 번안곡인<백련홍련>으로 가수 데뷔를 합니다
동생으로 본명 이해주로<黃昏(황혼)의 elegy-엘레지>를 原(원)唱(원창)하기도 한 藝名(예명) 白一姬(백일희)氏(씨)가 있습니다
남편은 미8군의 代父(대부) 베니김 김영수씨 입니다
그는 齒科醫師(치과의사) 出身(출신)으로 trumpet 演奏者-트럼펫연주자-이고 jazz song 에도 一家見(일가견)이 있습니다
Patti kim 를 아내인 이해연과 듀오로 무대에 세우기도 했읍니다
이어서 곧 그시기 okeh-record 가 아닌 Columbia-record 서 全屬作家(전속작가) 생활을 하던 손목인에 소개되 몇곡의 힛트곡을 취입합니다
유도순 작사로<똇목 二千里(2천리)> 남려성작사<故鄕山川(고향산천)><靑蘭(청란)의 꽃> 이가실사<黃海道(황해도)노래><꽃실은 洋車(양차)> 이가실사<嶺東(영동)아가씨><성경진사
<보내는 위문0>남려성사<청란의꽃>이 그것입니다
이외 하영랑 곡<도라지 純情(순정)> 한상기곡<마음의 紅(홍) 薔薇(장미)><俳優日記(배우일기)>< 安南(안남)아가씨><페루샤 占(점)쟁이>---등이 있습니다
1345—再(재) 照明(조명)-w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故鄕山川(고향산천)으로
고개넘어 딸랑 딸랑
江(강)물 건너 딸랑 딸랑
半百里(반백리) 花草(화초) 벌판
청노새는 딸랑딸랑 간다
銀(은)방울이 우는구나
故鄕(고향)찾아 가는구나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故鄕山川(고향산천)으로
해가 져도 딸랑 딸랑
달이 떠도 딸랑 딸랑
三四(삼사)는 十二(열두) 고개
청노새는 딸랑딸랑 간다
父母(부모)님껜 孝誠(효성)일세
나라님껜 忠孝(충효)일세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故鄕山川(고향산천)으로
앵도밭에 딸랑 딸랑
잔디밭에 딸랑 딸랑
도련님 등에 실고
노새 방울 딸랑 딸랑 간다
어서가자 故鄕山川(고향산천)
기쁜 消息(소식) 전하잔다-----------------------------------------------------남려성사 손목인곡 이해연노래<故鄕山川(고향산천)>40892
이규남의<大地(대지)의 아들>이 columbia-record 번호 40893 으로 1942년 9월 발매이므로 상기가요<故鄕(고향)山川(고향산천)>이 40892 이므로 이시기 발매된것으로 추증됩니다
이면에는 남려성사, 손목인곡 김영춘노래<바다의 風雲兒(풍운아)>가 실려있습니다
時期(시기) 발행된 歌詞(가사)紙(지)------------------------------------------------------------------------------------에는
c-40892-a 新歌謠(신가요) 故鄕山川(고향산천) 南麗星(남려성)詞(사) 孫牧人(손목인) 曲(곡) 李海燕(이해연) 伴奏(반주) 콜롬비아 管絃樂團(관현악단)
c-40892-b 新歌謠(신가요) 바다의 風雲兒(풍운아) // // 金英椿(김영춘) //-----------------------------------------------라고 表記(표기) 하고 있습니다
1942년 9월,13일, 19일, 22일, 24일 每日申報(매일신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40892 新歌謠(신가요) 故鄕山川(고향산천) 李海燕(이해연)------------------------------------------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3년 ,五月(오월) 日蓄(일축) record-일축레코드-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五月(오월)新譜(신보) 0發賣(발매)
40892 故鄕山川(고향산천) 李海燕(이해연)
바다의 風雲兒(풍운아) 金英椿(김영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3년 5월4일 일축레코드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人氣獨占(인기독점)의 日蓄(일축) 最近傑作(최근걸작) 新(신) 歌謠盤(가요반)!!
40892 故鄕山川(고향산천) 李海燕(이해연)-------------------------------------------------------------라고 선전하고 있읍니다만 宣傳(선전)剛度(강도)가 높지못합니다
이는 fan-팬-들의 呼應度(호응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해연은 해방후에는 pop-=singer 으로 변신해서 미8군무대 및 악극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oasis-record 서 sp음반으로 여러곡을 취입한바 作詞(작사)家(가) 半夜(반야)月(월) 氏(씨)의 實在(실재)體驗(체험)을 歌詞化(가사화) 한 이재호곡<斷腸(단장)의 미아리고개>가 크게힛트하며
지금까지도 六二五(육이오)紀念日(기념일)이 다가오면 각종방송의 전파를 타며 꾸준히 애청받고있습니다
그리고 飜案曲(번안곡) 인<追憶(추억)의 이스탄불><우스크다라>등을 吹入-취입- 한바 그룹 the four lads 의<Istanbul>을 <追憶(추억)의 이스탄불>로 eartha kitt-어사키트-가 부른 터키민요<uskadara>를 <우스크다라>로 題目(제목)이어서 불렀읍니다
이외도<진달래 悲歌(비가)> <太平洋(태평양)>< 歲月(세월)은 간다> <똥그랑뗑>< 시골가는 섬색시><桃花(도화)萬里(만리)>< 울어라 大同江(대동강)> <심산호들기><鴨綠江(압록강) 이천리>
등을 發表(발표)했습니다
1346-再照明(재조명)-x
歲月(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아라
아까운 이내 靑春(청춘) 다 늙어 가누나
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와요
無窮花(무궁화)江山(강산) 절개좋다
에라 좋구나
江山(강산)의 새봄은 다시 돌아오고
이가슴에 새봄은 언제나 오나요
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와요
無窮花(무궁화)江山(강산) 절개좋다
에라좋구나
歲月(세월)은 한해 두해 흘러난 가구요
우리 人生(인생) 한해 두해 늙어만 가구나
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에 새봄이 와요
無窮花(무궁화)江山(강산) 절개좋다
에라좋구나-------------------------------------------------------------전수린사,곡 신카나리아 노래<無窮花(무궁화)江山(강산)>
1932년,4월 chieron-record 서 流行小曲(유행소곡) 장르로 全壽麟(전수린)詞,曲(사곡) 申(신)카나리아 노래로 sp음반에 실어서 발매
異面(이면) 에는 流行小曲(유행소곡) 全壽麟(전수린) 曲(곡) 노래<黃昏(황혼)의 悲(비)>가 보입니다
위음반서 재미있는 것은 韓國(한국)大衆歌謠(대중가요) 黎明期(여명기) 歌手不足(가수부족)으로 作曲家(작곡가)가까지 노래를 했다는----점이 確認(확인)되고 있습니다
1932년, 7월4일 chieron-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0 發賣(발매) 總目錄(총목록)
四(사) 民謠(민요) 無窮花江山(무궁화강산) 申(신) 카나리아
伴奏(반주) Chieron-record 管絃樂團(관현악단)-----------------------------------------라고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1932년, 6월10일 三千里(삼천리) 紙(지)-----------------------------------------------------------------------------에는
四(사) 民謠(민요) 無窮花(무궁화)江山(강산) 一枚(1매) chieron-record 管絃樂團(관현악단) 伴奏(반주)---------------------------------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1933년4월發行(발행) chieron-news-시에론 뉴스----------------------------------------------------에는
第十七(제17)號(호)
四(사) 유행소곡 무궁화강산 申(신)카나리아
黃昏(황혼)의 悲(비) 全壽麟(전수린)---------------------------------------------------------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곡은 후일 1946년경 아세아레코드서 신카나리아씨가 노래가사서 제목을 따와<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 에라좋구나>로 改題(개제) 취입하기도 합니다
이곡은 이애리수씨가 1932년, 7월경 victor-record 서<에라좃쿠나>로 題目(제목)지어 발표한곡과 同一曲(동일곡)임이 확실해보입니다
후일 정씨스터즈가 remake 하기도 했습니다
성음레코드발매 lp음반-歌謠(가요)半世紀(반세기) 5집-등 여러 펀집음반에 보입니다
1347- 再照明(재조명) y
못잊어서 여윈몸 한숨에 타고
잊지못해 긁힌 魂(혼) 눈물에 젖어
햇발없는 거리를 허덕거리며
갈피없는 옛길을 감돌아드네
맺지 못할 사랑을 얽은 탓으로
설은 정희 남몰리 九曲(구곡) 에 타니
넋이 뜨온 三千(삼천)에 恨(한) 이 남아서
成篇年月(성편년월) 限平生(한평생) 어찌 벗할래
三更(삼경)밤이 지새어 닭이 울도록
가려가며 추려진 몹쓸 寃情(원정)이
죽기전에 잊을길 바이 없으니
님을랑은 그래도 탈없길 비네-------------------------------------------------------임서방사, 유일곡 신카나리아 노래<꽃이 피면>regal 222.
1934년, 10월 regal-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任曙昉(임서방) 詞(사), 劉一(유일)曲(곡) 申(신)카나리아 노래로 발매
異面(이면)에는 流行歌(유행가) 劉一(유일)詞(사),曲(곡) 張一朶紅(장일타홍)노래<첫사랑>이 함계 실려있습니다
Regal-record 는 1934년,6월부터 販賣(판매)에 들어간 Columbia-record 의 低價音盤(저가음반)입니다
歌謠(가요)보다는 民謠(민요)쪽의 음반이 主宗(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1934년,10월경 regal-record 歌詞紙(가사지)----------------------------------------------------------에는
c-222-a 流行歌(유행가) 첫사랑 劉一(유일)詞(사),曲(곡) 金基邦(김기방) 編曲(편곡) 張一朶紅(장일타홍) 伴奏(반주) 리갈 管絃樂團(관현악단)
c-222-b 流行歌(유행가) 꽃이피면 任曙昉(임서방) 作詞(작사) 劉一曲(유일곡) 申(신)카나리아 // ---------------------------------------라고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1934년, 10월18일 regal-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Regal 傑作(걸작) 레코드
c-二二二 꽃이피면 申(신)카나리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4년, 10월2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regal-record 廣告(광고)--------------------------------------------------------------에는
躍進(약진) 또 躍進(약진)!! 十一月(십일월)新譜(신보)
c-222 꽃이피면 申(신)카나리아-----------------------------------------------------------------------라고 선전 하고있습니다
상기곡<꽃이피면>을 발표한 申(신)카나라 氏(씨)는 本名(본명)이 신경녀이며 1912년 咸鏡南道(함경남도) 元山(원산)에서 태어나 敎會(교회) 聖歌隊(성가대)에서 테너 이인범의 여동생인 이옥현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시기 많은 演藝人(연예인)들이 그랬듯이 演劇(연극)의 幕間歌手(막간가수)로 활약했습니다
1921년 7월6일자 東亞日報(동아일보)< 여배우 언퍼레이드 연극편 10>-----에
----명일의 스타형인 신카나리아 孃(양)---아직은 演技(연기)보다 獨唱(독창)--- 에서는 다음과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演劇市場(연극시장)에서 아직까지도 아모 지장이없이 곱게피고 있는 방년 17살의 귀여운 존재----
신카나리아양은 산골짝에서 졸졸 흐르는 냇물소래의 rhythm-리듬-처럼 청아한 목소리를 가졌다
소학교를 마친후 고등학교에서 중도에 나와 연극시장에서 누구보다 역량과 재질이 초월하다
脚本(각본)도 쓰고 演出(연출)도하는 任曙昉(임서방)씨의 권고를 받어 처음으로 舞臺(무대)에 발을 올릴때는
演劇人(연극인)이 되겠다는 希望(희망)은 없었다고 합니다
演技(연기)에 있어서는 세련되지 못했으나 대리석으로 깎아낸듯한 곱고도 정돈된 그녀의 얼굴이 stage-스테지-에
나타날때는 觀客(관객)의 시선은 연기보다 美貌(미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녀는 chieron-record 서 1931년<사랑이여 굽히지마오>로 데뷔한 이래 1931~1933년사이 20여곡을 취입했습니다
1940년 태평레코드로 옮겨<船艙(선창) blues-블루스->를발표하기도 하고 해방후 김해송의 k.p.k 악단을 비롯하여 많은 악극무대에 섰고 남편 이익과 함께<새별 악극단>을 창립하고 서울수복후에는
歌協(가협), 환도후에는 樂劇團(악극단) <호화선>을 각각운영해서 출연하는 한편 1954년에는 star-record 서 <勝利boogie-승리부기->를 吹入(취입)하기도 합니다
1348—再照明(재조명)-z
비나리는 埠頭(부두)에 님을 보내고
돌아서니 離別(이별)에 노래 섧구나
영애야 너만가고 나만 남으니
영애야 영애야 아~영애야
거리에 버린 身世(신세) 어찌하리요
臺詞(대사)-----가는 너를 잡지 못하는 내가슴 너만은 알리라
떠나서는 살수 없는 둘 사이언만은 運命(운명)의 손길은
酷毒(혹독)하구나
걱정말고 가라고 걱정말고 가라고 큰소리는 했으나
時時刻刻(시시각각)으로 아쉬웁고 그리운 이마음을 장차 어찌나
달랜단 말이냐
아~ 埠頭(부두)에 내리는 비는 나그네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과도
같이 凄凉(처량)만 하구나---------
함께놀던 자리에 혼자 앉아서
미칠듯이 찾으나 對答(대답)없구나
영애야 영애야 아~ 영애야
떠나서 못살 身世(신세) 어찌하리요------------------------------------------이고범사,유일춘곡 최남용노래<비오는 船艙(선창)>8510
1938년, 6월 태평레코드 발매 sp음반에 이고범사, 유일촌곡 최남용 목소리로 실어서 發表(발표)
異面(이면) 이00 詞(사) 유일촌 曲(곡) 최남용노래 <紅(홍) 00 話(화) >가 실려있습니다
이면곡<홍00화>는 음원이 未公開(미공개)狀態(상태)라 情報未備(정보미비)입니다
Taihei-record 음반번호 8509인 宋基玉(송기옥)의<사랑의 꽃수레>가 1937년,6월발매 이므로 이무렵 발매되었을 것입니다
Taihei-record 는 이무렵 資金難(자금난)으로 6월 한달간 음반 8종 16곡만 발매에 그치고 맙니다
그리고 11월경 자금을 확보Columbia-record 서 채규엽, 박향림, 남일연을 전격 스카우트하여<無敵革新(무적혁신) 豪華(호화)陣容(진용)>이라 선전 하기에 이릅니다
