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빠르지도 않은데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나이 예순이 넘어 정년퇴직을 앞둔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벌써 내가 정년을 맞이하는 건가?”
그리고 환갑이라는 날이 되었다고 가족들이 간소하게 생일과는
좀 더 격식 있게 축하를 해 주었다
환갑이란 나이에도 아직은 젊다는 생각뿐이어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려 했는데 정규직은 없고 비정규직 이라는 곳만 내가 선택 할 길이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나의 길은 한 번의 은퇴라는 계급장 달고 나니
노년이라는 직함을 얻게 되고 몇 번의 면접을 보고 난 뒤
나는 비로소 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모두가 어제 같은데
지나 온 것들을 회상해 보면 참 긴 세월이 흘렀음에
세월이 가는 것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작은 월급마저도 소중함을 느꼈을 땐
그런 자리에서마저도 은퇴를 강요당하는 나이가 되었다
점점 자연스럽게 노인들 틈에 자리를 얻어 안착하게 되었을 땐
망부석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체 머리 속에선 흘러 간 나의 영상들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세월은 뜬구름 같았고 부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았고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보았던 궂은 날 내리는 비였으며
소담스럽게 내리던 함박눈이 모두가 내 곁을 지나 간 세월 이였음을
붙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었다.
아이 였을 때 사진과 건장하고 잘 생긴 청년시절 사진을 보면
주름진 얼굴에 허연 머리
축져진 눈꺼풀이 무거워 반달처럼 가늘게 뜬 눈이
지금 이게 나인가하는 생각에 어깨가 무너져 내려 앉는 듯 하다
외출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칠순이 지난 아내가 문을 열어 줄 때면
멍하니 서서 먼 옛날 신혼시절 과붓집 문간방에 세들의 살던
곱상하고 예쁘기만 했던 그 때를 생각하곤 한다
그랬던 당신도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어 어느 날은 반갑게
또 어떤 날은 퉁명스럽게 어떤 날은 문고리만 풀어 준 체 돌아서는
이젠 그런 것들이 일상이 되어 살아간다.
호들갑을 떨며 반겨주던 남의 집 문간방 세 살던 그 때가 눈물 나게 그리워진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청춘의 날이라는데
삐꺽거리는 몸속에 과연 청춘의 피가 흐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어쩌다 세월이 내 곁을 잘 못 스치고 지나가 이런 상처를 남긴 청춘이 되었을꼬.
세월을 너무 괄시한 죄일 것이다
엊저녁 아내와 유튜브 동영상을 찍으려 재료 구입 차 시장에 들렀다가
내가 좋아하는 족발도 하나 샀다
사실 어제는 작년 가을부터 재미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구독자 수도 충족되고 구독자들이 시청한 시간도 충족 되어 수익이 생기기
시작하는 첫날이란다.
구굴인지 뭔지 하는 데서 연락이 왔는데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한다고 하며
4달러부터 시작 되더니 지금은 32달러라고
돈이 들어온다니 우습기도하고 재미도 난다
우리 부부가 새로운 직업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족발에다 안 먹던 소주도 한 병 놓고 축하 파티를 한 셈이다
술을 오랜만에 먹었더니 취기가 올라오기에
아내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였다
내일부터 당신이 가장이 되어 달라고
가장 포기를 선언한 셈이다
어차피 집안 대소사며 소소한 일까지 모두 당신이 하는 일이니 가장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은퇴한 처지이니 가장자리마저도 은퇴하고 싶다고
하였다
아내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젠 할 만큼 했으니 쉬라고
가장이란 허물을 벗는다고 가장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겠지만
일단 완장을 넘겨준다니 받아 주겠다고
그리고 웃는다
그게 넘어 온다고 넘어 오겠냐는 것이다
평생을 기둥처럼 살아 왔고
평생을 큰소리치며 살아 온 사람이 가장 자리를 넘겨줬다고
가장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을 넘겨준다고 했다
오십년 세월을 가장을 해 왔으니 당신도 해 봐야 될 것 아니냐고
그리고
가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라며 거수경례까지 해 주었다
또 한 번의 은퇴식이 된 셈이다
세월은 세상을 바꿈질하며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