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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님의 말씀이 좋습니다.
기준이 명확하다는 부분에서 좋습니다.
아이를 양육할 때 부모에게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그때 그때의 감정 등으로 오락가락 거린다면
아이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겠죠.
계속 눈치를 보려 할 것입니다.
반면 진리의 말씀은 명료합니다.
모를 때가 생기는 것은 제가 모르기 때문인 것이지,
모든 말씀이 요한계시록의 내용처럼 일부만 보여주시고
상당 부분을 가려두심으로 모호하기 때문은 아니죠.
만일 진리의 말씀이 이럴 땐 이렇게 적용이 되고
저럴 땐 저렇게 적용이 되고 식으로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해봐요.
난장판식의 믿음이 되어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혼잡하게 해달라는 이들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예컨대 다른 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명분으로 기도를 하죠.
'주님 저 사람이 그것을 하도록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어쩌고 저쩌고'
이는 다른 누군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기 위해
주님을 조종하려는 것인데, 들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주님이 사람들을 조종하시는 분이시라면
그 누구도 마귀를 따라 살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주님을 따르도록 하면 되니까요.
만일 그러하다면 사람이란 존재는 입력되어진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뭐가 다르겠나 싶습니다.
주님은 조종을 하시는 분이 아니신데도
끊임없이 주님을 이용하여 다른 이들을 조종하려 든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일까요?
반면 조종, 강요, 압박 등은 마귀의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생각 등을 버리려고 하는데
버려지지 않으면 그 뒤엔
십중팔구 강압하고 있는 마귀가 있다고 봐야죠.
"어쩌면 성령님이 주시는 것일 수도 있잖여?"
제 생각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하면서도 그리 여긴다면
타인 앞에서 하는 말과
실제 마음 속에 담긴 말이 다른 것 아닌지요?
만일 오늘부터 주님에게
불순종하기로 작정했다고 해봅니다.
주님이 강제로 막으실까요?
제가 아는 주님은 그리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제 의지가 그러하다면 저는 그저 죄속으로 달려가겠죠.
죄와 이어지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대신 혹은 강제로 막아주시지 않으시기에
주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악한 자와 싸우지 않아
악한 자에게 질질 끌려다닌다면
주님의 사람으로는 살기 어려울 것이겠죠.
생각해보니 싸우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주님의 군사가 되라고 하셨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혹 중에 이런 미혹이 있습디요~~
신령함의 미혹~
예를 들자면 마치 무속인들마냥
주님이 상대방의 지나온 과거를 모두 알려주신다 등
특정인 등을 지나치게 신령하게 여기는 것 같은.
"당신이 머시간디
잘 알지도 못함서리 아니라고 하는겨.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디~~~"
매우 특별한 경우의 예외가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 속의 인물들을 통털어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었는지요?
단지 사람을 대했을 뿐인데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이 다 보인다면
매우 끔찍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란 것은 복잡다단한 경우가 많습니다.
선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기에
그 중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것이 있을 수도 있겠죠.
주님이 그것마저도 누군가에게 다 보여주신다면
이내 믿음이 바닥을 치고 지하실까지 내려갈 것 같습니다.
유툽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상이 속이는 영상을 봤습니다.
중국 남부지역이나 베트남이 아닌가 싶던데
손님이 싱싱한 과일을 골라서 비닐에 담아주면
무게를 달아보는 척 하며 몸을 돌릴 때
슬쩍 몇 개를 더 집어 넣는 방식으로 무게를 늘립디다.
몰래 집어넣은 것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겠죠.
누군지 모를 때는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알지 못하는 타인에 대한 정죄보다는
그저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선에서 머물기 쉬우나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아는 상태라면
그 사람에 대한 판단, 정죄 등의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그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은 것을 다른 이가 안다면 부끄럽겠죠.
부끄럽다는 마음은 위축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고,
위축이 생긴다는 것은
그 부분에서 주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불신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글고 다른 이에게 저의 치부를 다 까보이시는 데 따른
주님에 대한 원망 등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깨닫고 통곡하는
연쇄 살인범이 있다고 해봐요.
만일 그 앞에 사역자 분이 있다면 회개하는 맘을 보여주시겠지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악을 행하였는지
구체적으로~파노라마처럼 펼쳐보여주시겠는지요?
어느 드라마의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어요.
무속인에게 어느 여자가 찾아간 상황의 설정이었어요.
"여기에 왜 왔소?"
"내가 왜 왔는지도 모르면서 뭘 맞춘다는 것인지?"