이곡이 생각보다 呼應(호응)적자 진방남이 remake 해서 發表(발표)합니다
臺詞(대사)------人生(인생)은 짧고 藝術(예술)은 길며
靑春(청춘)은 늘고 追憶(추억)은 젊어 가슴속에 파고드는
가지 가지 옛노래 영애야 너만가고 나만 버리기냐
비나리는 船艙(선창)가에 구슬픈 뱃鼓動(고동)소리
가슴을 때리는 구나-------------------------------------
비나리는 埠頭(부두)에 님을 보내고
돌아서니 離別(이별)에 노래 섧구나
영애야 너만가고 나만 남으니
영애야 영애야 아~영애야 헤어질 運命(운명)이면 어찌 하리요
잠깨어 亭子(정자)위에 홀로 앉아서
미친듯이 노래 부르니 對答(대답)없구나
영애야 너도함께 울고 있느냐
영애야 영애야 아~ 영애야
떠나서 못살 身世(신세) 어찌 하리요
Oscar-record 발매 10인치음반-진방남 애창곡집-2집 에 실려있습니다
가수 최남용은 1910년 開城(개성)에서 태어난 작곡가 전수린의 故鄕後輩(후배)로 松島商人(송도상인)으로 有名(유명)한 商家(상가)에서 태어나 송도고보를 다녔습니다
1932년 victor-record 전속이 되어 그해 12월신보로 이고범사, 김교성곡<마음의 거문고> 이고범사, 전수린곡<갈대꽃>으로 데뷔를 합니다
이어서 이현경사, 전수린곡으로 이애리수와 듀엣으로< 상사타령> 를 발표합니다
1349-再照明(재조명)—가
박이로구나 둥글둥글 둥글 박
이 박속에 무엇 있나
금송아지 은송아지가
가득가득 들어 있다오
그렇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그렇지
00를 저어볼까
쓰르릉 쓰르릉 한 겹을 따고 쓰르릉
헤 장단 우리 맞추어 톱줄을 당기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로세
두둥실 박이로구나 박이로구나
돈이로구나 둥글둥글 둥글 돈
이 돈으로 무엇하나
땅을 살까 집을 질까
흔들흔들 놀아나 보오
그렇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그렇지
두둥글 돈 좋구나
쓰르릉 쓰르릉 돈좋다 좋아 쯔르릉
헤 宮殿(궁전) 싣고서 임맞이 갈거나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로세
두둥실 돈이로구나 돈이로구나-------------------------------------------------------------백일작사, 이용준곡 최남용노래< 박打令(타령)>
Taihei-record 서 백일사 이용준곡 최남용노래로 발매되었다는 기록외 情報未備(정보미비)입니다
가수 최남용은 Victor-record 서<가세 상삼봉><沙工(사공)의노래><산으로 바다로><실버들> <靑春(청춘)아 부르짖어라> 강석연과 듀엣곡< 미쳐라 봄바람><三城歌(삼성가)><가슴만 타지요>
김복희, 이은파, 손금홍과 합창한 신민요<우리의 가을> 손금홍과 듀엣곡< 노래 부르세> 등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1935년 taihei-record 로 전속을 옮깁니다
그리고 이은파와 듀엣송<돈바람분다>를 발표 크게힛트 시킵니다
이힛트덕분으로 jodk-경성방송국-에 出演(출연)까지 하게됩니다
8월24일 강석연 노벽화등과<黃金狂(황금광) 朝鮮(조선)><울리려 왔던가><풀어진 들> 등을 부릅니다
이어서 1937년 8월<人間circus-인간 서커스-> 와 노벽화와 듀엣곡< 賞與金(상여금) 만타면은> 을 吹入(취입)하여 또다시 힛트시킵니다
최남용은 외모가 출중하여 1939년 개봉한 이광수원작 영화<無情(무정)>에 남인수의<꼬집힌 풋사랑>의 臺詞(대사)를 하기도 한 俳優(배우) 한은진과 出演(출연)까지하고 그 主題歌(주제가)를
취입하는 幸運(행운)이 뒤따릅니다
俳優(배우) 현순영이 함께 出演(출연)했습니다
이 映畵(영화)主題歌(주제가)는 1939년 okeh-record 서 sp音盤(음반)으로 發賣(발매)합니다
Okeh-record 음반번호 12191 번 까진은 確認(확인)되나 作詞(작사) 김안서외 작곡진을 알수없습니다
이영화에는 최남용의<無情(무정)>외 장세정이 취입한 <英采(영채)의 노래>도 같은 sp음반에 실려있습니다
이영화는 조선영화주식회사서 박기채감독 演出(연출)로 촬영해 1939년, 3월15일부터 27일까지 황금좌에서 공개했습니다
이주제가<無情(무정)>은 1934년 전수린사, 곡으로 손금홍이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노래로부른<無情(무정)>과 混同(혼동)을 惹起(야기)하도합니다
오락가락 無心(무심)타 쓸쓸한 世上(세상)
누구를 믿고 살란말요 누구를 믿어요----로 시작하는 노래 아시죠??
이 두곡은 전혀 다른 노래입니다!!!
1350-再照明(재조명)-나
山有花(산유화) 노래에는 수심이 끼고
山有花(산유화) 중에는 豊年(풍년)이 왔소
無心(무심)타 강물만 한이 없구려
달리는 영상같이 둥그렸으니
별님은 꽃같이 벌어 졌을까
黃山伐(황산벌) 三百里(삼백리)에 갈곳이 있나뇨
無心(무심)타 是非曲折(시비곡절) 이곳 山有花(산유화)
山有花(산유화) 부르던 님 山(산)으로 가고
그山(산)은 변하여 江(강)이 되었소
뻐꾹새 슬피 우는 뜬 世上(세상)속에
山有花(산유화) 이름만이 남았습니다-------------------------------------------김능인사 문호월곡 송달협노래< 山有花(산유화)>12002
상기곡<山有花(산유화)>는 1937년, 5월 okeh-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김능인사 문호월곡 송달협노래로 발매했습니다
異面(이면)에는 박영호사 문호월곡 장세정노래< 粉紅(분홍) 손수건>이 실려있습니다
1937년,5월26일 朝鮮日報(조선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 -----------------------------------------------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12002 流行歌(유행가) 山有花(산유화) 송달협------------------------------------------------리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每日申報(매일신보) 1937년, 5월 27일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流行歌(유행가) 12002 山有花(산유화) 宋達協(송달협) ---------------------------------------------------라고 비슷한 내용의 선전이 보입니다
山有花歌(산유화가)는 부여지역에 조선후기, 일제시대 불리던 백제가요로 신라에망한 백제유민들이 부르던 구전가요인바 상기곡은 이 口傳歌謠(구전가요)에서 motive 를가져온 가요입니다
곡을 취입한 송달협은 美男歌手(미남가수)로 알려져있고 레코드보다는 무대에서 더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Okeh-record 서 가수 장세정을 홍보키위하여 개최한 가요콩클서 장세정에 이어서 2위로 당선 okeh-record 專屬歌手(전속가수)가 되었습니다
1936년 오케이레코드입사 1937년 3월신보서<야루강 千里(천리)>< 끝없는 향수>로 가수데뷔를 했습니다
이중에서<야루강 千里(천리)>는 그의 代表曲(대표곡이)이 됩니다
이어서 4월에는<國境(국경)의 버들밭> 5월신서<노타이 詩人(시인)> 6월신보서< 純情(순정)의 달밤>----등을 발표합니다
다음해인 1938년 정월신보에서<포도의 騎士(기사)> 3월<저달이 지면은> 4월<왜 말이 없소>와 장세정과 듀엣곡<젊은날의 꿈> 5월<國境(국경)列車(열차)> 7월<못생긴 英雄(영웅)>
8월<0노의 歎息(탄식)> 9월<오! 貞信(정신)아> 10월<눈물의 꿈길>-----등을 차례로 發表(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무렵 victor-record 로 專屬(전속)을 옮깁니다
解放後(해방후) 송달협은 樂劇舞臺(악극무대)에서<꿈에본내고향>을 자주 불렀으나 어쩐일인지 recording 을 하지는 않습니다
환도후 155년, 2월20일부터 國立劇場(국립극장)公演(공연)을 시작으로 3월 17일부터 계림극장 공연에 이르기까지 大邱(대구) 釜山(부산) 서울의 4개극장에서 공연한 樂劇團(악극단) 호화선,
太平洋(태평양) 合同公演(합동공연) 廣告(광고)에 그의 이름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해 10월7일부터 12일까지 중앙극장에서 太平洋(태평양)樂劇團(악극단) 공연을 끝으로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송달협은 high tone-하이톤-의 纖細(섬세)한 女性的(여성적)인 목소리로 人氣(인기)를 끌었으며 밤舞臺(무대)에서는 特(특)히女性(여성)들의 爆發的(폭발적)人氣(인기)로 歌謠皇帝(가요황제)
南仁樹(남인수)氏(씨)를 위협할만한 存在(존재)였습니다
1350-再照明(재조명)—다
일부러 일부러서 술마시는 사나이 내 가슴에 비가 끓는다
사랑은 무엇이며 女子(여자)란 무엇이며 가거라 가거라 靑春(청춘)도 다 가거라
헤맬수록 화를 내는 내가 미쳤다 내가 미쳤다
일부러 일부러서 비를 맞으며 헤매는 내 마음에 불이 붙는다
사랑은 무엇이며 女子(여자)란 무엇이며 가거라 가거라 虛榮(허영)도 다 가거라
헤맬수록 화를 내는 내가 天痴(천치)다 내가 天痴(천치)다
뺨을 때리는 실없는 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웃음은 무엇이며 한숨은 무엇이며 가거라 가거라 歎息(탄식)도 다 가거라
뉘칠수록 화를 내는 내가 못났다 내가 못났다--------------------------------조명암사, 박시춘곡 송달협노래<못생긴 英雄(영웅)>12141
1938년 7월 okeh-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조명암사 박시춘곡 송달협노래로 발매합니다
異面(이면) 에는 조명암사, 박시춘곡 이은파의<풋난봉>이 보입니다
1938년, 7월1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新譜(신보)
一二一四一 流行歌(유행가) 못생긴 英雄(영웅) 宋達協(송달협)
풋난봉 李銀波(이은파)-------------------------------------------------------------------라고 紹介(소개)水準(수준)의 선전을 하고있습니다
가수 송달협의 okeh-record 서 1938년 11월발매< 國境(국경)의 뱃沙工(사공)>은 新聞廣告(신문광고)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1939년 victor-record 에서 再出發(재출발)한 그는 2월<야멸찬 心思(심사)>, 4월<외로운 男兒(남아)>, 5월<靑春紀錄(청춘기록)> 6월신보에서 그의 또한곡의 대표곡인<追憶(추억)의 豆滿江(두만강)>
을 發表(발표)합니다
이곡은 藝名(예명) 이청봉, 남강수로 활동한 模唱歌手(모창가수)가 remake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8월신보<鄕愁馬車(향수마차)> 9월< 비오는 異國港(이국항)> 12월< 旅路(여로)의 조각달>-----이어서 1940년, 4월<純情(순정)의길>을 발표합니다
그러고는 okeh-record 의 再入社(재입사) 요구에 응하여 1941년<蒼空(창공)>, <洛花日記(낙화일기)> 1942년<滿洲新郞(만주신랑)> 등을발표합니다
1940년 名文章家(명 문장가) 王平(왕평)의 추도공연이 1940년, 8월15일~16일 양일간 부민관 대강당서 개최되었을 때 victor-record 대표로 김용환, 김봉명등과 出演(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여동생은 <아주까리 등불><황포돛대><怨恨(원한)의 山脈(산맥)><새봄맞이>등을 부른 최병호와 결혼했고 송달협의 따님은”송영란”이란 예명으로 pop-singer 활동<時計(시계)와 date-데이트->등을 불렀읍니다
1940년부터는 반도가극단에서 활약하기도 하고 okeh-grand show-오케이 그랜드 쇼-에서 김정숙, 함국절, 배구승, 조영숙, 서봉희, 홍청자, 이준희 등과 함께 주요멤버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高音(고음)이 매끄러운 中性的(중성적) 목소리 가 魅力的(매력적)이라는 評(평)을 들었습니다
그가 okeh-record 로 再入社(재입사) 1942년발표한<滿洲新郞(만주신랑)>은 김다인사 이봉룡 곡으로 이난영의<할빈 茶房(다방)>과 함께 실렸습니다
이노래는 親日歌謠(친일가요)로 分類(분류)된 곡입니다
日本(일본)帝國主義(제국주의)의 大陸進出(대륙진출) 妄靈(망령)에대한 추임새로 默示(묵시)함에 대한 評判(평판)일것입니다
이노래 레코드취입에서 화려한 무대매너로 인기를 모았던 그는 1942년<황혼의 애상>을 발표했고 비슷한 평판을 받았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1351--再照明(재조명)-라
부어라 마시어라 歎息(탄식)의 술잔
잔우에 찰랑찰랑 부서진 하소
사나이 우는 맘을 누가 아느냐
울래야 울수없는 사나이 마음
Pipe-파이프-의 煙氣(연기)처럼 흐르는 身世(신세)
來日(내일)은 어느 港口(항구) 선술집에서---------------------------------박영호사 박시춘곡 김정구노래<港口(항구)의 선술집>1960
未吹入(미취입)歌詞(가사)-----불꺼진 埠頭(부두)우에 궂은비 소리
내손길 마주잡고 누물 씹는다
1937년 2월 okeh-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流行歌 genre-유행가장르- 로 박영호사 박시춘곡 김정구노래로<港口(항구) 의 선술집>을 발매합니다
異面(이면)에는 박영호사, 낙랑인작곡 이난영, 김정구듀엣으로<戀愛特急(연애특급)>을 실었습니다
<港口(항구) 의 선술집> 은 no-1960으로 no-1959인 장세정의<연락선은 떠난다>와 함께 發賣(발매)된 곡으로 Okeh-record 서 再出發(재출발)韓(한) 김정구씨의 첫번째노래 로
日帝末期(일제말기) 어찌할바 모르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여기저기 朝鮮全國(조선전국)에있는 술집에서 불려진 노래입니다
1937년, 3월 okeh-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四月新譜(4월신보)
一九六0 流行歌(유행가) 港口(항구)의 선술집 金貞九(김정구)
戀愛特急(연애특급) 이난영, 김정구 듀엣
Okeh-오케이-는 微笑(미소)한다 感激至上盤(감격지상반)
流行歌(유행가) 港口(항구)의 선술집 朴英鎬(박영호) 詞(사) 朴是春(박시춘) 曲(곡) 金貞九(김정구)---------------------------------라고 선전 하고있습니다
1937년 3월 okeh-record 발행 每月(매월)新譜(신보)------------------------------------------------------------에는
0發賣目錄(발매목록) 黑盤(支部(흑반지부)
流行歌(유행가) 新民謠(신민요) 漫謠(만요)
1960 港口(항구) 의 선술집 김정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7년, 2월15일 每日申報(매일신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本社工場(본사공장) 新築(祈念(신축기념)
朝鮮吹入所(조선 취입소) 設置祈念(설치기념) 臨時發賣盤(임시 발매반)
新人金貞九(신인 김정구) 入社 第一聲(제일성)
1960 港口(항구)의 선술집 朴英鎬(박영호) 詞(사) 朴是春(박시춘) 曲(곡) 金貞九(김정구)
1937년, 3월3일 朝鮮日報(조선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Okeh-오케이- 斷然(단연) 힛트의 臨時發賣盤(임시 발매반)
