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머금은 그곳에 가면
김윤희 (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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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자꾸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
더 이상 찾아올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로 문을 닫게 된 나의 모교다.
1971년,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밀어 학교를 세우고 나는 그 첫 번째 입학생이 된 까닭에, ‘백곡중학교 폐교’라는 문 앞에서 더 서성거렸는지도 모르겠다.
서른아홉 번째 졸업생을 끝으로 이제 ‘충북 학생 교육문학관’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또 다른 꿈과 문학의 향기를 피워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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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감치 아침을 먹고 차를 몰았다.
주차장입구에서 껑충 키 올려 까치집을 내주고 있는 나무가 정겹게 마중한다.
뜰로 들어서니, 하얀 벽면에 ‘문학의 향기가 머무는 곳’ 문구가 산뜻하다.
문학관은 이제 막 개관 하여 많이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다. 심상이 거닐 수 있는 고요가 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평화로움이다.
이른 삼월, 바람은 아직 칼칼한데 어깨위로 내려앉는 햇살이 밝고 따사롭다.
우뚝한 조회대와 잘 손질된 교정에 오도카니 앉아 독서하는 소녀상은 학교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운동장가에 빙 둘러 그늘을 드리웠던 수많은 버짐나무들이 튼실하고 미더워 보인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지 갓 마흔을 넘겼으니 한창 가지를 벋고 허리가 굵어지고 있는 장년의 모습이다.
넓게 펼쳐진 운동장의 황토 빛 흙살에는 아이들이 꾹꾹 찍어놓은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을 듯하다. 어디 한 구석 내 어린 날의 발자국도 숨어 있지 않을까?
학교 울을 에두르고 있는 소나무, 잣나무들은 이미 숲을 이루고 있다. 학창시절 우리들이 심어 가꾼 나무들이기에 정이 더 간다.
이곳은 애시당초 공동묘지가 있던 동산이었다.
불도저로 산을 밀어낼 때 황골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황골은 무덤 속에서 누렇게 된 유골을 말하는데 풍수지리에서는 황골이 나온 무덤을 길한 혈이라 하여 후손들이 잘된다는 속설이 있다.
이곳에 와 보면 그 풍치가 한눈에 와 닿는다. 뒤로는 완만한 산릉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은 탁 트여 백곡호로 들어가는 맑은 내가 흐르기 때문에 누가 봐도 탐낼만한 자리다.
실내로 들어섰다.
리모델링된 내부에서 풍겨지는 나무냄새가 마치 그 옛날 새물내 감돌던 교실에서 맡던 잉크냄새처럼 상큼하다.
꿈이 싹터 자랄 터전에 대한 기대와 작은 사랑이 꿈틀대던 그 설렘이 다시 인다.
아기자기 꾸며진 북 카페에서 국화차 향을 마시며 ‘문학의 뜰’로 들어서면 충북문학의 안내와 문인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난다. ‘문학. 삶, 감동, 깨달음, 그리고…….’ 여운이 잔잔하다.
2층으로 오르면 ‘문학의 숲’이다.
충북 근현대 작고문인 15人의 행적을 적어 세운 사각기둥을 만나게 된다.
숲을 이루고 있는 열다섯의 기둥에서 각자가 내뿜는 독특한 문향에 흠뻑 취기가 돈다.
한국의 아나키스트로 불리는 영동의 권구현선생은 ‘구천동 숯장사’에서, 외로운 별 하나/ 떨어질 듯 깜박이고 있는/ 천마령 높은 재를/ 이슬 찬 이 밤에 어찌나 넘으려노/ 묻는다.
충주에선 여럿이 건너와 터를 잡았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권태응선생의 말씀도 들려오고, 그 옛적 고려와 조선조/ 뱃길이 발달하였다는 물줄기에/ 곡식과 소금이 오르내리던 장삿배의/ 그림자 그친 남한강 줄기를 타고 박재윤선생도 자리했다.
어느 여인의/ 슬픈 넋이 실린 양/ 햇쭉이 웃고 쓸쓸한/ 모밀꽃의 정호승 선생도 이곳에 모밀을 심었다.
작품활동 내 동반작가로 스스로 이념을 잘 조정하며 살다 마지막엔 그 이념에 목이 졸린 신의실의 이흡 선생은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 그 자체다.
홍구범선생 역시 수필, 소설, 평론, 등 짧은 기간 다양한 장르의 문향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고도 행적의 기구함은 분단의 역사 탓이 아닐는지.
청원의 김기진선생은 수필 ‘프로므나드 상티망탈’에서 생의 본연한 요구의 문학, 그것이 필요하다. 생명이 있는 문학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 숲에는, ‘5.16 군사정권에 맞서는 자신의 詩도, 자신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작품 홍경래를 끝으로 절필했던 신동문선생의 아픔도 깃들었다.
홍명희선생이 이르기를 ‘살아서도 귀신이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단재는 살아서도 사람이고 죽어서도 사람이다’ 라 했다. 꼿꼿한 민족주의 문학인 단재선생은 ‘꿈 하늘’ 속의 한놈이 되어 이 숲에 단단한 기둥이 됐다.
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 우엔/ … 밤 서리 차게 나려 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러붙든 밤/ 서른 넷,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보은 오장환선생의 안타까움은 또 어이하랴.
‘사람은 흙냄새를 맡아야 산다.’ 농민 작가의 상징인 음성 이무영선생의 흙내음도 맡을 수 있다.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옥천을 노래한 정지용선생은 차마 꿈엔들 잊힐 리 없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진천이 낳은 민중 민족의 작가 조명희선생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하여 그 먼 이역에서도 조국을 목메어 불렀다. 나의 딸 “조선아” 내 아들 “조선인” 그의 목소리가 예서 메아리로 운다.
해만 저물면 바닷물처럼 짭조름히 향수가 저려들 듯 포석의 조카 조벽암선생의 문향도 고향 진천에 이미 촉촉이 젖어들었다.
나라를 찾으라, 친일하지 말라 부친의 유언 따라 괴산에서 3. 1만세운동을 주동하며, 조선에서 가장 오랜 첫 에스페란티스트가 된 홍명희 선생은 임꺽정을 앞세워 이 숲을 지키게 됐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보면 근처에서 예쁘장한 ‘문학의 샘’을 만나게 된다.
이 샘에서는 손가락 터치로 문인들을 하나하나 불러낼 수 있다.
고요한 샘물에 잔잔히 이는 물결 따라 작가들이 번져 나오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충북의 작가 15인이 한군데 모여 둘도 없는 친구로, 선후배로, 혈연으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음을 구도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도 이색적이다.
꼿꼿한 각자의 정신세계가 한 혈맥을 타고 면면히 흐르는 문필의 기를 느낀다.
‘따로 또 같이’ 끈끈하게 얽혀 우리 근현대 문학사에 굵은 획을 긋고 단단한 기둥이 되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념과 사상,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신지식인으로, 또 의식의 선각자로, 허우적이며 문학의 맥을 지켜온 이들의 아픔을 이제 누군가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의 향기 머금은 그곳에서 가면 나를, 우리의 역사를, 이 시대를 짚어볼 숙연함이 감돈다.
-백곡중학교 역사관
동문들이여! 소장하고 있는 소중한 중학시절 물건이나 기록물 보내주시면
이곳에 전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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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의 소중한 모교가 서른아홉 번째 졸업생을 끝으로
이제 ‘충북 학생 교육문학관’이란 이름을 내걸음에 또다른 애착이 갑니다.
꿈과 문학의 향기를 피워낼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