(무속인이 이 말에 기분이 상했다는 표정으로 )
"너는 팔자가 세서 조실부모하고....."
"맞아.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왜 반말이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만일 주님이 드라마에서처럼
시시콜콜 다 알려주시는 분이시라면
주님의 종이신 분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서리
"시방~~ 내가 묻지 않았으나 답을 주시오"식의
위의 내용과 같은 선문답이 가능하지 않겠는지요?
정리하면 스스로 거룩한척 하면서
이리저리 무속인 노릇을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듯요.
그만큼 미혹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합니다.
돌아가서요.
누군가를 조종하려 드는 것 역시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함과도 연결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타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의 궤적을
누군가에데 다 보여주시지 않음 또한
자유의지와 연결된 것으로 이해가 되어집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제가 그리 여긴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게 귀가 3개있는데 하나는 등에 붙어 있다고 해봐요.
공개를 하든, 부끄러워서 감추든 제 의지의 영역에 해당이 되겠죠.
남들이 알기를 원하지 않는 선택을 했는데도
그 부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셔서리
"헐~~~~
니는 등에도 귀가 하나 더 있나?
등 귀가 간지러울 땐 혼자서 워치게 귀지를 파남?"이란
질문을 받았다고 해봐요.
그러면 저는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만들어주신 이가 대체 누구시관대
그것으로 놀림의 대상마저 되게 하십니까~~~~
제게 왜 그러십니까~~~" 하며
주님을 원망하는 상태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주님을 원망한다면 주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요.
정리하면 강제로 죄다 드러나게 하심은
주님의 방법일 수 없겠죠.
개인적인 의문이 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의지'라는 영역이
그렇게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인가라는?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할 때가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마귀가 생각을 주면
성령님이 주시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
미혹이 있거나 심할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생각 등에 대해 마귀를 의심해봐야 하는데도
자신의 거룩함으로는
자신에겐 마귀가 접근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요.
전에 누가 그럽디요.
성령님이 저더러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보라고 했다고.
미혹을 발산하는 지경이 이른 사람이었다고 압니다.
그때는 미혹이 뭔지조차도 잘 모를 때였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 상대조차도 싫어하는 저를 향해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지 등에 대해
계속 설명 내지는 증명을 하려 들었고
자꾸만 제게 뭘 들어라, 봐라 식의 강요를 하려 했었죠.
"하라고 하는대로 했었어?"
아뇨~~무시를 했었죠.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이후 불신이 들어오려고 해서
며칠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혹의 영은 곧 불신의 영이라는 것을 알겠고
강제하려는 영인 것도 알겠습니다.
마귀가 주는 것을 계속 받아들인다면
결국은 마귀의 종인 것이니
주님의 사람으로 살기란 쉽지 않겠죠.
"며칠 동안 나가라고 하면서 싸웠어?"
ㅠㅠ
밖에서 공격해오는 것을 저의 생각으로 여겨
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4~5일 정도 괴로워 했었어요.
"싸우지 않았다먼서 어떻게 벗어났었는데?"
고딩 때부터 실재하심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심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어요.
다만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했을 뿐.
그래서 불신이가 버티지 못하고 나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아무리 악한 영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당사자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는
강제로 파고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인듯요.
또한 용서와 아무 것도 없었던 것과는
같은 말이 아닌데도
같은 것으로 여기는 미혹 또한 존재하는 듯요.
"왜 그것이 미혹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여기는겨?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한 등 그러하던데."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보일런지 몰라도
죄로 인한 결과까지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용서와 단절이 함께 갈 수도 있을 것이겠죠.
누군가 제게 핍박을 가하며
배교 및 개종을 강요했다고 해봐요.
용서와는 별개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전처럼 지낼 수 없습니다.
단절을 해야 할 대상에 불과합니다.
이런 경우 말고도 여러 사례들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때론 몇 마디의 말로 설득하면
모든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자였으면 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도 그러한 능력은 없습니다.
복음을 주신 주님조차도 그리하지 않으셨고요.
"알면서도 진짜로 그런 전무후무한 것을 원햐?"
아니예요~~
가능하지 않음에 대해 알는데, 왜 바라겠는지요?
이러한 부분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랴?"
반어법~~~~~~~~~~~~~~~
당사자가 원치 않는데도
강제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없고,
말씀 등에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믿음이 자라는 일 또한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기도로 가능하고
단지 몇몇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한 후
실행하면 되는 줄로 아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누가 그럽디요.
자신에게 데려오기만 하면 주님을 믿도록 할 수 있다고.