1960 港口(항구)의 선술집 金貞九(김정구)--------------------------------------------------------------------------라고 表記(표기) 하고있습니다
1937년, 2월8일 朝鮮(조선)日報(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金君(김군) debut盤(데뷔반)
1960 港口(항구)의 선술집 金貞九(김정구)---------------------------------------------------------------라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눈물젖은 豆滿江(두만강)>으로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歌手(가수) 金貞九氏(김정구씨)는 형 용환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창립된지 얼마안된 new korea-record 서 사장 이승년, 문예부장 박고송의
테스트를 받고 1936년, 4월경 舞臺俳優(무대배우)과 듀엣으로 박고송사 김용환곡<三番(삼번)통아가씨>를 취입하며 大衆歌手(대중가수)로 출발합니다
異面(이면) 에는 박고송사, 김목운곡 김정구노래 <이밤이 새기 前(전)>이 실려있습니다
일본에 취입을 위해 출장을간 김정구씨는 한발앞서 가있던 누이 안라와 만나 테너 김대건, 바리톤 장비 같은 학셍들을 소개받고 平素(평소) 志望(지망)하던 클래식 음악을 다시 꿈꾸게됩니다
그러나 누이 에게”때로는 예술보다 빵이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歌謠(가요)도 大衆藝術(대중예술)이라 할수있지 않느냐”란 忠告(충고)를 받고는 마음을 바꾸어 녹음에 임하게 됩니다
錄音(녹음)을마친 그는 고향 원산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사이가 레코드가 발매되었으나 목소리가 형 용환을 닮아서 형이 藝名(예명)을 바꾸어 노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誤解(오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전 첫취입곡에 이어서 <modern 鍾路(종로)><어머니 품으로><靑春rendezvous- 청춘랑데뷰-><人生(인생)의 봄>< 處女(처녀)時代(시대)>< 야루강 打令(타령)>를 발표합니다
그는 new-korea-record 데뷔전에 이화자, 김난방, 최선등 뉴코리아 가수들과 함께 jodk-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어머니 품으로><청춘 랑데부>등을 불렀습니다
고향에 있던 무렵 그는 ok-eh-record 의 간부이자 이철의 매부이기도한 김성흠에게서 scout 提議-스카웃제의- 를 받게됩니다
그무렵 okeh-record 는 엄청난 氣勢(기세)로 발전하고 있었고 提示條件(제시조건)도 좋았으므로 즉각 專屬契約(전속계약)을 맺었습니다
1352--再照明(재조명)-마
흘러온 他鄕(타향)하늘 날이저문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이 우나니
눈물도 하염없으라 갈 데없는 身世(신세)랍니다
한잔의 술이나마 눈물없이 마시리요
사랑도 離別(이별)하고 故鄕(고향)도 등진몸
취하면 취한 그대로 酒酊(주정)하는 身世(신세)랍니다
물에뜬 거품처럼 속절없는 世上(세상)에서
사나이 목숨바친 切開(절개)란 무어냐
술잔에 남실거리는 neon-네온-빛도 식어갑니다----------------------------조명암사 이시우곡 김정구노래< 他鄕(타향)의 술집->12156
1938년 9월 okeh-record 서 sp음반에 실어 조명암사 이시우곡 김정구노래로 발매되었습니다
이면에는 최낙인사, 송희선곡 장세정의< 철없는 젊은꿈>이 실려있습니다
1938년, 9월3일 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광고)-------------------------------------------------에는
九月新譜(9월신보)
一二一五六 철없는 젊은꿈 張世貞(장세정)
他鄕(타향)술집 金貞九(김정구)------------------------------------------------------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朝鮮日報(조선일보) 每日申報(매일신보) 1938년 9월1일 okeh-record 廣告(광고)----------------------------------------------------에도
九月新譜(9월신보)
12156 他鄕(타향)술집 김정구------------------------------------------------------------------------------------------ 라는
비슷한 수준의 선전이 보입니다
Okeh-record 서<港口(항구) 의 선술집><상기곡<他鄕(타향)의술집>등 大衆歌手(대중가수) 라면 어차피 견뎌야하는 最大長技(최대장기)를 찾기위한 修鍊期(수련기)에 悲歌(비가)풍의 가요를 발표하나
오케이에는 南仁樹(남인수)라는 큰벽이 막고있음을 피부로느낀 김정구는 漫謠(만요) 라하는 comic-song-코믹송-쪽으로 方向轉換(방향전환)을 꾀하게됩니다
마치 홍콩 俳優(배우) 成龍(성룡)이 李小龍(이소룡) 의 悲壯美(비장미)에 가로막혀 喜劇(희극)으로 방향전환을 했듯이---
그리고 당시로는 보기드문 gesture-제스처-가 들어간 comic-song-코믹송-을 부르기시작 이것이 크게 適中(적중)합니다
그가 발표한 만요로 감진문사, 박시춘곡<왕서방 戀書(연서)> 가 있는바
비단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돈 퉁퉁털어서서 다 줬어
띵호와 띵호와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명월이 하고 살아서 돈이가 무유데 띵호와
워디가 반해서 하하하 비단이 팔아서 띵호와--------------------------------------------<왕서방 戀書(연서)> 1절
이노래를 노래할 때 김정구는 이빨을 까맣게 칠해서 이가 빠진듯한 우스운 中國人(중국인) 貌襲(모습)으로 扮裝(분장)을 했읍니다
이곡은 그의 解放後 人氣曲(해방후 인기곡)이된<눈물젖은 豆滿江(두만강)>을 훨씬 능가한 판매고를 올렸고 어린이들 조차도”띵호와 띵호와” 하고 떠들며 불렀습니다
허나 中國人(중국인)들은 華僑(화교)를 戱畵化(희화화) 한다고 抗議(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곡<總角陳情書(총각진정서)>에서는 색시가 필요하다고 떼를쓰는 모습으로 몸을 비틀어여 가면서 輕快(경쾌)한 gesture-제스처-로 노래하여 絶讚(절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님 누님 나 장가 보내주
까막이 까치울고 호박꽃피는 내 故鄕(고향)의
어여쁘고 순직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후략--------------<總角(총각)陳情書(진정서)>
1939년 朝鮮樂劇團(조선악극단) 一員(일원)으로 日本公演(일본공연)을 했을 때 김정구의 노래와 gesture-제스처-는 最高(최고)의 人氣(인기)를 얻었습니다
그가 舞臺(무대)에 登場(등장)하는 것만으로도 觀衆(관중)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1353-再照明(재조명)-바
앞山(산)에 솜안개 어리워 있고
鴨綠江(압록강) 물우에는 뱃노래로다
龍巖浦(용암포) 慈厚昌(자후창) 떠나가는 저물길
눈물에 어리우는 新義州(신의주) 埠頭(부두)
똑딱선 뾰족배 오고 가는데
갈매기 놀래나서 성급히 난다
부리는 뱃길에 기다라는 님消息(소식)
헛길에 돌아가는 新義州(신의주) 埠頭(부두)
夕陽(석양)해 유초도 누엿이 넘고
돛내린 뱃간에는 불빛이 존다
진강산 바라며 그리웁던 내 故鄕(고향)
설움에 깊어 가는 新義州(신의주) 埠頭(부두)-------------------------유도순사, 전기현곡 고운봉노래< 國境(국경)의 埠頭(부두)8640
上記曲(상기곡)은 1939년, 8월 taihei-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유도순사 전기현곡 고운봉노래로 발매했습니다
異面(이면) 에는 유도순사 전기현곡 고운봉의<아들의 하소>가 실려있습니다
1939년, 7월2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7월28일 每日申報(매일신보) 7월27일 朝鮮日報(조선일보) taihei-record 廣告(광고)---------------------------------------------------------------에는
待望(대망)의 新人登場(신인등장)
八月(팔월) 最高傑作盤(최고 걸작반)
國境(국경) 新義州(신의주)는 너무나 애처럽다
圓盤界(원반계)의 魅惑(매혹),
斷然(단연) 新人時代(신인시대)
8640 流行歌(유행가) 國境(국경)의 埠頭(부두) 純情歌手(순정가수) 고운봉
오늘도 鴨綠江(압록강)물우에 이름모를 배가 간다-------------------------------------------------------라고 소개 하고있습니다
1939년, 8월7,9,11,,1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8월14일 每日申報(매일신보),8월12일,18일 朝鮮日報(조선일보) taihei-record 廣告(광고)-------------------------------------------------------------------에는
8640流行歌(유행가) 國境(국경)의 埠頭(부두) 유도순작시, 전기현작곡 新人(신인) 高雲峰(고운봉)
<國境(국경)의 등불> 姉妹(자매) 盤(반)
國境(국경) 新義州(신의주) 埠頭(부두) 에는 오늘도 이름모를 배가 지나간다-------------------------------------------------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939년, 10월13일 朝鮮日報(조선일보) taihei-record 廣告(광고)----------------------------------------------------------------에는
無敵(무적)의 태평의 힛트集(집)
國境(국경)의 埠頭(부두) 高雲峰(고운봉)-----------------------------------------------------------------------------라고 宣傳(선전) 하고있습니다
鴨綠江(압록강) 河口(하구)에 위치한 新義州(신의주)에는 滿洲(만주)의 안동과 이어진 鐵橋(철교)가 있는데 中央部(중앙부)가 회전하여 배를 通過(통과)시키는 開閉式(개폐식) 다리로 有名(유명)합니다
新義州(신의주)는 文字(문자)그대로 國境(국경)의 거리이며 곡을 作詞(작사)한 유도순의 故鄕(고향)이기도 합니다
이곡은 유도순이 서울에 居住(거주)하면서 故鄕(고향)이 그리워서 쓴 望鄕歌(망향가)에 전기현이 그 mood-무드-를잘살려 곡을붙여 유명해진 가요입니다
解放前(해방전) 에는 이규남의<晋州(진주) 라 千里(천리)길>, 백년설의<故鄕雪(고향설)>과 함께 특히 intellectual 層(인텔리층)의 3대 愛唱曲(애창곡)으로---특히 解放直後(해방직후) 엄청난 人氣(인기)
를얻은 곡<船艙(선창)>으로 유명한 가수 고운봉은 조금은 특이하게 忠淸南道(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354-再照明(재조명)-사
버린 故鄕(고향)이 그렇게 그리워서
Guitar-기타-줄을 골라매고 한 曲調(곡조) 타니
아버님 生角(생각) 어머님 生角(생각)
눈물줄기 흘러서 앞을 가리니
꼬리 치면서 집에남은 얼룩이 잘 있느냐
주려안은 배 뉘라서 알 것이냐
낯이 설은 他鄕(타향) 거리에 헤매며 사니
들밭에 穀食(곡식) 붉어케 익고
노적가리 쌓아놓은 내집 이건만
뜻을 이루기 그날까지 안찾을 故鄕(고향)이다
不孝(불효)하다고 꾸짖지 말아 다오
노래로써 몸을 세워 사람 되리니
父母(부모) 마음에 맞지 않아도
苦生(고생)하며 힘쓰는 아들 이오니
내 故鄕(고향)이여 내 집이여 成功(성공)을 보아 다오-------------------------------------유도순사, 전기현곡 고운봉노래<아들의 하소>
高雲峰(고운봉) 은 本名(본명)은 고명득이고 歌手(가수)에 뜻을두고 성울로 上京(상경) taihei-record 문을 두드렸습니다
다행히 北部地方(북부지방)에서 滿洲方面(만주방면)으로까지 가는 공연을 출발하기 直前(직전)에 그시기 태평소속의 작곡가 이재호 文筆家(문필가) 박영호를 만날수 있어서 테스트를 받을수 있어서
그자리에서 採用(채용)된 그는 그길로 태평레코드연주단에 參加(참가)해 舞臺(무대)에 설수있는 幸運(행운)을 누립니다
3개월간의 긴 巡廻公演(순회공연)을 마치고 上京(상경)한 그는 태평레코드 專屬(전속)이되어 吹入(취입)차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1939년 8월신보로 상기곡들인 <國境(국경)의 埠頭(부두)>와<아들의 하소>를 양면에 녹음한 음반으로 가수 debut-데뷔-를 합니다
상기곡<아들의 하소>는 父母(부모)몰래 家出(가출)하여 record -레코드 가수-가 된 고운봉이 父母(부모)를 生角(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곡입니다
후일 좋은 歌唱力(가창력)을 가졌으나 實力(실력)보다 低評價(저평가)받은 최갑석씨가 臺詞(대사)버전으로 remake 했읍니다
앞선 광고에서 보듯이”純情(순정)歌手(가수) 高雲峰(고운봉)” 라는 catch phrase-캐치프레이즈-로 데뷔한 그는1939년,8월 데뷔곡발표후 그해 10월<紅淚夜曲(홍루야곡)><南月航路(남월항로)>를
발표하고 다음해인 1940년 또한곡의 힛트곡<南江(남강) 의 追憶(추억)>을 發表(발표)합니다
계속되는 힛트곡에 stardom-스타덤-에오른 그를 okeh-record 의 scout-스카우트-의 名手(명수) 이철이 그냥둘리만무 곧 okeh-record 로 전속을 옮깁니다
그리고 1940년 9월경 okeh-record 서 제1작 조명암사, 손목인곡 <紅燈日記(홍등일기)를 조명암사 이봉룡곡 이난영노래<南京(남경)>와 앞뒤면에 실어 발표합니다
外貌(외모)가 出衆(출중)한 편이었던 그는 이철의 눈에띄어 조선악극단에서 主演(주연)을 맡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1941년 8월 신보로 그의 이름을 決定的(결정적)으로 刻印(각인)시키는 名曲(명곡) 김해송의 특징이 잘드러나는곡이기도 한 조명암사<船艙(선창)>을 발표합니다
“---울려고 내가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시작되는 이가요는 semi classical-세미클래식-雰圍氣(분위기)를 풍기며 學生(학생)들이나 인텔리가 즐겨 불렀습니다
특히 이곡은 해방과함께 곡이 발표된 시기보다 더 爆發的(폭발적)으로 流行(유행)합니다
지금은<船艙(선창)>이란 原題目(원제목)보다<울려고 내가왔던가>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에 제작된영화 이장호감독의<바람불어 좋은날>에 백년설의<나그네 설움>과 함께 揷入曲(삽입곡)으로 실려있습니다
이영화에는 안성기, 유지인, 김희라, 최불암, 김영애, 김보연, 임예진 씨氏(씨)등이 출연 했습니다
그의 解放後(해방후) 힛트곡<明洞(명동) blues-블루스->는 김용환을 이은 歌謠界(가요계) 八方美人(팔방미인) 김용만의 作曲(작곡) 데뷔곡이고 김용만이 먼저 吹入(취입)했습니다
1355--再照明(재조명)-자
우러라 내사랑아 靑春(청춘)도 꿈도 잃고
