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허무주의
(1)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의 질문
세상이 흉흉하여 악하게 사는 자가 더 풍요를 누리며 살고, 착하고 경건한 자들이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 때,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해진 사람들이 이렇게 절규한다.
* 렘 12: 1 -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하박국 선지자도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
* 합 1: 2-4 –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이런 때에 신앙의 허무주의가 일어나기 쉽다.
신앙의 허무주의란?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계시는지는 알겠지만, 그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신앙의 허무주의(유신론적 허무주의)라고 말한다.
예레미야나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되었다.
(2) 그러나 세상을 괴롭게 하는 장본인들이 교만하게 하는 말
본문(말 2: 17)에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하는 질문은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해진 사람들의 절규가 아니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바로 악의 장본인들이 하는 말이다. 자기들이 저지르는 악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행하는 악한 일도 선하게 보신다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기 편이며, 세상의 착하고 선한 사람들보다 악을 행하는 자기들을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들이 이렇게 큰 부흥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뜻까지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는 자들
그들은 세상의 역사는 물론 하나님의 뜻마저 자기들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과 저주도 자기 마음대로 선포하였다.
자기들 마음에 합한 자들에게는 복을 선포하고, 아무리 말씀대로 살았더라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선포하였다.
마치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모두 자기들이 움켜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였다.
(4)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권력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다가, 급기야는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의 하나님이란 없다고 큰소리치기까지 하였다. 어디 한 번 자기들에게 심판을 해볼 테면 해보라고 큰소리쳤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죽는 것은 연약한 자들이고, 자기들은 살아남아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한다.
(5) 신앙의 허무주의의 위험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알겠는데 그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잘못된 신앙에 빠질 위험이 있다.
① 신앙의 형식주의
신앙의 허무주의는 신앙의 형식주의를 불러온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도 없으며, 예배에 대한 감격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그냥 몸만 왔다 갔다하는 자가 된다.
이런 자들은 우리가 말라기 1: 6-14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배를 귀찮은 일로 여기는 자다.
이런 자들은 언제든지 시험을 당할 위험군에 속한 자들이다. 신앙의 기쁨도 없고,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도 없으니 아주 작은 일만 일어나도 어김없이 시험에 빠진다
자신이 이런 상태라면 지금 자신이 마귀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서둘러 하나님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② 도덕적 타락
신앙의 허무주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는 자가 된다. 신실하게 살아도 나를 지켜봐 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2: 10-16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지독한 타락이 일어나게 된다. 머리로는 말씀을 알지만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육체의 욕망이 불쑥 솟아오를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이나 야곱의 아들 유다도 타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어서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타락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은 그 자체를 타락이라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어렵다.
③ 역사와 하나님의 뜻까지 바꾸려는 악의 사람들
가장 심각한 자들은 역사와 하나님의 뜻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악의 사람들이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부했고, 나중에는 자기가 메시야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앙의 허무주의는 이렇게 마귀와 사탄의 깊은 늪 속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하므로 그 어떤 것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의 혼란의 때가 바로 신앙의 허무주의가 만연한 때이다.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믿음이 비밀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없고, 예배의 감격도 없는 사람들 속에서,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타락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것이 타락인지 죄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6) 주님께서 속히 임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이라도 전혀 심판하실 리가 없다. 오히려 저 가난하고 착하고 선한 사람들보다 우리들 악한 사람들을 더 아끼시고 좋아하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몇 대를 걸쳐서 재앙도 없이 잘 사는 게 아니냐?” 하면서 오직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여 오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신다. 말라기는 주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나열했으나, 그들은 결국 ‘나를 경외하지도 않은 자(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자)’이다.
앞에 나열한 ‘술수하는 자(점치는 자)나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들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은 그것이 점치는 것이든, 돈에 대한 탐욕이든, 도덕적인 타락이든 간에 아주 작은 유혹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신다. 그날은 그들에게 아주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 버리시리라’(말 2: 12).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유혹하는 자나 유혹에 넘어진 자) 모두가 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된다. 이렇게 죄 속에 빠져 사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바칠지라도 심판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
(7) 그 전에 새로운 언약의 사자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그러나 크고 두려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주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다. 말라기가 말한 언약의 사자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처럼 말세에도 재림주가 오시기 전에 144000의 두 증인을 보내실 것이다.
①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리라.
그가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레위 자손이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자가 레위 자손인데,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불과 잿물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도우심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보혈 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사라지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된다.
② 그들이 여호와께 기쁨이 될 공의로운 제물을 바칠 자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공의로운 제물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바치는 예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 자신이 바로 공의로운 제물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거룩하고 산 제물로 바치는 자들, 하나님께서 받으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마지막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성령을 구하는 자가 되시오.
③ 신앙의 허무주의를 이기고 깨어서 주의 날을 기다리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자가 됩시다.
* 눅 21: 36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허무주의가 이 세상과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 허무주의에 휩쓸리면 말라기가 경고한 그 흉악하고 부끄러운 죄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므로 허무와 공허에 빠지지 말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참된 믿음의 삶을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십시오.
④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구원받을 자를 고르실 것이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마지막 때에도 말라기 때와 같은 허무주의가 가득한 때가 될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봐야 아무 소용없을 것 같은 공허와 허무감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믿음을 바로 가지려는 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의 때가 될 것이므로 그야말로 은을 연단하는 불과 잿물과 같은 시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연단의 시간을 통해 구원 받을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신다. 주께서 반드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 전에 시련과 연단을 통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와 가짜 짝퉁 믿음을 가진 자를 선별하실 것임을 기억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십시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주 예수를 영접하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히 영접해야 한다.
그는 언약의 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타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그를 증거하며 사람들이 그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를 의지하며 사랑하며 그의 모든 교훈을 순종하고 사람들에게 그를 증거해야 한다.
둘째, 모든 죄를 회개하자.
우리는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멀리해야 한다.
재림하시는 주께서는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회개치 않는 악인들은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그는 때때로 악인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악들을 버려야 하며, 특히 우상숭배, 돈 사랑, 거짓된 신비 추구, 살인, 미움, 음행, 간음, 동성애, 거짓 맹세, 거짓말, 온갖 악행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압제함 등을 다 버리고 멀리해야 한다.
셋째, 감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의 은혜의 불변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 롬 11: 29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주 예수께서는 그를 믿는 양들에 대해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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