그러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들어봤습죠,
먼저 그 사람이 좋아하도록 친절하게 대한 후
미안한 마음이 생기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때 잡아당긴다는 것으로 언뜻 그럴싸하긴 합니다만,
미혹이 심한 이로 여겨집니다.
우덜이 누군가와 친해질 때는
마음이나 관심사 등이 맞아야 하는 것이지
단지 누군가가 잘해준다고 하여 친해지는 것이 아니죠.
공통된 무엇이 없다면 그 사이는 이리저리 겉돌기 쉬울 것입니다.
글고 누가 내게 잘해주다고 하여
급~~~~저의 마음이 낮아지고 가난해지면서
주님을 영접할 상태가 되어지는 것인가요?
복음이 사람을 통해 전해진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나,
단지 사람의 기교를 통해 전해지는 것은 아니죠.
과거 구땡이들이 곧 휴거가 될 것처럼 떠들어댔어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그 즈음에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 등이 있었고
이어서 5공이 태동되었던지라 그때 즈음이었고
저는 당시 국민학생이었어요.
만화 주인공이었던 캔디와 이라이자 그림을 그리고 다니던~~^^
주장이 빗나간 후 그럽디요.
그렇게라도 겁을 주었기에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이를 바탕으로 죄에 대한 회개함이 없는
또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 변명, 궤변 등은 마귀의 것이구나 합니다.
이상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이야기하고는 죄가 사라졌다고 여기는 듯한.
궁금증))))
제게 누군가의 죄를 도말시킬 능력이 있었나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댜?"
모르는데요.
"그라도 뭔가 당신이 했기에 그런 것 아녀?"
아니라니까요~~~
남의 죄를 알고 싶지도 않고, 개입하기는 더욱 싫습니다.
쓸데없이 개입해봐야 비판, 판단, 간섭
나아가 정죄하는 마음 등으로 공격만 초래시킬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지요.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일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바로 이 부분으로 인해
역시도 죄로 끌고 가려는 공격의 한 형태인가비다 ~ 합니다.
미혹과 공격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주님의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왜 주님을 뵙겠다고 광야로 들판으로 나왔던 때를 잊은 채로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를 쳤을까요?
1. 주님이 그들에게 겁을 왕창 심어주지 않으셔서
2. 주님이 계산하여 잘해주는 등 밀당에 서투르셔서
ㅋㅋㅋ
( 저 중엔 답이 없는 것 아시죠~~~~)
주님은 그 자체로서 주님이신 것이지
내가 원함의 부분을 덧씌운 채로 형상화시켜 믿는다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친 자들과
무엇이 다르겠나 합니다.
미혹에 대한 내용을 적었는데요.
미혹에 당하지 않고, 미혹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고
순종을 해나가는 것 외엔 없다고 압니다.
하지만 미혹이 강한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대해 스스로 높게 평가하는데다
미귀가 주는 생각이나 감정을 따라가기 쉬워
미혹의 영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고 압니다.
악순환의 연속이기 쉬운데요.
그렇다고 하여도
미혹의 영이 주님을 능가할 수 없기에
주님의 말씀을 익히고, 따르려 하는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압니다.
주님을 향한 자유의지요~~~
설령 가장 강한 축에 낀다는
이단 등의 미혹의 영이라고 해도
주님이 이미 이기신지라 강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제 경우를 보아도
공격의 틈이 되어지는 부분은
여전히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사는지라
얽힌 실타래마냥 죄가 얽혀져 있을 경우엔
스스로 놓기 어려운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제가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주님은 약하시고 마귀는 강해서가 아닙니다.
어렵다고해도 최대한 놓을 수 있는데까지는 놓고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모른 채 버려두시지만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으니까요.
강한 싸움 가운데로 들어가본 바가 없어
그리 여긴다고 한다면
강한 싸움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신약이 완성되어지던 때의 싸움에 대해 모르고
중동이나 북한 등에서의 싸움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믿음을 잃도록 하고자 하는 자들이 존재하는지라
누구에게도 쉬운 싸움이란 없다는 것은 압니다.
주님은 이미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과
무기들을 다 주셨습니다.
모두 주셨음에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내 믿음의 부족 또는 부재인 것이기에
다 내 탓에 불과한 것이겠죠.
글고 주님도 대신 해주시지 않는 싸움을
타인이 대신 해줄 수 있겠는지요?
계속 말씀을 붙잡고 싸우다보면
어느 때부터는 악한 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약해진다는 것이 알아지기 시작하는 듯요.
정체를 알면 이긴 것이나 진배없고, 이깁니다.
이기라고 하셨으니
이기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이기는 것이 바로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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