나홀로 흘러 흘러서 저 멀리 저 멀리
바람따라 도는 버들잎 身世(신세)랍니다
불어라 비바람아 돛대도 키도 잃고
흐르는 물결따라 끝없이 끝없이
흰구름 따라 도는 조각배 身世(신세)랍니다
흘러라 옛 追憶(추억)아 故鄕(고향)도 님도 잃고
뜬 世上(세상) 돌고 돌아서 한없이 한없이
꿈길을 찾아가는 나그네 身世(신세) 랍니다---------------------------浮萍草(부평초) 사 남천 곡 김영춘노래<버들잎 身世(신세)>2026
1940년 2월 Columbia-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부평초사, 남천곡 김영춘 노래로 발매
異面(이면) 남해림사, 이용준곡 남일연노래< 비오는 埠頭(부두)>가 보입니다
1940년, 2월18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c-2026 流行歌(유행가) 버들잎 身世(신세) 金英椿(김영춘)
他面(타면) 비오는 埠頭(부두)-------------------------------------------------------------------라고 선전 하고있습니다
1940년 4월 발행 Columbia-record 每月(매월)新譜(신보)----------------------------------------------에는
<四月(사월)新譜(신보)>
c-2026 流行歌(유행가) 버들잎 身世(신세) 一枚(1매) 김영춘
비오는 埠頭(부두) 남일연
好評(호평) 大好評(대호평) 最近(최근)의 힛트!! 流行歌(유행가) c-2026 버들잎 身世(신세) 김영춘-------------------------------------------------------------라고 표기 하고있습니다
1940년 6월발행 Columbia-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六月(유월)新譜(신보)>
c-2026 流行歌(유행가) 버들잎 身世(신세) 김영춘
비오는 埠頭(부두) 남일연
熱狂(열광)的(적) 人氣(인기)속에있는 最近(최근) best ten-베스트텐- 콜롬비아 普及(보급)盤(반) 流行歌(유행가) c-2026 버들잎 身世(신세) 김영춘-------------------------------------------------------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40년 8월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Columbia-record 傑作紹介(걸작소개)盤(반)
c-2026 流行歌(유행가) 버들잎 身世(신세) 김영춘--------------------------------------------------라고
소개 합니다
歌手生活(가수생활) 限平生(한평생) <홍도야 우지마라>로 歌謠界(가요계)를 風靡(풍미)한 가수 김영춘은 1917년경 慶尙南道(경상남도) 金海(김해) 태어났습니다
1938년 콩쿠르에 入賞(입상)하여 Columbia-record 專屬歌手(전속가수)가 되었습니다
Debut 曲(데뷔곡)은 그해 12월 신보로 발매된 처녀림사, 김송규곡 <處女(처녀)雪(처녀설)>입니다
異面(이면) 에는 김상화사, 전기현곡 김장미노래< 열매나 걷고가소>가 실려있습니다
이어서 1938년, 12월~1939년 1월 처녀림사, 이용준곡 < 國境特急(국경특급)> 김상화사, 김송규곡<당신속을 내몰랐소>을 낸다음 2월 김상화사, 이재호곡< 北國千里(북국천리)>,를 내고 4월경 臨時發賣(임시발매)로 이서구사 김준영곡<홍도야 우지마라>를 발표 그의 一生一代(일생일대) 最高(최고)힛트곡이 됩니다
이곡에대한 자세한 것은 해당란을 참조바랍니다
이곡의 big-hit 로 유명세를 탄 그는 그해 5월 이하윤사 강구야시곡<동트는 大地(대지)><나그네 黃昏(황혼)>이하윤사, 7월 이용준곡<靑春馬車(청춘마차)> 11월 이하윤사, 이용준곡<鄕愁千里(향수천리)> 이하윤사, 9월 이용준곡<희미한 달빛>을 발표했으나 후속힛트곡을 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곡 발표년도도 정확치 못합니다
1940년 2월<버들잎 身世(신세)> 5월 남해림사, 김준영곡 <南國(남국)의 달밤><人情事情(인정사정)>< 悲戀(비련)의 靑春(청춘)港(항)>11월 세호암사, 김준영곡<유랑 서커스>1941년 5월< 浦口(포구)의 0燈(등)>등을 발표했습니다
1942년 7월 이가실사, 손목인곡 沙漠(사막)의 歡呼(환호)> 12월 남려성사, 손목인곡 < 四輪馬車(사륜마차)
1943년 1월 남려성사, 손목인곡< 항구야 잘있거라> 3월 이가실사, 한상긱곡< 東亞(동아)의 黎明(여명)> 4월 성경진사 한상기곡< 아루 山(산) 千里(천리)> 6월 성경진사, 손목인곡.<木蘭(목란)의 자랑> 9월<城隍堂(성황당) 고개> 12월 이가실사 손목인곡< 港口(항구)의 前夜(전야)>----등등을 發表(발표) 했습니다
1356-再照明(재조명)-차
黃河水(황하수) 벅찬물에 노래를 싣고
어드메로 떠나가는 黃布(황포) 돛대냐
흘러가는 東(동)쪽바다 東(동)쪽의 사랑
幸福(행복)을 실어오는 黃布(황포) 돛대냐
病院船(병원선) 뱃머리에 깃발을 보고
손을 들어 절을하는 뱃沙工(사공) 아가씨
亞細亞(아세아)의 杜鵑(두견)피는 永遠(영원)의 사랑
00을 실고가는 黃布(황포)돛대냐
3절—일본어- 한여름 작은새의 노랫소리로
황포돛대 그늘의 노랫소리도
흘러서 즐거운 來日(내일)의 노래
우러러 日章旗(일장기) 구름이 난다----------------------------------------------조명암사, 박시춘곡 최병호노래<黃布(황포)돛대>31165
1943년, 3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 조명암사, 박시춘곡 최병호노래
異面(이면) 조명암 사, 이봉룡곡 최병호노래<山千里(산천리) 물 千里(천리)>가 보입니다
1943년, 2월 okeh-record 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本月新譜(본월신보)0特選目錄(특선목록)>
迎春(영춘) okeh 二大(2대) 臨發(임발)
<사진 최병호>
趙鳴岩(조명암) 詞(사) 朴是春(박시춘) 曲(곡)
31165 黃布(황포) 돛대
他面(타면) 山千里(산천리) 물 千里(천리) 崔丙浩(최병호)
待望(대망)一年(일년)!! 아주까리 등불로 一躍(일약) 話題(화제)를 일으킨 歌兒(가아) 崔丙浩(최병호) 君(군) 의힛트다!!
朴是春(박시춘) 君(군)의 野心作(야심작)!!
崔丙浩(최병호) 君(군)의 回心力唱(창) (회심역창) !!
이것으로써 崔(최)君(군)의 앞날이 決定(결정)된다
<臨時(임시)發賣(발매)>
31165 歌謠曲(가요곡) 黃布(황포) 돛대 崔丙浩(최병호)
山千里(산천리) 물 千里(천리)--------------------------------------------------------------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상기곡<黃布(황포) 돛대>를 불러 인기를 모은 최병호는 本名(본명)이 최재련으로 1916년 全羅南道(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난영의 오라비 이봉룡의 親舊(친구)였으며 가수가 되기전 오사카에 있는 제과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노래를 좋아해 朝鮮(조선)樂劇團(악극단)의 오사카공연때 일본옷을 입고 무대뒤로 찾아갔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조선에 오면 한번 찾아오십시요” 라고 말한 이철사장 의 말대로 얼마되지않아 오케이레코드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오케레코드에서 主催(주최)한 콩쿠르에 入選(입선)하여 1940년, 8월에 歌手debut-가수데뷔-를 합니다
그는 <黃布(황포) 돛대>以前(이전) 1941년, 2월 조명암사,이봉룡곡<아주까리 등불>이라는 노래로 人氣曲(인기곡)을 發表(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피리를 불어주마 울지마라 아가야
山(산)넘어 고개넘어 까치가 운다
故鄕(고향) 길 九十里(구십리)에 어머니를 잃고서
네 울면 저녁별이 숨어버린다
노래를 불러 주마 울지 마라 아가야
울다가 잠이들면 엄마를 본다
물방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故鄕(고향) 길
날리는 갈대꽃이 너를 부른다
방울을 울려주마 울지마라 아가야
엄마는 돈을 벌러 서울로 갔다
바람에 깜박이는 아주까리 등잔불
저멀리 개울건너 손짓을 한다---------------------------- 조명암사 이봉룡곡 최병호노래< 아주까리 등불>
이곡의 間奏(간주) 에는 日本民謠(일본민요) “사도오케사” melody-멜로디-가 編曲(편곡)되어 들어가 있으나 remake 音盤(음반)에서는 슈베르트의<자장가>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어서 1942년, 7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에 조명암사, 박시춘곡으로<四面楚歌(사면초가)>를 실어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異面(이면)에는 조명암사 박시춘곡 이난영의<烈女碑(열녀비)>가 보입니다
목통소 한曲調(곡조)에 故鄕(고향)땅이 그리워
강동자제 八千(팔천)軍士 (군사) 흩어 졌느니
虞美人(우미인) 잘있거라 낸들 어이 할소냐
力拔山(역발산) 項羽(항우)인들 응~ 내 어이할소냐
바람에 지는 洛花(낙화) 이마음을 아는가
돌아서는 말안장에 갑옷이 운다
우미인 잘있거라 낸들 어이할소냐
楚覇王(초패왕) 項羽(항우)런들 어이 할소냐-------------------------------조명암사, 박시춘곡 최병호노래<四面楚歌(사면초가)>
최병호가 무대에 서는 모습은 옛날가수답게 꼿꼿이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의 목소리와 唱法(창법)은 日本歌手(일본가수) 시오 마사루나 오노 매구루 를 聯想(연상)시키는데가 있습니다
戰爭(전쟁)이 激甚(격심)해지자 최병호는 징용에 끌려가 日本飛行機(일본 비행기) 工場(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친척하며 징용을 면하고 조선으로 되돌아 올수있었습니다
그리고는 釜山港(부산항)에 到着(도착)하여 朝鮮(조선)땅을 밟은 그는 일본을 향해”야 이자식들아 미친 것은 네놈들이다” 라고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고 합니다
解放後(해방후) 김해송의 k.p.k 樂團(악단)에 소속되어 舞臺(무대)에선 그는<怨恨(원한)의 山脈(산맥)><새봄맞이>등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꿈에본내고향> 原唱者(원창자) 송달협의 여동생과 結婚(결혼)하여 幸福(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994년 他界(타계)헀습니다
1357-再(재) 照明(조명)-카
푸른꿈 붉은꿈이 흘러간 江(강)언덕에
오늘도 두 젊은이 말없이 서 있구나
울고샌 그날밤도 달만은 고왔건만
大同江(대동강) 그달빛이 다시금 꿈같소
綾羅島(능라도) 여울물에 등불이 반득반득
애 끓는 愁心歌(수심가)는 누구를 怨望(원망)하나
노 젓던 그날밤도 달빛은 고왔건마
大同江(대동강) 뱃노래가 다시금 그립소-----------------------------------------------------오준희사 형석기곡 한정무노래<大同江(대동강) 달밤>49509
1938년, 2월 victor-record 서 愛唱歌(애창가) 吳俊熙(오준희)詞(사), 邢奭基(형석기) 曲(곡) 韓正茂(한정무) 노래로 발매했습니다
sp음반으로 他面(타면)에는 金草鄕(김초향)詞(사) 全壽麟(전수린) 曲(곡) 韓正茂(한정무)노래< 赤道通信(적도통신)>이 실려 있습니다
이곡은 1943년경 再發賣(재발매) 되기도 했습니다
1943년 1월23일, 31일, 2월4일 每日申報(매일신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49509 大同江(대동강)달밤 한정무
他面(타면) 赤道通信(적도통신)------------------------------------------------------------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아곡은 1960년대 중반 sinsegy-record 발매 lp음반-박재홍 힛트앨범 no2-에 실려있으며 박재홍에 의하여 Remake 되어 발매되었습니다
이음반에는 백년설취입<더벅머리 과거>, <千里定處(천리정처)>,<마음의 故鄕(고향)><아들의 血書(혈서)> 등도 remake 되어 함께 실려있습니다
해방후 박두환사 김기태곡 <꿈에본 내 故鄕(고향)>을 힛트시켜 흔히들 가수 한정무씨가 解放後(해방후) 데뷔가수로 아는이들이 많으나 이처럼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데뷔했으며 victor-record 실제적 마지막 가수였읍니다
上記言及(상기언급) <꿈에본내 故鄕(고향)>은 곡이 發表(발표)된時期(시기) 一四(일사) 後退(후퇴)로
全國坊坊曲曲(전국 방방곡곡)에서 피난지 부산으로 몰려든 避難民(피난민)의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못하는 기막힌 가슴을 파고들어 송달협이 악극서 불렀을 때 보다도 더爆發的(폭발적) 流行(유행)을 합니다
이노래는<종횡무진 가요사 326>에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한정무씨는 1951년, 六二五戰爭(육이오전쟁)中(중) 鴨綠江(압록강)까지 北進(북진)했던 國軍(국군)들이 중공군의 개입으로이해 一四(일사)後退(후퇴)를 할 수밖에 없을 때 30대의 나이로 平壤(평양)에서 孑孑單身(혈혈단신)으로 南下(남하)해 避難地(피난지) 釜山(부산)에서 당시 한복남씨가 운영하던 domido-record 서 취입했던<꿈에본 내 故鄕(고향)>을 금사향의<향향 아가씨-홍콩아가씨-> 함께 발표 하고 이어서 손로원사 한복남곡<에레나가된 순희>를 손로원사 한복남곡 <新羅(신라)의칼>과 함께 같은 domido-record 서 또發表(발표)합니다
新羅(신라)의 피가끓는 시퍼런 칼날은
사나이가 부르짖는 꽃이 련만은
一百(일백)番(번)을 죽고죽어 黃土(황토)가 된다해도
님을 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 내마음 변하리요
奸臣(간신)의 무리들과 不義(불의)의 사랑
나려짓는 칼날에 달빛도 뛴다
山水(산수)찾아 道(도)를닦는 시퍼런 칼날끝엔
님을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 아~~~一片丹心(일편단심)
내어히 변하리요----------------------------------------------------------손로원사 한복남곡 김호길편곡 한정무노래<新羅(신라)의 칼>
<新羅(신라)의 칼>은 domido-record 발매 lp음반 추억의노래-에 신세영 목소리로 remake 되어서 실려있습니다
마치 高麗(고려)忠臣(충신) 정몽주의<丹心歌(단심가)>를 떠오르게하는 歌詞(가사)로되있습니다
<에레나가된순희>또한 domido-record 발매 lp음반-추억의노래-에 안다성 목소리로 remake 되어서 실려있기도 합니다
안다성 version-버전-에는 이러한 臺詞(대사)가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臺詞(대사)----戰爭(전쟁)의 뒤안길에는 悲劇(비극)도 많았지
이런 눈물겨운 邂逅(해후)도 있었더란다
“Hello hello hey-헬로우 헬로우 헤이- hello hello hey-헬로우 헬로우 헤이”
“Hey-헤이- 순희 순희 날 몰라 보겠어?”
