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수정 교수의 대파 사건을 보면서 경선판은 대파정국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한 편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 교수 학자가 되는 것은 이른바 사바사바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학과대표를 하다보니 문과대 학장실에 몇 차례 들리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로 학과 교수들이 학장실에 인사하러 온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교수들이 학장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종처럼 설설 긴다. 주인 앞의 강아지다. 와....교수란게 좃도 아니네.... 학장에게 개처럼 꼬리치는데 총장 앞에가면? 총장 보다 높은 이사장 앞에 가면 이건 뭐지? 사립대 이사장들이 교수들 알기를 수족이나 종처럼 여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학 동기 중 하나는 남해 촌놈이었는데 바보 머저리 같았다. 헌데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등 집안 일가가 서울에서 크게 출세한 집안이다. 얘 집안은 막내에 머리가 나빠 남해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고 나름 남해 유지지만 친인척들은 비교불가의 집안이다. 바보인 이 막내 집안 빼놓고는 다들 서울대 연고대 이화여대다. 특히 18살 많은 사촌형은 연세대 경제학과 수석이었는데 1960년대 독일에서 실존철학으로 박사 받고 온 이규호가 연세대에서 철학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울대 학생들이 청강생으로 몰려와 항상 대강당에서 강의를 해야했다.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 박사에 최신 철학인 실존철학을 국내에 보급하자 1960년 중반에서 1980년 초반까지 실존철학 붐을 일으켰다. 이 당시 실존철학을 모르면 무식함의 표상이었다. 하다못해 제비족도 실존철학을 공부해서 그걸로 여자들을 유혹했다. 가짜 대학생 치고 실존철학자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등을 언급하지 않는 놈이 없었다. 이 이규호의 강의 듣고 철학과로 전과한 그는 독일에 가서 철학 박사와 사회학 박사를 받고 온 최모씨다. 독일에서 귀환 후 2년간 교수자리 안나자 이규호에게 지랄을 하여 그 빽으로 서울 지역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85년 경이다. 이 과정에서 50살 먹은 기존 교수를 내쫓았다. 오만가지 핑계를 대고 실업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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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李奎浩, 1926년 6월 19일 경남 진주[1] ~ 2002년 4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교육행정가이다. 본관은 재령.
1950년 : 한신대학교 학사
1962년 : 독일 튀빙겐 대학교 철학박사
1963년 : 중앙대학교 교수
1964년 : 연세대학교 교수
1977년 :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장
1979년 : 국토통일원 장관
1980년 : 문교부 장관
1984년 : 한국교원대 총장
1984년 : 정신교육중앙협의회 회장
1985년 : 대통령 비서실장
1985년 : 주일대사
1988년 : 외무부 본부대사
1992년 :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1992년 : 단계학술연구원 원장
1995년 : 순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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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도 하이데거 처럼 독재정권에 부역했다. 인간 실존은 권력에 빌붙어 사는건가? 학살자 히틀러에게 부역한 당대 최고 석학에 철학자 히이데거. 광주학살의 전두환에 부역힌 이규호. 석힉이라는 놈들의 민낯이다. 한국 인문학자들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빅사 교수와 언론이 만든 괴물들이다. 알렉산더에 부역한 아리스토텔레스 처럼 위대하다고 알려진 철학자들은 권력자 똥구멍을 빨고 살았다.
그 동기는 이 최모씨랑 대화를 나누며 인정을 받았는데 그가 최모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최교수 : 너 철학 수준이 서울대 애들 보다 낫다.
사촌동생 : 사실 우리 학과에 윤모씨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배운 겁니다.
최교수 : 그 촌동네에 그런 학생이 있나? 희안하네... 교수들 수준이 형편 없는 곳이 부산인데...
근데 이놈이 지 사촌형이 교수지 지가 교수인가? 서울대 대학원 진학한다고 헛바람 들어 날뛰더니 3년 재수하다가 안되니 연줄타고 중소기업 취직을 했다고 한다. 머리부터 발끗까지 라인이 지배한다. 철학적 사유도 없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지가 그리고 철학 소양은 필자가 한 말을 달달 외워서 떠들고 사촌형에게 들은 말로 독일 유학을 마친 인물이다. 허세의 끝판왕이다. 필자가 평생 동안 누누히 들은 말이 무식한 촌놈이 헛바람 들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된다고 한다. 촌닭이 도시닭 눈 빼먹는다고 하는 말이 이거다.
필자가 부산대 들어갔을 때 술 처먹은 박사생놈들 하는 말이 이거다.
