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집은 부안에 있고/조재형-
임진년 봄날 바람으로 정박한 희경(希慶)에게
당신은 무작정 승선합니다.
뒤척이는 정인들의 파란을 두고
표류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일생 지켜온 성문을 밤마다 두드리니
희경이 좌초되었다는 소문이 떠다닙니다.
전신이 당신으로 번져 앓고 있으니
작당하고 솔섬에 들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월척한 당신을 함구하는 촌은(村隱)
식음을 전폐한 채 난항 중이라고
서림 일대가 들썩입니다.
희경의 암초에 걸려 오도가도 못한지 십 수년
하지만 이 나라 연인들은
식어버리는 염문을 등지고
도서관으로 고시원으로 잠적한지 오랩니다.
촌음만치라도 딴 맘을 품었다면 이어가지 못할 교분이었습니다.
딴 처자를 천침(薦枕)시킨 후 피해버린 당신의 분별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삼 년의 기다림도 까마득합니다.
저녁에 성벽을 쌓고 아침이면 허물어 버립니다.
서로를 읽는데 백일이면 충분하지요.
떠들며 밥술 얻어먹기를 부끄러이 여기며
홀로 탄금하던 당신
조선의 밤하늘은 방청나온 별들로 만건곤하였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 문장에서
달과 별은 잠적하였습니다.
연인들은 아무 때나 뜨고 지는 문자만 밤새 기다립니다.
외상술 몇 잔에 이 나라 신용은 정지되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무술년 가을입니다.
초목 무성한 학당마루 사이
거문고를 안고 칩거한 유택에 당도하였습니다.
일찍 돌아누웠으나
당신의 문장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천하의 교산(蛟山)이 사무치게 인용합니다.
* 매창과 유희경의 문장 일부를 발췌하여 변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