“사람 잘못 봤지에이요?”
“흐흐흐흐 하하하하 니가?”
“웃겼씨비 하하하”
“나는 에레나가 아이겠소 하하하하”-------------------------------------
그날밤 劇場(극장) 앞에서 그驛前(역전) cabaret-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所聞(소문)이 들리는 순희
石油(석유)불 燈盞(등잔)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감던 순희가 다홍치마 순희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오늘밤도 party-파티-에서 춤을 추드냐-------------2절 생략-------손로원사 한복난곡 한정무 원창 안다성 remake<에레나가된 순희>
<에레나가된 순희>는 2박자 tango-rhythm-탱고리듬- 歌謠(가요)로 審議科程(심의과정)에서 이승만 自由黨(자유당) 정권이 자기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에레나”가 들어가는 노래제목에 拒否反應(거부반응)을 보여<잊지못할 순희>로 改題(개제)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곡은<종횡무진 가요사 335>에 상세하게 설명되 있습니다
domido-record 서 한정무는 손석우사 형석기곡<洛東江哀歌(낙동강애가), 손석우사 전오승곡<눈물의 tango탱고->를 또 吹入(취입)했습니다
비오는 하늘같이 어두운 외로운 내마음도
이밤도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며 힘없이 젖어가오
幸福(행복)의 情熱(정열)이 반짝이는데
외로운 내가슴엔 연제나 幸福(행복)이 찾아오나
눈오는 하늘같이 산뜻한 외로운 내가슴은
이밤도 남몰래 그이름 부르며 끝없이 울어를 보오
정다운 사랑의 노래는 흘러 오건만
외로운 내가슴엔 저노래를 불러줄 사람도 없네------------------------------------손석우사 전오승곡 한정무 노래<눈물의 tango-탱고->
이중에서<洛東江哀歌(낙동강애가)>는 처음 오준희사 형석기곡 으로 victor-record 서<大同江(대동강) 달밤>으로 發表(발표)된곡을 손석우가 改詞(개사)해서<洛東江(낙동강)哀歌(애가)>로 remake 한것입니다
더 詳細(상세)한 것은 <종횡무진 가요사 723>을 參照(참조) 바랍니다
또 한곡 한정무<避難千里(피난천리) >는 금사향의<그대와나의노래> 와 함께 domido-record 에 실려있기도 합니다
1358-再照明(재조명)-타
하늘에 구름지면 꽃잎도 움츠리오
님께서 눈물지면 내맘도 섧습니다
우실 때 같이우는 마음이 약한나를
바리지 말어 주세요 버리지 말아요
가물어 물마르면 꽃잎도 시들시들
님께서 성내시면 내맘도 조입니다
성낼 때 떨고있는 마음이 약한나를
바리지 말어 주세요 버리지 말아요
狂風(광풍)이 불어오면 꽃잎도 나불나불
님께서 뿌리치면 내맘도 아득해요
가시는 옷깃잡는 마음이 약한나를
바리지 말어 주세요 버리지 말아요-----------------------------------------이고범사, 전수린곡 이애리수 노래<버리지 말아요>49206
1933년, 6월 victor-record 서 sp음반에 실어서 李孤汎(이고범) 詞(사) 全壽麟(전수린) 曲(곡) 이애리수 노래로 發表(발표)했읍니다
他面(타면)에는<눈물에 흐린거울>이 실려있습니다
1935년, 2월 victor-record 발행 每月(매월)新譜(신보)----------------------------------------------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歌(유행가) 바리지 말아요 李孤帆(이고범)作詞(작사) 全壽麟(전수린)作曲(작곡) 李愛利秀(이애리수)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눈물에 흐린 거울 李孤帆(이고범)詞(사) 全壽麟(전수린) 曲(곡)----------------------------------------------라고 선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再版(재판)
Kj-1165-a<49206>
<錄音(녹음)日(일)>
1932, 2월1일 <49206>------------------------------------------라고 表記(표기) 이 音盤(음반)이 再發賣(재발매))매 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이곡은 後日(후일) 이미자씨가 輕快(경쾌)한 rhythm-리듬으로-remake 하기도 했습니다
성음레코드 發賣(발매) lp음반-歌謠半世紀(가요반세기) 1집-에 보입니다
이애리수의 가요계데뷔는 1931년 正月(정월)新譜(신보)<메리의노래><라인강>을 발표하며 이루어졌읍니다40139
1931년, 1월1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正月新譜(정월신보)
流行小曲(유행소곡) 메리의 노래 一枚(1매) 이애리스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라인 江(강)-------------------------------------------------------------라고 표기해 歌謠史(가요사) 黎明期(여명기) 歌謠(가요)를 ”流行小曲(유행소곡)”으로 칭했음을 알게 합니다
그무렵 Columbia-record 發賣(발매) 音盤(음반) label-라벨에는---------------------------------
Columbia-40139 메리의 노래 이애리스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Columbia-record 40139 流行(유행)小曲(소곡) 라인 江(강) 이애리스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이애리수”로 불리기전 데뷔시기 呼稱(호칭)이 다름을 알수 있어서 興味(흥미)롭습니다
음반번호 49206 인 이곡 바로전 49205는 流行歌(유행가), 李賢卿(이현경)詞(사) 金(敎聲(김교성)曲(곡) <덧없는봄빛><흐른 꽃잎>이 崔南鏞(최남용) 노래로 發表(발표)되었고
49204 로는 李愛利秀(이애리수) 목소리로 新民謠(신민요) 變調(변조)아리랑 이 실려있는바
1936년, 4월 발간 三千里(삼천리)紙(지)-------------------------------------------------------에는
四月號(4월호)
禁止(금지)된 레코드 一覽表(일람표)
年月日(년월일), 理由(이유), 名稱(명칭) 레코드 種類(종류) 番號(번호) 演奏者(연주자)氏名(씨명)
八八九(팔팔구)治安(치안) 新民謠(신민요)victor 49204 이고범 이애리수---------------------------------------------라고 表記(표기)해서 “治安妨害(치안방해)” 를 理由(이유)로 禁止曲(금지곡) 딱지가 붙었음을 알게합니다
그녀는 또 韓國(한국)大衆歌謠(대중가요)史(사) 最初(최초)의 debut 曲(듀엣곡) 왕평사, 전수린곡<님그리워 타는가슴>을 스승 전수린과 발표하기도 했읍니다
1932년, 3월경 49122번으로 이서구사 文藝部編曲(문예부편곡)<신아리랑>과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무렵 victor-record 서 發行(발행) 된 歌詞(紙(가사지)-------------------------------------------------에는
v-49122-a 流行歌(유행가) 新(신) 아리랑 victor 文藝部(문예부) 編曲(편곡) 獨唱(독창) 이애리수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v-49122-b 流行歌(유행가) 님그리워 타는가슴victor 文藝部(문예부) 編曲(편곡) 獨唱(독창)
이애리수, 전수린 管絃樂(관현악)반주--------------------------------------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하고 있으나 “獨唱(독창)”이 아니라 “debut-듀엣-“으로 表記(표기)함이 옳습니다
그녀가 취입한 또한곡 <江南(강남)제비>는 음반번호 49096 으로<放浪歌(방랑가)>와 함께 실려있습니다
1935년, 2월 발행 victor-record 每月(매월)新譜(신보)-------------------------------------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歌(유행가) 新民謠(신민요)
49096 流行歌(유행가) 放浪歌(방랑가) 李愛利秀(이애리수)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江南(강남)제비--------------------------------------------------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Victor-record -49000 빅터 正規盤(정규반)은 1929년, 1월부터 發賣(발매)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37년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音盤番號(음반번호) 49105 가 1932년 3월발매, 김연실의<적조>49072 가<세동무>가 49082 로 1930년 초 발매이므로 이므로 <강남제비-49096> 은 이무렵 發賣(발매)로 보입니다
“荒城(황성)옛跡(적)” 한곡만으로도 이미 韓國大衆歌謠史(한국대중가요사) 에 빛나는 별인 이애리수씨는 또한곡의 힛트곡 이현경사 전수린곡<고요한 장안>이 日本語(일본어)으로 飜案(번안)되어 일본까지 알려지며 강석연과 함께 韓國歌謠(한국가요) 黎明期(여명기)를 華麗(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이헣듯 人氣絶頂(인기절정)에 올랐으니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되고 그야말로 절정의삶을 살아야 했으나 막상 私生活(사생활)은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처지였으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해졌고 드디어 연희전문 학생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학생도 윤심덕과 마찬가지로 이미 결혼한 아내가 있었고 이룰수없는 사이라고 체념한 두사람은 1933년, 1월 약을 마시고 情死(정사)를 시도하고 맙니다
그무렵 상기곡<버리지 말아요>를 마치 自己身世(자기신세)를 恨歎(한탄)하듯 불렀습니다
다행히 두사람은 목숨을 건져 兩家(양가) 父母許諾(부모허락)하에 同居(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남자가 본처와 別居(별거)는 했으나 離婚(이혼)을 한 것이 아니어서 2년후인 1935년 本妻(본처)가 이들사이로 돌아오자 三角關係(삼각관계)가 되고맙니다
이에 그녀는 다시 세상을 悲觀(비관)하여 또다시 自殺(자살)을시도 결국 未遂(미수)에 그쳤으나 그후 그녀는 정식아내가 되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歌手生活(가수생활)을 완전히 접고 演藝界(연예계)와 철저히 끊은채 平凡(평범)한 아내와 어머니로만 살았습니다
1960년대 그녀가 平凡(평범)한 主婦(주부)로 생활하고 있다고 記事(기사)가 雜誌(잡지)에 실린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후로 어떠한 소식도 公式的(공식적)으로 確認(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해서 1990녀대 이후로는 그녀가 (高齡(고령))이미 世上(세상)을 떠났을것으로 막연한 推定(추정)이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10월경”傳說(전설)의 女歌手(여가수)” 이애리수가 98살의 高齡(고령)으로 生存(생존)해있음이 確認(확인)한 記事(기사)가 일대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여러곡중<바리지 말아요><님그리워 타는가슴>은 특히 再照明(재조명) 되어야 할 노래입니다
1359--再照明(재조명)-카
오락가락 無心(무심)타 쓸쓸한 世上(세상)
누굴믿고 산단말요 누구를 믿어요
울며 불며 느끼며 님을 안고서
山(산)을두고 맺은 言約(언약) 煙氣(연기)와 같고나
믿지 못할 사랑을 믿었던 罪(죄)로
傷(상)한가슴 홀로안고 끝없이 헤매네
歎息(탄식)한다 가신님 올리 없지만
임에바친 사랑이라 잊을길 없고나------------------------------------------------전수린사,곡 손금홍노래,無情(무정)>
1935년, 2월 victor-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歌(유행가) 無情(무정) 全壽麟(전수린) 詞(사),曲(곡) 孫錦紅(손금홍)
베짜는 處女(처녀) 高馬夫(고마부) 作詩(작시) 全壽麟(전수린) 作曲(작곡) 李銀波(이은파)-------------------------------------------라고 紹介(소개) 하고 있습니다
이무렵 victor-record 서 發行(발행)한 歌詞(가사)紙(지)---------------------------------------------------------------에는
v-49305-a 無情(무정) 全壽麟(전수린) 作詩(작시), 作曲(작곡) 獨唱(독창) 孫錦紅(손금홍) 伴奏(반주) 빅타 管絃樂團(관현악단)
v-49305-b 베짜는 處女(처녀)<別乾坤(별건곤) 縣賞募集(현상모집) 一等(일등) 當選(당선)詩(시) 高馬夫(고마부) 作詩(작시) 全壽麟(전수린) 作曲(작곡) 獨唱(독창) 李銀波(이은파) 伴奏(반주) 빅터 管絃樂團(관현악단)------------------------------------라고 表記(표기) 선전 하고있습니다
當時(당시) 聲樂家(성악가)에게나 부쳐주는 호칭을 大衆歌手(대중가수)인 손금홍, 이은파 씨에게도 사용하고 있어서 異彩(이채)롭습니다
1934년 victor-record 서 流行歌(유행가)로 全壽麟(전수린)(詞(사)), 曲(곡)으로 孫錦紅(손금홍)노래로 發表(발표)했습니다
sp음반으로 他面(타면)에는 高馬夫(고마부) 詞(사) 全壽麟(전수린) 曲(곡) 李銀波(이은파) 노래< 베짜는 處女(처녀)>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베짜는 處女(처녀)>는 다시 雜誌(잡지)”別乾坤(별건곤)” 縣賞募集(현상모집) 1等(등)當選(당선) 곡 이었읍니다
손금홍이 부른49305<無情(무정)>과 같은時期(시기) 異河潤(이하윤) 詞(사)로 똑같이 전수린 작곡한 김복희가부른 49304<哀想曲(애상곡)> 이 크게 힛트를 했습니다
두곡의 한결같이 繼續(계속)되는 人氣(인기)는 드디어<無情(무정)>의 뒷면을 같은 손금홍의<임맞이배>로 로 再編集(재편집)하게 만듭니다
<哀想(애상)曲(곡)>도 뒷면의<바다는 부른다>를 같은 김복희의< 어디를 갈가>로 재편집해야 했읍니다 이는 販賣高(판매고)를 올리고자 한 레코드 販賣戰術(판매전술)입니다
그러하니 홍보부에서는 새롭게 선전물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때 술집에 들어서면<무정>노래에 파묻히곤 했습니다
상기곡<無情(무정)>은 美男歌手(미남가수)로 膾炙(회자)되고있는 崔南鏞(최남용) 이 1939년 춘원 이광수 原作(원작) 영화에 直接出演(직접출연)도하고 主題歌(주제가)로 부른 同名異曲(동명이곡)”無情(무정)”과 混亂惹起(혼란야기) 가요이기도 합니다
허나 아직 音源(음원)이 발굴되지못해 情報未備(정보미비)의 최남용의 노래와는 전혀다른 노래입니다
한편 상기곡<無情(무정)>은 아세아레코드 발매 sp음반에 秋美林(추미림) 改詞(개사) 로 황금심씨가 remake 해서 발표했습니다
他面(타면)에는 추미림개사 김용대곡 김용만노래<靑春(청춘) 의꿈>이 실려있습니다
歌手(가수) 孫錦紅(손금홍) 은 서울소리의 女流名唱(여류명창) 이라는 紀錄(기록)이있을뿐 상세한 profile-프로필-은 確認(확인)不可(불가)입니다
“女流(名唱(여류명창)” 을 確認(확인)시켜주는 廣告(광고)가 보입니다
음반번호 49332 로< 俗謠(속요)< 노랫가락>< (倡夫打令(창부타령)>가 손금홍 목소리로 발매되었읍니다
음반번호 49334 가 1935년 1월발매이므로 이시기 발매가 確實(확실)합니다
1935년, 8월 victor-record 朝鮮盤(조선반) 九月(구월) 新譜(신보)------------------------------에는
거리의 人氣盤(인기반)!!