" 네미 싸바ㄹ... 학위 논문이 기존 논문 보고 쓰는 건데, 1차 논문+2차 논문= 박사 논문이다. 원전 이해는 하나도 못하고 받는 학위가 박사다"
칸트가 있다. 칸트에 대해 쓴 외국 박사 논문들을 정리한 것이 한국박사다. 그 논문을 참고하고 쓰는 것이 국내 박사다. 불교나 동양철학은 일본이나 중국 학자의 박사논문을 정리하면 1차 국내 박사다. 그 논문들을 요약하면 1980년대 박사고 이 논문들을 정리하면 1990년대 박사다. 결국 4차 5차 논문이 2000년 이후 박사다. 이런 구조 때문에 국내 인문학 철학 박사들이 모조리 머저리만 나오는 것이다. 천재적이고 독창적 견해가 있어도 이런 박사 논문 구조에서는 머저리 될 수 밖에 없다. 무식한 기존 교수들은 검증된 기존 박사 논문들을 기준으로 거기서 벗어나면 가차없는 퇴짜를 놓는다. 해서 20년 가까이 논문 쓰기 고문을 당하다 보면 천재가 바보가 되고 설사 교수가 되어도 망가진 그 뇌가 회복이 안된다. 그래서 교수가 된 후 학자가 안나오는 것이다. 사유의 틀이 20년 동안 고착화 되어 그 사유틀에 모든 것이 맞추어지기 때문에 창의성은 자연스레 소멸하고 파괴된다.
이제 결론을 정리한다. 교수 학자가 되는 과정이 정해진다.
1. 권력자에 아부 복종이다.
설사 순수실력(?)으로 되었다고 해도 교수직 유지는 학장 총장 이사장에 의해 좌우 된다. 그 순수실력도 선배나 스승의 추천 없이는 불가능이다. 그럼 결국 라인이다. 줄타기다. 라인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니 라인도 실력이라고 항변한다. ㅎㅎ
2. 논문 쓰는데 모든 에너지 소비하고, 논문 형식에 세뇌되고 고정화된 뇌는 창의성을 용납 못한다.
필자가 쓰는 글이 너무 창의적이라서 충격적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마구니(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들은 왜 교수 학자들이 선생님 같은 시각을 가지지 못하냐고 반문한다. 이유는 20년간 논문 쓰기와 교수들의 세뇌로 인해 기존 논문의 시각을 벗어나는 사유를 못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라는 자유분방한 토론을 통해 나타났다. 자유로운 토론이 없으면 창의성은 나타나지 못한다. 가장 창의적인 20대의 뇌를 틀속에 가두어 놓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은 자유토론을 모토로 하였다. 지위와 노소에 관계 없는 치열한 토론을 하였기에 후세 제자백가라고 불렀으며 중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사상들이 탄생하고 맹자 순자도 여기 출신이며, 직하학궁은 또 황로학을 탄생 시키고 이는 위진남북조 시대 위진현학을 만들고 200년 후 조사선, 화엄철학, 천태철학을 만들었다. 중국의 모든 종교(불교 도교) 철학은 직하학궁에서 분출하여 나온 것이다.
논문 쓰기와 그것을 통한 박사 취득은 김용옥 같은 표절 박사, 어용 학자를 만들고 그 뇌는 창의성을 잃게 된다. 해서 최고가 되고 싶은 천재는 박사를 받고도 김용옥처럼 표절(오규 쇼라이 논어 표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버드 독일 프랑스 영국(옥스포드 등) 등등 일류대 출신 한국인 박사들도 창의성이 없는 글들만 쓴다. 한국에서 배운게 그거니 일류대 박사 받아도 못벗어난다.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사상만이 세뇌된다. 조선시대 성리학 그 중 율곡과 이황의 사상이 왜 나타났는가를 성찰하여야 한다. 물론 돈 된다면 천재들이 이공계 안가겠지?? 필자에게 왜 교수 학자들이 선생님 같은 시각을 가지지 못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연구실의 논문 뿐이다. 논문의 논문, 그 논문의 3차 해설, 3차해설의 4차 논문.... 그것이 그들의 우주요 세상이다. 우물안 개구리로 평생을 마무리 하는 것이다. 필자는 평생 동안 항상 원전을 읽어왔다. 번역물이라도 원전을 보지 논문을 잘 보지 않는다. 칸트라면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만 읽었다. 기타 칸트의 수필집이나 논문은 읽지 않았다. 철저한 원전 중심 독서는 창의성으로 이어진다. 철학적 사유는 10대에 끝내고 20대에 완성 시키고 이후는 원저자랑 싸움으로 보냈다. 그래서 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노교수의 좌절 https://cafe.daum.net/Wahrheit/LZpd/426 참고>
온 우주와 인생이 선배나 스승 혹은 친인척 라인(줄)으로 구성되고 그 라인으로 교수가 되었으니 1차로 뇌가 마비된다. 논문쓰기로 박사를 받으니 2차로 뇌가 마비 된다. 해서 하버드, 옥스포드 등등 세계 일류 대학을 나오고도 머저리로 산다. 영국은 10대부터 창의적 시선을 제공한다. 그리고 항상 창의적 시선을 강조하는데 한국에서 석사 이상을 수학한 그 뇌는 적응 못한다. 인문학 천재는 10대부터 자유로운 사고로 트레이닝 받아야 하며 자기 만의 길을 가야만 한다. 한국에서는 불가능이다. 앞에 언급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2024년 3월 31일 紫霞仙人 遊於世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