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샤콘느에서는 가슴에 사무치는 고통이 느껴집니다.
바흐는 아내의 예기치 않는 죽음 앞에서 이 샤콘느를 썼습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제후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아내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돌아왔을 때,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는 세상을 떠나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습니다.
이런 예기치 못했던 이별 앞에서 바흐는 샤콘느를 작곡했습니다.
샤콘느는 아주 감동적이고 사무치는 작품입니다.
한 인간이 괴로워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답변입니다.
나는 샤콘느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로를 발견합니다.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희망이 거기에 있는 듯 싶습니다.
이렇게 샤콘느는 불가사의한 일면이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절망적인 저항과 반항과 원망으로 시작해 계속해서 질문과 절망을 거듭합니다.
자기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패시지(급격한 음의 높낮이 변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이런 음은 따뜻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풍성한 화음에 에워싸입니다.
답을 얻지는 못했으나 위로받은 음입니다.
비로서 바이올린은 자기를 넘어서고 오르간의 울림처럼 깊이 공간을 채웁니다.
바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위로를 경험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샤콘느에서 한인간의 슬픔에 어떤 따뜻한 존재가 발을 들여놓은듯~ 눈물을 말려주는 무었인가가 느껴집니다.
하늘의 개입이 들립니다.
저는 샤콘느가 고통으로 마구 흔들린 아픈 순간에 하늘의 은혜가 개입하는 순간을 바흐 자신도 모르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https://youtu.be/BApAF0DwSW8
첫댓글 누군가는 그랬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고~~~
덕분에 오랜만에 감상합니다~^^
예후디 메뉴힌의 연주가 참 좋습니다.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비탈리의 샤콘느와
더불어 슬픈 음악이라는 명제가 늘 따라붙는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슬픈 음악에는 치유의 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월든 그러게요~저도 예전에 우울해지고 슬픈 밤에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듣곤 했습니다.
아마도 슬픈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 부분을 반복해서 들어봅니다.
답은 얻지는 못했지만 위로 받은 음이 어떤 건지
하늘의 은혜와 자신의 고통을 한꺼번에 뭉쳐서
표현 할 수 있다는 건 음악에서나 가능하지않으까.
음악을 이렇게 읽어주시니까 너무 좋습니다.
혼자 헤매다 지치는 거 보담 얼마나 경제적인지
역시 음악의 낙원에 들어갈라면 오랫동안 노력해서
들어가는 열쇠를 가져야만 가능하다는 표현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월든님/ 음악을 설명하고 읽어주는 남자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주 부탁드립니다.
아까님이 표현하신 열쇠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사에는 상대방의~, 아니면 독자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있는 공감이라는 열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사고가 점점 굳어져
고체화 되어버려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그릇에
잘 담기지 못하는 저 자신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인문학이나 예술에 향한 노력도
게을러져서 말랑말랑한 액체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은퇴하고 여유가 생겨나면 해야지 미루어
두었던 일들도 요리조리 핑게를 대면서
게을러지기 일쑤입니다.
바흐는 자식들이 많아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닥치는대로 작곡을
해야만 해서 그의 음악적 레퍼토리는 무척 다양합니다.
어느 순간 음악듣기가 식상해져서 들을거리를
찾게 될때 어김없이 바흐를 찾게되더군요.
바흐 이전의 세계는 암흑이 아니었을까
하는 극단적인 추론도 하게됩니다.
귀족들이 자신들의 허영심을 채워넣거나
괴시를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곡으로
한다거나
신도들을 홀려서 헌금을 많이 받아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이성을 유혹하거나 군중을 미혹하기 위한 묘약으로
활용한 일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아이 빌리브를 틀어놓고 가짜눈물을 흘리는
천박한 광경에 경악을~
@월든 종교적 편향이 혹 정치적 술수들이 대중을 이용하니까
거짓눈물의 책임은 우는 대중들이 아니고 천박한 도그마일까요
애정을 가지고 함께하다보면 진짜 눈물을 흘리는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고 갈증은 오래가더라고요
@아까 인류사에서 돈은 재능을 늘 가지고 놀았던 것 같습니다.
고호나 베토벤같은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예외자가 있기는 했었습니다만~
작금의 상황도 바보 하나 앉혀놓고 자본들은
그동안 못해왔던 숙원사업들을 물밑에서
착착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끝까지 간다면 건보나 전기나 물이
자본에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자본의 노예가 될까
두렵습니다.
민초들이 늘 깨어 있어야 하는데, 우매한
자들의 선택이 걱정스럽습니다.
@아까 그 누구도
자신이 아는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나
이분은..
스피커.
오선지 속
그리고,,
무조건 나무.
악기
사구려..
억대를 넘나드는 악기들의 나무.
그리고,,
집에 있는 테이블과 체어.
원재료는 나무.
나무.
고가구
부터 참 그들만의 리그.
각 떨어 진다고,,
선수들 아니면 근접 못해요.
청화 백자 구매자 정도는 패스~
고전 전통을 사랑합니다.!!
그 수많은 우주의 별들 처럼 많은 음악과 가구들 있지만..
인문학적으로 최고인 분이 “월든” 선배님
무소유?
데이빗 소로스?
길상사?
자..
제가 한 맔씀만 하고
갈께요..
값나가는 첼로도 있고, 바이올린 사분에 일 부터 새까지.. 나머지 사는 전공자 아닌데도
최고!
피아노 역시 최고로..
조율?
조율도 돈?!!
나무 특성과 두께,,
그리고, 쇠줄
무슨줄?
이후에는 작곡자를 빠는것인데,,
음악은
역시! 월든선배님.!
호남에서 참 멋집니당!!
최고세요!‘
하여
제가
늑대라는 분 도발때..
그리고,
당시
아까님께서 한데 줘 박아 줄까부다라는
표현.
암튼
원든 = 음악 최고!!
@월든 깊이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그림을 읽어 주는것처럼
음악도 설명이 도움이 되네요.
저는 비탈리의 샤콘느만 알고 있었는데...
덕분에 아릿해 지는 감정을 느껴 보았습니다.
읽어 주는 음악이 독서방을 더 풍성하게 하는 기분이 듭니다.
혹시 비탈리의 샤콘느도 올려주시면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을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
비탈리의 샤콘느는 "야사 하이페츠가 연주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손쉽게 명연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허기진 사람처럼 음악에 목마르던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는 간절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까요.
젊음도 늙음도 나의 인생에서 단 한번만
가질 수 있는 똑같은 값으로 소중한 과정들이라고 봅니다.
할 말은
많은데,,
그냥 넘어 갑니다.
이시대
우상!
“마이스트로”
월든 선배님.. ^^;
나무.
조각도,
향기.
임문학의 보고!
스피커 제작자.
제가 인장하는 원 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