俗謠(속요) 노랫가락 孫錦紅(손금홍)< 0樂(악)伴奏(반주)> 49332
倡夫打令(창부타령)------------------------------------------------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5년 10월 廣告(광고)-----------------------------------------------------------------------------에는
四九三三二 俗謠(속요) 노랫가락 孫錦紅(손금홍) 0樂(악) 李炳祐(이 병우) 杖鼓(장고) 金振(김진) 0
창부타령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음반은 再版(재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기곡<無情(무정)>은 손금홍이 名唱生活(명창생활)중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노래로 부른 것으로 작곡을 한 전수린이 그녀의 삶을 위로 하면서 작곡을 해주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녀는 1933년, 12월 victor-record 서 이고범사, 김교성곡49252< 안개같이 사라지오> 를 김억사, 김교성곡 강석연노래< 눈물의 지친 꽃>과 함께 發表(발표)하며 歌謠界登場(가요계등장) 했습니다
1935년, 2월 victor-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歌(유행가) 눈물에 지친꽃 金億(김억) 作詞(작사) 金敎聲(김교성) 作曲(작곡) 姜石燕(강석연)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안개같이 사라지오 李孤㠶(이고범) 作詞(작사) // 孫錦紅(손금홍)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라고 表記(표기) 紹介(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時期(시기) 49257 김안서사, 김교성곡 <놀고지고>를 강홍식, 전경희, 전옥, 등과 함께 불렀습니다
1935년, 2월 發行(발행) victor-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歌(유행가) 갈바람은 산들산들 金億(김억)作詩(작시) 全壽麟(전수린) 作曲(작곡) 全景希(전경희) 姜石燕(강석연) 管絃樂(관현악) 伴奏(반주)
놀고지고 金岸曙(김안서) 作詩(작시) 金敎聲(김교성) 作曲(작곡) 강홍식, 전희경 손금홍 管絃樂(관현악) 伴奏(반주)------------------------------------------------------------ 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김안서사, 김교성곡<꽃이 필 때> 이고범사, 전수린곡< 잊었던 꿈길>과 함께 발표했습니다
1934년들어서, 2월 이고범사, 전수린곡< 노자 님아>를 全京希(전경희)와 함께 불렀습니다
他面(타면)에는 이청암사, 김교성곡 강홍식, 전옥듀엣의<어슷비슷>이 보입니다
이어서 이고범사, 전수린곡< 때이른 靑春(청춘)>을불렀고 他面(타면)에는 김안서사, 전수린곡 최남용의< 내가 우노라>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1934년 4월21일경 jodk-京城放送局(경성방송국)- 에 출연하여 전수린곡<落花巖(낙화암)><그대오는 거리>< 꽃각시 설움><상사타령><잊었던 꿈길> 김교성곡<님 오실 거리>을 노래 불렀습니다
이어서 特異(특이)한 것은 1935년 2월에는 洋樂先驅者(양악선구자) 洪蘭坡(홍난파)가 “羅素雲(나소운)” 이란 또다른 藝名(예명)으로 大衆歌謠(대중가요)를 創作時(창작시) 金八蓮(김팔연) 作詞(작사)로<人生(인생)은 三十(삼십)부터>라는 作品(작품)을 받아서 吹入(취입)합니다
他面(타면)에는 流行歌(유행가) 韓(한)사 全壽麟(전수린) 曲(곡) 韓晶東(한정동)詞(사) <애닯은 便紙(편지)>가 孫錦紅(손금홍)노래로 실려있습니다
1935년, 2월2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victor-record 廣告(광고)--------------------------------------------에는
三月(삼월)新譜(신보)
流行歌(유행가) 애닯은 便紙(편지) 孫錦紅(손금홍)
人生(인생)은 三十(삼십)부터 李一男(이일남) 孫錦紅(손금홍)-------------------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935년, 10월 victor-record 發行(발행) 新譜(신보)紙(지)------------------------------------에는
流行歌(유행가) 애닯은 便紙(편지) 孫錦紅(손금홍)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高載德(고재덕)>
人生(인생)은 三十(삼십)부터 李 一男(이일남) 孫錦紅(손금홍)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360- 再照明(재조명)-파
청치마 밑에다 燒酒(소주)병 차고요 오호호오
동수풀로 오호호 님 찾아간다
네가 잘나서 一色(일색) 이드냐 아하하 내눈이
어두워 어허허 환장이로다
오르며 내리며 찬기침 소리에 에헤헤 열녀 라도요
오호호 사차불피 로다
깨쭈 박이요 이쭈 박이요 오호호 늙지를 말구요
오호호 요만 합시다------------------------------------作詞(작사), 作曲(작곡) 未詳(미상) 金蓮實(김연실)노래<舟(주)의 歌(가)뱃노래>
上記(상기)曲(곡)은 1930년 victor-record 발매 sp음반으로 작사곡 미상 김연실 목소리로 발매
他面(타면)에는 <赤鳥(적조)>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음반번호 49072>
이무렵 victor-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v-49072-a 流行唱歌(유행창가) 舟(주)의 歌(가) 뱃노래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
victor-40972-b 流行唱歌(유행창가) 赤鳥(적조))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韓國歌謠史(한국가요사) 草創期(초창기) 호칭인 “流行唱歌(유행창가)”라는 表記(표기)와 大衆(歌手(대중가수)를 獨唱(독창)이라한 점이 異色的(이색적)입니다
이곡은 1929년 발매를 시작한 victor-record 사에서 1년여만에 俳優(배우)가 本業(본업)인 김연실이 레코드 가수로 노래를 취입함으로써 그녀의 고운음성이 大衆(대중)演藝界(연예계)에 알려졌다는걸
반증하는것으로 매우 異色的(이색적)인 일입니다
上記歌謠(상기가요)를 발매한 日本(일본) victor-record 는 1927년 9월 일본에 現地法人(현지법인)으로 세운 音盤社(음반사)입니다
처음부터 record 錄音史(레코드 녹음사사) 革新的(혁신적)인 기술인 電機錄音(전기녹음) 技術(기술)을 도입하여 음반을 제작했기에 音質(음질)이 매우 優秀(우수)한 것으로 定評(정평)이 나있습니다
韓國音樂(한국음악)錄音(녹음)은 1928년, 6월경 victor 技術陣(기술진)이 서울에 와서”조선이왕직 아악부”음반과 다수의 韓國音樂(한국음악)을 錄音(녹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Victor 음반은 1929년 초부터 발매를 시작하여 일제말까지 Columbia-record 와 양립하면서 韓國音盤市場(한국음반시장)을 主導(주도)했습니다
빅타 正規盤(정규반)에 해당하는 victor 4900~49491은 廉價普及(염가보급)盤(반) 에 해당하는 victor junior kj 1001~1385 大宗(대종)을 이룹니다
音盤(음반)番號(번호)-49072 에 이어서 김연실은 49082번인 <落花流水(낙화유수)> <三乞人(삼걸인)세동무>를 실은 음반을 또 발매합니다
이무렵 victor-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音盤label-음반라벨>--------------------------------에는
V49082-a 映畵小唄(영화소패) 落花流水(낙화유수)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
Victor49082-b 映畵小唄(영화소패)) 세동무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
1935년, 2월 發行(발행) victor-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
<總(총)目錄(목록)>
流行歌(유행가) 落花流水(낙화유수) 金蓮實(김연실) 管絃樂(관현악)伴奏(반주)
세동무 라고 表記(표기) 하고 있읍니다
現在(현재)의 映畵主題歌(영화주제가)에 해당하는 “映畵小唄(영화소패”라는 稱號(칭호)가 매우 興味(흥미)롭습니다)
상기 영화<낙화유수>는 <종횡무진 가요사>에서 여러 번 說明(설명) 드렸듯이 1927년 10월 6일부터 10월27일까지 團成社(단성사)에서 開封(개봉)했고 영화를 감독한 이구영의 여동생이요 동요가수인 이정숙이 上映(상영)館(관) 꼭대기에 올라가 직접 주제가를 live 로 불렀고 그무렵 단성사에는 백우용이 管絃樂團(관현악단)을 지휘하고 있었으므로 伴奏(반주)는 이악단이 해주었을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노래가 인기가 상승하자 이정숙이 1929년 渡日(도일)하여 日本(일본) Columbia 管絃樂團(관현악단) 伴奏(반주)로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1929년 4월 Columbia-40016로 “제2회발매”로 發表(발표)합니다
他面(타면)에는 <쟈라메라>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렇게 이정숙의 노래가 人氣(인기)를 끌자 上記(상기)했듯이 victor-record 서도 김연실을 招待(초대) 이곡을 remake 했읍니다
김연실의<세동무> 의 더자세한 설명은 <종횡무진 가요사1000> 참조
콜롬비아 1회발매는1929년, 2월 테너 安基永(안기영) 의 멕길작 <뚜나>베르디작곡 歌劇(가극) < 리골렛토>였으며 Columbia-40001 였습니다
내친김에 김연실은 victor-49087로 童謠(동요)와 映畵小唄(영화소패)를 또 發表(발표)하며 그人氣(인기)를 높여갑니다
그무렵 victor-record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V49087-a 童謠(동요) 椰子樹(야자수)의 그늘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
Victor49087-b 映畵小唄(영화소패) 雙玉淚(쌍옥루)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victor 樂團(악단)-------------------------------이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상기영화<쌍옥루>는 당시 映畵界(영화계)에 종사하던 박정현, 이복익, 이구영, 이필우, 정암등은 薰井洞(훈정동) 46번지에 高麗(고려)영화제작소를 새롭게 창설하고 일본의 국자유방의 원작인<나의 죄>를 脚色(각색)하여<쌍옥루> 전, 후편을 제작했습니다
<쌍옥루>의 더자세한 설명은 <종횡무진 가요사 989>를 참조바랍니다
1927년 nipponophone 에서 流行歌(유행가) 서달성 피아노 임평남 바이얼린 伴奏(반주)로 이남사노래인<쌍옥루><명주수건>이 발매됩니다
그리고 이남사의<쌍옥루>가 인기를 끌자 victor-에서 또다시 김연실 목소리로 remake 합니다
헌데!!! 上記歌謠(상기가요) 49072<舟(주)의歌(가) 뱃노래>를 김연실이 吹入前(취입전) 49071 인<아르렁><暗路(암로)>가 실린 音盤(음반)을 먼저 發賣(발매)했습니다!!!
이무렵 victor-record 發行(발행) 歌詞(가사)紙(지)-----------------------------------에는
V49071-a 映畵小唄(영화소패) 아르렁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
V49071-b 映畵小唄(영화소패) 暗路(암로) 獨唱(독창)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日本(일본) victor 樂團(악단)------------------------------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5년, 2월 발행 victor-record 발행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總(총)目錄(목록)>
新民謠(신민요) 아리랑 金蓮實(김연실) 管絃樂團(관현악단) 伴奏(반주)
어둔길-----------------------------------라 表記(표기)하고 있읍니다
歌詞(가사)紙(지)에선 “映畵小唄(영화소패)” 라 하던 장르를 每月(매월)新譜(신보)紙(지)에선 “新民謠(신민요)”라 表記(표기)하고 있어서 결국에는 映畵(영화)主題歌(주제가) 이면서 新民謠(신민요)로 분류된다는 意味(의미)인것으로 理解(이해)됩니다
김연실의<아르렁>의 더자세한 설명은 <종횡무진 가요사 995>를 참조
<暗路(암로)>는 <종횡무진 가요사 1001> 참조
1932년 5월 chieron-record 서도 김연실 發表曲(발표곡)이 發見(발견)됩니다
1932년, 5월28일, 6월 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流行小曲(유행소곡) 아버지 金蓮實(김연실) 伴奏(반주) chieron 管絃樂團(관현악단)
北國(북국)벌판----------------------------------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회사chieron-record-시에론 레코드-는 1931년, 11월부터 韓國(한국)音盤(한국음반)을 발매하기 시작 1935년 후반까지 이어집니다
日本(일본) 東京(동경)에 本社(본사)를 두고 서울에 지사를 둔 小規模(소규모)의 純粹(순수)한 日本(일본)레코드사 였습니다
허나 歌謠皇帝(가요황제) 南仁樹氏(남인수씨)가 이회사를 통하여 singer debut-가수데뷔-를 했다는 事實(사실)만으로도 記憶(기억)해야 할 레코드사 입니다
Ch-1 신카나리아<사랑아 曲折(곡절) 없어라> 전수린< 한숨고개>를 처음 發賣(발매)했으나 곧 治安妨害(치안방해)를 이유로 禁止曲(금지곡)이 되고맙니다
1933년, 3월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c-34 流行歌(유행가) 우는 아가씨 金蓮實(김연실)
잘있거라 동무들-----------------------라고 宣傳(선전) 하고있습니다
1933년 4월발행 chieron-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Chieron news-시에론 뉴스- 第(제) 十七號(17호)
// // 第(제)二十號(20호) <1933년, 7월>
三十四(34 ) 流行小曲(유행소곡) 우는 아가씨 金蓮實(김연실)
잘있거라 동무들-------------------------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읍니다
興味(흥미)로운 것은 Chieron-news-시에론뉴스-라는 弘報手段(홍보수단)이 登場(등장)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守一(수일)과 順愛(순애)”라는 新派物(신파물)을 “戀愛悲劇(연애비극)” genre-장르-로 表記(표기) 한<西洋(서양) 長恨夢(장한몽) >에 김연실이 徐月影(서월영)등과 登場(등장) 俳優本業(배우본업)으로 復歸(복귀)하여 음반을 發賣(발매)하고 있습니다
1932년, 5월28, 6월7일 東亞(동아)日報(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c-37 演劇(연극) 西洋(서양)長恨夢(장한몽) 徐月影(서월영) 金蓮實(김연실)--------------------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헌데 chieron-news –시에론뉴스-에서는 “漫曲(만곡)” “漫劇(만극)” 이라는 genre-장르-名稱(명칭)을 使用(사용)하고 있읍니다
1932년 7월 4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선
또한곡의 流行小曲(유행소곡)을 紹介(소개)하고 있어서 김연실의 歌手(가수)로서 높은 人氣度(인기도)를 證明(증명)하고 있읍니다
七回 新譜(7회신보)
流行小曲(유행소곡) 사랑의 노래 金蓮實(김연실) 시에론 管絃樂團(관현악단)
봄노래 徐淑子(서숙자)---------------------------------------------------------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읍니다
1933년, 4월 每月(매월)新譜(신보) chieron news-시에론 뉴스- 第十八號(제18호),
1937년 7월 chieron-news –시에론뉴스- 第 三十號(제 30호)--------------------------------에는
<總(총)目錄(목록)>
三十九(삼십구) 流行小曲(유행소곡) 봄노래 徐淑子(서숙자))
사랑의노래 金蓮實(김연실) -----------------------------------라고 表記(표기) 하고있습니다
또한곡<江南(강남)제비>를 1932년, 5월경 chieron-record 서 김연실이 發表(발표)했다는 紀錄(기록)이 있으나 音源(음원)未發掘(미발굴) 상태입니다
1361-再照明(재조명)
映畵俳優(영화배우), 演劇俳優(연극배우), 歌手(가수) 어느한 職業(직업)으로 局限(국한)시키기 어려운 김연실씨는 평양출신으로 평양보통학교를 마쳤다는 說(설) 평북 성진군수와 황해도 해주군수를 지낸 김연식의 따님으로 수원에서 태어나 상일여고를 나왔다는 說(설) 이 共存(공존)합니다
일찍 세상을떠난 團成社(단성사) 辯士(변사) 김학근의 누이동생으로 映畵界入門(영화계입문)했으며 그의 동생 김학성은 映畵(영화) 撮影技師(촬영기사)로 활동하고 후일 映畵俳優(영화배우) 최은희의 첫남편이 됩니다
1927년경 나운규의 첫영화<잘있거라>에 출연으로 俳優生活(배우생활)을 시작<철인도><세동무>에 출연하며 주목을받고 <종소리>< 승방비곡>에 출연, 이무렵 연극에도 출연 토월회를 시작으로 태양극단서 활동합니다
1937년 東亞日報(동아일보)에 의하여 出演作品(출연작품)수가 가장많은 俳優(배우)로 선정됩니다
그녀의 따님인 金桂子氏(김계자 씨)는 “부길부길 show-쇼-“의 윤부길의 따님 윤복희, <꿈에본 내고향>의 송달협의 따님 송영란씨등과 함께 二世(이세) 演藝人(연예인)으로 活動(활동) 했습니다
Pop-singer 카니프란시스의<little baby>를 “귀여운 베이비”<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성자의 행진”으로 飜案(번안)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大衆歌謠(대중가요) 吹入(취입)이야기는 앞란서 했고 이란서는 劇盤出演(극반출연)을 따라가 봅니다
“Chieron-record --no72- 續新家庭生活(속 신가정생활)”는
Chieron-record-73 김연실의<내마음도 나룻배><아리링 고개를 넘지미라>가 1932년 12월 발매이므로 이무렵 發賣(발매)되었을 것입니다
이무렵 chieron-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hieron 72-a nonsense-넌센스- 風景(풍경) 續(속) 新家庭生活(신가정생활) 上(상) 孤帆(고범) 李瑞求作(이서구 작) 夫(부) 申不出(신불출) 妻(처) 金蓮實(김연실) 노래 金大根(김대근)
Chieron-72-b nonsense -넌센스-風景(풍경) 續(속) 新家庭生活(신가정생활) 下(하)--//-----------------------//---------------------------------------------------------------------------------伴奏(반주) 시에론 管絃樂團(관현악단)-------------------------------------------------------------------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2년, 12월1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十三回(제13회) 特作(특작) 名優名劇(명우명극)
Nonsense-넌센스-風景(풍경) 續(속) 新家庭生活(신가정생활)
李孤帆作(이고범작) 신불출 김연실-----------------------------------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 chieron-record 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Chieron-news-시에론뉴스-에는 第十七號(제17호)
七十二(72) nonsense-넌센스-風景(풍경) 續(속) 新 家庭生活(신 가정생활) 신불출 김연실
<寫眞(사진)> 金 蓮實孃(김연실양) 시에론 專屬(전속) 藝術家(예술가)
김연실양은 今般(금반) chieron-record 專屬(전속)이 되었습니다-------중략-------
시에론레코드 만으로 들을수있습니다
시에론 팬이여 기뻐하소서
그리고 1936년 4월 三千里(삼천리)紙(지) 禁止(금지)된 레코드 一覽表(일람표) 에
“風(풍)壞(괴)”를 이유로 금지곡에 묶였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1933년 chieron-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hieron-79-a 爆笑劇(폭소극) 익살맞은 대머리 申不出(신불출) 編(편) 尹昌順(윤창순) 作曲(작곡) 老人(노인) 申不出(신불출) 少女(소녀) 金蓮實(김연실)
Chieron-79-b 諷刺喜劇(풍자희극)女天下(여천하) 夫(부) 申不出(신불출) 妻(처) 申銀鳳(신은봉) 아나운서 李春風(이춘풍) 講師(강사) 金蓮(연)實(김연실)
上記(상기) 爆笑劇(폭소극) “익살맞은 대머리”는 <종횡무진가요사 626> 에 더상세한 설명이있읍니다
<前奏(전주)>
夫(부)—아이구나 속상해 마누라님 侍下(시하)에 새벽동자가 이렇게 고달퍼단 말인가??
-----부채질 하는소리------
妻(처)—여보 여보 !!
夫(부)—네~ 인제 기침하셨소??
妻(처)—아 당신은 대관절 불을때우 뭘하우 왼집에다 煙氣(연기)를 피우니 어쩐일이우?
夫(부)—어젯밤에 비가와 장작이 젖어서 잘안타요
妻(처)—뭐? 비가왔어?? 장독은 어찌되었누??
夫(부)—장독은 걱정말아요
妻(처)—걱정 말라니?
夫(부)—반독밖에 안되던 장이 어제비로 가득차게 되었소
妻(처)—뭐?? 그럼 고추장은??
夫(부)—조금 묽어졌어요
妻(처)—아니 아니 왜그래 순진한채 집안일을 모조리 망하게 꾸미드라 어이구 못살아
얌발은??
夫(부)—아침에 빨아널었던게 아직 안말랐어
아나운서—jodk 이제로부터 男性敎化院(남성교화원) 총재 최일구양의 “家庭(가정)에 必要(필요)한 男子(남자)들의 常識(상식)”이라는 題目(제목)으로 講義(강의)가 있겠습니다----------후략---------
---------------------------라고 紹介(소개) 하고 있습니다
1933년, 1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十四回(제 14회) 新譜(신보) 一月十五日(1월15일오일)發賣(발매)
79 爆笑(폭소)劇(극) 익살맞은 대머리 申不出(신불출) 金蓮實(김연실)
女天下(여천하)----------------------------------라고 광고 하고 있습니다
또 1933년 4월 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評判(평판) 높은 레코드 四種(사종)
79 익살맞은 대머리 신불출, 신은봉, 김연실, 이대근, 이춘풍-------------------------------------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 chieron-record news-시에론 뉴스- 第十七號(제 17호)--------------------------에는
七十九(79) 爆笑劇(폭소극) 익살맞은 대머리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
諷刺劇(풍자극) 女天下(여천하)
<寫眞(사진)> 김연실 孃(양) 시에론 專屬 藝術家(전속 예술가)
김연실양은 今般(금반) 시에론레코드 의 專屬(전속) 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吟聲(음성)!! 이기자기한 재능 익살맞은 대머리 속 신가정생활 등에 이미 정평이 있습니다
김연실양의 목소리는 시에론레코드 만으로 들을수 있습니다
시에론 팬들이여 기뻐하소서
이 音盤(음반)은 김연실의 劇音盤吹入(극음반취입))中(중) 최고힛트 盤(반)으로 심지어는 雜誌(잡지) <三千里(삼천리)>紙(지) 에도 선전이 실렸습니다
1933년, 2월 三千里(삼천리) 第五卷(제5권) 第二(제이)號(호)
第十四回(제 14회) 新譜(신보)
一月十五日(1월 15일오일) 發賣(발매)
79 爆笑劇(폭소극) 익살맞은 대머리 申不出(신불출) 金蓮實(김연실) 申銀鳳(신은봉)
女天下(여천하) // //
三俳優(3배우)가 吹入(취입)한 넌센스, 風景(풍경) 과 울음에 목메키는 여급의 하소연----------------------------------------------이리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김연실은 chieron-record 에서 no79인<익살맞은 대머리>의 爆發的人氣(푹발적인기)에 힘입어 연이어서 no 80 에 또 出演(출연)하여 목소리 演技(연기)를 합니다
그무렵 chieron-record 發賣(발매) 音盤(음반)--------------------------------------------에는
盤(반) kab 1383 <갈색반>
Chieron 80—a 演劇(연극) 敵(적)을 사랑하리 醉客(취객) 申不出(신불출) 救世軍(구세군) 金蓮實(김연실), 申銀鳳(신은봉)
Chieron-80-b 笑劇(소극) 수수께기 申不出(신불출) 金蓮實(김연실) 申銀鳳(신은봉)-------------------라고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1933년, 1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十四(제14회)回 新譜(신보)
一月十五日(1월15일오일) 發賣(발매)
80 넌센스 적을 사랑하리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
수수께기---------------------------------------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大衆雜誌(대중잡지) 三千里(삼천리)에도 廣告(광고)가 실렸습니다
1933년, 2월 三千里(삼천리) 第五號(제5호) 第十四回 新譜(제 14회보)
一月十五日(1월15일오일) 發賣(발매)
80 넌센스 적을 사랑하리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
수수께기 // ------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19일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評判(평판)높은 레코드 四種(4종)
수수께기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이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김연실의 인기는 식을줄 모르고 chieron-record no 83 로 이어집니다
1933년 Chieron-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hieron 83-a nonsense-넌센스- 戰場(전장)의 百合花(백합화) 이홍원작 男勇士(남용사) 신불출
女美姬(여미희) 신은봉
Chieron 83-b 才談集(재담집) 겻말 열쇠통 신불출 編(편) 南(남)모보이 신불출 女(여)모걸 신은봉----------아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1933년, 3월3일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Nonsense-넌센스- 爆笑劇(폭소극)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
83 戰場(전장)의 百合花(백합화)
겹말 열쇠통---------------------------------------------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東亞日報(동아일보) 1933년,3월 7일에는------------------------------------
웃음거리 大王(대왕) 戰場(전장)의 百合花(백합화) 신불출, 신은봉 主演(주연)-----------------이라 表記(표기) 하고 있습니다
1933년, 3월25일 東亞(동아)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84----------------------------에는
三月(삼월)新譜(신보)
二十 日 (20일)發賣(발매)
申不出(신불출) 申銀鳳(신은봉) 金蓮實(김연실) 李春風(이춘풍) 主演(주연) nonsense-넌센스- 劇(극)
눈물에 넘치는 大喜劇(대희극) 이世上(세상) 망할世上(세상)
主題歌(주제가) tenor-테너- 金大根(김대근)------------------------------------라고 廣告(광고) 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評判(평판)높은 레코드 四種(4종)
84 이 世上(세상) 망할 世上(세상) 신불출, 김연실, 이춘풍—등------------------------------------라고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Chieron-record-92는 chieron-record no1 이 1932년, 2월발매 no91이 나선교< 미움의나루> 신태봉의< 오는때나 이르시요> 로 1933년 4월 발매이므로 이무렵 發賣(발매)했으리라 믿어집니다
東亞日報(동아일보) 1933년, 4월19일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五月(오월)新譜(신보) 四月十 五日發賣(4월 15일발매)
92 文藝(문예) nonsense-넌센스- 엉터리 放送局(방송국) 申(신) 不出(불출) 金實(김연실)
奇想天外(기상천외) 抱腹絶倒(포복절도) 李孤㠶(이고범) 申銀鳳(신은봉)
1933년, 4월 발행 chieron-record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Chieron news-시에론 뉴스- 第十七號(제17호)
第十七回 新譜(제17회신보)
四月二十五日發賣(4월25일 발매)
92 文藝(문예) nonsense-넌센스- 엉터리 放送局(방송국)上下(상, 하) 作詩(작시) 李紅園(이홍원) 編修(편수) 李孤帆(이고범) 作曲(작곡) 尹昌淳(윤창순) 신불출, 김연실 신은봉
文人(문인) 李孤帆(이고범)氏(씨)의 아나운서로 된 허리꺾고 늘어질만한 우슴거리 입니다
우슴거리 보재기를 펴놓은듯, 뒤를이어 나오는 익살맞고 멋들어진 nonsense-넌센스-
성춘향과 이수일이 정거장에서 만나노는 古今(고금)을 통한 재미있는 레코드 입니다-----------------라고 다소 誇張(과장)된 宣傳(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音盤(음반)chieron -record -104>
1933년, 6월2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十九回(제19회) 新譜(신보)
二十一(이십일) 全鮮發賣(전선발매)
104 nonsense-넌센스- 帝王 篇(제왕편) 李瑞求(이서구)作詞(작사) modern 春香傳(모던 춘향전) 上下(상하) 申不出(신불출) 金蓮實(김연실) 申銀鳳(신은봉) 主演(주연)
이무렵 chieron-record 발맹 歌詞紙(가사지)-----------------------------------------------에는
Chieron 104-a nonsense-넌센스- modern 春香傳(모던 춘향전) 上(상) 夢龍(몽룡) 申不出(신불출) 春香(춘향) 金蓮實(김연실) 香丹(향단) 申銀鳳(신은봉)
Chieron-104-b nonsense-넌센스- // //
//--------------------------------------------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4년, 4월 chieron-record –시에론 레코드-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Chieron news-시에론 뉴스- 第二十九号(제29호)
이 레코드만은 들읍시다!!
Chieron-record 의 자랑
一0四(104) nonsense-넌센스- modern 春香傳(모던 춘향전) 신불출 김연실------------------------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5년, 9월 chieron-record –시에론레코드-發行(발행)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Chieron-record 十月(십월)新譜(신보) 00目錄(목록)
一0四(104) nonsense-넌센스- modern 春香傳(모던 춘향전) 申不出(신불출 金(蓮實(김연실) 申銀鳳(신은봉)
지나간날의 名作品(명작품) 劇(극) nonsense-넌센스- modern 春香傳(모던 춘향전)-------------------------라고 紹介(소개)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音盤(음반) Chieron-record-109>
1933년,,7월24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二回 新譜(제2회보)
七月二十 日 全朝發賣(7월 20일 전조발매)
一0九(109) nonsense-넌센스- 金剛0 月(월) -김강0월- 李鐘哲(김종철) 金蓮實(김연실)-----------------라고 宣傳(선전) 하고있습니다
1937년, 7월 chieron-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Chieron-news-시에론뉴스- 第二十號(제20호)
第二十回(제 20회) 八月新譜(8월신보)
七月二十一(이십일) 發賣(발매)
劇團巨星(극단거성) 李敬0-이경0- 李鐘哲(이종철) 兩氏(양씨) 新吹入(신취입)
一0九(109) 大金剛風景(대금강풍경) 笑0 nonsense-넌센스- 금강ㅇ월
作詞(작사)는 定評(정평)있는 李孤帆(이고범) 主題歌作曲(주제가 작곡) 才人(재인) 白波(백파)
마음에 숨어드는 美聲(미성) 妙音(묘음) 웃는중에 諷刺(풍자)를 느끼는 傑作(걸작)
<寫眞(사진)> 이종철씨
朝鮮演劇(조선연극)0의 喜劇王(희극왕) 이종철씨!
그의 nonsense-넌센스-常識的(상식적)이다
諷刺的(풍자적)이다 어쩄던 욱기자는 엉터리 佳人(가인)이라 世上(세상)을 멋있게 웃기는 紳士(신사)웃음이다
그의게따라 웃는이는 人生(인생)의 모순을 느끼고 世上(세상)의 마음안임을 애달퍼한다
이번 시에론 文藝部(문예부)의 특정을 버리지 않고 吹入(취입)한 명편을 속출 할것이다
109 nosense-넌센스- 김강0월 이종철 김연실-----------------------------------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音盤(음반) chieron-record-112->
1933년, 七月(칠월) chieron-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紙(지)------------------------에는
Chieron-news-시에론뉴스- 第二十號(제20십호)
第二十回(제20회) 八月新譜(8월신보)
七月二十 日 (7월20일십일) 發賣(발매)
劇團巨星(극단거성) 李敬煥(이경환) 李鐘哲(이종철) 兩氏(양씨) 新吹入(신취입)
一一 二 (112) 詩(시)00한 破戒僧(파계승) 情話(정화) 破戒(파계)
作詞(작사)는 定評(정평)있는 李 孤帆(이고범) 主題歌作曲(주제가작곡)은 才人(재인) 白波(백파)
마음에 스며드는 美聲妙音(미성묘음) 웃는中(중)에 諷刺(풍자)를 느끼는 傑作(걸작)
<寫眞(사진)> 李敬煥(이경환)氏(씨)
이경환씨의 演劇人(연극인)으로 서의 生活(생활) 名聲(명성) 演技(연기)!!
그것은 再論(재론) 餘地(여지)가 없다 決定的(결정적)이다
美男(미남)으로서의 그의 半生(반생)은 許多(허다)한 꽃다운 romancr-로맨스- 薔薇(장미)꽃 그늘에서 노래속에 북돋아 왔다
美聲(미성)의 主人公(주인공) 애끓는 사랑의 主人公(주인공)!!
그의 人氣(인기)는 바야흐로 무르녹아 境地(경지) 眞景(진경)에 들어갈 때이다
레코드로써 그의 목소리 眞技(진기)를 接(접)하게되기는 record fan-레코드팬- 여러분의 다시없을 기쁨일것이다
112 詩劇(시극) 破戒(파계) 李孤帆 作詩(이고범 작시) 白波作曲(백파 작곡) 李敬換(이경환) 金蓮實(김연실)-------------------------------------라고 긴文句(문구)로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3년, 7월24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第二十回(제20회) 新譜(신보)
七月二十 日 全朝發賣(7월20일 전조발매)
一一二 (112) 詩劇(시극)?? 破戒(파계) 李敬煥(이경환) 金蓮實(김연실)--------------------------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해가지나 1934년, 4월 chieron-record 발행 每月(매월)新譜(매월신보) ---------------------------에는
chieron-news-시에론 뉴스- 第二十九回(제29회) <總目錄(총목록)>
1934년 6월 chieron-news-시에론뉴스- 第(제) 三十一号(31호) 總目錄(총목록)>-----중략------ 1935年(년) 四月(4월) 第四十號(제40십호) 總目錄(총목록)-----------------------------------------에는
一一二(112) 詩劇(시극) 破戒(파계) 金蓮實(김연실) 李敬煥(이경환)------------------------------------이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上記音盤(상기음반)들 이외도< nonsense-넌센스- 第三(제삼)新家庭(신가정)><넌센스 빨래군 숫장사><넌센스 공설카페><홍등야화 애련비련><넌센스 따로따로 놀자><넌센스 天國(천국)行(행) 特急(특급)><童歌(동가)劇(극) 달님과 개구리><넌센스 창살괴도><넌센스 덥석부리 만세><가정극 맹꽁이 이야기><넌센스 벽창호전보><映畵(영화)劇(극) 新家庭(신가정)生活(생활)>-------등등을 發賣(발매)했습니다
1362- 再照明(재조명)
李京雪(이경설)은 흔히들 알고있는 全玉(전옥) 以前(이전) “눈물의 女王(여왕)” 혹은 “新派(신파)의 女王(여왕)”으로 紀錄(기록)되고있는 女俳優(여배우) 입니다
허나 그時節(시절) 흔히 그랬듯이 女俳優(여배우) 한 役割(역할)에 머물지않고 歌手(가수)로도 招待(초대)되어서 歌謠(가요)를 吹入(취입)했습니다
“눈물의 여왕” 이라는 稱號(칭호)는 흔히 全玉(전옥)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全玉(전옥)은 實際(실제)로 눈뜨고 우는 演技(연기)로 어떠한 狀況(상황)이 닥쳐도 舞臺(무대)에서는 웃지않는 冷靜(냉정)한 얼굴로 無表情(무표정)한 모습으로 當代(당대)의 觀客(관객)들에게 깊은 印象(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全玉(전옥)도 이경설이 생존하던 당시에는 “눈물의 女王(여왕)”이라는 稱號(칭호)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경설과 전옥은 朝鮮硏劇舍(조선연극사) 라는 공통의 극단을 거쳐갔고 이정기간 함계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實際(실제)로 朝鮮硏劇 舍(조선연극사) 創立團員(창립단원)에 두사람의 이름이 들어있습니다
이경설이 연극시장으로 옮기고 난 이후에애 전옥은 그 代役(대역)으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꽃피울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1912년 강원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成長(성장)한곳은 청진으로 그녀는 청진을 실제 고향으로 지칭했습니다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했고 배우가 되기위하여 떠날때까지 살았습니다
이란은 그녀의 吹入(취입)歌謠(가요)를 再照明(재조명) 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演技履歷(연기이력)은 다음 機會(기회)로 미룹니다
그녀는 그時期(시기) 代表的(대표적) 大衆歌謠(대중가요) “荒城(황성)의 跡(적)”을<古城(고성)의밤> “放浪歌(방랑가)”를 1절 導入部(도입부) 피식은 젊은이 눈물에 젖어 落望(낙망)과 설음에 병든 몸으로---에서 題目(제목)을 借用(차용) <피식은 젊은이>로 改題(개제) “강남제비”는<그리운 그대>로 개제 發表(발표)했습니다
헌데 chieron-record 서 1932년 流行小曲(유행소곡) 放浪歌(방랑가)를 이경설 전수린 듀엣의<외로운 꽃>과 함께 발표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no22 입니다
原題目(원제목) <荒城(황성)의 跡(적)>인 <古城(고성) 의 밤>은 1933년, 3월 polydor-record-19052-로 발표했습니다
他面(타면)에는<옛고향터> 가 실려있습니다
1933년, 3월1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三月新譜(3월신보)
流行小曲(유행소곡) 古城(고성)의 밤 李京雪(이경설)
옛 故鄕(고향)터
天才的0感美音(음) (천재적0감음미음)가진 李京雪(이경설)이 流行小曲(유행소곡)”古城(고성)의밤” 의 特性(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었다
1933년, 3월21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광고)---------------------에는
流行歌傑作集(유행가집)
古城(고성)의 밤 李京雪(이경설)
옛 故鄕(고향)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3년 polydor-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朝鮮盤(조선반) 九月新譜(9월신보)
0 發賣(발매) 總目錄(총목록)
一 九0五二(19052) 古城(고성)의 밤 李京雪(이경설) 伴奏(반주) 폴리돌 管絃樂團(관현악단)
옛 故鄕(고향)터 // 伴奏(반주) 폴리돌 맨돌린 구락부------------------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原題目(원제목) <放浪歌(방랑가)>인 <피식은 젊은이>는 1931년 2월 tombo-record -500 임01로 발매했습니다
他面(타면)에는 “허영의 꿈” 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1931년, 1월24일,2월 4일, 2월 7일, 2월14일 朝鮮日報(조선일보) tombo-record 廣告(광고)-----------------------------에는
電氣吹入(전기취입) 第0回新譜(제0회신보) 定價(정가) 一枚(1매) 金(금)一(일) 0
流行小曲(유행소곡) 피식은 젊은이 李京雪(이경설) 伴奏(반주) 管絃樂(관현악)
허영의 꿈-------------------------------------------------------------------------------------------라고
表記(표기)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1년, 2월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tombo-record 廣告(광고)-----------------------------에는
電氣吹入(전기취입) 第0 回(제0회) 新譜(신보) 定價(정가)-------
流行小曲(유행소곡) 피식은 젊은이 李京雪(이경설) 伴奏(반주) 管絃樂(관현악)
허영의꿈-------------------------------------------------------------------------------------라고 宣傳(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 chieron-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紙(매월신보지)-----------------------------에는
Chieron news-시에론뉴스- 第十七回(제17회)
0發賣(발매)
二十二(22) 流行小曲(유행소곡)
放浪歌(방랑가) 李京雪(이경설)
외로운 꽃 全壽麟(전수린)---------------------------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1933년 7월 chieron-news-시에론뉴스---------------------------------------------에는
第二十號(제20호)
總目錄(총목목록)
放浪歌(방랑가) 李京雪(이경설) ----------------------------라고 “放浪歌(방랑가)” 原題目(원제목)으로 紹介(소개) 하고있어서 異彩(이채)롭습니다
이어서 이경설은 1932년, 2월 chieron-record 서 流行小曲(유행소곡)으로 <溫陽(온양) 溫泉(온천)의노래> 를 姜琴子(강금자) 의 <明沙十里(명사십리)>와 함께 發表(발표)했습니다 <13>
1933년, 3월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hieron-record 廣告(광고)-------------------에는
流行歌(유행가)
13 溫陽溫泉(온양온천)의 노래 李京雪(이경설)
明沙十里(명사십리) 姜琴子(강금자)---------------------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933년, 4월 chieron-record 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Chieron-news-시에론뉴스- 第十七號(제17호) 0發賣(발매)
十三(13) 流行小曲(유행소곡) 溫陽溫泉(온양온천)의노래 李京雪(이경설)
明沙十里(명사십리) 姜琴子(강금자)
1933년 7월 chieron-news-시에론뉴스- 第二十號(제20십호)-----------------------에는
總目錄(총목록)
流行(유행)小曲(소곡) 溫陽溫泉(온양온천)의 노래 李京雪(이경설)
明沙十里(명사십리) 姜琴子(강금자)-----------------------------------------------------------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原題目(원제목)이<江南(강남)제비>인”그리운 그대”는 tombo-record 500 임07로 1931년 2월경 發賣(발매)했습니다
1931년, 1월24일, 2월4일, 2월7일, 2월14일 朝鮮日報(조선일보) tombo-record 廣告-광고---------------------------------------에는
新發賣(신발매)
流行小曲(유행소곡) 그리운그대 李京雪(이경설) 伴奏(반주) 管絃樂(관현악)-------------------라고
表記(표기)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1년2월 4일 東亞日報(동아일보) tombo-rec cord 廣告(광고)-----------------------------------에는
新發賣(신발매)
流行小曲(유행소곡) 그리운그대-江南(강남)제비- 李京雪(이경설 伴奏(반주) 管絃樂(관현악)-----------------이라고 朝鮮日報(조선일보) 와 비슷한 내용으로 宣傳(선전)하고 있읍니다
決論的(결론적)으로 이경설씨는<荒城(황성)의 跡(적)><放浪歌방랑(가)><江南(강남)제비> 등 그時節(시절) 最高(최고)힛트 大衆歌謠(대중가요)를 歌謠界(가요계)에 招待(초대)되어 전부 remake 할 정도로 有名稅(유명세)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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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홍으이 부족합니다
한번더 부탁합니다 더많은 호응이 필요합니다
@남인수 아주 실망스런 반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